
아래 문제가 황당해 보이는가. 진짜 황당한 건 5가지 방법 모두 실제 쓰인다는 사실. 동물을 야생에서 한 마리씩 구분하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작년 여름 돌고래 제돌이가 제주도 앞바다로 돌아갈 때도 그랬다. 사람들은 드라이아이스를 이용해 제돌이 등지느러미에 숫자를 새겨넣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돌고래 120마리가 뒤섞여 무리를 지어 다니는 터라 제돌이를 관찰하고 보호하기 위해서는 불가피하다는 의견이었다. 반대의견도 있었지만 결국 동결낙인을 찍는 쪽으로 의견이 기울었다. 현재로선 다른 대안이 없지만 만약 낙인을 찍지 않고도 바다에서 제돌이를 쉽게 구분할 수 있는 방법이 있었더라면 어땠을까.
지난 여름밤 파주의 한 조용한 시골마을은 개구리를 잡으러 온 대학생들로 북적였다. 청개구리와 수원청개구리 생태연구를 하러 온 이화여대 에코과학부 학생들이었다. 그런데 특이한 점이 있었다. 개구리를 잡으면 까만 통 안에 집어넣었다가 바로 풀어주는 것이었다. 까만 통은 개구리의 옆구리 무늬를 찍기 위해 만든 이동식 암실이었다. 연구원들은 대형마트에서 바코드를 찍듯 쉬지 않고 개구리의 옆구리 사진을 찍었다.
개구리는 개체마다 옆구리 무늬가 다르다. 이화여대 연구진은 이를 바코드로 이용했다. 올해 4월부터 8월까지 일주일에 이틀씩, 매회 100~600마리씩 현장에서 개구리를 잡아 옆구리 사진을 찍고 위치를 기록한 뒤 풀어줬다. 일이 끝나면 연구실로 돌아가 컴퓨터에 사진을 올리기만 하면 된다. 다음에 같은 개구리를 관찰하게 되면 계절에 따라 어떻게 이동하는지, 얼마나 이동하는 지 자동으로 파악할 수 있다. 김미연 연구원은 “아직 분석 중이긴 하지만, 청개구리가 처음 정한 서식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증명사진 찍어주지 않는 야속한 동물들
사실 누가 멀쩡한 동물의 귀나 발가락을 자르고, 뜨거운(또는 엄청나게 차가운) 쇠나 화학물질로 낙인을 찍고 싶겠는가. 그래서 찾아낸 것이 무늬다. 동물의 무늬는 태아 때 멜라닌이 피부에 확산되면서 만들어진다. 지문처럼 개체마다 다르고, 평생 거의 바뀌지 않는다(아래 참조). 그렇다면 무늬를 자동 인식하는 프로그램을 만들면 되지 않을까.
서로 다른 무늬를 죽 모아놓고 번호만 붙이면 되니 간단할 것 같지만, 실제로는 만만치 않다. 야생동물이 스튜디오에서 증명사진 찍듯이 가만히 있어주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패턴을 분석하는 컴퓨터공학자가 등장한다. 영국 브리스톨대 컴퓨터과학과 틸로 버거트 교수는 동물개체식별 분야의 선구자다. 그는 아프리카 펭귄이 자꾸 줄어들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각 펭귄을 자동으로 구분하는 방법을 찾기로 결심했다. 버거트 교수는 펭귄 배에 있는 점이 개체마다 서로 다르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제멋대로 움직이는 펭귄이 카메라를 정면으로 바라보지 않으면, 카메라에 잡히는 점의 위치가 왜곡될 수 있다. 버거트 교수는 자동으로 펭귄의 전체 몸을 스캔하고, 몸을 기준으로 점의 상대적인 위치를 파악하는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사진 한 장이면 ‘펭돌이’와 ‘펭순이’를 구분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 프로그램을 이용해 그는 과거 300만 마리 이상 추정되던 펭귄이 2007년에는 5만 마리 이하로 줄었다고 밝혔다.


유기견 대책부터 대규모 생태연구까지
무늬식별 프로그램은 다양하게 응용할 수 있다. 영국 보존연구소는 야생동물보존협회(WCS)의 후원으로 동물식별 소프트웨어를 개발했다. 호랑이부터 기린, 도롱뇽, 얼룩말, 코브라, 바다표범, 고래상어, 들개까지 적용 범위는 무궁무진하다. 심지어 유기견도 가능하다. 예를 들어 인도 자이푸르 시는 도심을 활보하는 유기견이 너무 많아 골치였다. 유기견 수조차 파악하지 못하던 자이푸르 시는 영국 보존연구소에서 개발한 스마트폰 앱으로 유기견 사진을 찍고 소리를 녹음했다. 어느 지역이 유기견 밀도가 가장 높은지, 이유가 뭔지 파악한 시 당국은 예방접종, 중성화, 동물보호소 이송 등 지역에 맞는 대책을 마련할 수 있었다.
대규모 생태연구에도 응용할 수 있다. 미국 일리노이주립대 벡크먼연구소의 샤오윈 유 연구팀은 카메라에 찍힌 영상으로 동물을 자동식별하는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연구팀은 각 종별로 무늬와 특징을 조사해 데이터베이스를 갖췄다. 2013년 파나마와 네덜란드의 숲을 각각 한 군데씩 골라 카메라 7000대를 설치한 결과, 프로그램이 자동으로 동물 18종을 확인해줬다. 영상에서 무려 82%의 확률로 종 구분이 가능했다. 여기에 개체식별까지 가능하다면, 숲에 살고 있는 모든 동물의 종과 개체수를 파악할 수 있게 된다.



이제 얼굴도 알아본다
“몇 주가 지나자 나는 서서히 침팬지 한 마리 한 마리를 알아볼 수 있게 되었다. 나는 골리앗, 윌리엄, 늙은 폴로 등을 잘 알게 되었다. (중략) 침팬지와 가까이에서 얼마 동안 지내고 나면 같은 반 친구들처럼 쉽게 구별할 수 있다. 얼굴도 다르게 생겼고 성격도 다르다.” _제인 구달, ‘침팬지와 함께 한 나의 인생’제인 구달은 침팬지 무리와 함께 살면서 각자에게 이름을 붙여줬다. 그녀는 침팬지 얼굴을 보고 누가 누군지 구별했다. 몸에서 가장 많은 정보를 담고 있고, 다양한 특징이 숨어있는 곳이 바로 얼굴이다. 독일 프라운호퍼 디지털미디어기술연구소 알렉산더 루스 연구원은 2013년 8월 침팬지 얼굴인식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얼굴에서 눈, 코, 입의 위치를 파악하고 점과 주름을 인식해 개체를 자동식별하는 기술이다. 명암이나 표정, 포즈에 상관없이 프로그램이 작동한다. 심지어 나뭇가지나 잎, 다른 동물에 얼굴 일부가 가려도 문제없다. 보안이나 범죄자 추적을 위해 개발됐던 생체인식 기술이 생태연구로 넘어가 동물식별에 이용되고 있는 것이다(다음 장 참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