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 올림픽 폐막 파티](https://images.dongascience.com/uploads/old/article/2014/09/12498145305423a3e188d8b.jpg)
2036년. 지구를 떠나 화성에 첫 발을 내딛는 데 성공한지도 어느덧 5년의 세월이 흘렀다. 지금 우리 베이스캠프에서는 떠들썩한 파티가 한창이다. 막 폐막한 제1회 화성 올림픽의 성공적인 개최를 기념하는 파티다. 오늘 파티에 참석하는 조건은 딱 하나였다. 경기 때 입었던 선외활동용 우주복을 입자는 것이다. 둔하고 불편하지 않냐고? 전혀 아니다. 일상복처럼 가볍고 얇은 우주복이 없었다면 어떻게 운동 경기가 가능했겠는가.
![▲ 2009년 우주에 다녀온 미국 해병대 랜돌프 브레스닉 대령의 모습. 현재의 우주복은 이렇게 두껍고 복잡한 모습이다. 입고 운동은 도저히 불가능하다. 거울에 비춰 보기 위해 숫자를 거꾸로 적은 가슴의 계기판이 비애를 말해준다.](https://images.dongascience.com/uploads/old/article/2014/09/2271505795423a414407dc.jpg)
우주복 기술이 가능하게 한 화성 올림픽
처음 화성 올림픽을 기획한 것은 한 달 전이었다. 지구에서 36회 올림픽이 열린다는 소식에 ‘화성에서도 올림픽을 열자’는 주장이 나왔다. 당연히 지구로 전부 중계된다는 전제 아래에서였다. 우주 시대의 도래를 알리는 이벤트이자, 동시에 각국의 우주 기술 수준을 전세계인 앞에 선보일 기회라는 의도에서였다. 처음엔 안전 등을 이유로 회의적인 시선이 더 많았으나, 시간이 흐를수록 한번 해보자는 쪽으로 의견이 모였다. 이에 따라 한국, 미국, 영국, 일본, 러시아, 독일, 네덜란드 등이 참가하기로 하고, 우주 환경과 안전을 고려해 종목도 하나씩 선정했다.
경기도 중요하지만 더 흥미로운 것은 따로 있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각국의 우주기술이다. 모두가 자국의 우수성을 부각시키고자 경쟁을 펼쳤기 때문에, 선수뿐만 아니라 기술팀 사이에서 미묘한 긴장이 흐르기도 했다.
사실 우주 환경에서 운동은 단순히 건강을 증진시키기 위한 여가 활동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필수 수단이다. 본격적인 우주 시대를 열기 위해서도 반드시 개선해야 할 중요한 문제기도 했다. 이를 위해서는 활동성을 강조하고 최대한의 운동 효과를 낼 수 있는 우주복을 개발하는 것이 필수였다. 그러나 만만치 않은 작업이었다. 우주복은 기본적으로 지구와 가스 분포 비율이 다른 우주 환경에서도 호흡을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 뛰어난 단열 기능과 외부 방사선 차단 기능도 필요하다. 화성의 표면온도는 극지방의 최저온도인 영하 143℃부터 적도지방의 최고온도인 27℃까지 급격히 변한다. 대기 역시 95%의 이산화탄소와 3%의 질소, 1.6%의 아르곤 그리고 극미량의 산소로 이뤄져 있어 지구와 전혀 다르다. 이런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최첨단 기술을 총동원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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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후반에 개발된 선외활동용 우주복은 약 80kg에 달할 만큼 무거웠다. 단열을 위한 알루미늄 코팅 특수섬유가 5겹이나 들어가는 등 총 14개의 섬유 층으로 이뤄져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개인 맞춤형 장갑과 선외 작업용 덧장갑, 압력장화와 그 위에 신을 수 있는 신발 등이 추가됐다. 헬멧 시스템은 외부 먼지와 자외선, 적외선까지 차단할 수 있었는데, 덕분에 돌발적으로 발생하는 화성의 모래폭풍 속에서도 자유롭게 탐사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복잡하고 무거워서 활동성은 매우 떨어졌다. 입는 시간만 45분 걸렸다. 몸통 부분에는 선외활동복의 압력과 온도를 보여주는 계기판이 있는데, 몸을 구부려 볼 수 없다 보니 숫자를 거꾸로 표시한 뒤 왼쪽 손목에 있는 거울로 봐야 했다. 이런 옷을 입고 운동을 하는 것은 꿈도 꿀 수 없었다.
해결의 실마리는 단순한 아이디어에서 나왔다. 이미 오랜 세월 다양한 용도로 사용돼온 형상기억합금과, 인체 근섬유를 모사한 나노 섬유였다. 이들을 결합시키면 지구 중력장에 있을 때처럼 적절한 근육 운동효과를 낼 수 있는 합성섬유를 개발할 수 있다. 우주는 중력이 약하기 때문에 지상에서와 같은 운동 효과를 기대하기 어려운데, 이런 섬유를 이용하면 가볍고 활동성이 좋으면서 운동 효과도 뛰어난 우주복을 만들 수 있다. 여기에 단열 및 방사선 내성 효과를 지닌 섬유층을 더하고 단열 효과를 높일 수 있는 초전도체, 호흡과 압력을 조절할 수 있는 미세칩을 더하면 지금 우리가 입고 있는 초경량 우주복이 완성된다. 산소를 공급하고 이산화탄소를 제거하는 생명유지장치도 소형화해, 등에 매고 운동을 해도 별로 불편하지 않다.
제1회 화성 올림픽은, 이런 우주복 기술의 격전장이었다. 각국 선수들은 아름답게 디자인된 자국의 우주복을 입고 경기에 임했다. 올림픽이 열리던 날이 떠오른다. 지구에서 늘 보던 너울거리는 불꽃과 다른, 일자로 쭉 뻗은 화성의 성화 불꽃은 지구에서 방송을 보던 사람들 눈에는 매우 이색적이었을 것이다. 육상의 꽃이라 불리는 100m 달리기 역시 지구인들에게 색다른 볼거리였다. 중력이 지구의 3분의 1밖에 되지 않는 화성이지만, 선수들은 우주복의 자체 저항을 적절히 이용해 지구에서와 같이 박진감 넘치는 경기를 펼쳤다.
이번 올림픽의 진짜 승리자는 우주에서도 지구에서와 같은 생활이 가능하다는 새로운 희망을 보여준 화성 과학자들이었다.
![▲ 우주에서 햄버거를 만드는 NASA 우주비행사들. 우주는 중력이 거의 없는 환경이기 때문에 식품을 지상에서처럼 먹을 수 없다(위). 미국 MIT의 다바 뉴먼 교수가 자신이 개발한 차세대 우주복을 입고 있다. 얇고 활동성이 뛰어나다.](https://images.dongascience.com/uploads/old/article/2014/09/19466883035423a4870b831.jpg)
![김치도 우주식품으로 만들 수 있을까](https://images.dongascience.com/uploads/old/article/2014/09/12116309065423a4eb6a094.jpg)
파티의 꽃 우주 음식
축제는 순식간에 막을 내렸다. 그러나 가슴 한편에 자리 잡은 이 벅찬 감동은 앞으로도 계속 될 것이다. 4년 뒤 다음 올림픽이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폐막 파티는 바로 이런 아쉬움을 달래고, 그간의 노고를 자축하기 위해 열렸다. 비좁은 실내에서 우주식량을 나눠 먹으며 음악을 듣는 정도지만, 우리의 유쾌한 기분은 최고조에 달했다. 파티에서는 눈에 보이지 않는 제2의 올림픽이 열렸다. 각국은 자국이 자랑하는 음악을 차례로 마치 경쟁하듯이 들려줬다. 폴란드 팀이 자국의 민속음악을 차용한 쇼팽의 피아노곡 ‘폴로네즈’를 들려주자, 미국은 밥 딜런의 포크 음악을 틀었다. 한국은 이제는 세계의 대중음악이 된 세련된 케이팝 음악을 들려주며 흥을 더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경쟁은 식탁에서 벌어졌다. 각국이 자존심을 걸고 만든 우주 식품은 안전하고 간편할 뿐만 아니라, 맛까지도 일품이었다. 러시아 대표 표트르가 우리가 가져온 우주 고추장을 빵에 찍어 맛보더니 엄지손가락을 치켜 올렸다. 맵지도 짜지도 않고 딱 좋다는 말과 함께였다. 똑같은 고추장을 지구에서 맛본다면 꽤 짤 텐데…. 우주에 가면 중력이 약해 혈액 등 체액이 머리로 쏠리기 때문에 식품의 맛과 향을 느끼는 신경이 무뎌진다. 그래서 우주식품은 지구보다 20% 정도 짜고 맵게 만든다. 화성도 비슷하다. 물론 내게도 지금은 이 정도 맛이 딱 좋다.
이탈리아 대표 마르코와 일본 대표 니시다는 각자 면 요리를 들고 왔다. 마르코가 들고 온 스파게티는 면이 가늘고 짧아 특이했고, 니시다의 볶음국수는 소스가 맛있었다. 둘은 우리가 준비한 우주라면을 맛보고 싶어했다. 비빔국수같이 국물이 없는 우주라면을 먹고는 한 접시를 더 얻어 자기네 테이블로 돌아갔다. 아마 돌아가서 ‘한국의 스파게티’라고 소개하며 호들갑을 떨 것이다. 얼큰한 국물이 있는 원래의 라면 맛을 보여주면 더 좋았을 텐데, 국물은 중력이 약한 우주에서 사방으로 마구 흩어져 먹을 수 없다. 아쉽긴 하지만, 맛과 향, 그리고 쫄깃한 식감만으로도 충분한 만족감을 느낄 수 있어 큰 문제는 없다.
우주식품은 짧게는 6개월부터 길게는 우리처럼 500일 이상을 지구 밖에서 보내야 하는 우주인에게는 대단히 중요하다. 육체적 건강만이 아니라, 정신적 외로움과 향수를 달래는 데 음식보다 중요한 게 없기 때문이다. 이런 중요성 때문에 우주식품은 발전을 거듭해 왔다. 미국과 러시아가 우주개발을 하던 초기에는 단지 식품의 무게를 줄이는 데에만 신경을 썼다. 그래서 건조식품에 물을 부어 먹게 하거나, 튜브 형태로 만든 닭고기 수프, 새우 칵테일, 아침식사용 시리얼 등이 전부였다. 하지만 맛과 향이 너무 떨어져 우주인이 식욕부진으로 영양결핍에 빠지는 일이 잦았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복숭아와 살구 등의 과일이나 참치 같은 반건조 식품을 레토르트로 포장한 제품이 탄생했다. 이후 미국은 2010년대까지 220개가 넘는 우주식품을 개발했고, 러시아도 100개 이상을 개발했다.
한국은 2008년 이소연 우주인 때 볶음김치, 고추장, 라면 등 10개 품목을 처음 개발해 제공한 뒤 점점 품목을 늘려갔다. 2014년에는 약 30개의 식품을 개발했고, 화성에 가던 2030년대에는 100종 이상의 제품을 보유하게 됐다. 우주인들이 여러 해 우주에서만 살아도 먹는 문제로 괴로워하지는 않을 수준이다. 우주식품을 개발하는 과학자들은 “우주식품이야말로 우리나라가 화성에 우주인을 보낼 수 있게 한 숨은 공신”이라며 자부심이 대단하다.
파티가 끝나간다. 디저트로 나온 사과를 한 입 베어 물었다. 고향 느낌이 물씬 났다. 그리움이 몰려왔다. 내 고향은 사과 밭이 유명하다. 조만간 그 맛과 향을 느낄 날이 오겠지. 그날까지, 화성에서의 임무를 무사히 해내자고 다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