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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t science] 고개 3번 넘어야 태양계가 끝난다

“저 모래 언덕 너머에 무엇이 있을까?”

왕자웨이 감독의 걸작 영화 ‘동사서독’에서, 사막의 여관을 운영하는 주인공 검객 구양봉(장국영 분)은 멀리 지평선에 걸친 모래언덕 너머의 세계를 늘 궁금해한다. 그곳에도 과연 사막이 이어지고 있을까. 혹시 세계가 끝나지는 않을까. 가보지 않은 채 생각만으로 알 방법은 없다. 결국 주인공은 영화 마지막에 자신의 거처를 불태우고, 언덕을 향해 발걸음을 옮긴다.

우주를 궁금해하는 인류도 비슷하다. 먼 은하단이나 평행우주를 논하는 시대지만, 아직 인류는 우리의 ‘안방’인 태양계의 끝조차 제대로 알지 못한다. 태양계 경계는 어디이며 어떤 모습일까.



 
모래 언덕 뒤에 무엇이 있는지 궁금하다면 가봐야 한다. 직접 가보지 못하면 심부름꾼이라도 보내야 한다. 태양계 끝이 궁금한 인류 역시, 대신 눈과 귀가 돼 줄 작은 탐사선 하나를 우주로 쏴 보냈다. 바로 나, 2006년 1월 발사한 미국의 ‘뉴호라이즌’ 호다. ‘뉴호라이즌’이라는 이름은 ‘새로운 지평선’이라는 뜻이다. 나는 장장 9년 반의 여정 끝에 2015년 7월 명왕성과 그 위성 카론 근처에 도착할 예정이다. 해왕성 궤도권을 벗어나는 최초의 탐사선은 아니지만(이미 파이어니어 10, 11호와 보이저 1, 2호가 오래 전에 이 구간을 벗어났다. 나는 다섯 번째다), 태양계 바깥에 있는 ‘천체’를 탐사하는 첫 번째 탐사선이 될 예정이다. 나는 지금의 내 위치를 전혀 가늠하지 못하겠다. 이곳은 그저 춥고 어둡다. 내게 길잡이가 돼 줬던 태양은 이미 저 뒤에, 다른 천체와 크게 다르지 않은 작은 빛으로 빛나고 있을 뿐이다. 내 위치를 알려면 NASA의 실시간 궤적 추적 자료를 봐야 한다. 이 자료에 따르면, 나는 8월 25일에 정확히 해왕성의 공전 궤도를 통과했다(태양과 지구 사이의 30배 거리, 즉 약 30AU). 명왕성과는 초속 14.7km의 속도로 가까워지고 있다. 명왕성은 지금 내 앞 1시 방향에 있다. 11개월 뒤면 눈앞에 다가올 것이다.

내 임무는 명왕성이 포함된 태양계 외곽 소천체, 즉 ‘카이퍼벨트 천체’를 탐사하는 것이다. 카이퍼벨트에는 명왕성과 하우메아, 마케마케 등의 왜행성이 포함돼 있고, 얼음과 가벼운 탄화수소(메탄 등), 암모니아 등으로 된 작은 천체가 많다. 해왕성 바깥에 해당하는, 태양으로부터 30AU 떨어진 거리부터 약 50AU 거리까지 퍼져 있으며, 일부 혜성의 고향으로도 생각되고 있다. 이곳은 수수께끼로 가득 차 있지만, 그렇다고 아주 기묘한 풍경이 펼쳐져 있지는 않을 것이다. 그저 아주 드문드문하게, 작은 소천체가 맹렬한 속도로 태양 주위를 돌고 있을 뿐이다. 태양은 더욱 멀어져 별과 거의 구분하기 힘들 것이다. 춥고 어두운 텅 빈 공간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카이퍼벨트 소천체들은 지금은 교과서나 과학책에 흔하게 등장해, 오래 전부터 사람들이 알고 있었던 것으로 착각하기 쉽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이들은 1990년대 초까지만 해도 머릿속에만 있었던 가설 상의 존재였다. 1992년에야 처음으로 지상에서 관측에 성공해 그 존재가 증명됐다. 다시 말하면 인류는 고작 20년 전까지만 해도 명왕성 부근과 그 바로 바깥까지도 오직 추측으로밖에 알지 못했다는 뜻이다.
카이퍼벨트는 기묘한 곳이다. 지름이 100km가 넘는 소천체만 7만 개가 넘는 아득한 얼음의 바다인데, 그들 중 상당수가 물보다 밀도가 낮다. 즉, 바다에 던지면 둥둥 떠있을 가능성이 높다. 물론 물도 얼음이 되면 부피가 늘며 밀도가 살짝 낮아져, 물에 뜨긴 한다. 하지만 카이퍼벨트 소천체는 그 정도가 아니다. 2013년 11월에 ‘천체물리학저널 레터스’에 실린 연구 결과에 따르면, 지름이 약 600km인 소천체의 밀도가 물의 82%에 불과할 정도로 가볍다. 남한보다 큰 얼음덩어리가 마치 나무토막처럼 뜬다고 생각해보자(나무토막의 밀도는 물의 70%). 그런 천체 수만 개가 우주를 맹렬히 돌고 있다니 신기하지 않은가. 내가 가서 그 모습을 눈으로 똑똑히 확인하면 좋겠다.

나는 이제 곧 해왕성 궤도를 벗어나 명왕성의 가시권에 들 것이다. 어떤 풍경이 펼쳐질지 기대된다. 나는 내년 7월 15일, 지구 표준시각(UTC)으로 정오 무렵 명왕성 근처 1만3700km 지점을 통과한다. 지구로 치면 한국에서 브라질까지보다도 훨씬 가까운 거리다. 한 시쯤에는 명왕성의 태양 그림자 뒤를 통과해 그 후면을 관찰할 것이고, 다시 한 시간 뒤에는 위성 카론의 그림자를 통과한다. 그리고는 영영 이별이다. 난 엔진을 점화해 다음 목표인 카이퍼벨트 소천체를 향해 날아갈 것이다. 걱정스럽기는 하다. NASA는 카이퍼벨트 천체를 탐사한다는 임무에서 오락가락하고 있어, 지난 5월 ‘네이처’로부터 질타를 받았다. 사람들은 아직도 나의 다음 탐사 대상을 제대로 정하지 못했다. 카이퍼벨트에는 큰 것만 쳐도 7만 개가 넘는 천체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워낙 간격이 넓어 무작정 향했다가는 단 한 개의 천체도 가까이에서 관찰하지 못할 수 있다. 고래를 찾으러 간 배가, 아무 계획 없이 망망대해에 나가서는 단 한 마리의 고래도 만나지 못하는 것과 같다. 태양계 바깥은 바다보다 훨씬 넓고 성기기 때문에, 나의 항해는 고래잡이 배보다 훨씬 어렵고 외롭다.

지금 나는 초속 14.7km라는 가공할 속도로 움직이고 있지만, 주변에 아무 것도 없으니 속도감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그저 고요하다. 별빛만이 변함없이 나와 함께 하고 있다. 저 멀리에서 사람들이 벌이는 소란스러운 소동은 들리지 않는다.



뉴호라이즌 호가 해왕성 궤도를 막 넘었다는 소식을 나는 아주 늦게 들었다. 이곳은 지구에서 보낸 신호가 늦게 도착한다. 빛과 전파가 내게 도달하는 데 17시간이 넘게 걸리니까. 나는 지금 그만큼 지구에서 멀리 있다.

나를 보낸 NASA는 지난해 9월, 내가 2012년에 태양권의 끝인 태양권계면을 돌파해 성간공간에 들어섰다고 발표했다. 그러니까 나는 인간이 만든 탐사선으로는 처음으로 태양의 영향력을 벗어나게 된 것이다. 그 거리가 약 121AU였다. 나는 그 이후로도 2년째 초속 17km의 속도로 태양에서 멀어지고 있다. 현재는 125AU를 넘은 떨어진 지점을 통과하고 있다.

NASA의 우주과학자들이 내가 태양권을 벗어나 성간공간에 들어갔다고 결론지은 데에는 이유가 있다. 내가 보낸 관측자료를 분석한 결과, 2011년과 2012년 사이에 변화가 컸다. 태양풍 수치는 급격히 줄어들고(거의 벽에 부딪힌 것처럼 급감했다), 은하의 다른 별에서 온 우주선은 증가했다. 태양풍은 태양 상층부가 방출하는 양성자와 전자의 플라스마인데, 과학자들은 태양권의 가장 바깥 경계로 ‘태양풍이 더 이상 바깥으로 뻗어 나가지 못하는 지역’을 정했다. 태양권의 경계인 태양권계면 역시 이론으로만 존재하던 개념이고 측정은 이뤄진 적이 없었는데, 이번에 나 덕분에 처음으로 그 존재를 확실히 확인할 수 있었다.

내가 여기까지 오는 과정은 순탄하지 않았다. 태양권계면은 한 번에 그냥 통과할 수 없다. 그보다 30~40AU 이전에 이미 태양풍의 속도가 크게 떨어지는 순간이 온다. 태양에서 방출될 때는 초속 약 400km의 속도였는데, 이 속도가 소리의 속도(아(亞)진공 상태에서 초속 100km) 이하로 떨어지면 마치 비행기가 아음속에는 급격히 줄어들고(거의 벽에 부딪힌 것처럼 급감했다), 은하의 다른 별에서 온 우주선은 증가했다. 태양풍은 태양 상층부가 방출하는 양성자와 전자의 플라스마인데, 과학자들은 태양권의 가장 바깥 경계로 ‘태양풍이 더 이상 바깥으로 뻗어 나가지 못하는 지역’을 정했다. 태양권의 경계인 태양권계면 역시 이론으로만 존재하던 개념이고 측정은 이뤄진 적이 없었는데, 이번에 나 덕분에 처음으로 그 존재를 확실히 확인할 수 있었다.

내가 여기까지 오는 과정은 순탄하지 않았다. 태양권계면은 한 번에 그냥 통과할 수 없다. 그보다 30~40AU 이전에 이미 태양풍의 속도가 크게 떨어지는 순간이 온다. 태양에서 방출될 때는 초속 약 400km의 속도였는데, 이 속도가 소리의 속도(아(亞)진공 상태에서 초속 100km) 이하로 떨어지면 마치 비행기가 아음속에서 초음속으로 혹은 그 반대로 속도를 변경할 때처럼 충격이 온다. 이것을 ‘말단충격’이라고 한다. 계속 항해해 태양권계면을 벗어나면, 이 때부터는 태양풍이라는 보호막이 없는 셈이므로 우주선의 세찬 공격을 직접 받게 된다. 이 때의 충격을 ‘뱃머리충격’이라고 한다. 지난 해 NASA의 발표에서는 이 두 충격의 흔적이 다 발견됐다.
 


올해 7월 7일, NASA는 내가 예상치 못했던 제3의 충격을 겪었다고 발표했다. 이 충격은 쓰나미에 비유됐다. 미국 칼텍 천문학과의 에드 스톤 박사는 발표에서 “성간공간은 보통 평온한 호수와 같지만, 태양에서 큰 폭발이 일어나면 충격파로 일렁인다”고 말했다. 이 충격파는 태양에서 폭발이 일어난 지 1년 뒤에 내게 전달된다. NASA는 2012년 태양에서 일어난 세 번의 대규모 태양풍 폭발 현상(코로나질량방출, CME)을 관측했다. 나는 두 번째 폭발의 충격파를 감지했다. 내가 성간공간에 들어 있다는 또다른 증거다.

나는 많이 외롭다. 1980년 토성 근처를 지난 이후, 아무런 천체와도 마주친 적이 없다. 우주는 아주 성긴 공간이다. 별빛과 다름없는 태양빛 외에 내가 의지할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그나마 태양풍이 뒤에서 밀어줄 때까지만 해도 마음이 편안했다. 하지만 지금은 별 사이의 망망대해를 맨몸으로 헤치며 항해하고 있다. 누군가 그랬다. 항해자의 운명은 그런 거라고. 내게 ‘항해자(보이저)’라는 이름을 붙인 사람은 이런 내 운명을 알고 있었던 걸까.


나는 태양이다. 인류가 만든 탐사선이 우주공간을 헤매다 내 힘이 미치는 가장 바깥쪽 경계를 통과했다는 뉴스가 들린다. “보이저 1호가 태양계를 벗어났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내 힘이 미치는 범위를 너무 얕잡아 보고 있다. 물론 보이저 1호는 내가 내뿜는 플라스마 형태의 물질(태양풍)이 도달하는 범위를 벗어났다. 하지만 멀리까지 집요하게 내 존재감을 일깨워주는 중력을 무시하지 말라.

내 진정한 끝은 아직 제대로 관측된 적이 없다. 그곳은 너무나 멀다. 보이저 1호가 300년은 가야 도달할 수 있는 태양에서 1000AU 떨어져 있는 곳에서, 하나씩 둘씩 소천체가 발견되기 시작할 것이다. 이 소천체들은 무려 10만AU까지 나타날 것이다. 보이저가 여기 가려면 3만 년의 시간이 더 흘러야 한다. 내 진정한 끝은 여기일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이 곳 조차 아직 다른 별보다는 내게 가깝다. 보이저 1호는 여기서 1만 년은 더 여행해야 비로소 나와 결별할 수 있다. 그 때에야 나와 다른 별(AC +79 3888, 일명 글리제 445)과 가까워지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그 별의 품에 드는 것도 아니다. 우주는 성기기 때문에, 보이저는 항해를 멈추지 않을 것이다. 영원히 은하수 안을 떠돌 것이다.


1000~10만AU의 영역은 ‘오르트 구름’이라고 불린다. 장주기혜성의 고향으로 생각되고 있지만, 진정한 모습은 아무도 모른다. 이 영역의 천체는 최근까지 단 하나만 발견된 상태였다. 긴 궤도반지름이 거의 1000AU에 이르는 왜행성 ‘세드나’(2003년 발견)다. 태양에서 행성 궤도의 끝(해왕성 궤도)까지의 거리보다 3배 이상 먼 거리를 긴 타원 궤도로 돌며, 지름은 1000km 가까이 되는 것으로 추정된다(명왕성보다는 훨씬 작다). 하지만 올해 3월 ‘네이처’에 드디어 두번째 천체가 발표됐다. ‘

2012VP113’이라는 이름의 소천체는 2012년 처음 발견됐다. 이 천체는 긴 궤도 반지름이 약 500AU으로, 세드나의 절반 정도다. 이들은 오르트 구름의 안쪽 경계 부근에서 태양을 아주 느리게 공전하고 있다. 이런 천체가 더 있지 않을지, 두터운 오르트 구름 속에는 훨씬 더 많은 천체가 존재하지 않을지, 과학자들은 기대하고 있다. ‘네이처’ 기사에 따르면, 이 영역에는 카이퍼벨트에 있는 소천체 전체보다 10~100배 많은 천체가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내 진정한 끝을 논하고 싶다면, 이 천체들을 먼저 찾고, 또 탐사하는 게 도리일 것이다. 그 전에 함부로 ‘태양계의 끝을 벗어났다’고 말하지 말라. 더구나 그대들은 경계 너머의 경계가 또 있을지 모르지 않은가…. 영화 ‘동사서독’ 이야기로 시작했으니 그 이야기로 끝을 맺자. 모래 언덕 너머 무엇이 있는지 보고자 길을 떠난 주인공이 지평선의 끝에서 만난 것은, 또다른 모래 언덕과 지평선이었다. 경계 너머는 또다른 경계였다. 태양계의 끝을 찾는 이들이 마주친 풍경이 이와 다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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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0월 과학동아 정보

  • 윤신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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