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회사에 다니는 윤기름 박사(가명)는 회의 도중에 기발한 생각이 떠올랐다. 회의가 끝나기 무섭게 책상에 앉은 그는 인터넷에 접속해 마우스를 클릭했다. 모니터에 떠오른 미생물 목록에서 원하는 미생물을 찾아 클릭하길 몇 번. 기대는 기쁨으로 변했다. “바로 이거야! 이 미생물을 이용하면 음식쓰레기에서 휘발유를 대체할 연료를 만들 수 있어. 그것도 석유에서 휘발유를 뽑아내는 비용보다 훨씬 싸게 말이지.”
KAIST 생명화학공학과 박선원 교수는 “미생물을 활용하면 신약이나 친환경플라스틱, 대체에너지를 개발하는데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화학공장은 박테리아 같은 미생물 균주에 포도당을 적절히 넣어 에탄올을 얻는다. 미생물은 포도당을 먹고 배설물로 에탄올을 비롯한 유용한 화학물질을 내놓기 때문이다. 따라서 미생물이 살 수 있는 최적 환경을 설계하는 것이 화학공장의 목표다.
가상세계에 화학공장을!
박 교수는 에탄올 같은 유용물질을 더 많이 생산하기 위해 온라인 공간에 미생물의 생명활동을 구현하는 ‘가상공장’을 지었다. 2006년 4월 개발한 ‘웹셀(WebCell) 3.0’이 그것이다. 이제는 미생물을 키우기 위해 발효기나 시험관, 멸균기가 필요없다. 대신 컴퓨터 모니터에 수많은 단백질 모델이 그물처럼 얽혀있을 뿐이다.
“미생물을 하나의 화학공장으로 보는 겁니다. 예를 들어 정유공장에선 휘발유를 얻기 위해 촉매를 넣고 온도를 높입니다. 마찬가지로 가상공장에선 유용한 단백질을 생산하기 위해 불필요한 효소반응을 없애거나 서로 다른 단백질을 효소로 잇습니다.”
실제 미생물에서는 단백질간의 결합이나 효소의 반응을 관찰하는데 족히 3~4일은 걸린다. 반면 박 교수팀이 개발한 웹셀 3.0을 이용하면 한 번의 실험을 10~20초 만에 마칠 수 있다. 생명체가 양분을 섭취해 생명활동에 필요한 단백질과 효소를 만들고 난 뒤 나머지는 배설물로 내보내는 대사과정이 순식간에 확인된다는 뜻이다.
따라서 웹셀 3.0을 이용하면 시간이 오래 걸리는 미생물 실험 대신 컴퓨터 시뮬레이션만으로 생명현상을 연구해 신약을 개발하거나 유용한 화학물질을 생산할 수 있다. 독성물질을 사용하지 않아도 되고 실험을 반복할 필요가 없어 실험에 드는 비용도 많이 줄일 수 있다.
‘웹 2.0’ 표방하는 ‘웹셀 3.0’
박 교수가 개발한 가상공장인 웹셀 3.0은 현재 전세계 300여명의 과학자가 연구에 활용하고 있다. 웹셀 3.0은 세포 내 일어나는 수많은 효소 반응들을 정량화한 뒤 대사반응을 알고리듬으로 표현한 프로그램으로 인터넷 홈페이지(webcell.kaist.ac.kr이나 www.webcell.org)에 접속하면 누구나 이용할 수 있다.
특히 웹셀 3.0은 기존에 발표된 유전자 데이터베이스를 제공하며 이용자가 자신의 계정으로 접속할 수 있는 개인 데이터베이스도 제공한다. 참여와 공유가 자유로운 ‘웹 2.0’ 시대의 프로그램인 셈이다. 이 결과는 2006년 5월 생물정보학 관련 국제학술지 ‘바이오인포메틱스’에 소개됐다.
박 교수는 “2003년 개발한 대사흐름분석프로그램인 ‘메타플럭스넷’(MetaFluxNet)과도 연동해 업그레이드된 버전의 웹셀을 개발할 예정”이라며 “이는 유전자와 단백질, 세포 수준에서 모든 대사과정을 통합하는 프로그램으로 신약이나 대체에너지를 개발하는데 유용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