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위염이 심해서 음식을 제대로 먹지 못했던 적이 있다. 위장이 많이 망가져서 아무것도 들어가지 못하는 상태가 되니 평소에는 그렇게도 좋던 음식 ‘냄새’가 구역질이 날 정도로 역겨워졌다. 음식을 보고 역겨움을 느끼게 되면 자연스럽게 위에 부담이 되는 음식들을 먹지 않게 될 테고 따라서 위장, 나아가 건강을 지킬 수 있게 되니 그런 것은 아닐까. 실제로 역겨움은 우리의 건강과 생존에 매우 중요한 감정이다.

몸이 약해지면 외국인을 더 차별할까?
우리는 언제 역겨움을 느낄까. 상한 음식물이나 길거리 토사물처럼 더러운 것을 보면 역겨움을 느낀다. 게다가 역겨움은 엄청나게 부정적인 감정이라서 자동적으로 역겨움을 유발하는 것들로부터 도망치게 된다. 이런 작용을 보고 심리학자들은 “역겨움이란 병균에 의한 감염을 막는 강력한 방어기제”라고 생각했다. 건강상 안전하지 못한 대상에 대해 매우 강한 거부감을 일으켜 자연스럽게 피하게 만드는, 그래서 잠재적인 감염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하는 기제라는 것이다.
이와 관련된 재미있는 연구들이 있다. 임신을 하거나 병에 걸려 면역력이 많이 낮아지게 되면 평소보다 역겨움을 더 쉽고 강하게 느끼게 된다는 연구들이다. 면역력이 낮아지면 감염과 상관 없는 외국인이나 낯선 사람에 대한 거부감(역겨움과 같은 종류의 강한 부정적 정서)이 더 심해진다는 것을 보여주는 연구도 있다. 평소에 비위가 좋지 않아 역겨움을 자주 느끼는 사람(역겨움에 대한 민감도가 높은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외국인에 대해 더 차별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연구자들은 낯선 사람, 특히 외국인은 내가 면역되어 있지 않은 미지의 위험한 병균을 가지고 있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이들에 대한 혐오가 역겨움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고 설명한다.
역겨움은 ‘질병의 위험’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하고 생존과 안전을 지키기 위한 기제기 때문에 상당히 보수적이기도 하다. 그래서 역겨움은 다른 감정들에 비해 한번 학습되고 나면 잘 없어지지 않는 감정이다. 음식을 먹을 때 단지 기분이 나빴던 것과 달리 ‘역겨움’을 느꼈다면 그 음식에 대한 우리의 호감도는 낮은 채로 비교적 오래 유지된다. 일단 역겨움의 대상이 되면 계속해서 피하게 된다. 또 일부만 역겨워도 전체가 역겹게 느껴지는 것에서 보수적인 특징을 보인다. 예를 들어 사람들은 똥을 만지고 손을 씻고 컵의 가장 자리를 살짝 만져도, 컵이 통째로 더럽다고 생각하는 경향을 보인다.
역겨움에 대한 민감도가 낮은 예시를 보면 역겨움의 보수성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다. 역겨움에 대한 민감도가 비교적 낮은 (쉽게 말해 둔한) 필자는 구석에 곰팡이가 살짝 핀 식빵을 보고 곰팡이만 제거하고 먹은 적이 있다. 그리고 결국엔 크게 배탈이 났다. 음식 일부분에만 핀 곰팡이를 보면 전체가 역겨워져 먹지 않았어야 했는데 역겨움에 대한 민감도가 낮아 탈이 난 것이다. 이렇게 사고는 늘 살짝 방심할 때 나기 때문에 안전에 관해서 우리의 몸과 마음은 ‘조심해서 나쁠 것 없고, 잘 모르면 일단 조심하자’라는 식이다. 과잉보호 느낌이 나지만 나름일리 있는 과잉보호라고나 할까?

부패한 정치인’이라 말하는 이유
“부르투스 너마저!”
시저가 남긴 유명한 말은 믿어선 안되는 사람을 잘못 믿었다간 패가망신하거나 심지어 목숨까지 잃을 수 있다는 것을 상기시킨다. 역겨움은 이렇게 상대에 대한 신뢰를 판단할 때도 나타난다. 특히 어떤 사람을 믿을 수 있느냐 없느냐 에 대한 판단은 우리의 생존과 안전에 직결되기 때문에 상했거나 더러운 무엇을 판단하는 것만큼 보수적으로 진행되는 경향이 있다. 심리학자수잔 피스케의 연구에 따르면 한번 믿을 수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되면 그 생각은 잘 바뀌지 않고 오래 기억된다. 그리고 아무리 많은 선행과 믿을만한 일을 했어도 한 순간 악행을 하거나 신뢰를 저버리는 일을 하면 믿을수 없는 사람이 되는 경향이 나타난다. 감염 위험이 있는 것들에 대한 판단과 매우 비슷하다. 더 재미있는 것은 실제로 신뢰를 저버린 믿을 수 없는 사람들에 대해서 ‘역겨움’이라는 수사가 잘 붙는다는 것이다. ‘부패한, 역겨운, 더러운 정치인’이라는 표현이 대표적으로 꼽힌다.
실제로 어떤 사람이 신뢰나 도덕성에서 상당한 하자가 있다고 판단되면 사람들은 상한 음식이나 똥 같은 걸 마주할 때와 비슷한 ‘역겨움’의 감정을 느끼는 현상도 나타난다. 비도덕적인 인간은 병균과 마찬가지라는 것일까. 믿을 수 없는 인간이란 상한 음식이나 똥처럼 우리의 삶에 큰 해가 된다는 것일지도 모른다.
어떤가, 성가시게만 여겨졌던 약한 비위나 역겨움이라는 감정이 꽤 유용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가? ‘도덕적이고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인가’에 대한 판단은 전염의 위협에 대한 판단과 마찬가지로 역겨움을 느끼는 것이 우리에게 얼마나 중요한 문제인지를 잘 보여준다. ‘믿기 어려운 사람’으로 한번 찍히면 회복하기 어려우니 군데군데 곰팡이 핀 빵 같이 이따금씩이라도 믿음직하지 않은 행동을 보이지 않도록 부단히 노력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