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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쥐 100마리 신체검사 하는 독일마우스병원

“신약 나오면 내가 가장 먼저 먹죠”

매년 쥐 100마리 신체검사 하는 독일마우스병원


최근 다른 동물실험실에 출입하지 않은 것, 확실하죠?”


안내를 맡은 헬무트 퓨크스 박사가 기자에게 물었다. 그는 실험병동의 총괄관리자다.


“오늘은 신체검사 병동만 들어갈 겁니다. 유전자변형 쥐를 만드는 시설에는 오늘은 가실 수 없어요. 사람이 하루에 두 곳을 왕복하면 그곳에 있는 쥐들이 감염 등에 노출될 수 있거든요.”


2001년 설립된 독일마우스병원(GMC)은 유전자를 조작한 쥐를 만들고 겉으로 드러난 형질을 분석하는 쥐 연구소다. 아무래도 질병에 걸린 쥐가 많고, 이들을 대상으로 다양한 검사를 하다 보니 ‘병원’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쥐는 사람과 유전자가 97% 이상 비슷해 사람의 유전자가 실제로 무슨 기능을 하는지, 질병과는 어떤 관계가 있는지 알아보기 위한 좋은 실험동물이다. 마틴 앙겔리스 원장은 “우리는 쥐의 모든 형질을 한 곳에서 분석한 세계 최초의 연구소”라며 “다양한 연구소의 과학자들과 4개 대학의 연구자들을 모아 GMC를 설립했다”고 말했다.




 
병동의 각 실험실에서는 사육실이 붙어 있어서 쥐만 옮겨다니며 신체검사를 받는다. 붉은색으로 표시된 방이 모두 사육실.


“이토록 깨끗한 동물실험실은 처음”


퓨크스 박사는 기자에게 푸른색 두건과 마스크, 보라색 실험복을 건넸다. 그리곤 한 사람이 겨우 들어갈 만한 밀폐된 방을 가리켰다. 그 조그만 방이 실험실 안팎을 잇는 실질적인 입구였다. 방 안에 들어가 문을 꽉 닫고 ‘start’ 버튼을 누르자, 사방에서 바람이 불어 나왔다. 세균을 제거하기 위해서다. 퓨크스 박사는 손끝부터 발바닥까지 골고루 바람을 쐬라고 주문했다.



올해 입주했다는 병동 내부는 입구부터 무척 깔끔했다. 기자와 동행한 김일용 서울대 수의과대 연구교수는 “이토록 깨끗하고 냄새가 나지 않는 동물실험실은 처음”이라고 말했다. 기자는 동물실험실이 처음이라 잘 몰랐는데, 대부분 각종 오물 냄새가 뒤섞여 역한 냄새를 풍긴다고 했다.


복도를 따라 정갈하게 정리돼 있는 각종 사육 설비가 눈에 띄었다. 바퀴가 달린 커다란 이동용 철제 케이스 안에는 물병이 줄을 지어 층층이 담겨 있었다. 깨끗하게 소독한 쥐의 식수다. 쥐를 키우는 플라스틱 우리(케이지)와 철제 뚜껑 역시 줄을 맞춰 가지런히 담겨 있었다. 한 실험실에서 누군가가 우리와 뚜껑을 여러 개 들고 나왔다. 막 소독한 것인 듯 했다. 이곳에서는 모든 장비를 이렇게 철저하게 관리한다고 했다.


“여기서부터 쥐의 신체검사를 하는 병동입니다. 일주일에 한 번씩 쥐만 이사하면서 신체검사를 받는 거예요.”


초등학교 다닐 때 신체검사 받는 날이면 건강기록부 한 장을 들고 교실을 옮겨 다니던 기억이 떠올랐다.



GMC 전경(위)과 마틴 앙겔리스 원장(오른쪽)


검사 과정은 상당히 체계적이었다. 기자가 안내 받은 병동은 기본적인 1차 신체검사만 했다. 행동관찰, 심혈관, 뼈, 신경학, 임상화학, 눈, 에너지대사, 폐 기능, 통증 인지 등 다양한 분야에서 550여 개 항목을 검사한다. 2차 검사에서는 음식, 공기, 스트레스, 운동, 면역계 등 5가지 분야에서 500여 개 항목을 추가로 검사한다. 3차 검사에서는 특정 질병에 걸린 쥐에게 신약을 투입해 효과를 검증한다.



지금은 대부분의 쥐 연구자가 이런 방식으로 돌연변이 쥐를 분석하고 신약을 시험하지만, 2001년 설립 당시만 해도 그렇지 않았다. 앙겔리스 원장은 “당시의 정형화된 분석법은 같은 온도에서 같은 사료를 먹이면서 하는 것이었다”며 “마우스병원을 구상할 당시, 사람의 건강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요인 다섯 가지를 포함한 체계적인 시스템을 마련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사육실 안에는 각각 '쥐 아파트'가 있다. 100여 마리의 쥐가 있어도 전혀 냄새가 나지 않을 정도로 깔끔하다.



쥐의 식별번호를 귀에 구멍을 뚫어 새기는 방식. 1번부터 99번까지 표시할 수 있다.
 
귀에 구멍을 뚫은 쥐들이 아파트에서 산다


가장 첫 방인 심혈관 실험실에 들어섰다. 실험실에는 각각 사육실이 붙어 있어서 실험자가 실험할 쥐를 데리러 멀리 가지 않아도 된다. 사육실 안에는 색색의 우리가 층층이 쌓인 ‘쥐 아파트’가 있었다. 쥐를 그렇게 많이 키우고 있는데도 무척 깔끔하고 냄새도 나지 않았다. 아파트 위에는 커다란 파이프 두 개가 연결돼 있었다. 정화된 공기가 한쪽 파이프를 통해 들어와 모든 우리에 공급되는 시스템이다. 각 우리를 순환한 공기는 다른 파이프를 통해 밖으로 빠져 나간다.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 우리 안을 들여다 봤다. 비행기를 12시간 타고 날아와 처음 만난 ‘독일 쥐’였다.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흰 실험용 생쥐를 떠올렸는데, 까만 쥐가 더 많았다. 우리 안에는 바닥에 깔린 톱밥 말고도 하얀 솜 뭉치와 빨간색 플라스틱 반구가 있었다. 쥐는 솜 뭉치를 갖고 놀거나 반구에 들어가 숨는다. 쥐의 프라이버시를 보호하고 스트레스를 줄여주기 위해서다. 기자는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모든 쥐의 귀 모양이 조금씩 달랐던 것이다. 귀에 구멍을 뚫어 각각 식별번호를 표시한 것이었다. 실험용 쥐를 구분하는, 아주 오래된 방식이다.


사육실에 바로 연결된 실험실에 들어가 보니, 연구자들이 한창 쥐의 심장박동을 재고 있었다. 쥐 한 마리가 조그만 실험장치 위에 올려져 있었다. 그 앞에 앉은 연구자는 엄지손가락만한 면봉을 들고 조심스럽게 쥐를 통제했다. 옆에 놓인 컴퓨터 화면에는 쥐의 심장박동이 실시간으로 그려지고 있었다. 쥐가 앉아있는 회색 판이 바로 심장의 전기적 활동을 감지하는 심전도(EGC) 전극이었다. 병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심전도 기계의 축소판인 셈이다. 마치 소인국에 와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사뭇 귀여웠다.


운이 좋게도 일종의 엑스레이(DEXA)를 촬영하는 것도 볼 수 있었다. 실험실 책상 가운데 위치한 장비 위에 쥐 한 마리가 잠든 채로 올려져 있었는데, 그 옆에 있는 컴퓨터 모니터에는 우리가 흔히 보는 엑스레이 사진이 띄워져 있었다. 다만 사진의 주인공이 쥐일 뿐이었다. 실험실 한쪽에는 마취돼 잠자고 있는 쥐 여러 마리가 대기 중이었다.


‘2014 국제마우스표현형 컨소시엄(IMPC) 회의’ 가보니 “돌연변이 쥐 자유롭게 공유하자”






사료 하나의 열량도 정확하게


대사실험실에 들어섰다. 에너지대사 연구책임자인 얀 로츠만 박사가 안내를 맡았다. 먼 한국 땅에서 온 기자가 귀찮을 법도 했지만, 장비 하나하나를 무척 성실하고 진지하게 설명했다. 특히 그는 사료의 열량을 정확하게 재는 기계를 시연했는데, 독일 마우스병원이 얼마나 실험을 정확하게 하려고 노력하는지 알 수 있는 단적인 예였다. 대부분의 연구자는 사료 회사에서 제공하는 열량표를 참조한다. 10년 째 쥐 연구를 하고 있는 김일용 연구교수도 “한국에서 보지 못했던 기계”라고 했다. 로츠만 박사는 “회사마다 제공하는 표가 제각각이고 신뢰도가 낮기 때문에 우리는 사료 열량을 직접 재서 실험의 정확도를 높인다”고 설명했다.



지금껏 봤던 사육실이 소형 아파트라면, 이곳은 호텔방이었다. 무척 비싸 보였고, 개수도 20여 개로 5분의 1에 불과했다. 호텔방 천장에는 각각 사료와 물이 담긴 관 두 개가 꽂혀 있었다.


“쥐가 생활하는 공간의 x축, y축 방향으로 레이저가 나오고 있습니다. 첨단 우리인 셈이지요. 쥐의 움직임이 2차원 평면상에 기록돼 섭취량과 운동량을 실시간으로 측정할 수 있습니다.”


첨단 우리를 제외하고 실험실에 있는 다른 장비들은 사람이 쓰는 기계의 축소판이었다. 모두 쥐 전용 장비인 탓에 크기가 아담했다. 가장 익숙한 장비는 컴퓨터단층촬영(CT) 기계. 몸 내부를 볼 때 흔히 사용한다. 사람은 반듯하게 누워 기계 속으로 들어가지만, 쥐는 일단 주사기처럼 생긴 빨간 통 안에 들어간 뒤 주사기째로 장비 안에 들어간다.


“쥐들은 이 통 안에 들어가 있는 걸 좋아(happy)해요.” 로츠만 박사의 말에 모두가 웃음을 터뜨렸다. “아마 약간 어둡고 몸에 딱 맞아서 안락함을 느끼는 것 같아요.”


그 외에도 쥐를 매달리게 해서 팔 힘을 측정하는 기계, 시력 측정 기계, 걸음걸이를 재는 기계 등 쥐 전용 실험 장비를 구석구석 둘러볼 수 있었다.


 



독일마우스병원은 돌연변이 쥐 한 마리에 대한 분석이 끝나면 100페이지가 넘는 건강기록부를 작성한다.
 


100페이지가 넘는 쥐들의 건강기록부


독일마우스병원은 이렇게 잘 갖춰진 실험실에서 매년 100마리 이상의 쥐를 대상으로 신체 검사를 한다. 전세계에서 유전자변형쥐의 신체검사를 의뢰하기 때문이다. 검사가 끝나면 과학자들은 100페이지가 넘는 보고서를 받는다. 유전자변형 쥐 한 마리에 대해 모든 것이 담겨 있는 건강기록부인 셈이다. 과학자들은 왜 그들이 직접 분석하지 않고 이곳에 의뢰하는 걸까.


“GMC는 세계 최초로 세워진 공동 이용(open-access) 시스템입니다.”


앙겔리스 원장이 말했다. 실제로 어떤 나라의 개인 연구자도 서류 한 장만으로 쥐 분석을 의뢰하고, 이곳을 직접 방문해 연구책임자와 의논할 수 있다. 독일 마우스병원에는 모든 검사 항목마다 연구책임자가 한 명씩 반드시 있어서 검사에 대한 신뢰도가 높다.


독일마우스병원이 이토록 좋은 시설을 만들어 쥐를 종합적으로 분석하는 이유는, 불필요하게 희생되는 쥐의 숫자를 줄이기 위해서다. 현재 대부분의 연구방식은 쥐에게서 연구자가 보고 싶은 하나의 형질을 보는 것에 그친다. 극단적으로 예를 들자면, 10가지 형질을 보기 위해 10마리의 쥐를 사용한다는 얘기다.


연구 측면에서도 더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 유전자 한 개가 고장 났다고 해서 한 가지 형질만 변하는 것이 아니다. 다양한 형istockphoto질을 관찰하지 않으면, 사실은 정상 반응인데 이상 반응으로 여기거나 이상 반응인데 모르고 지나가는 실수가 일어난다. 국가마우스표현형분석사업(KMPC) 단장인 성제경 서울대 수의과대 교수는 “정상인 줄 알고 넘어갔는데, 쥐의 일생에 걸쳐서 관찰해보면 이상 현상이 나타나는 경우도 많다”며 “유전자의 숨겨진 기능을 발견하는 게 마우스병원의 가장 중요한 역할”이라고 말했다.


특히 독일마우스병원은 독자적으로 구축한 방대한 데이터베이스 시스템으로 유명하다. 이곳에서는 지금껏 분석한 모든 쥐의 건강기록부를 저장하고 있었다.


“이건 쥐의 혈당 그래프입니다. 이 쥐의 과거 기록과 다른 정상 쥐의 기록을 자동으로 비교해 보여주기 때문에 한 눈에 차이점을 알 수 있어요.”


소프트웨어 개발팀 홀게르 마이어 박사가 설명했다. 그는 생물학을 전공하고 지금은 생물학 데이터베이스를 축적하는 일을 하고 있다. 내내 놀라워하던 김일용 교수가 기자에게 말했다.



“당뇨와 대사질환 전문 병원으로 거듭날 것”


현재 독일마우스병원은 새로운 기로에 놓여 있다. 거의 모든 돌연변이 쥐가 개발돼 분석이 끝났다. 다음 계획이 궁금했다. 앙겔리스 원장은 자신 있는 목소리로 답했다.


“설립 이후 13년 동안 거의 모든 기본 변수와 질병에 대한 지식을 갖췄습니다. 이제 더 깊이 있는 연구를 할 거예요. 올해 새로 지은 건물에 이사도 했고, 장비도 모두 새 것이니 자신 있습니다. 특히 앞으로 당뇨병과 대사질환 전문 병원으로 거듭날 겁니다.”


“단순히 정보를 쌓아놓은 게 아니에요. 생물학적으로 중요한 변수만 모아 한 눈에 비교할 수 있도록 시스템이 만들어져 있어요. 철저히 생물학자의 입장에서 만들었다는 얘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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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06월 과학동아 정보

  • 독일 뮌헨 = 우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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