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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년 묵은 시계


2월 9일,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가장 오래된 대형 탑시계인 대한의원 탑시계에 30여 년 만에 사람의 손길이 닿았다. 시계 명장 정윤호 타임서울 대표가 시계를 보호하던 나무 상자를 열고, 두텁게 내려앉은 먼지를 일일이 부드러운 솔로 털기 시작했다. 세월과 함께 쌓인 먼지가 뿌옇게 일어나자 사진을 찍기 어려울 정도로 시야가 흐려졌다. 석 달 뒤인 5월 8일, 복원을 마친 탑시계는 다시 째깍거리며 시간을 세기 시작했다.


황동 솔로 부품을 청소한 이유


대한의원 탑시계는 1908년 서울대병원의 전신인 대한의원이 서울시 종로구 연건동에 세워질 때 바로 옆에 함께 만들어졌다. 이곳이 옛날에 마등산이라고 불렸던 야트막한 언덕의 꼭대기이므로, 언덕이 시작되는 창경궁쪽 진입로 초입에서 보면 시계탑은 꽤 높은 건물이다.


어디서나 눈에 잘 띄어 요새 말로 지역의 랜드마크 구실을 했을 것이다. 1908년부터 약 70년 동안 쉬지 않고 움직였던 탑시계는 1980년대 초 새로운 전자시계와 임무를 교대했다. 역사 속으로 은퇴한 탑시계는 이후 30여 년간 조용히 잠들어 있었다. 그러다 서울대병원 의학역사문화원이 1970년대 말 철거된 대한의원 본관 서쪽 날개채를 정밀 조사하다가 이 시계의 가치를 재발견하게 됐고, 서울대병원이 탑시계를 복원하기로 결정했다. 스스로의 문화유산을 복구하고 보존하기 위해서였다.


복원은 간단치 않은 작업이었다. 정 대표는 먼저 먼지를 털어낸 다음 원상태로 복구가 가능하도록 시계를 여러 각도에서 촬영하고, 모든 부속품의 크기를 측정했다. 그리고는 시계에서 진자와 숫자판, 크고 작은 톱니바퀴와 축들을 하나씩 떼어 수리 장소로 옮겼다. 시계탑 꼭대기에서 10여 m 늘어져 있던 체인과 와이어도 바닥으로 조심스레 내렸다. 분해된 부품들은 먼지와 기름때를 털어내기 위해 세척액에 담갔다. 며칠 뒤에 부품을 꺼내어 문질러 닦고 다시 깨끗한 세척액 속에 담가 두는 일이 열흘 동안 되풀이됐다. 황동으로 만든 부품의 마모를 막기 위해 세척 솔도 황동으로 된것을 사용했다.


 
탑시계 해체 후 원상태로 복원하기 위해 정윤호 타임서울 대표가 부품을 하나하나 그래픽으로 재구성했다
[탑시계 해체 후 원상태로 복원하기 위해 정윤호 타임서울 대표가 부품을 하나하나 그래픽으로 재구성했다.]


탑시계의 1초가 정확한 원리
탑시계의 1초는 어떻게 정확하게 맞췄을까


기계식 시계는 아주 간단히 말하면, 1분에 한 바퀴씩 일정한 속도로 꾸준히 회전운동을 하는 동력원만 있으면 만들 수 있다. 거기에 초침을 달고, 톱니바퀴를 적절한 비율로 연결해 분침과 시침을 초침과 맞물려 움직이도록 하면 된다. 문제는 속도를 일정하게 유지하는 것이다. 추가 내려가는 속도나 태엽이 풀리는 속도는 일정하지 않기 때문에 시계를 오래 돌리면 오차가 누적되게 마련이다.


그래서 동력원에서 전달되는 힘을 정확하게 조절하는 장치가 필요했는데, 이것이 바로 탈진기(escapement)다. 왼쪽 그림은 대형 시계에 널리 이용됐던 핀휠 탈진기의 구조를 보여준다. 탈진기는 진자와 연결돼 있다. 진자는 진폭에 상관없이 일정한 주기로 흔들리므로(등시성) 탈진기도 일정한 간격으로 좌우로 흔들리게 된다. 따라서 탈진기가 핀휠을 일정한 간격으로 잡았다 놓아주기를 반복한다. 핀휠에 연결된 초침도 항상 정확한 1초에 맞춰 움직인다.



대한의원 탑시계는 당시 영국에서 주문제작한 것으로 추정된다. 철근 평판 프레임 위에 앞뒤로 비파형의 철판을 세워 형태를 잡고, 철제 축에 황동제 톱니바퀴를 조립해 만들었다. 롤러로 25kg에 이르는 무거운 추를 감아 올려 그것이 풀리는 힘을 동력으로 삼았다. 핀휠 탈진기와 진자 조속기를 거쳐 정확한 간격으로 조율된 시간은 비스듬히 깎은 톱니바퀴를 통해 동, 서, 남면 세 개의 벽시계로 전달된다.


 
사적 제248호 대한의원은 1978년 현재의 서울대병원 본관이 완성되기 전까지 70여 년간 국립병원 본관으로 쓰였을 정도로 유서가 깊은 곳이다.


백성에게 시간을 나누어주다


탑시계를 복원하기 위해서는 세월을 겪으며 사라진 부품들을 원형에 맞게 새로 제작해야 했다. 정윤호 대표는 40여 년의 경륜을 바탕으로 복원 작업을 진행했다. 세척을 마친 부품의 치수를 측정한 뒤 3차원 입체 도면을 작성했다. 그리고 조립과 작동 시험을 통해 메커니즘을 파악하고, 사라진 부품이나 임시로 제작한 부품들을 원형에 맞게 황동으로 새로 제작했다. 새로 만든 부품도 옛 부품과 마찬가지로 톱니 홈을 깊게 파서 내구성을 높였다.


예로부터 시간은 아무나 잴 수 없었을 뿐 아니라 아무나 재서도 안 되는 것이었다. 서양의 도시 한복판에 늘 광장과 시계탑이 있었던 것은 우연이 아니라, 시계를 운영하고 시각을 알리는 것이 정치적으로 중요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동양에서도 새 왕조가 문을 열면 가장 먼저 천문을 관측하고 달력과 시계를 만들었다. 조선의 황금기였던 세종대에 수많은 천문의기들과 함께 자격루와 앙부일구 등을 만들었던 것이 좋은 예다.

대한의원은 1885년 제중원에서 이어지는 국립병원의 명맥을 계승해 왕실 주도의 국립 의료 체제를 총괄하는 역할을 했다. 그런 점에서 대한의원의 시계탑에는 임금이 백성에게 시간을 나누어준다는 전통사회의 관념과 함께, 서양과 같이 시계탑을 공간 배치의 중심으로 삼고자 하는 근대적 지향이 함께 스며들어 있다. 혹시 서울대병원을 가볼 일이 있다면 대한의원 탑시계를 찾아가보자. 진자와 톱니바퀴의 움직임 안에서 역사의 숨결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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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06월 과학동아 정보

  • 에디터 변지민 | 글 김태호, 이태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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