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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동료인 L씨는 아침마다 버스를 한 번 이상 갈아타고 1시간 30분 걸려 출근한다. 퇴근까지 합치면 3시간이다. 또 다른 동료인 Y기자는 기차를 이용하는데, 하루에 2시간 이상 길에서 시간을 보낸다. 장거리 출퇴근을 하는 사람이 어디 이들뿐일까. 경기도청 자료에 따르면 하루 119만 명이 경기도에서 서울로 출퇴근 한다.

자기계발서에는 ‘출퇴근 시간 동안 공부를 하라’고 하지만, 업무에 지친 몸으로 콩나물시루 같은 전철 속에서 공부하기란 쉽지 않다. 자기계발은 커녕 오랜 출퇴근으로 인한 피로 때문에 건강이 나빠졌다는 사람이 주변에 많이 있다.

실제로 장거리 출퇴근자들은 일단 시간부족에 시달린다. 미국 브라운대 토마스 제임스 크리스천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출근 시간이 1분 길어질 때마다 운동 시간은 0.0257분, 음식 준비 시간 0.0387분, 수면 시간 0.2205분이 줄어든다. 얼마 안되는 거 같지만 이런 작은 시간이 누적되면서 삶은 골병이 든다.

장거리 출퇴근 하면 ‘마이 아파~’

오랫동안 차를 타면 누구나 대체로 피로를 느낀다. 거의 매일 이러고 산다면, 건강도 나빠지지 않을까. 미국 워싱턴대 의대 크리스틴 호에너 교수팀은 2012년 미국 예방의학저널에서 텍사스 12개 도시 거주자를 대상으로 출퇴근과 건강의 상관관계에 대해 조사했다. 연구팀은 우선 2000년부터 2007년까지 건강검진을 받은 사람 4297명의 출퇴근 시간을 조사했다.
연구 결과 출퇴근 거리가 길어질수록 신체활동과 심장혈관 적합도(CRF)가 떨어졌다. 또 체질량지수(BMI), 허리둘레, 대사 위험 등 건강지표가 부정적으로 나타났다. 특히 24km 이상 출퇴근자들은 각종 건강 지표가 나빴으며 지방과다와 비만일 확률이 높았다. 또한 15km 이상 출퇴근자들은 다른 고혈압에 걸릴 가능성이 컸다. 이와 함께 장거리 출퇴근은 잘못된 영양 섭취, 불면, 우울증, 분노, 사회적 고립 등의 증상도 클 것으로 예상됐다. 연구팀은 “장거리 출퇴근으로 운동 등 신체적 활동과 이웃, 친구와 교제를 할 수 있는 시간이 적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2002년에 발표된 조금 오래된 논문이지만 인하대 의대 연구팀이 국내에서 출퇴근과 건강의 관계에 대해 연구했다. 2000년 인천공항이 설립되면서 김포공항 근무자 3만 명이 40km 멀어진 곳으로 이동해 같은 업무를 하게 됐다. 즉 동일한 업무에 변한 것은 출퇴근 거리다. 연구 결과 근무지가 변경된 후 출퇴근 시간이 약 63분에서 139분으로 76분 늘었고, 수면시간은 7시간30분에서 6시간 37분으로 53분 줄었다. 연구팀은 이들을 대상으로 혈중 γ-GTP 수치의 변화를 조사했더니 γ-GTP지수가 높은것으로 나왔다. γ-GTP는 간세포 손상에 대한 생체 지표로 널리 이용된다. 출퇴근 거리 및 시간의 증가가 간을 해친 것이다.

교통수단이 편하면 건강에 도움이 될까? 아쉽게도 그렇지 않다. 스웨덴 룬트대 에릭 한슨 교수팀이 18세 이상 65세 이하의 성인 2만1088명을 조사해 2011년 ‘BMC 공중보건’ 저널에 발표한 논문에는 승용차, 지하철, 버스에 상관없이 장거리 출퇴근자가 다양한 질환을 앓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출퇴근 거리 길수록, 인생은 짧아~

먼 거리를 오랜 시간 다니는 것. 먹고 살기 위해, 가족을 위해 충분히 감내할 수 있다. 그런데 충격적인 연구결과가 하나 더 있다. 그렇게 장거리, 장시간 출퇴근 하는 사람들은 사망률도 높다는 연구다. 건강 악화까지는 어떻게 참아보겠는데, 일찍 죽는다니!

스웨덴 우메아대 지리학과 에리카 샌도우 교수는 스웨덴 인구 통계국의 자료를 토대로 출퇴근 거리와 사망률에 대해 조사해 올해 초 ‘환경과 계획 A’라는 저널에 발표했다. 샌도우 교수는 1994년 당시 55세 직장인 5만 9699명의 기록을 1995년부터 2008년까지 14년간 분석했다. 출퇴근-건강-사망률까지 전체적으로 조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연구 결과 14년 동안 장거리 출퇴근 여성의 사망 비율이 그렇지 않은 여성에 비해 54%나 높았다. 특히 저임금, 저학력 여성일수록 사망률이 높았다. 샌도우 교수는 본지와의 e메일 인터뷰를 통해 “여성이 남성에 비해 출퇴근으로 인한 스트레스를 더 많이 받는다”며 “자녀 양육, 노부모 및 가족 부양 등의 가사일과 관련한 책임이 직장 업무에 가중되기 때문으로 분석된다”고 말했다.
 






가족도, 정치도 다 귀찮아~


아침저녁으로 장거리를 오가다 보면 신체적, 정신적 건강뿐 아니라 가정생활도 영향을 받기 마련이다. 피곤하니 부부간의 대화가 끊기고, 가사 분담 얘기를 하다 싸우고, 결국 파국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런 생각을 뒷받침해주는 연구도 지난해 발표됐다.

샌도우 교수는 스웨덴 인구통계 자료를 토대로 2000년 현재 스웨덴에서 결혼해서 사는 20~60세 214만3256명을 추출했다. 이중 9%인 18만6156명이 장거리 출퇴근자였다. 연구팀이 이들을 2005년까지 조사했는데, 장거리 출퇴근 부부의 평균 이혼율이 14%로 그렇지 않은 부부 11%보다 3% 높았다. 특히 장거리출퇴근 기간이 5년 이내인 부부가 5년 이상 출퇴근한 사람들보다 이혼율이 높았다. 5년 미만 출퇴근한 사람들은 아직 적응이 덜 돼 상대적으로 더 고통을 느껴 이혼에 이르렀고, 5년 이상 장거리 출퇴근자들은 이미 안정화됐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아울러 여성 장거리 출퇴근자의 이혼율이 남자 장거리 출퇴근자보다 낮았는데, 여성들이 남자에 비해 불편한 상황을 잘 참아내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뿐 아니다. 장거리 출퇴근하는 사람들은 피로 때문에 정치를 멀리하게 된다는 조사도 있다. 미국 코네티컷대 벤자민 뉴먼 교수와 스노니 부룩대 조슈아 존슨 교수 연구팀은 일상생활과 정치적 참여의 관계에 대한 연구를 ‘미국 정치학 연구’에 발표했다. 연구팀은 성인 590명을 대상으로 출퇴근 시간과 투표, 정치 토론, 선거 캠프 기여도 등과의 상관관계를 조사했는데, 출퇴근 시간이 길수록 정치 참여도가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팀은 “콩나물시루 같은 지하철, 교통체증으로 짜증이 나는 도로 등에서 한 시간 이상 보내다 보면, 심신이 지쳐 정치와 같이 복잡한 내용을 들여다보기 싫어지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이 같은 현상은 저소득층에서 좀 더 심했다. 소득이 낮을수록 더 많은 시간을 길에서 보내야 하기 때문이다.



비타민 먹고, 긍정적 자세로 대처해야

장거리 출퇴근으로 인한 건강 악화, 생활 파괴를 극복할 방법이 있을까? 외신을 찾아봐도 국내 전문가들에게 물어봐도 뾰족한 방법은 없었다. 가장 좋은 방법은 출퇴근 시간을 최대한 줄이는 것이지만, 집값, 직장 문제로 해결하기 어렵다.

개인적으로는 우선 심신 건강에 대해 좀더 신경쓸 수밖에 없다. 홍윤철 서울대 의대 예방의학교실 교수는 “장거리 출퇴근으로 체내 산화 스트레스가 많아지면서 피로도가 높아지는 것”이라며 “비타민을 복용하는 등 피로를 줄이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출퇴근으로 바쁘기도 하고 지치기도 하겠지만, 시간을 내서 산책을 하는 등 꾸준히 운동을 하는 게 좋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특히 마음이 우울해지지 않도록 긍정적인 사고를 갖고 극복해가는 자세가 중요하다.

제도적인 개선도 필요하다. 출퇴근자가 많은 위성도시는 직행열차, 전용도로 등을 통해 왕복시간을 줄일 수 있도록 도시 설계를 해야한다. 또 향후 신도시 등을 설계할 때 출퇴근자의 복지를 처음부터 염두에 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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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04월 과학동아 정보

  • 김규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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