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먹는 문제에 예민합니다. 몸에 나쁜 음식이라고 하면 대개 피하려고들 합니다. 물론 한밤중에 ‘치맥’의 유혹에 굴복해 정신을 잃고 폭풍흡입하는 일도 벌어지곤 하지만, 그러면서도 은근히 건강에 대해서는 신경 쓰게 됩니다. 아이가 있는 집이라면 나쁜 음식에 특히 예민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건강한 음식’을 표방한 상술도 많습니다. 얼마 전 다룬 글루텐프리 식단처럼요. 물론 그전에도 시중에 나와 있는 건강 식단 관련 책은 사기가 많으니 조심하시라고 누누이 말씀드렸습니다만.
이렇게 평소에 신경을 많이 쓰면서도, 막상 우리는 좋은 음식, 나쁜 음식에 대해 생각할 때 한 가지 중요한 내용을 간과합니다. 바로 ‘얼마나’입니다. 보통 우리는 이런 식으로 이야기합니다. “화학조미료가 몸에 나쁘다” “탄 고기를 먹으면 몸에 나쁘다” 아니면, “헛개나무열매즙이 몸에 좋다”는 식이지요.
이런 건 제대로 된 질문이 아닙니다. 다음부터 누가 무엇이 몸에 좋다고 하면, 이렇게 물어보세요. “그래서 얼마나 먹어야 그렇게 되는데?”라고요. 무조건 몸에 좋기만 한 것도, 나쁘기만 한 것도 없습니다. 모든 건 적정량이라는 게 있지요. 사람은 물을 마시않으면 살 수 없지만, 너무 많이 마시면 전해질 농도가 낮아져서 쇼크로 죽을 수도 있습니다. 물론 일상생활에서 그 정도로 물을 마시기는 어려우니까 특별히 신경을 쓰지 않을 뿐입니다.
인산염 없는 커피믹스는 꼼수~
‘얼마나’를 따져 물으면 인터넷에 떠도는 정보나 식품 회사의 마케팅이 얼마나 믿을 만한 건지 판단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예를 들어, 최근 남양유업이 출시한 인산염 뺀 커피믹스에 대해 따져보겠습니다. 남양유업은 과거 카제인나트륨을 빼 더 건강한 커피믹스를 만들었다고 무리수를 둔 회사이기도 합니다. 얼핏 인공적으로 만든 화학물질을 뺐다는 소리 같지만, 카제인은 우유에 들어있는 단백질의 이름입니다. 당연히 과학계의 호된 질타를 받았습니다.
그렇다면 인산염은 어떨까요? 인(P)은 우리 몸의 필수 구성요소입니다. 그래서인지 이번에는 인산염이 나쁜 물질이라는 식으로 몰고 가지는 않았습니다. 대신 우리나라 사람들이 인을 과다하게 섭취하고 있다며, 이를 줄여야 한다는 논리를 내세웠습니다. 인의 1일 권장섭취량은 700mg인데, 우리나라 사람들의 1일 평균 섭취량은 1215mg이므로 400mg을 줄여야 한다는 겁니다.
과연 인산염 빠진 커피믹스로 인 섭취량을 얼마나 줄일 수 있는지 따져보겠습니다.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 운영하는 식품영양 성분데이터베이스에서 커피믹스의 인 함류량을 찾아봤습니다. 100g당 인이 200~300mg 들어 있다고 하네요. 커피믹스 하나에 11~12g이니까, 커피믹스 하나당 인이 22~36mg 들어 있는 셈입니다.
인산염 없는 커피믹스로 인 섭취를 400mg 줄인다는 건 커피믹스를 하루에 10개 이상 먹는 사람에게나 해당하는 소립니다. 이렇게 먹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요? 커피믹스가 하루에 10개면 인이 문제가 아니라 카페인이나 당분 섭취가 더 문제지요. 인 신경 쓸 처지가 아닐 겁니다. 하루에 서너 잔 수준이라면 굳이 인산염 없는 커피믹스를 고를 이유가 없고요.
속지 않으려면 꼼꼼히 따지는 수밖에
게다가 함정이 하나 더 있습니다. 700mg이라는 건 인의 1일 권장섭취량입니다. 그런데 한국영양학회가 만든 한국인영양섭취기준에 따르면 인의 1일 상한섭취량은 3500mg입니다. 이 정도까지는 먹어도 건강에 나쁜 영향이 생기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커피믹스 이외의 다른 식품으로 하루에 1000mg을 먹는다고 쳤을 때, 커피믹스로 상한섭취량을 넘기려면 무려 70~110개를 먹어야 합니다.
세상은 넓고 인간군상은 다양하기 그지없으니 커피믹스를 매끼 밥그릇에 담아 퍼먹는 사람이 전혀 없다고는 못하겠습니다. 하지만 정상적인 식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이 걱정할 만한 수준은 아닌 게 분명합니다. 결국, 남양유업의 신제품과 마케팅은 상술이라는 소리죠. 인 섭취가 과도하니 줄여야 한다는 주장을 그대로 믿지 않고 ‘얼마나’를 따져 보니까 이런 결과가 나온 겁니다.
이와 비슷한 일은 많습니다. 앞으로는 이런 식품 문제에 의문이 생길 때마다 ‘얼마나’를 집어넣어 생각해 보세요. 각종 미네랄이 풍부해서 몸에 좋다는 해양심층수 광고를 봤다고 했을 때, 하루에 우리가 물을 통해 섭취하는 미네랄이 얼마나 되며, 미네랄 함량이 조금 높은 물을 먹어서 얼마나 이득을 볼 수 있는지 따져본다면 광고가 얼마나 그럴듯한 건지 판단하는 데 도움이 되겠지요.
한 가지 짚고 넘어가자면, 식품회사가 꼭 악은 아닙니다. 반대로 식품회사가 억울하게 당하기도 합니다. MSG 같은 게 그런사례죠. 이미 안전한 첨가물로 인정받았음에도 사람들의 잘못된 인식 때문에 피해를 입었지요. 물론, 이를 이용해 식품회사가 MSG를 안 넣은 식품을 내놓고 더 비싸게 받는 꼼수를 부리기도 합니다.
결국, 요점은 세상에는 허위 정보와 꼼수가 너무 많으니 이럴때 ‘얼마나’를 따져 물으면 진위를 가릴 때 도움이 된다는 겁니다. 매사 그렇게 하려면 피곤하겠지만, 호구가 되지 않으려면 어쩔 수 없는 모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