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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에 신음하는 사람들

지구 최고의 오염지역 10



손때 묻은 고물 컴퓨터를 재활용품 쓰레기장에 내놨다. 돌고 돌아 어딘가 쓰레기장에서 최후를 맞이하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만약 그 쓰레기가 멀리 서아프리카에 간다면…? 전자 쓰레기만이 아니다. 지나친 개발과 선진국의 소비 문화에서 나온 온갖 오염물과 중금속, 방사능이 지구 곳곳의 가난한 나라로 흘러 들어가 환경과 건강을 심각한 수준으로 위협하고 있다. 가난한 것도 서러운데 몸까지 아파야 하다니, 이곳 사람들에게 세상은 참 서럽다.

이상하고도 슬픈 순위가 있다. ‘세상에서 가장 더러운’ 지역이다. 미국 뉴욕에 기반을 둔 비영리기업 블랙스미스연구소와 스위스 녹십자는 작년 말, 전세계에서 ‘산업 오염(공해)’이 가장 심한 지역 10곳을 꼽아 발표했다. NGO의 현장 조사와 환경 학술지의 연구 결과, 그리고 자체 답사 결과를 종합해서다.

이곳들은 단 1초라도 살아서는 안 될 만큼 유독한 환경이다. 하지만 그곳을 떠나지 못하고 안에서 먹고 자고 일하고 사랑하며 살아가야만 하는 사람들이 수만~수십만 명에 이른다. 이들은 오늘도 오염된 물과 공기를 마시고 있다.

격차는 심해지고 유형은 다양해지고

오염지역은 대부분 저개발국가에 집중돼 있다. 과거 열강 중에서는 유일하게 러시아의 두 곳이 순위에 들었을 뿐이다. 지리적 분포를 봐도 구소련 지역 세 곳을 제외하고는 모두 적도 남쪽에 있다. 소위 ‘남북 문제(또는 남북 격차)’가 고스란히 드러나는 셈이다. 남북 문제는 산업화가 된 국가와 그렇지 않은 저개발국가가 대체적으로 적도를 중심으로 북쪽과 남쪽에 위치해서 생긴 용어로, 국가간의 경제 격차가 심각하게 벌어졌음을 비판적으로 보여준다(74~75쪽 지도).

구체적으로 보면 아시아는 세 곳으로, 모두 동남아시아 지역이다. 그 중 두 지역이 인도네시아에 속해 있다. 의외로 ‘세계의 공장’으로 오염이 심하다고 알려져 있는 중국은 10위권에 들지 않았다. 다른 지역이 그만큼 더 심각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아프리카는 세 곳, 남미가 한 곳이 꼽혔다.

10위권 안에 든 지역의 ‘사연’은 제각각이다. 우선 21세기답게 첨단 공해가 눈에 띈다. 아프리카 가나 남부의 아그보그블로시에 지역에는 전자폐기물 문제가 심각하다(왼쪽 사진). 올해 2월 영국 ‘가디언’지가 ‘세계 최대의 전자 쓰레기더미’라고 평했을 정도다. 이 도시는 냉장고나 텔레비전 등 가전제품 폐기물의 천국인데, 워낙 가난하다 보니 작은 전선 속에 가느다랗게 들어가 있는 구리라도 꺼내 팔기 위해 피복(껍질)을 불로 태우곤 한다. 그런데 이 점이 문제다. 납 등 중금속이 대기 중으로 배출되기 때문이다. 더구나 불을 땔 때 포장재인 스티로폼을 연료로 쓰고 있어 오염을 더욱 부추기고 있다.

가장 심각한 방사능 오염 지역으로는 후쿠시마 대신 훨씬 더 피해가 심각했던 우크라이나의 체르노빌 지역이 꼽혔다(위 사진). 체르노빌 사고는 러시아, 우크라이나, 몰도바, 벨라루스 등에서 방사성 물질의 영향을 받은 사람이 최고 1000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될 정도로 피해가 광범위했다. 세계보건기구(WHO)의 2005년 자료에 따르면, 사고로 생긴 것으로 추정되는 갑상샘 암 환자의 수가 4000여 명에 이른다. 체르노빌 발전소 자체는 사고 8개월 뒤 모래와 납, 붕산에 덮인 뒤 콘크리트로 강제로 봉인됐다. 하지만 이제 30년 가까이 지나 콘크리트의 안전 수명도 다해 간다. 결코 과거가 아니라 현재 진행형 위험인 셈이다. 토양 오염도 문제다. 체르노빌에 다녀온 사람들은 최근까지도 “바람만 불어도 흙에 있던 방사성 물질이 흩날려 방사능 측정기의 수치가 올라간다”고 말한다.

석유, 특히 원유는 환경과 주변 거주민의 건강을 위협하는 전통적인 오염원이다. 기계에서 새어나가 토양에 스며든 원유는 지하수를 오염시켜 인근 농업과 물 생태계까지 붕괴시킨다. 원유는 혈액에 농축되는 경향이 있고 불임과 암을 일으키는데, 특히 분해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휘발성 고분자 화학물질 ‘나프타’가 유독하다. 백혈병, 림프종, 재생불량성 빈혈 등 혈액 이상과 암을 유발하는 1급 발암물질인 벤젠도 나프타의 일종이다. 원유 오염의 대표지는 아프리카 나이지리아의 니거 강 삼각주다. 1976년부터 2001년까지 발생한 기름 유출사고만 7000건이 넘는다. 유출 규모도 커서, 매년 서울 잠실실내체육관에 석유를 1.5m 높이로 채울 수 있는 양(약 3만8000m3)이 토양에 속수무책으로 스며들고 있다. 이 석유는 지금까지 거의 제거된 적이 없어 이곳은 점점 죽음의 땅이 돼 가고 있다.

원유를 정제하는 화학공업 역시 심각한 오염원이다. 러시아의 화학공업 중심지인 쩨르진스크는 물이 다이옥신과 페놀로 심하게 오염돼 있다. 페놀은 벤젠에서 만들어지는 탄화수소 물질로, 한국에서도 1990년대에 ‘낙동강 페놀 사태’를 일으킨 주범으로 유명하다. 아르헨티나의 마탄자-리아추엘로는 1만 5000개에 달하는 공장이 내뿜는 폐수에 강둑이 오염됐는데, 중금속인 니켈과 크롬이 문제다. 크롬의 경우 농도가 권장치의 5배가 넘고 있다.

제련공장이나 가죽공장 등 오래된 산업도 문제다. 방글라데시에는 약 270개의 가죽 공장이 있고, 그 중 90%가 하자리바프 지역 0.25km2에 집중돼 있다(오른쪽 사진). 이곳에서는 매일 2만2000L의 유독폐수를 배출하는데, 여기에는 치명적인 ‘6가 크롬’이 함유돼 있다. 이 물은 근처의 식수원이다. 잠비아의 제2의 도시 카브웨에 사는 어린이들은 혈중 납 농도가 권고치보다 평균 5~10배 높게 나온다. 납 광산과 제련 공장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이 농도가 권고치의 24배를 넘어가면 죽을 수도 있다고 경고하는데, 이 지역 어린이에서는 40배가 넘게 측정되기도 한다.



‘남의 나라’의 ‘옛 이야기’일까

한국은 어떨까. 최근 공해라는 말을 주변에서 듣기 힘들다. 불과 20여 년 전인 1990년대까지만 해도 산업 공해가 일상이었다는 점을 떠올리면 놀라운 변화다. 1993년 전국의 8개 환경운동단체가 연합해 ‘환경운동연합’을 만들기 전까지, 대다수의 환경단체는 이름 앞에 ‘공해추방’ ‘반(反)공해’ 등의 말을 붙이고 있었다. 공해가 그만큼 당면과제였다는 말이다.

요즘은 어지간한 시내나 시골의 하수구, 개천은 많이 깨끗해졌다. 공장지대 주변에서 폐수를 무단으로 방출하거나 건설 폐기물을 시골에 몰래 버리는 일도 사라졌다. 하지만 여전히 주목하지 않는 곳에 공해는 있다. 사람의 눈에 띄지 않는 곳, 약한 사람이 많은 곳에 공해는 찾아든다. 최예용 환경보건시민센터 소장은 시멘트공장 주변에서 발생하고 있는 진폐증을 21세기 한국의 대표적인 공해병 사례로 꼽았다.

진폐증은 지속적으로 분진이 폐 안에 쌓이고, 결국 폐의 조직이 변하는 증세다. 국내에서는 195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계속해서 환자가 발생하고 있다. 최 소장은 “환경부 조사 등을 종합하면 충북 영월, 제천, 강원 삼척 등 전국의 시멘트 공장 인근 주민에게서 진폐증과 만성폐쇄성폐질환(COPD, 폐기능 저하증) 환자가 1000여 명에 이른다”며 “한국의 대표적인 후진국 병”이라고 말했다.

진폐증은 직접 공장 일을 하지 않아도 걸리는 환경성 질환이라 논란이다. 임종한 인하대 의대 교수팀이 2010년 6월 ‘대한산업의학회지’에 발표한 논문을 보면, 강원도 영월 지역 거주자 1396명 중 최소 3명은 일과 관련 없이 그 지역에 살았다는 이유로 진폐증에 걸렸다. 이런 식으로 환경 노출에 의한 진폐증 피해자가 전국적으로 수십 명에 이른다. 환경부와 법원에서도 시멘트 공장을 대상으로 주민에게 배상을 하라는 결정을 내렸다. 하지만 회사의 반발로 피해 주민들은 아직 배상을 받지 못했다.

‘공해(公害)’는 한자로 ‘공공에 해가 되는 것’이라는 뜻이다. 어느 정도 선진국이 됐다고 자부하는 한국에서 공해는 먼 옛날의 일, 사라진 일처럼 보인다. 하지만 착각이다. 공해는 공공의 것이기 때문에 눈에 보이지 않아도 어딘가의 그늘에 스며들게 마련이다. 대개 그곳은 약하고 돈 없는 사람이 많이 모인 곳이다. 달콤하고 화려한 성장의 이면에, 그 개발의 열매를 미처 얻지 못하는 곳에 공해는 여전히 존재한다. 언제쯤 그 마수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위의 이미지는 "과학동아의 인포그래픽"코너에서 더 크고 선명하게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2014년 04월 과학동아 정보

  • 윤신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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