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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묘한 책 두 권이 동시에 나왔다. 에드워드 윌슨의 최근작 ‘지구의 정복자’와, 스티븐 굴드의 ‘플라밍고의 미소’다. 책을 받아 드니 세 가지 상반된 감정이 동시에 스친다. ①현대 진화생물학의 최고 대가이자 과학계의 시인 두 명의 책이 동시에 나왔다. 반갑고 기쁘다! ②하지만 생전에 두 사람은 학문적으로 대립하는 사이였다. 심지어 그다지 관계가 좋다고 할 수 없었다. 좀 미묘한가?

먼저 ①번. 윌슨과 굴드는 모두 1950년대 이후 현대 진화생물학계를 수놓은 대표 학자를 꼽으라면 한 손에 꼽힐 인물이다. 이들 외에 추가될 인물은 ‘이기적 유전자’로 유명한 리처드 도킨스와 20세기 중후반 진화학계를 뒤흔든 ‘포괄적합도’ 개념(아래에 소개하겠다)을 창안한 윌리엄 해밀턴, ‘천재’로 꼽히며 유전자 환원주의를 비판한 리처드 르원틴 정도다.

다음으로 ②번. 그런데 이들 사이의 관계가 아주 복잡하고 미묘하다. 만약 이들을 모아놓고 인기 텔레비전 프로그램 ‘짝’의 특별편이라도 찍는다면, 시청자들은 이제껏 보지 못한 막장 드라마를 보게 될지도 모른다.

먼저 굴드는 도킨스와 대립했다. 도킨스는 진화의 핵심이 유전자라고 했지만, 굴드는 군집이나 계통까지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윌슨은 해밀턴과 애증의 관계다. 윌슨은 처음에 해밀턴을 거부하다 결국 매력을 이기지 못하고 받아 들였다. 이후 오랫동안 해밀턴의 가장 든든한 보호자이자 동반자를 자처했지만, 애증은 수면 아래에 꿈틀거렸다. 둘은 결국 2000년대 중반 이후 별거 절차를 밟고 있다. 도킨스는 해밀턴 편이다. 그의 출세작 ‘이기적 유전자’는 해밀턴 이론의 상세한 확장판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특히 최근 해밀턴의 이론과 결별한 윌슨을 도킨스는 아주 미워한다. 그의 책을 ‘던져 버려라’라고 혹평하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윌슨은 굴드와도 사이가 나빴다. 이쯤 되면 윌슨은 진화생물학계의 맏형이지만, 이제는 좀 왕따가 된 게 아닌가 걱정이 될 정도다.

잘 보면 미묘한 관계의 핵심에는 해밀턴이 있다. 윌리엄 해밀턴의 포괄적합도 이론은 “왜 동물은 이타적인 행동을 하는가?”라는 오랜 의문(다윈이 답하지 못한 수수께끼였다)에 대한 답이다. 쉽게 말하면 “내 유전자와 똑같진 않아도, 유전자의 일부를 지닌 개체(친족)의 번석 성공을 위해서는 그럴 수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친족이라는 말 때문에 ‘혈연선택’ 또는 ‘친족선택’이라는 말로도 불리는데, 현대 진화생물학은 이 개념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도킨스도, 윌슨도 다 이 개념으로부터 학문 업적을 쌓았다.

그런데 윌슨은 2000년대 중반, 돌연 이 개념을 부정했다. 자신이 오래 해온 연구를 스스로 부정한 것도 놀라웠지만, 이 분야의 주류를 거부했다는 점도 놀라웠다. 최재천 국립생태원장이 쓴 해설에 따르면, 윌슨의 이런 전향에 거의 대부분의 동료, 후배 학자들은 경악을 했다고 한다.

그가 혈연선택(포괄적합도) 이론을 버리고 돌아선 이론은 ‘집단선택’ 이론이라고 한다. 쉽게 이야기하면, 개체보다는 계통(종이나 집단)이 중요하다는 개념이다. 흔히 드는 예로, 레밍이 개체수가 늘면 다른 레밍이 살 수 있게 하려고 일부러 죽는다는 식이다. 하지만 이런 생각은 엄밀하지 못했고 자연을 잘 설명하지도 못했기에 1960년대의 해밀턴 이론이 나온 뒤 거의 사장됐다. 그런데 윌슨이 다시 집단선택을 주장하고 나섰으니(책 중반을 보면, 그는 이 생각을 이미 1990년대 초부터 했다), 모두 시쳇말로 ‘멘붕’이 온 것이다.

윌슨 교수는 자신의 생각을 차분히 눌러 담아 ‘지구의 정복자’를 썼다. 그는 고갱의 그림 제목을 따서 ’우리는 어디에서 왔고, 무엇이며, 어디로 가는가?’라고 묻는다. 인류의 탄생부터 사회성(그 중에서도 가장 본격적인 사회성인, 세대가 섞이고 분업이 이뤄지는 ‘진사회성’)을 획득한 과정을 추적한다. 초반에는 역사를 훑지만 뒤로 가면 본격적으로 진화생물학적인 ‘논쟁’을 펼친다. 그는 혈연선택 기반의 진사회성 이론을 부정하고 집단선택에 기반해 진사회성을 획득할 새로운 이론을 제시하며, 이를 바탕으로 인간의 본성을 재해설한다. 조금 어렵지만, 최 교수의 해설을 통해 사정을 알고 읽으면 좀 낫다. 최근 윌슨과 연구한 마틴 노왁의 ‘초협력자(사이언스북스)’를 같이 봐도 좋겠다.

‘플라밍고의 미소’는, 글쓰기의 우아함으로만 따지면 윌슨보다도 한 수 위일 굴드의 에세이 중 일부를 모은 책이다. 생전 22권의 책을 쓴 다작가인 굴드는 일부 전문서적과 단행본을 제외하면, 대부분 에세이를 모아 책을 냈다. 굴드 역시 논쟁을 두려워하지 않은 진화생물학계의 전사인데, 논쟁적이며 날카로운 윌슨과 비교하니 그의 책은 유머로 가득한 온화한 책으로 보인다. 현암사에서 펴내는 굴드 선집의 두 번째 책인데, 첫 책(‘여덟 마리 새끼 돼지’)이 나오고 거의 2년이 다 돼 출간됐다. 기다리느라 목 빠지는 줄 알았다.

글 윤신영 기자




2008년 여름, 인도로 배낭여행을 떠났다. ‘지구상에서 콜라가 상하는 유일한 나라’라는 명성에 걸맞게, 거리거리가 이색적이었다. 어느 날은 운이 좋게도 결혼식을 구경했는데, 옛날 우리 시골에서 하던 것 같은 마을 잔치였다. 장신구를 치렁치렁 매단 신랑 신부와 가족들이 마을 곳곳에 주황색 물감을 묻히며 행진하고 있었고, 담벼락과 창문에 온 동네 사람들이 다닥다닥 매달려 구경하고 있었다.

그 중 가장 신기했던 것은 온 동네가 떠나가게 울리던 나팔 소리였다. 마치 코끼리가 울부짖는 소리처럼 들렸다. 아침 댓바람부터 어찌나 시끄럽던지, 피곤했던 일행은 잠을 설쳐 짜증을 내고야 말았다. 창문으로 빗물이 줄줄 새던 장거리 버스, 밀크셰이크가 방울방울 새어 나오던 얇디얇은 인도 빨대, 보라색 물이 줄줄 빠지던 인도산 원피스도 모두 추억이 됐지만, 그 나팔 소리만큼은 ‘참을 수 없는 인도의 가벼움’으로 남았다. 경건한 결혼식인데, 저렇게 시끄러운 코끼리 소리를?

평생 다시는 들을 일이 없을 것 같던 그 나팔 소리를 다시 만난 건, 2010년 남아공월드컵 중계가 한창인 TV에서였다. “뿌~, 뿌~,”하는 시끄러운 소리가 뭔가 하고 봤더니, 그들의 민속 악기라는 ‘부부젤라’랬다. 귀가 괴로워 아주 혼이 났다. 그보다, 남아공 선수들이 걱정됐다. 간절한 월드컵인데, 저렇게 시끄러운 코끼리 소리를?

하지만 ‘배명진 교수의 소리로 읽는 세상’을 읽고 고개를 끄덕거리게 됐다. 수천 명이 부는 부부젤라 소리가 선수들에게 ‘백색소음’ 효과를 준다는 것. 백색소음은 넓은 주파수대의 음이 한꺼번에 들리는 것으로, 생활 소음이나 파도, 벌떼 소리가 이에 해당한다. 부부젤라 소리를 분석해보니 수천 마리 벌떼의 날갯짓 소리와 특성이 일치했단다. 백색소음은 우는 아기를 안정시키고 집중력을 높여준다는데, 인도에서 만난 신랑 신부와 남아공 국가대표 선수들은 어쩌면 자기들만의 진지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생각지 못했던 소리의 신비로운 면모를 만나 반가웠다.

저자인 배명진 교수가 ‘TV동물농장’이나 ‘스펀지’ 같은 프로그램의 실험 의뢰를 많이 받는 스타 과학자다보니, 다소 엉뚱하고 기발한 에피소드도 책 안에 고스란히 녹아 있다. 49가지 소주제로 돼 있어 출퇴근 시간에 잠깐씩 읽기에도 부담이 없고, 무엇보다 물리학 지식이 없어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주의할 것은 그래서 ‘재미로’ 봐야 한다는 점이다. 심도 있는 소리공학을 기대한다면 실망할 수 있다. 과학적이지 않은 내용도 다수 포함돼 있어, 가려볼 필요가 있다. 몸의 공진 주파수와 일치하는 소리를 가요에 심어 틀어놓은 뒤, 열심히 엉덩이를 흔들어 병을 고쳤다는 배 교수의 체험담이 대표적이다. 칭찬하는 소리가 식물을 잘 자라게 하고 얼음도 예쁘게 만들어지게 한다는 실험은 이미 과학동아 8월호 ‘까칠한 호관씨’에서 과학적이지 않은 연구라고 소개한 바 있다.

이 책의 진가는 오히려 소리에 미친 한 남자의 이야기, 그 자체에 있는 게 아닐까. 소리에 대한 그의 무한한 호기심과 순수한 열정을 엿보는 짜릿함에 빠져보자.

글 우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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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01월 과학동아 정보

  • 윤신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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