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으로 만들어낸 촉각을 실제처럼 느낄 수 있는 시대가 온다. 지구 반대편에 사는 가족과 가상으로 포옹하면서 손을 맞잡고 뺨을 어루만지는 촉감까지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손가락 위의 머리카락까지 알아채는 예민한 감각인 촉각을 어떻게 속일 수 있을까. 그리고 인공촉각이 넘쳐나는 시대가 되면 우리는 지금보다 더 행복해질까.
한동안 유투브에서 ‘podaegi’라는 단어가 유행했습니다. 아기를 업을때 쓰는 바로 그 ‘포대기’입니다. 늘 포대기에 업혀 자라온 우리는 싱거운 웃음만 나오지만, 동영상 속 외국 엄마들은 서툰 솜씨로 아이를 업으며 진지하게 설명합니다.
“아기의 얼굴을 부드럽게 잡아 등으로 옮긴 뒤, 아기의 몸을 담요로 고정시킵니다. 끈을 당신의 가슴 앞으로 교차시키고 다시 아기 엉덩이 밑으로 둘러 묶으면 됩니다. 자, 보세요. 얼마나 아늑한지.”
이런 현상은 따뜻한 엄마 등과 아이의 가슴이 만나는 한국적 육아 방식이 그만큼 아기에게 심리적 안정감을 주는 방법이라는 방증이 아닐까요. 시각과 청각에 비해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못하는 촉각은, 이렇게 중요합니다.
지금 당장 지구 반대편에 있는 브라질 리오데자네이로 해변의 모래알을 만지고 싶은 욕구는 인공촉각 기술을 낳았습니다. 가상의 촉각을 만들어내 실제처럼 느끼게 해주는 기술이지요. SF라고요? 이미 인공촉각 시대가 성큼 다가왔습니다.
한국표준과학연구원 박연규 박사팀은 가상현실의 느낌을 실제처럼 재현하는 ‘촉각마우스’를 개발하는데 성공했습니다. 화면에 나타나는 호수에 마우스 커서를 갖다 대면 호수의 차갑고 출렁거리는 수면을 마우스를 통해 느낄 수 있습니다. 화면으로는 솜털처럼 부드러워 보여서 구매한 스웨터가 막상 받아보니 철수세미 같아 실망한다던가, 만지지 말라는데도 넘치는 호기심을 주체하지 못해 굳이 만져서 유적을 망쳐버리는 일 따위는 이제 일어나지 않겠지요.
언젠가 촉각 센서가 내장된 휴대폰으로 촉각을 저장해서 유투브에 올리면, 전 세계인이 그 촉각을 공유하는 시대가 올지도 모릅니다. 아이돌 그룹 EXO가 5번째 앨범을 낼 때쯤이면 멤버끼리 뺨을 부비는 촉각을 팬사이트에 올리는 게 아닐까요?
촉각은 상당히 예민합니다. 누구나 손가락 위에 올려 놓은 머리카락 한 올의 촉각을 느끼셨을 겁니다. 이런 예민한 촉각을 기술로 재현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가장 좋은 방법은 인공촉각을 그림과 함께 제시해서 뇌를 속이는 것입니다. 눈을 가리고 물건을 만지면 어떤 물건인지 알아차리기 쉽지 않습니다. 촉각은 시각에 ‘매여’ 있다는 이야기지요. 반대로 촉각 재현 장치에 시각 정보를 함께 제시해주면 사람은 인공촉각을 훨씬 더 실제처럼 느끼게 됩니다.
이에 관해 재미있는 실험이 있습니다. 실험참가자가 모니터 앞에 앉아 모니터 뒤로 손을 뻗어 음료수 캔처럼 생긴 원통 물체를 만집니다. 그 모습을 카메라로 촬영해 모니터에 띄워주는데, 이 때 영상을 조작해 물체를 볼록한 병 모양으로 바꾸면 실험참가자는 원통이라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병의 굴곡이 느껴진다고 대답합니다. 눈을 감으면 다시 원통을 만지는 느낌으로 돌아오지요. 이처럼 손가락 끝에 가해지는 인공촉각이 실제와 차이가 있더라도, 시각과 결합되면 사용자는 인공촉각을 더 실제처럼 느낄 수 있게 됩니다.
그림으로 뇌를 속인 뒤에는 손가락 끝에 자극을 약간 주면 됩니다. 박연규 박사팀이 개발한 촉각마우스에는 네 가지 기능이 있습니다. 먼저 마우스 표면에 배열된 9개의 핀은 마우스 커서가 가리키는 표면과 같은 모양으로 배열됩니다. 예를 들어, 모래밭 위를 마우스 커서가 가로지르면 핀이 빠르게 위아래로 움직이면서 모래 알갱이의 거친 표면을 만들어내는 것이지요. 마우스 안에는 자기장 세기에 따라 점도가 달라지는 ‘자기유변유체’가 있어서 딱딱한 나무나 푹신한 소파의 느낌을 재현합니다. 또 소형 전기 냉동 장치가 금속이나 옷감의 차고 뜨거운 느낌을 만들어 냅니다.
아주 미세한 표면 질감은 표면과 손가락 사이의 마찰력을 조절해 재현합니다. 매끄러운 표면은 마찰력이 작아 손가락이 쉽게 앞으로 나가기 때문에 우리가 ‘매끄럽다’고 인식하는데, 촉각마우스는 표면을 1초에 200~300번 진동시켜서 손가락과 표면 사이에 얇은 공기막을 만들어 마찰력을 줄입니다. 최근 디즈니사의 피츠연구소도 질감을 느낄 수 있는 터치패드를 개발했습니다. 이 터치패드는 표면과 손가락 사이의 마찰력을 바꾸기 위해 정전기력을 조절합니다(동영상 참고).
촉각을 느끼는 뇌 부위를 직접 자극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미국 시카고대 슬리만 벤스매이아 박사팀은 원숭이 뇌에 미세 전극 100개를 심어 가짜 촉각을 뇌로 보내는 데 성공했지요. 원숭이는 왼손 손가락을 자극받으면 오른손을 쳐다보도록 훈련받았습니다. 연구팀은 원숭이가 왼손 손가락을 자극받을 때 뇌 신경세포의 반응을 관찰한 뒤, 같은 신경세포에 전기 자극을 주었지요. 그러자 원숭이는 손가락에 아무런 자극이 없었는데도 오른손을 쳐다봤습니다.
그간 사고로 팔을 잃은 사람이나 전신마비 환자가 뇌파를 이용해 로봇 팔을 움직인 사례는 있었지만, 촉각까지 되살리지는 못했습니다. 사람 뇌의 전기 신호를 로봇 팔로 보내는 것은 가능했지만, 로봇 팔이 인식한 촉각을 사람 뇌로 보내는 것은 어려웠기 때문이지요.
연구팀은 이 한계를 극복한 것입니다. 과학자들은 인공촉각이 발달하면 장애인이 생활하는 데 도움을 주거나 인간의 외로움을 달래줄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합니다. 기러기 아빠나 혼자 사는 노인이 멀리 떨어져 있는 가족의 촉각을 실제처럼 느낄 수 있다는 얘기지요.
“딸! 잘 지내고 있지?”
“응, 아빠! 여기 진짜 진짜 재미있어. 어제는 엄마랑 디즈니월드에도 다녀왔어!”
“그랬구나. 우리 딸, 보고싶다. 어디 한번 안아보자.”
“응! 아빠, 나 벌써 터치스카이프 안에 들어왔어!”
“아이구, 그 새 키가 더 컸구나. 잘 지내는 것 같아 아빠도 행복하다. 엄마 말씀 잘 듣고. 알았지? 우리 딸, 사랑한다.”
‘터치스카이프’ 열풍에 휩싸인 세계를 상상해 봤습니다. 지구 반대편에 살고 있는 가족의 촉감을 실제와 똑같이 느끼며 통화할 수 있는, 상상 속기계지요. 기자는 갓 스무 살이 됐을 때 외국에서 8개월 동안 혼자 산 적이있는데, 가족을 ‘만질 수 없다는 것’이 무척 힘들었습니다. 스카이프 같은 인터넷 화상통화를 이용해 얼굴을 보면서 대화할 수 있었지만, 어딘가 허전하고 외로운 느낌을 지울 수 없었거든요. 만약 그 때 ‘엄빠’의 따스한 품을 그대로 느낄 수 있는 터치스카이프가 있었다면 어땠을까요.
1993년 개봉한 영화 ‘데몰리션 맨’에도 비슷한 상상이 등장합니다. 영화의 배경은 위생 문제로 성적인 신체 접촉이 금지된 2030년, 뜨거운 열정에 휩싸인 두 남녀는 ‘가상 섹스 장치’ 안으로 들어갑니다. 그러나 20세기에서 온 형사 존 스파르탄(실베스터 스탤론 분)은 곧 기계를 벗어 던져 버립니다. 당시 많은 사람들이 이 장면을 보고 통쾌한 기분을 느꼈다고 얘기했지요. 과학적으로 불가능한 설정은 아니지만, 사람간의 교감을 기계로 단순하게 바꿔버리는 데 거부감이 든 것입니다.
“아기는 잘 듣거나 보지 못해도 신기하게 엄마를 알아보지요. 미국 애플사가 개발한 아이팟 터치가 소비자의 ‘감성’을 건드려 성공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도 괜한 게 아닙니다. 촉각에는 숫자로만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도 포함되는 것 같아요.”
박연규 박사가 말했습니다. 과연 인공촉각 기술이 기러기 아빠들의 외로움을 달래줄까요. 그때 인류는 더 행복해질까요, 아니면 더 불행해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