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이 시끄럽다. ‘중독 예방·관리 및 치료를 위한 법률안’, 일명 4대중독법 때문이다. 마약, 도박, 술과 함께 게임을 4대 중독물질로 규정한다는데 게임이 그토록 나쁜 것일까? 더구나 폐암의 원인이라는 그 나쁜 담배보다 심심할 때 가끔 하는 게임이 더 중독되기 쉬운 것일까? 도대체 중독이란 무엇일까?
초록창에 ‘중독’이라고 검색하면 대한신경정신의학회에서 제공한 중독 정보가 나온다. 그 목록에 알콜, 도박, 약물, 인터넷, 스마트폰이 있다. 하긴 인터넷이나 스마트폰이 없으면 불편한 것은 당연하고 똥 마려운 강아지마냥 전전긍긍하기 마련이니 누구나 한 번쯤은 ‘나도 혹시 인터넷(혹은 스마트폰) 중독?’이라는 생각을 해봤을 법하다.
하지만 하지현 건국대 의학전문대학원 정신과학교실 교수는 “중독이라고 정의하기 위해서는 갈망과 금단이 나타나며, 이로인해 사회 활동에 장애가 생겨야 한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트럼프 카드를 없애면 빈 종이에 카드를 그려서라도 도박을 하고, 도박을 하느라 가족을 못 챙기거나 직장에 나가지 못한다면 이는 도박에 중독된 것이다. 만일 스마트폰을 달고 살고, 게임을 자주한다고 해도 금단 증상이 없고, 사회 활동에 지장이 없다면 중독은 아니다.
도박에 중독된 뇌에서 무슨 일이?
물론 실제로 사회생활에 문제가 있는 인터넷·게임 중독도 있다. PC방에서 숙식을 해결하는 사람, 게임하느라 방에 틀어박혀 사람도 만나지 않는 사람, 학생인데도 게임하느라 학업을 너무 소홀히 하는 경우 등이다. 이런 정도의 인터넷, 게임 중독은 구분하자면 행위 중독의 일종이다.
중독에는 크게 물질 중독과 행위 중독이 있다. 4대 중독법에서 다루고자 하는 마약, 술에 의한 중독이 물질 중독이다. 잘 알려진 니코틴(담배)이나 알코올(술), 카페인(커피, 차) 말고도 환각제, 대마계, 코카인, 암페타민 류, 펜사이클리딘(마취제의 일종), 진정제나 수면제같은 항불안제, 흡입제(본드, 부탄가스 등), 아편류 등이 중독을 일으키는 물질이다.
중독 물질을 섭취할 경우, 이 물질을 받아들이는 수용체가 활성화되면서 뇌에서 신경전달물질인 도파민을 분비한다. 도파민은 ‘사랑 호르몬’이라고도 부르는데, 본래 맛있는 음식을 먹거나 좋아하는 사람과 있을 때, 재미있는 활동을 할 때 많이 분비된다. 이도파민이 중뇌의 복측피개영역과 전뇌의 내측전전두엽, 중격측좌핵 등을 자극할 때 행복감을 느끼게 된다.
자연적으로 분비되는 도파민과 다르게 중독물질은 뇌의 측핵을 자극해 강제로 도파민을 만들게 한다. 이 때문에 중독 물질을 처음 접했을 때 ‘기분이 좋다’라고 느낀다. 문제는 강제로 자극한 만큼 대가도 커진다는 점이다. 각 중독물질을 받아들이는 수용체는 한계치 이상을 받아들이면서 개수를 늘려나간다. 수용체 개수가 늘어날수록 섭취하는 중독물질의 양은 점점 늘어나며(흔히 내성이라고 한다), 섭취량이 수용체 개수에 비해 부족해지면 중독 물질을 추가로 섭취하도록 뇌에 신호를 보낸다. 과하게 만들어진 수용체를 만족시키기 위해 뇌가 중독물질을 계속 요구하는데, 이것이 바로 금단 현상이다.
반면 행위 중독에 대해서는 명확한 원인이 밝혀져 있지 않다.
행위 중독에는 인터넷·게임 외에도 최근 연예인 사이에서 문제를 일으킨 도박이 포함된다. 이 외에도 쇼핑, 폭식, 도벽 등이 행위중독으로 포함될 수 있으며, 머리카락을 뽑는다던가, 습관적으로 불을 지르는 것도 넓게 보면 행위 중독으로 분류된다.
지금까지 행위 중독에서 가장 문제가 컸던 것은 도박이었다. 도박에 빠진 사람들은 물질 중독과 마찬가지로 강한 갈망과 금단현상이 나타났으며, 정상적인 사회생활도 불가능했다. 그러나 2000년대까지 물질 중독과 도박 중독이 같은 이유 때문일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도박 중독과 물질 중독 환자의 뇌가 비슷한 활동을 보인다는 것은 2005년에야 비로소 밝혀졌다. 독일 함부르크대 크리스티안 뷔셸 교수팀이 ‘네이처 뉴로사이언스’에 발표한 논문에서다. 연구팀은 각 중독에 빠진 사람의 뇌를 fMRI로 촬영해, 복측선조체가 일반인에 비해 덜 활성화가 된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도박 중독을 일으키는 물질이 무엇인지, 이 물질에 반응하는 수용체가 무엇인지는 아직 밝혀진 바가 없다. 물질 중독의 경우 원인이 확실하기 때문에 중독을 일으킨 물질을 갈망하지 않게 하는 치료약(항갈망제)을 쓰면서 중독을 치료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알코올 중독의 경우 의사의 처방을 받아 항갈망제의 일종인 날트렉손을 복용하면 치료에 도움이 된다. 그러나 원인 물질이 확실하지 않은 도박은 약물 치료가 거의 불가능하다. 이 때문에 도박 중독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상담이나 집단 치료 등 환자의 의지에 의존해야 한다
인터넷·게임중독자? 원인은 따로 있다
그렇다면 다른 행위 중독은 어떨까. 정신질환과 관련해 전세계 의사들에게 방향을 제시하는 책인 ‘정신질환 진단 및 통계 편람(DSM)’의 2013년판에서 도박을 행위 중독으로 명시함으로써 처음으로 행위 중독이 공식화됐다. 쇼핑이나 도벽, 폭식도 행위 중독에 포함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지만 중독이라고 판단하기에는 아직 관련연구가 부족하다.
2013년을 뜨겁게 달군 게임 중독은 어떨까. DSM에서는 ‘인터넷 게임 장애(internet gaming disorder)’라고 정의하며 아직 ‘중독’에 포함시키지는 않았다. 행위 중독으로 규정하기엔 아직 연구가 미흡하기 때문이다. 당연히 게임때문에 금단 증상이 일어나고, 사회 활동에 문제를 준다면 중독 물질로 규정하고 대책 방안을 마련해야한다. 그러나 현실은 조금 다른 듯하다. 분명 중독 치료가 필요한 사람도 있지만 도박이나 마약처럼 확실하게 중독으로 취급하기엔 부족한 감이 있다.
하 교수는 “게임중독이라고 찾아오는 환자 대부분은 실제로 게임중독이 문제가 아니다”라고 말한다. 그는 게임중독을 불면증에 비유했다. 불면증 환자 90%는 다른 질환이나 원인 때문에 잠을 자지 못하는 증상이 나타난다. 게임중독도 마찬가지다. 진짜 질환은 따로 있고 그 질환의 증상으로 게임 중독이 나타날 수 있다.
“아직 제대로 된 연구가 없어 정확한 통계를 낼 순 없지만, 경험적으로 게임 중독이라고 찾아오는 환자 중 10대 청소년은 ADHD, 20~30대 성인은 우울증으로 인해 게임 중독 증상을 보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에 대한 근거로 그는 “인터넷·게임 중독 환자들은 중독 물질에 대한 갈망, 금단 현상이 거의 없다”고 말한다. 게임을 금지한뒤, 근처에 컴퓨터가 있는 방(잠겨 있음)이 있다고 알려줘도 컴퓨터 방문을 열려고 애쓰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 교수는 “게임 중독을 보이는 사람들은 그저 ‘할 게 없어서’일 수도 있다”고 말한다.
게임 중독 환자들에게 필요한 것은 치료가 아니라 게임을 대신해 ‘할 것’을 만들어주는 일인 셈이다.
“1920년대 라디오가 처음 나왔을 때, 사람들은 그 기계가 뭔지 몰라 당황했습니다. 60년대 TV가 보급됐을 때 부모들은 아이들이 공부는 안하고 TV만 본다고 걱정했지요. 90년대 인터넷이 처음 보급될 때도 비슷한 반응이었고, 이제는 게임을 넘어 스마트폰이 그런 상황이 됐습니다. 이런 흐름을 깨닫고 올바르게 사용하는 법을 가르쳐야하지 않을까요?”
인터넷과 게임은 이미 사람들이 즐기는 문화며, 필수가 됐다.
하 교수의 말처럼 이미 사회와 문화가 변하는 상황에서 억지로 유해 물질(?)로 규정하는 것보다는 올바르게 사용하는 방법을 가르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다. 여기에 인터넷과 게임을 사랑하는 입장으로 한 마디 달자면 이렇다. “게임 좀 하면 어때? 하루종일 공부와 일만 하는 것도 아니고, 이 정도 여유는 있어야지.” 아무데나 중독이라고 붙이고 걱정하지 말자. 걱정도 많이 하면 중독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