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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슨이 블랙아웃 막는다

직류 전기 쓰면 대정전 걱정 끝




지난 여름 전력이 부족해지면서 에어컨을 껐던 기억이 생생하다. 하지만 대규모 정전, 즉 블랙아웃은 사실 여름보다 겨울에 일어날 가능성이 더 높다고 한다. 이제 겨울철 난방 대부분을 전기로 감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에어컨이야 알아서 덜 쓴다고 하지만, 겨울철 난방이야 어디 전기 쓴다는 생각이 들던가.

하지만 빠르면 5년, 늦으면 10년 안에는 블랙아웃 걱정을 덜 것 같다. ‘송전기술의 꽃’이라 불리는 ‘초고압 직류 송전(HVDC)’ 기술 덕분이다. 발전소에서 만든 고압의 교류를 직류로 바꿔 보낸 뒤, 다시 가정에서 쓰는 220V 저압 교류로 바꿔 공급하는 기술이다. 올해 6월, LS산전은 한국전력과 프랑스 전기회사인 알스톰사와 함께 HVDC 기술 국산화에 본격적으로 도전한다고 밝혔다. 120년 전, 에디슨이 그토록 주창했던 직류가 이제야 날개를 단 것이다.


교류의 재앙 : 전선 하나만 잘못돼도 블랙아웃 일어나

전기는 교류와 직류, 2가지가 있다. 현재 우리가 쓰는 전기는 교류다. 직류는 전류의 크기와 방향이 일정한 데 비해, 교류는 주기적으로 변한다.

교류는 대형 발전소 한 곳에서 전기를 생산한 뒤, 수도권 등 전기 수요가 많은 먼 곳에 배달한다. 넓은 지역을 전깃줄로 거미줄처럼 촘촘하게 연결해야 했다. 만약 송전선로 한 개가 나무 새 항공기 번개 등에 의해 끊어지면 순식간에 다른 회선으로 엄청난 전류가 우회해 흐른다. 설계 용량보다 많은 전류가 흐르면서 도미노처럼 고장이 난다. 특히 교류는 다루기가 까다롭고 전력망이 복잡해서 이상 전류가 어디로 튈지 예측하기가 어렵다. 블랙아웃을 막기 어려운 이유다.

실제로 1965년 11월 9일, 미국 북동부 전체가 정전으로 마비된 적이 있다. 80만 명의 승객이 퇴근길에 뉴욕 전철에 갇혔고, 모든 기차가 정지했다. 착륙을 시도하던 비행기는 한동안 공항 상공을 맴돌아야 했다. 3000만 명을 공포에 떨게 했던 이 사건은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정전 사고로 역사에 기록됐다. 하지만 정작 사고의 발단은 고장난 전선 단 한 개였다. 그 뒤에도 1977년, 1994년, 1996년, 1999년, 그리고 2003년에도 대규모 정전 사태가 발생했다.



 
교류의 또 다른 문제점은 주고받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대형 발전소 한 군데가 테러 공격이나 자연재해로 멈출 경우 피해가 커지는 것이다.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원전이 지진으로 가동을 멈췄을 때 일본 동부 지역이 전력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었던 일을 생각해 보자.

이럴 때는 다른 나라나 옆에 있는 지역에서 전기를 끌어오면 좋은데 교류는 거의 불가능하다. 국가, 지역마다 쓰고 있는 전기의 주파수대가 다르고 바로 변환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장길수 고려대 전기전자전파공학부 교수는 “일본은 동부와 서부가 각각 주파수가 50Hz, 60Hz인 교류를 쓰기 때문에 전기적으로는 별개의 두 나라나 마찬가지”라며 “이런 이유로 후쿠시마 원전 사고 때 타격을 받지 않은 서부 지역 발전소가 동부에 별다른 도움을 주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또 교류는 사회적 갈등을 불러일으킨다. 건강 문제 때문이다. 최근 사회적 갈등이 큰 밀양 송전탑 사례가 그렇다. 전기가 흐르는 회로에는 전자기유도현상이 일어난다. 이 때문에 초고압 교류 전기는 아주 센 자기장을 만드는데 이들이 백혈병이나 암을 일으킨다는 주장이 있다.

“교류 전선은 땅에 묻기도 어렵습니다. 전압이 높아질수록 굵어지는 케이블을 서로 전기적인 영향을 받지 않도록 묻으려면 땅을 엄청 깊고 넓게 파야 하거든요. 비경제적이죠.”

그렇다면 문제를 해결할 방법은 없을까. 장길수 교수는 “바로 직류 송전”이라고 강조했다.

직류는 교류보다 송전 효율이 좋다. 직류는 100을 쓰려면 100만 보내면 되는데, 교류는 100을 쓰려면 그 보다 더 많이 보내야 한다. 교류의 경우, 직류에는 없는 ‘무효전력’이란 것을 포함해 줘야 한다.
교류는 흐르는 강과 같아서, 그 강을 절대로 수직 최단거리로 건널 수 없다. 강물을 거슬러 올라가야만 최단거리를 따라 이동해 목표 지점에 도달할 수 있다. 반대로 직류는 흐르지 않는 강과 같다. 추가로 힘을 쓰지 않아도 최단거리로 건널 수 있다. 이 최단거리를 건너기 위해 쓴 힘의 차이가 바로 위에서 얘기한 에너지 차이다.

따라서 교류는 직류보다 송전할 때 손실이 많다. 반대로 이야기하면, 같은 크기의 송전탑이라면 직류를 사용했을 때 배달할 수 있는 전기가 훨씬 많다는 뜻이다. 규모가 작아 상대적으로 저렴한 비용으로 땅에 묻을 수 있고, 발열량이 작아 관리하기도 더 쉽다. 그럼 도대체 왜 이렇게 좋은 직류를 놔두고 우리는 여태 교류를 써온 걸까.
 



120년 전 직류는 멀리 갈 수 없었다

사실 미국에 최초로 공급된 전기는 직류였다. 1880년, 전구의 성공으로 한껏 고무된 에디슨은 “이로써 빛은 완성되었다. 이제 남은 일은 대량생산체제를 구축하는 것”이라며 뉴욕으로 본거지를 옮겨 전기공급소(직류 발전소)를 지었다. 1년 뒤부터는 고객들에게 직류를 배달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반경 0.8km 안에 있는 지역에만 배달할 수 있었다. 직류의 특성상 거리가 멀어질수록 손실이 커졌기 때문이다.

전기를 보낸다는 것은 여러 사람이 좁은 복도를 통과하는 것과 같다. 한 명씩 차례대로 빠르게 뛰어가거나 혹은 열 명이 복도에 가로로 늘어서서 느리게 걸어가도 시간 당 지나갈 수 있는 총 사람 수는 같다. 하지만 실제로는 열 줄로 늘어서면 서로 부딪치며 뒤엉켜 제대로 통과할 수 없다. 전기도 마찬가지다. 사람을 한명씩 통과시키듯 전류를 작게 하고, 속도를 빠르게 하듯 전압을 높여야 손실 없이 전기를 보낼 수 있다.

문제는 당시 기술로는 직류를 고압으로 만들 수 없었다는 점이다. 엄청난 송전 손실을 막을 길이 없었다. 에디슨은 직류를 110V로 배달할 때 가장 효율적이고 사용할 때도 적당하다는 것을 알아냈다. 하지만 한번 110V로 만든 직류 전기는 전압을 쉽게 바꿀 수 없었다. 대신 전선을 굵게 만들면 되지만, 전선 재료인 구리가 너무 비쌌다.

그 무렵 유럽에서 탄생한 교류는 직류와 달리 전압을 쉽게 바꿀 수 있었다. 전압을 높여서 먼 거리를 손실 없이 배달한 뒤, 다시 전압을 낮춰 소비자에게 공급할 수 있었다. 교류 변압기 특허를 사들인 미국의 사업가 조지 웨스팅하우스는 때마침 교류 모터를 개발한 과학자 니콜라 테슬라와 손을 잡고 완벽한 교류 송전 시스템을 만들었다.

당시 에디슨은 교류를 탐탁지 않게 여겼는데, 뭐든 직접 손으로 만져보고 확인하는 그의 성격상 교류를 직관적으로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에디슨은 교류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나서 “전기가 어떻게 거꾸로 흐른단 말인가”라고 되물었다고 한다. 그 이후 에디슨은 브라운이라는 전기 기술자를 앞세워 교류로 동물을 죽이는 실험을 하는가 하면, 교류로 작동하는 전기 처형 의자를 개발해 ‘교류가 위험하다’는 인식을 퍼뜨리려 했다.
 





 
마침내 1891년 6월 19일, 웨스팅하우스는 미국 콜로라도의 산미겔강에서 텔룰라이드 금광까지 약 5km 거리에 걸쳐 교류 전기를 배달하는 데 성공했다. 곧 170km 송전에도 성공했다. 이 소식은 단번에 전 세계 전기 사업자의 눈길을 끌었다.

“지금 교류발전소가 전 유럽을 휩쓸고 있습니다. 우리 회사도 앞으로 살아남으려면 직류에만 매달리지 말고 교류 시스템을 개발해야 합니다.”

당시 ‘에디슨 제너럴일렉트릭’의 사장이었던 헨리 빌라드는 에디슨에게 이 같은 편지를 보냈다. 하지만 에디슨의 답은 냉정했다.

“실용적인 사람이라면 직류를 폐기하고 교류를 채용하는 바보짓은 하지 않을 거요.”

하지만 짧은 거리밖에 배달하지 못하는 에디슨의 직류 발전소를 그 비싼 뉴욕 땅 위에 촘촘히 세울 사업가는 없었다. 잘못하면 뉴욕 일부 지역은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달동네’가 될 수도 있었다. 결국 직류는 서서히 밀려났고, 교류 전기가 120년 간 세계를 움직였다.

 



반도체 발전으로 다시 고개 든 직류

직류가 다시 부활의 조짐을 보이고 있는 것은 반도체 덕분이다. 직류를 고압으로 바꿀 수 있는 반도체 소자가 개발된 것이다. 이제는 직류도 초고압으로 손실 없이 먼 곳까지 배달할 수 있게 됐다. 절반 크기의 송전탑으로도 현재와 같은 양의 전기를 보낼 수 있고 교류보다 훨씬 다루기 쉬워 사고를 예방하기에 좋다.

지난해 스웨덴의 ABB사는 고압 직류를 차단하는 반도체 소자를 개발해 초고압 직류송전(HVDC) 기술의 상용화를 획기적으로 앞당겼다. 전류를 손쉽게 차단하는 기술은 안전관리 측면에서 매우 중요하다. 플레밍의 왼손법칙에 따르면 전류가 흐르는 도선에는 물리적인 힘이 작용한다. 고압일수록 이 힘은 세다. 만약 회로에 문제가 생겨서 기계적으로 끊으려면 이 힘을 이겨야 한다. 그런데 직류는 교류와 달리 전류가 0이 되는 순간, 즉 힘이 0이 되는 순간이 없기 때문에 그동안 기계적인 차단이 어려웠다.
새 기술이 이런 한계를 극복한 것이다.

이처럼 교류 전기의 문제가 커지는 것과 동시에 직류 송전 기술이 완성되면 앞으로 직류 송전이 빠르게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기업들이 특히 주목하는 곳은 중국이다. 중국은 석탄 광산이 있는 서쪽에서 주로 발전을 하고 상하이나 광저우처럼 동쪽에 있는 큰 도시에서 전력을 쓰는데, 거리가 2000~3000km에 달해 교류 송전으로는 손실이 매우 컸다. 이미 중국에는 1GW 규모의 HVDC 설비가 있다.

국내에서도 LS산전이 제주도에 HVDC 실증 단지를 짓고 실용화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현재 제주도가 유일하게 진도와 해남에서 연결된 해저 직류 케이블로 전력 일부를 받고 있다. 장길수 교수는 “직류 송전망은 구축한다고 끝이 아니라 교류 계통과 함께 운영하는 경험을 빨리 확보해야 한다”며 “수도권 계통에 적용할 경우 고장이 나도 전국 전력 계통에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해야 하고, 평소에는 고장이 나지 않도록 효율적으로 전력을 배분하는 기술을 확보해야 한다”고 말했다.
 


 
우리나라에서는 HVDC 기술이 지역을 분할해 대규모 블랙아웃을 막는 데 먼저 적용될 전망이다. 소위 ‘교류 마을’을 ‘직류 다리’로 연결하는 것이다. 지금의 교류 전기망은 거미줄처럼 모두 연결돼 있어 서울에 있는 회선 하나만 문제가 생겨도 전국에 정전이 일어날 수 있다. 하지만 교류 전기로 작동하는 지역을 조각 조각 묶은 뒤 그 사이를 직류 선로로 연결하면 대규모 블랙아웃이 일어나기 전에 쉽게 차단할 수 있다.

한국전력연구원 김찬기 연구원은 “현재 교류 전기망은 블랙아웃의 위험 때문에 전력 예비율을 12%로 맞추고 있는데, 직류 송전이 상용화되면 전력 예비율을 10% 이하로 낮춰도 괜찮다”며 “원자력발전소 2~3개가 없어져도 괜찮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앞으로는 국경을 넘어 나라와 나라, 전 대륙을 직류 송전망으로 서로 연결하는 ‘슈퍼 그리드’가 등장할 것이다. 주파수가 50Hz인 전기를 쓰는 러시아와 60Hz를 쓰는 우리나라 사이에 직류 다리를 놓으면 다리 중간에서 주파수를 바꿔 자유롭게 전기를 주고받을 수 있다. 교류 송전망은 이런 일이 불가능하다. 유럽은 이미 프로젝트에 착수했고, 러시아와 일본 중국 우리나라도 ‘아시아 슈퍼 그리드’를 논의하고 있다.

그렇다면 교류 전기가 아예 사라지는 세상이 올까. 장 교수는 “가까운 미래는 아니지만, 가능성은 충분하다”고 말했다.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전자 제품 가운데 청소기처럼 교류 모터가 들어가 있는 전자 제품을 제외하고 대부분은 직류를 쓴다. 220V 교류 전원을 연결하지만, 전자 제품 안에 들어 있는 인버터라는 장치가 교류를 직류로 바꾼다. 즉 처음부터 직류를 공급받아도 아 무런 문제가 없다는 얘기다. 실제로 KT 같은 대형 통신사가 운영하는 인터넷센터에는 직류를 공급하고 있다. 이곳에서 사용하는 컴퓨터에는 인버터가 없다.

흔히 사람들은 직류가 에디슨의 유일한 실패였다고 말한다. 하지만 120년이 지난 지금 에디슨의 직류가 다시 유일한 대안으로 떠오른 것을 보면, 에디슨은 단지 시대를 너무 앞서간 천재였을지도 모른다. 직류와 교류가 아닌 다른 전기가 발명되지 않는 한, 최종 승자의 자리는 결국 에디슨이 차지하게 되지 않을까.



 
 

 

2013년 12월 과학동아 정보

  • 우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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