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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신만고 끝에 세계지도를 그리는 데 성공한 대항해시대의 지도 제작자와 탐험가들은 이제 완성된 지도를 바탕으로 더욱 빠르고 정확하게 세계를 탐험할 수 있게 됐다. 뇌공학자들은 뇌지도가 비슷한 역할을 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뇌의 신비를 손에 넣은 인류는 스스로의 삶을 어떻게 바꿀까. 뇌공학기술을 바탕으로 예측해봤다.


1. 정보와 기억 : 인공지능 비서가 탄생하다


인간은 완벽하지 않다. 산만하고 부주의할 때가 많고 주변을 항상 면밀히 살피지 못해 중요한 정보나 신호를 놓치기도 한다. 그 때문에 올바른 판단을 내리지 못하기도 하고, 심하면 생명의 위협을 겪기도 한다.

그래서 공학자들은 불완전한 인간을 보조할 수 있는 기계를 만들고자 노력해왔다. 최근의 추세는 컴퓨터에게 이 역할을 맡기는 것이다. 미래학자들은 스마트폰 다음으로 ‘입는 컴퓨터’의 시대가 올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 사실 입는 컴퓨터는 눈앞에 다가와 있다. 내년 출시를 앞두고 있는 ‘구글 글래스’다. 내비게이션, 사진과 동영상을 촬영하고 증강현실을 구현하는 몇가지 제한된 기능만을 지니지만, 이 분야의 선구자가 되기에는 충분하다.

뇌지도의 완성은 여기에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영화 ‘아이언맨(아래 사진)’에 등장하는 ‘자비스’ 같은 인공지능 비서를 만들 수 있다. 영화 속 자비스는 주인의 명령에 충실히 따르기만 하는 전통적인 기계가 아니다. 스스로 학습할 수 있고, 주변 상황과 주인의 현재 상태를 알아내 주인의 의사 결정을 도와주는 능동적인 인간형 비서다. 이런 능력을 갖추려면 두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주인(자비스의 경우 아이언맨)의 제6의 감각기관이 돼 주변을 탐색하 고 정보를 얻는 능력과, 스스로 학습하고 판단하는 새로운 능력이다. 그리고 이들은 모두 뇌지도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먼저 정보 탐색 기능을 보자. 자비스는 주인이 접하는 모든 주변 환경을 스스로 인식한 뒤 중요하다고 판단되는 정보를 선별해야 한다. 그 뒤 이를 적절한 형태의 ‘자료 (데이터)’로 변환해 데이터베이스에 저장한다. 방대한 분량의 영상, 음향, 위치정보 데이터는 실시간으로 외부에 있는 개인의 대용량 클라우드 서버에 저장해 다음에 활용할 수 있도록 준비한다.

사실 이런 ‘감각’ 분야는 구글 글래스의 외장 카메라와 마이크, 무선 통신 기능을 활용해서도 어느 정도 구현할 수 있다. 따라서 관건은 두 번째 조건인 ‘머리’다. 자비스가 주인의 생활 패턴, 습관, 업무 등을 스스로 파악해서, 현재 상황에 대한 적절한 반응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예를 들어 보자. 길을 가다가 낯익은 사람을 만났는데 누군지 도통 기억이 나지 않는다. 자비스는 즉각 주인의 동공 크기 변화를 감지해서(이것은 ‘감각’의 역할이다) ‘주인이 나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구나’라고 알아차린다. 이어 전후 상황과 맥락을 파악해 ‘눈앞에 있는 사람의 신원을 알아낼 필요가 있다’고 판단하고, 곧바로 개인 클라우드에 접속해 주인이 과거 만났던 사람들의 데이터베이스를 검색한다. 이제 남은 일은 이 사람의 이름과 만난 시간, 장소, 함께 나눈 대화 등을 눈 앞 디스플레이에 나타내주는 것이다.

지금까지의 컴퓨터로는 이런 기술을 구현하기 힘들다. 현재 우리가 쓰고 있는 폰 노이만 컴퓨터는 처리해야 할 데이터량이 증가할수록 필요한 연산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해 효율성이 떨어진다. 유일한 해답은 뇌의 정보 처리 과정을 모방한 신경모방(뉴로모픽) 컴퓨터다. 신경모방 컴퓨터는 데이터량이 증가한 만큼만 연산량이 증가해, 효율성 문제 없이 높은 수준의 판단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

신경모방 컴퓨터는 인공두뇌 개발로 이어진다. 미국의 방위고등계획국(DARPA) 은 ‘시냅스(SyNAPSE)’ 라는 이름의 연구 프로젝트를 세우고 2018년까지 매년 300억원 이상의 연구비를 투자하고 있다. 이 프로젝트가 성공한다면 미래에는 새끼손가락 손톱 크기의 작은 신경모방칩으로 슈퍼컴퓨터에 못지않은 방대한 연산을 실시간으로 해낼 것이다. 신경의 회로 구성 원리와 네트워크를 담은 뇌지도는 이 프로젝트의 성패를 가늠할 중요한 도약이 될 것이다.


2. 마음 : 독심술을 위해 뇌를 읽다

뇌는 생각을 읽기 위해서 꼭 들여다 봐야 하는 곳이다. 자비스 시스템을 만들기 위해서도 마찬가지다. 앞서 주인이 눈앞에 있는 사람이 떠오르지 않아 곤경에 빠졌을 때, 만약 인공지능이 주인이 무엇을 원하는지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다면 문제는 영원히 해결할 수 없었을 것이다.

예를 들어보자. 주인이 일하다가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자비스라면 당연히 눈치를 채고 휴식을 권해야 한다. 기분이 심상치 않아 보인다면 아예 기분을 전환할 수 있는 영화나 맛집을 추천할 수도 있다. 신체 상태를 인식해서 추위나 더위를 타지 않도록 온도를 조절하고, 로맨틱한 분위기를 내도록 조명 강도를 바꿔주는 것도 훌륭한 해결책이다. 좀더 적극적으로 도움을 줄 수도 있다.
 
학생이 공부할 때 집중력이 언제 떨어지는지를 알아내면 자습 시간표를 짜는 데 도움이 된다. 유능한 자비스라면 아마 시간표도 대신 짜줄 것이다. 잠이 들었을 땐 수면 패턴 변화를 측정해 건강을 체크하기도 한다. 주인이 평소 유혹에 잘 넘어가는 성향이 있다면, 자비스는 백화점에 진열된 상품을 볼 때의 뇌 반응을 측정해 주인의 충동구매를 만류한다. 미래에 개발될 자비스 시스템은 이처럼 입는 컴퓨터 사용자 안팎의 수많은 정보를 끊임없이 저장하고 스스로 학습해서 개인의 기억과 판단을 도와주고 더 ‘스마트한’ 삶을 살 수 있게 해 줄 것이다. 방대한 뇌의 바다에서 이런 뇌반응을 정확히 읽으려면 상세한 지도가 필수다.

 3. 언어 : 상자에 갇힌 당신을 구하다

말을 하지 못한다고 생각해보자. 당신은 모든 것을 듣고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그 느낌을 언어로 표현하지 못한다. 당신은 일방통행만 가능한 검은 상자와 같다. 정보는 안에 들어올 수 있지만, 나갈 수 없다. 마치 블랙홀처럼, 당신은 당신이라는 상자 안에 갇혀 있다.

마치 감금당한 것과 같은 이런 상태를 실제로 ‘감금증후군(locked-in syndrome)’이라고 한다. 이 증세로 고통 받고 있는 환자를 치료할 열쇠는 어디에 있을까. 뇌과학자들은 상자 안, 즉 뇌 안을 들여다보고 있다. 뇌에서 언어를 담당하는 영역을 읽을 수만 있다면 자신의 정신 안에 갇힌 환자를 구할 수 있을 것이다.

2011년, 로이하르트 미국 워싱턴대 교수는 ‘말 BCI(speech BCI)’라고 하는 색다른 연구를 제안했다. 먼저 뇌에서 언어를 담당하는 브로카 영역의 피질 표면에 얇은 막 형태의 전극 배열을 부착한다. 그 뒤 피질 표면을 흐르는 뇌파(피질뇌파)를 측정한다. 뇌파에는 그 사람이 마음 속으로 이야기하는 말에 대한 정보가 담겨 있다. 이 정보를 해석해 스피커로 재생하면 감금돼 있는 사람을 ‘구출’할 수 있다는 것이다.

말 BCI는 어려운 기술로, 아직은 가능성을 탐색하는 수준이다. 하지만 뇌지도 연구를 통해 뇌의 언어 생성 메커니즘이 밝혀진다면, 생각보다 가까운 미래에 성공할 가능성도 있다. 깊고 어두운 상자에 갇힌 채 외부와 소통하지 못했던 사람들에게 중요한 대화의 창문을 열어줄 것이다.

언어만이 아니다. 치매, 파킨슨병, 만성통증, 우울증, 조현병(정신분열증), 뇌전증 등 수많은 난치성 뇌질환의 메커니즘과 치료법도 발견될 것이다. 이들은 뇌의 깊은 곳에서 미지의 원인 때문에 발생하며, 감금증후군 못지 않게 환자를 깊고 고통스러운 단절감에 빠트린다.

최근까지의 연구 결과를 종합해 보면, 뇌의 특정 부위에 특정한 파형의 미세 전류를 흘리면 뇌의 활동을 조절할 수 있으며 질환도 치료할 수 있다. 대표적인 예가 세계 수십만 명이 뇌 속에 시술한 심부뇌자극(DBS) 장치다. 두개골에 작은 구멍을 뚫고 가늘고 긴 바늘을 자극하고자 하는 부위에 찔러 넣은 뒤, 바늘 끝에 미세 전류를 흘려 원하는 위치의 신경세포를 원하는 시간에 자극하는 기술이다.
 
현재의 심부뇌자극 장치는 지름 2mm내외의 뇌 부위를 자극한다. 아주 정밀한 뇌 기능 조절은 어렵다는 뜻이다. 만약 뇌지도가 발달한다면 뇌 활동을 현재보다 더욱 정밀하게 관찰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또 그에 맞춰 더욱 정밀한 자극을 줄 수 있는 미세 뇌자극장치도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뇌공학자와 뇌과학자들은 그 시대가 곧 올 것이라 예상하고 있다.

가장 유력한 기술이 현대 뇌과학의 뜨거운 이슈인 광유전학(optogenetics)이다. 특정한 파장의 빛에 반응하는 채널로돕신2등의 단백질을 신경세포 내에 주입한 다음, 신경세포 외부에서 빛을 쪼이면 신경세포가 활동하는 현상을 이용한다. 이런 광유전 효과를 이용하면, 심부뇌자극 장치와 달리 특정한 단백질이 발현된 신경세포만 골라 자극할 수 있기 때문에 매우 정밀하게 자극을 주고, 또 치료할 수 있다.

현재 기술로는 살아있는 사람의 뇌에 단백질이 부착된 바이러스를 주입하기가 매우 어렵다. 따라서 단백질이 발현된 줄기세포를 뇌의 특정 부위에 이식한 다음 원하는 신경세포로 분화시키는 방식이 연구되고 있다.

이 기술이 성공한다면 머릿속에 거미줄처럼 설치된 미세 광케이블을 통해 뇌의 여러 부위에 빛을 보내는 방법으로 뇌질환을 치료하고 조절할 수 있을 것이다. 질병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정신의 상자 안에 갇힌 사람들에게, 광유전학이 한 줄기 ‘빛’이 돼 줄 수 있을까.



4. 인지 : 뇌로 소리와 빛을 직접 읽는다

뇌과학 연구를 통해 밝혀진 재미있는 사실이 있다. 우리가 어떤 소리를 들을 때, 그 소리에 포함된 서로 다른 주파수 성분들이 뇌의 청각피질에 있는 각기 다른 신경세포에 전달된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우리 눈앞에 보이는 사진의 화소(픽셀) 하나하나도 뇌 시각피질의 각기 다른 신경세포에 전달된다. 이런 현상을 각각 ‘음위상(tonotopy)’과 ‘시각위상(visuotopy)’이라고 한다. 만약 우리가 뇌지도를 완벽하게 알고 있다면, 뇌의 청각피질, 시각피질에 전극을 붙이고 미세 전류를 흘려 환자가 듣거나 보게 할 수 있다.

다만 문제가 있다. 인간 뇌의 청각피질과 시각피질은 뇌의 주름 안쪽에 위치하기 때문에 기존의 방식으로는 직접 자극이 불가능하다. 여기에 최근 나노재료 기술이 구원투수로 등장했다. 2011년 말, 존 로저스 미국 일리노이주립대 교수팀은 자유롭게 휘어지고 늘어나는 미세 전극 배열을 개발했다. 이 전극은 주름진 대뇌 피질 표면에도 쉽게 부착이 가능해, 뇌 주름 깊은 곳에서 직접 뇌를 자극할 수 있다. 이것은 마치 치아가 빠진 자리에 인공치아(임플란트)를 이식하는 것과 비슷하다. 뇌지도를 손에 쥔 미래의 인류는 뇌의 시각 또는 청각 영역의 지형을 바꿀 수도 있게 됐다.
 

5. 동작 : 생각하는 대로 움직인다 


뇌는 정보를 받아들이는 역할만 하지 않는다. 몸을 움직여 특정 동작을 하는 것도 뇌와 신경의 작용이다. 뇌지도는 이 과정에 대한 신비를 풀고, 동작을 인공적으로 제어하는 데에도 활용될 것이다. 바로 지난 10년 간 가장 놀라운 발전을 이룬 뇌공학 분야인 ‘뇌-컴퓨터 접속(BCI)’이다.

BCI란 뇌에서 발생하는 신경신호를 측정하고 분석해서 로봇팔, 휠체어와 같은 외부 기계를 움직이거나 외부와 의사소통이 단절된 사람들의 의사소통을 가능하게 하는 기술을 의미한다.

정확히 10년 전, 존 도노휴 미국 브라운대 교수팀은 사지마비 환자인 전직 미식축구 선수 매튜 네이글의 운동피질에 96개의 미세 바늘 전극이 부착된 미세 전극 배열 칩을 삽입했다. 그리고 이를 이용해 컴퓨터 마우스의 커서를 움직이게 하는 데 성공했다. 이후 BCI는 눈부신 발전을 거듭해, 지난해 5월에는 같은 연구팀이 15년 간 사지마비 상태에 있었던 케이시 허치슨 부인의 뇌 신호를 읽어서 5가지 움직임이 가능한 로봇팔(5-자유도)을 제어하는 데 성공했다. 몇 달 뒤인 지난해 12월에는 앤드류 슈왈츠 피츠버그대 교수팀이 얀 소이어만이라는 여성 사지마비 환자의 운동피질 신경 신호를 해독해, 도노휴 교수 연구팀보다 두가지의 움직임이 더 가능한 7-자유도의 로봇팔을 제어하기도 했다. 커피를 집어 올리고, 옆 사람과 하이파이브를 하거나 초콜릿을 집어 먹는 동작을 선보였는데, 로봇팔의 움직임이 너무나 자연스러워서 보는 사람마다 경탄했다.

영화 ‘퍼시픽림’에서는 두뇌 외부에서 신호를 읽어 거대로봇을 조종하는 장면이 나온다. 뇌의 신호를 읽는 뇌스캔기술은 정밀하게 묘사되지 않았고, 현재 뇌의 기능을 관찰하는 가장 강력한 도구인 fMRI와는 전혀 다른 방식(아마 뇌파를 읽는 듯하다)이라는 사실만을 알 수 있다. 현재로서는 사실적이지 않은 묘사다. 하지만 만약 뇌지도가 완성되고 뇌를 극도로 빠르고 정밀하게 읽는 기술까지 개발된다면, BCI를 통해 실시간으로 정교하게 로봇을 움직이는 일도 꿈만은 아닐 것이다. 물론 그만큼 정밀한 뇌지도를 만들기 위해서도 역시 정밀한 뇌스캔기술이 함께 또는 먼저 개발될 필요가 있다. 궁극의 뇌지도를 그리는 여정은, 곧 뇌공학의 미래를 그리는 여정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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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ro. 인류 최후의 항해, 브레인 맵
Part 1. 출항 : 우주보다 복잡한 지도를 찾아서
Part 2. 항해 : 뇌지도를 만들기 위한 4가지 전략
Part 3. 신세계 : 뇌 너머의 뇌

2013년 09월 과학동아 정보

  • 임창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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