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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1월 탄자니아 출장을 다녀온 뒤 호되게 앓았다. 현지에서는 아픈 데 없이 잘 지내다가,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몸이 으슬으슬 배가 살살 아파오더니, 급기야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장염 증세로 화장실을 들락거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밤부터는 고열이 시작됐다. 온몸이, 누가 쥐어짜는 듯이 아팠다. 마감 기간이라 쉴 수도 없어서 그 몸을 하고 회사를 오는데, 서도 앉아도 엎드려도 몸을 비틀어도 아팠다. 하마터면 출근하는 지하철에서 염치 불구하고 의자에 길게 누워 올 뻔했는데 참았다.
장염과 고열 증세는 병원을 드나들고 약을 먹은 끝에 열흘 만에 서서히 나았다. 그 때 내내 공포에 시달렸던 생각이 있다. ‘혹시 아프리카에서 기생충에 감염된 것 아닐까?’ 별 의심을 다 했다. 평소 고기를 전혀 안 먹는데, 탄자니아 야생동물연구소장이 일행을 특별히 만찬에 초대하더니 염소 고기로 만든 국을 먹였다. 억지로 반쯤 떠먹었는데, 혹시 거기에? 사파리를 이동할 때 마구 달려들던 체체파리도 떠올랐다. 물리면 이름도 복잡한 기생충에 걸린다고 들었다. 혹시 너희가? 숙소 근처에 둔하게 서서 입을 오물거리고 있던, 덩치가 불도그만한 거대한 쥐과 동물도 떠올랐다. 그 똥이 풀밭에 널려 있던데, 혹시? 예방약 라리암을 게을리 먹었는데, 모기가 옮긴 말라리아?
그 이후 반 년이 지났지만 추가 증세가 없는 것으로 봐서, 다행히 기생충에 걸린 것은 아닌 것 같다. 지금 생각하면 웃기다. 취재에 동행한 교수와 연구원 다섯 명 중 세 명이 기생충학자였다.
기생충에 잘 걸릴 만한 환경을 세상 누구보다 잘 아는 분들이었다. 더구나 매년 몇 번씩이나 탄자니아를 방문해 지리도 훤했다.
기생충에 걸릴 만한 곳을 위험하게 굳이 안내했을 리가 없다. 기생충 걱정을 했던 건 그저, 그 며칠 동안 평생 들은 것보다 더 많은 기생충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피부를 뚫고 나오는 메디나충, 눈에 둥지(?)를 트는 회선사상충과 스파르가눔, 몇 m나 되는 몸을 착착 접어 창자에 숨죽이고 있는 촌충…. 이야기를 듣고 표본을 직접 눈으로 보면서 몸이 간질간질해지는 느낌을 받은 게 한두 번이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서민의 기생충 열전’을 읽고는 조금 생각이 달라졌다. 기생충 학자들을 절대 ‘믿으면’ 안 된다! 무슨 말인고 하니, 이들은 기생충 연구를 위해서 수백 마리의 쥐를 해부하기도 하고 한 달 내내 얼굴도 모르는 남의 대변을 파헤치기도 하며, 심지어 기생충의 알이나 유충을 샌드위치에 싸서 꿀꺽 삼키기도 한다. 그러니까 기생충에 대한 심리적 저항감이 오히려 아주 낮을지 모른다! “기생충 좀 있으면 뭐 어때서”라며 알이 득실득실한 환경에 태연히 사람들을 데리고 갈 수도 있다. 동행한 엄기성 충북대 의대 교수는 실제로 촌충 연구를 위해 직접 알을 먹고 몸에 기생충을 키운 것으로 유명하다.
기생충 학자들이 주변 사람을 ‘숙주’로 연구했다는 말은 듣지 못했지만, 그래도 혹시…? 기생충은 ‘의외성’이 많다. ‘기생충 열정’의 저자 서민 단국대 의대 교수의 말마따나 우리나라는 기생충을 다룬 대중서가 많이 부족한데, 서 교수의 책이 나오기 전 가장 마지막으로 나온 기생충 책 제목은 정준호 작가의 ‘기생충, 우리들의 동반자’였다. 동반자라고 하니, “어머, 나는 너 같이 징그러운 파트너 둔 적 없어”라고 말하고 싶겠지만, 실제로 인류는 최소 수만 년 전부터 기생충과 동거(?)를 했다. 그러다가 최근 몇 십 년 기생충과 결별했는데, 그 때문에 요즘 오히려 온갖 자가면역질환이 더 기승을 부리고 있다.
이 책에는 의대에서 수십 년 동안 과거(미라)와 현재의 기생충을 연구하고 환자를 대한 생생한 경험과 함께, ‘기생충의 재발견’을 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비호감’ 기생충이 종마다 개성이 뚜렷하고 흥미로운 생물로 재탄생해, 독자가 다가오기를 호시탐탐 노리는 기분이다(기생충이 숙주를 기다리듯이). 가끔은 말을 걸어오는 것 같기도 하다. “이렇게 매력적인 나를 몰라주다니 억울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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