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에서 과학 공부할 수 없던 소년, 노벨상 받다
이상하게도 자궁경부암 조직에서 헤르페스바이러스의 흔적을 찾을 수 없던 추어 하우젠 박사는 대신 성기 주변에 나는 사마귀에 주목했다. 사마귀를 주목한 이유에 대해 묻자 추어 하우젠 박사는 “비록 확인되지는 않았지만 사마귀가 악성 종양(암)으로 변했다는 이야기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사마귀와 자궁경부암 사이의 희미한 연관관계를 놓치지 않은 것이다. 추어 하우젠 박사는 우선 발바닥에 생기는 사마귀에서 추출한 HPV의 DNA 가닥을 탐침으로 사용했다. HPV는 발바닥뿐만 아니라 성기 주변에도 종종 사마귀를 만드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DNA는 두 개의 가닥이 서로 결합하기 때문에 이 원리를 이용하면 탐침과 짝을 이루는 DNA를 찾을 수 있다.
추어 하우젠 박사는 이 탐침을 이용해 성기에 난 사마귀에서 탐침과 결합하는 HPV를 발견했다. 그리고 새롭게 발견한 HPV의 DNA를 다시 탐침으로 사용해 자궁경부암에서도 HPV를 발견하는 데 마침내 성공했다. 이렇게 자궁경부암의 비밀을 푸는 데는 20여 년이 걸렸다.
이후에는 HPV의 DNA가 자궁경부암 세포의 염색체에 삽입돼 기생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이 원리를 바탕으로 백신이 개발돼 HPV 감염과 자궁경부암 발병을 막을 수 있게 됐다.
노벨상 수상자의 학창시절은 어땠을까. 독일의 고등학교 교육과 노벨상 수상과의 연관관계를 묻자 추어 하우젠 박사는 “도움이 되지 않았다”고 대답했다. 또 그는 “배우고 싶던 것을 공부할 수 있게 된 건 대학에 진학한 후”라고 덧붙였다. 추어 하우젠 박사는 “내가 다니던 고등학교는 자연과학을 심도 있게 배울 수 있도록 체계화돼 있었지만 불행히도 내겐 기회가 오지 않았다”며 “대신 라틴어와 고대 그리스어를 배우기 위해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만 했다”고 회고했다.
2008년 마침내 노벨상을 수상할 때 기분이 어떠했냐는 질문에 추어 하우젠 박사는 “기뻤고, 매우 아름다운 시상식이었다(pleased, and it has been a very beautiful ceremony)”고 추억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암에 대해서는 여전히 우리 아는 것이 별로 없으므로 많은 기초 연구가 계속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비주류에서 주류가 된 준결정의 대가가 온다
2011년 노벨 화학상을 수상한 댄 셰흐트만 이스라엘 공대 교수는 그의 업적이 인정받기 전까지 학계에서 이단아 같던 존재였다. 결정질 물질과 비결정질 물질만이 존재한다는 통념 하에서 이도 저도 아닌 ‘준결정 물질’의 존재를 주장했기 때문이다. 소금이나 금속처럼 원자나 원자군이 대칭구조를 이루며 주기적으로 배열된 물질을 ‘결정질 물질’, 유리처럼 원자가 불규칙하게 배열된 물질을 ‘비결정질 물질’이라고 부른다. 그렇다면 셰흐트만 교수가 홀로 주장했던 ‘준결정 물질’이란 무엇일까.
준결정 물질이란 결정질과 비결정질의 중간물질로 언뜻 보면 명확한 주기성이 보이지 않지만, 그 속에 대칭구조가 숨어있는 물질이다. 댄 셰흐트만 교수가 처음 발견한 것은 5회 대칭구조다. 펜로즈 타일링(위 그림)처럼 5회 반복되는 규칙성이 있지만 주기적이지는 않다. 당시 학계에서는 이를 받아들이지 못했다. 하지만 이후 그 존재가 증명되자 8회, 10회 등 다양한 대칭구조가 여러 금속 합금에서 추가로 발견됐다. 전에는 상상할 수 없던 구조가 밝혀지면서 준결정을 활용한 다양한 합금 개발이 가능해졌다. 열과 전류를 잘 전달하는 결정질과 그렇지 않은 비결정질의 성질을 모두 갖는 준결정이니만큼 쓰임새에 맞는 새로운 합금을 만들 수 있다. 모두가 “없다”고 할 때 홀로 “있다”고 주장했던 과학자가 우리나라 학생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 지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