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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모닝~. 세렝게티의 초원에서 맞는 아침, 상쾌한가요? 일어나 눈을 비비다 말고 눈을 크게 뜨는 당신. 뭔가 못 볼 걸 봤다는 듯이 다시 격하게 눈을 비비는군요. 그리곤 비명도 안 나온다는 표정! 아하, 간밤에 주무신 텐트 옆에 저 아프리카버펄로가 있어서놀라신 거군요. 죄송해요. 놀라게 해 드릴 생각은 아니었는데.

걱정 마세요. 저는 비록 험상궂게 생겼지만, 사람을 해치지 않는답니다. 이래봬도 평화로운 동물이라고요. 밤에 안전하게 잘 곳을 찾다가 우연히 여기로 온 것뿐이죠. 사자를 피하는 데엔 사람이 있는 곳이 최고거든요. 인기척 있는 곳엔 사자가 잘 안 오니까요. 저 영리하죠?

그건 그렇고, 여긴 세렝게티 한가운데잖아요. 야영을 한다면 버펄로를 만나는 것쯤은 각오하셨어야죠. 하이에나랑 사자보다는 낫잖아요. 텐트 옆으로 하이에나 무리가 다가와 컹컹거리며 위협하는 소리를 들으신다면(여기 오는 한국 연구자들이 실제로 겪었던 일이에요), 버펄로쯤은 귀엽다고 생각하게 될 거예요.

이제 멀리 초원에 태양이 두둥실 떠올랐어요. 저와 함께 세렝게티 초원을 둘러보기로 해요. 제가 적도 아래, 태초의 대륙 아프리카의 진짜 야생을 보여 드리도록 하죠.

세렝게티는 동아프리카 탄자니아 북부에 있는, 우리나라 경기도의 약 1.4배 넓이에 달하는 거대한 초원의 이름이에요. 탄자니아의 국립공원으로 지정돼 있죠. 여러분이 계신 곳의 이름은 세로네라. 세렝게티 전체 지도를 놓고 봤을 때, 배꼽에 해당하는 한가운데 지역이에요.

주변에 산도 별로 보이지 않는 평원이라 잘 모르시겠지만, 여기는 사실 굉장히 높은 지대랍니다. 들고 계신 스마트폰으로 해발고도를 확인해 보세요. 1542m라고 나오죠. 뭔가 잘못된 것 아닌가해서 고개를 흔들기 쉽지만, 잘못된 게 아니에요. 실제로 세렝게티는 전체 해발고도가 900~1500m 정도랍니다. 지리산 노고단 높이가 1507m니 어지간한 산보다 높은 곳이 수두룩한 셈이네요.


세렝게티는 적도 바로 아래에 있는 열대 사바나 지역이에요. 우기와 건기가 반복되죠. 우기에는 밖에 돌아다니기도 어려울 정도로 비가 쏟아 붓고, 건기에는 먼지가 폴폴 날릴 정도로 바닥이 바싹 말라요. 그러다 보니 키가 큰 나무가 많지 않고 사람 발목 아니면 무릎 높이 정도의 초본 식물들이 많이 자라고 있어요.

기후와 식생 때문에 세렝게티에 사는 약 500만 마리의 동물 중 200만 마리의 초식동물들은 계절에 따라 드넓은 초원의 외곽을 시계방향으로 빙 돌며 이동한답니다. 시기에 따라 야생동물이 발견되는 장소는 매년 일정해요. 11월부터 5월 사이에는 세렝게티의 남동부에서 풀을 뜯고, 7~8월에는 최북단인 마사이마라에 가죠(마사이마라는 ‘마사이족의 땅’이라는 뜻이에요). 세렝게티는 탄자니아에 속하지만, 초원 가장 북쪽 마사이마라는 케냐에 속해요. 동물에게는 국경이 없기 때문에, 가장 혹독한 건기를 피해 아무런 제약 없이 유유히 케냐로 건너간답니다.

대이동 모습이 잘 안떠오른다고요? 그 동안 자연 다큐멘터리에서 사자나 치타가 용맹하게 사냥하는 장면만 보셨나 봐요. 세렝게티의 진면목은 육식동물이 펼치는 잔혹하고도 극적인 이벤트가 아니라, 바로 초식동물이 펼치는 대이동이랍니다. 차를 타고 한 시간쯤 남동쪽으로 이동해 보죠. 응두투 지역과 그 동쪽의 또다른 국립공원인 고롱고로 지역인데, 아마 깜짝 놀라실 거예요.

저기 동물 떼가 보이나요? 초원에 자유로이 흩어져 풀을 뜯거나 앉아 쉬고 있죠. 500만 마리의 동물 중 가장 개체수가 많은 누(윌더비스트, 위 사진)예요. 약 150만~200만 마리가 살고 있죠. 세렝게티 야생동물 전체의 30~40%를 누 한 개체가 차지하고 있는 셈이에요. 물론 세렝게티에는 누 외에도 많은 야생동물이 있어요. 얼룩말 25만 마리, 톰슨가젤 40만 마리 등 초식동물이 수가 많죠. 특히 고롱고로 국립공원에 가면 초원 위에 평원얼룩말들이 ‘벌렁’ 누워 있는 평화로운 풍경을 볼 수 있어요. 의심이 많아 평소 절대 엎드려 자지 않는 얼룩말인데, 역시 야생동물의 천국답게 천하태평이네요.

누는 수염도 나 있고 뿔도 있으며, 덩치도 꽤 커 힘도 세 보여요. 하지만 대단한 겁쟁이랍니다. 봐요. 차가 지나가니까 몸을 둔하게 일으켜 허둥지둥 피하잖아요.

누는 저와 달리 머리가 별로 좋아 보이지 않지만, 그래도 이동할때 보면 기특해요. 마치 개미 떼가 이동하듯 한 줄로 늘어서서 질서정연하게 걷는다니까요. 아, 저기 마침 보이네요. 한 줄로 죽 늘어서서 부지런히 걸어가고 있어요. 정말 개미떼 같지 않나요?

자, 다시 세렝게티의 중심, 세로네라로 돌아왔어요. 여러분이 텐트 속에서 야영을 한 이곳은 사실 연구소예요. 탄자니아는 세렝게티를 비롯해 동아프리카의 대표적인 야생동물 보호지역 15개를 국립공원으로 지정했는데, 이곳을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연구하기 위해 국립연구소를 세웠어요. 바로 ‘탄자니아 야생동물연구소(TAWIRI, 타위리)’예요. 타위리는 1980년 처음 세워졌어요. 탄자니아 동북부에 있는 제4의 도시인 아루샤에 본부가 있고, 세렝게티 등 네 곳에 지역 거점 현장 연구센터를 두고 있죠. 여러분이 지금 서 있는 세렝게티 연구센터도 거점 연구센터 중 하나예요. 세계적인 동물학자 제인 구달이 침팬지를 연구한 곳 아시죠? 그 연구소도 탄자니아 서부에 위치한 타위리의 지역 거점 연구센터인 곰베-마할레 연구센터랍니다. 이렇게 본부와 연구센터 네 곳에 석박사급 연구원과 직원 114명이 야생동물의 생태와 건강을 연구하고 관리하고 있어요.





타위리는 1980년 세워졌지만, 탄자니아와 아프리카의 야생동물 연구 역사는 1950년대로 거슬러 올라가요. 독일인 연구자들이 들어와 연구소를 세우고 야생동물 연구를 시작했거든요. 이 연구소가 세렝게티 연구소가 됐고, 이를 모태로 타위리가 생겼어요. 세렝게티 연구센터는 지금은 타위리의 조직 중 일부지만, 사실 탄자니아는 물론 아프리카 야생동물 연구의 역사 그 자체랍니다. 센터 안을 보시면 1950년대에 독일 연구자들이 남긴 도감이나 사진, ‘1972년 완공’ 현판이 뚜렷한 건물 등 세월의 흔적을 쉽게 발견할 수 있어요.

세렝게티 연구센터는 야생동물의 앞마당이에요. 아, 저기 마침 코끼리가 지나가네요. 사람이 있든 말든 태연하게 걸어가는 모습이 뭔가 거짓말 같죠. 그렇다고 사진을 찍겠다고 달려가면 안 돼요. 지금은 바람이 우리 쪽으로 불어서 괜찮지만, 바람이 코끼리 쪽으로 불면 접근하는 사람 냄새를 맡고 흥분해 돌진해 올 수 있거든요. 사진도 중요하지만, 여긴 세렝게티라는 걸 잊지 말아 주세요. 이곳의 주인은 사람이 아니라 우리 동물이랍니다.

옆에 기린이 풀을 뜯고 있군요. 사람이 지나가도 그냥 멀뚱히 쳐다보기만 하고 도망을 가지 않아요. 달리는 모습을 보여주면 좋은데. 길고 우아한 몸으로 겅중겅중 뛰는 모습이 아주 아름답죠. 머리도 꽤 좋은 동물이에요. 뭐, 저보다는 좋지 못하지만요.

자꾸 제 머리가 좋다니까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을 지으시네요. 좋아요 제가 증거를 들려드리죠. 여기 로버트 퓨마과 센터장이 직접 증인이 돼 주실 거예요. 어느날 밤이었어요. 저는 혼자 사자 16마리 무리에게 쫓기고 있었어요. 우연히 이 연구센터에 왔는데 마침 주차된 차가 보이더군요. 그래서 차와 건물 벽 사이에 숨었어요. 흥분한 사자 무리가 달려들었죠(제가 아까 연구센터에 사자도 종종 온다고 했죠?). 차가 대파되고 벽이 손상됐지만, 저는 버텼어요. 결국 동이 텄고, 야행성인 사자들은 저를 잡지도 못하고 되돌아갈 수밖에 없었죠. 기지를 발휘한 덕분에 저는 무사히 집에 갈 수 있었답니다. 어때요. 사자랑 16대 1로 싸운 저, 머리 좋은 거 맞죠?

세렝게티 연구센터에서는 꼭 동물만 연구하지는 않아요. 퓨마과 센터장이 데리고 간 연구동 안에는 종이 봉투에 가지런히 담긴 식물 표본이 가득해요. 수의학 박사인 센터장은 무슨 이유로 식물을 연구할까요.

“세렝게티 북쪽에서 딴 초본 식물입니다. 어떤 식물인지 구분하는 연구는 했고, 이제 대학 연구소와 함께 영양을 분석할 예정이에요.”

초식동물은 식물의 영양이 풍부한 곳을 좋아해 그 쪽으로 이동해요. 누와 얼룩말 등이 왜 하필 세렝게티의 외곽을 따라 이동하는지, 그 비밀도 알 것 같아요. 이곳 세로네라 지역은 외부와 달리 화산질 토양으로, 풀이 키가 크고 무성하지만 영양가가 별로 없어요. 그래서인지 오래 돌아다녀도 동물을 별로 볼 수 없지요.

타위리와 세렝게티 연구센터에서 한국 연구자도 많이 활약하고 있어요. 다만 서양 연구자들이 이미 하고 있는 생태 연구는 아니에요. 주로 사자나 버펄로, 기린 등 야생동물에서 진드기같은 외부기생 생물과 기생충이나 미생물을 채취해 분석하고 보존하는 연구를 하고 있죠. 이렇게 시료를 채취하면, 마치 은행처럼 보관하다가 필요한 연구자에게 제공할 수 있겠죠. 이런 역할을 하는 곳을 ‘연구소재은행’이라고 불러요. 한국에는 재단법인 연구소재중앙센터가 총괄, 관리하는 ‘은행’이 36개 있어요. 그 중 기생충과 외부기생곤충, 항생제내성균을 다루는 세 곳이 2010년부터 타위리와 공동연구를 하고 있어요. 교육과학기술부와 한국연구재단의 ‘개도국과학기술지원사업’ 지원을 받은 공적개발원조(ODA) 사업이죠. 원래 2008년, 엄기선 충북대 의대 교수(기생생물자원은행장)가 개인적인 관심으로 타위리와 연구 인연을 맺은게 시작이에요. 이후 연구소재중앙센터와 용태순 연세대 의대 교수(의용절지동물은행장), 신은주 서울여대 항생제내성균주은행장이 꾸준히 협력 연구와 교류를 하고 있어요. 지난 1월에는 탄자니아 최초의 연구소재은행이 탄생했다니까요. 사이먼 음두마 타위리 센터장도 “한국과의 협력 연구에 큰 기대를 한다”고 말했답니다.

이들이 연구하는 방식은 앞서 다른 연구자들이 하는 방식이나 절차와 비슷해요. 먼저 시료 채취에 필요한 생물을 타위리와 논의하죠. 그 뒤 사냥이나 찻길동물사고로 죽은 야생동물 개체를 확보해 시료를 채취합니다. 살아있는 동물도 대상이죠. 이제야 하는 말인데, 사실은 저도 한번 잡혀서 시료 채취를 당한 적이 있어요. 흑흑, 굉장히 무서웠어요. 저를 사로잡더니, 글쎄 요상한 막대를 머리로 가져오는 거예요…, 으악, 버펄로 살려!


 



근데 알고 보니 막대는 겨우 면봉이었고요, 머리가 아니라 귀 뒤를 살짝 긁더라고요. 미생물을 채취해 간 거예요. 그밖에 등에 붙어 있는 진드기나 참진드기 같은 기생 곤충을 떼어 가곤 놓아주더라고요. 휴우, 저는 예전에 이 사람들이 죽은 제 친구의 배를 갈라 내장을 꺼내더니(으악!), 거기에서 기생충을 채집해 가는 것을 본 적이 있어요. 그래서 무척 긴장했죠. 저를 상대로 생체실험이라도 하나 했거든요. 흑흑, 아니어서 천만 다행이에요.

이렇게 해서 얻은 시료는 보존처리를 해 한국으로 가져와 분석해요. 탄자니아에서는 분석할 설비나 기술이 부족하기 때문이죠. 한국에서 분리, 분석한 시료와 자료는 둘로 똑같이 나눠서 한국과 타위리에 각각 보관해요. 제 귀 뒤에서 채취한 시료도, 나중에 신은주 교수가 분석해 그 안에서 미생물 5종을 분리했어요. 그 시료는 타위리에도 기증했고, 타위리는 새로 개소한 탄자니아 연구소재은행에 보관했습니다. 연구소재은행이 있어 앞으로 우리 야생동물의 기생충과 질병을 더 활발히 연구할 수 있게 될 거예요. 공동연구도 더 활발해지고요.

근데 왜 동물 질병과 기생충을 연구하냐고요? 줄리어스 케이유타위리 연구본부장이 설명해줄 거예요.
“많은 질병과 기생충을 동물과 사람이 공유합니다. 동물 연구는 궁극적으로 사람에게도 도움이 될 겁니다.”

한국과 탄자니아의 협력 연구는 앞으로 더욱 공고해질 거예요. 타위리는 2013년 9월부터 3년 동안 한국 연구자를 세렝게티 연구센터 수의학 연구동에 입주시키기로 결정했어요. 그 동안은 한달 이하로 탄자니아에 방문해 연구를 해야 했는데, 연구자가 장기로 체류하니 더욱 상세하고 안정적인 연구가 가능할 거예요. 뿐만 아니라 지형, 지질 등 세렝게티의 자연 자체를 연구하고 싶은 과학자에게도 거점이 될 수 있을 거예요.

앞으로 한국 연구진이 계속 머무른다면, 저와 만날 기회도 많아질 거예요. 우리 더 친하게 지내기로 해요. 세렝게티는 넓어요. 열대 사바나의 자연은 변화무쌍해요. 우리가 아는 것보다 훨씬 거대하고 깊은 자연의 세계가 펼쳐져 있어요. 설레지 않나요. 남은 연구는 당신 몫이에요.

2013년 03월 과학동아 정보

  • 글·사진 세렝게티=윤신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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