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장이론이 최근 활발하게 연구되고 있다. 초대칭성이론이 등장하면서 초끈이론, 초중력이론, 면이론 등이 제기된 것이다. 자연이 물질도 힘이 아닌 끈과 면에 의해 설명될 수 있을까.
이론물리학의 궁극적 목표가 있다면 아마 그것은 통일장이론의 완성일 것이다. 통일장이론이란 한마디로 말하면 ‘모든 것을 설명하는 이론’(Theory of Everything)이다. 그런데 이 이론은 하나의 이론이라야 한다. 그러므로 이것은 궁극적인 최상의 이론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이론은 존재할 수 있을까? 물론 장담할 수 없다. 그러나 한편으로 생각하면 이런 이론은 존재할 가능성이 많다. 조물주가 (만일 있다면) 이 우주를 만들 때 궁색하게 여러 이론으로 짜집기를 해서 만들지는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이러한 이론이 존재할 것이라는 현실적인 증거가 있는가? 물론이다. 현재 우리가 알기로 이 자연계에는 4가지의 힘이 존재한다. 뉴턴의 만유인력을 설명하는 중력, 맥스웰의 전자기 법칙을 설명하는 전자기력, 물질의 붕괴를 설명하는 약력, 그리고 핵의 구조를 설명하는 강력이 그것이다. 그런데 사실 전자기법칙이 나오기 전에는 전기와 자기가 완전히 다른 것으로 생각됐다. 이 서로 다른 전기 현상과 자기 현상을 1867년 맥스웰이 하나의 이론인 전자기이론으로 통일함으로써 통일장이론의 가능성을 증명했다.
그후 1923년 칼루자가 중력과 전자기력을 5차원 중력이론으로 통합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칼루자-클라인이론을 만들었다. 1967년에는 와인버그가 전자기이론과 약력이론을 전자기약력이론으로 통일한 공로로 노벨상을 받았다. 이상으로 볼 때 이론물리학의 역사는 바로 통일장이론의 역사라고 할 정도로 통일장이론의 추구는 이론물리학의 중심적 화두가 되어왔던 것이다. 그렇다면 통일장이론의 완성은 현재 어디까지 왔을까?
끈이론에서 면이론으로
현대 통일장이론은 두갈래의 뿌리에서 시작됐다. 하나는 1975년 필자와 몇몇 사람들이 시작한 것으로 약력 및 강력을 기술하는 게이지이론과 칼루자의 5차원 통일장이론을 보다 고차원적 중력이론으로 통일시킨, 이른바 고차원적 칼루자이론이다. 그러나 이 이론은 시간과 공간의 기하학적 성질에 바탕을 두고 있어,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론처럼 물질과 시공의 관계를 분명히 밝히지 못한 결점을 갖고 있었다.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자연계의 물질은 그 성질에 따라서 두 종류(보존과 페르미온)로 나눌 수 있다. 빛을 기술하는 광자나 중력을 기술하는 중력자 등이 보존에 해당하고, 전자나 쿼크 혹은 양성자 등이 페르미온에 해당한다. 이중 보존은 상호작용을 매개하는 물질을 기술하고, 페르미온은 그 작용의 원인이 되는 물질을 기술하고 있다.
칼루자의 이론은 상호작용에 대한 부분, 즉 보존에 대한 부분을 기하학적으로 잘 설명하고 있다. 그런데 나머지 반, 즉 페르미온에 대한 부분은 만족스런 설명을 못하고 있다. 이러한 문제는 초대칭이란 중요한 개념의 도입으로 보완된다.
초대칭성이란 막스플랑크연구소의 베스 박사와 캘리포니아 버클리 대학의 주미노 박사가 주장한 것으로, 보존과 페르미온 간의 대칭성을 기술하는 가설이다. 초대칭성에 따르면 자연계에는 보존과 페르미온이 절반씩 존재한다고 한다. 그러므로 고차원적 칼루자이론의 결점은 이 이론에 초대칭성을 접목시킬 경우 자연스럽게 해결된다. 이것이 바로 고차원적 초중력이론이다. 그 대표적 예가 11차원 초중력이론이다. 이러한 고차원적 초중력이론이 1980년 초기까지 현대 통일장이론의 주류를 이루었다.
또하나는 강력이론에서 시작됐다. 고차원적 통일장이론과는 별개로 1960년 후반 강력이론을 기술하기 위한 끈이론이 시카고대학의 남부 교수에 의해 제창됐다. 그러나 끈이론은 초대칭성이 도입되면서(사실 초대칭성은 끈이론에서 제일 먼저 도입되었다) 10차원 초끈이론으로 발전했다. 또한 끈이론이 중력을 설명할 수 있다고 알려지면서 끈이론은 강력이론이 아니라 통일장이론이 될 수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나아가 1984년 런던대학의 그린 박사와 칼텍의 슈바르츠 박사가 초끈이론의 기술적인 문제들을 해결함으로써, 이른바 끈이론의 제1혁명이 일어났다. 이 결과 초끈이론은 초중력이론을 누르고 최근까지 프린스턴 고등연구원의 위튼 박사 등에 의해 이상적인 통일장이론으로 제기되고 있다.
그런데 10차원 초끈이론의 문제점은 어디서 시작하는가에 따라 다섯가지 서로 다른 형태의 이론이 나온다는 점이다. 따라서 이 가운데 어떤 것이 진짜 통일장이론이 될 것인가, 그리고 어떻게 우리가 원하는 출발점을 찾을 수 있는가 하는 매우 어려운 문제에 봉착했다. 결국 초끈이론도 역사의 뒤안길로 밀려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1995년 말 이러한 다섯 가지 다른 형태의 끈이론이 모두 끈이론보다 차원이 하나 더 높은 곡면이론에서 나온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제2의 혁명을 맞게 됐다. 이 제2의 혁명으로 참된 통일장이론은 끈이론이 아닌 2차원 면이론(membrane theory)이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그 결과 그동안 무시됐던 11차원 초중력이론이 새로운 면이론으로 다시 각광을 받기 시작했다. 이른바 M이론(Membrane, Magic, Mystery, Matrix, 혹은 모든 이론의 Mother란 뜻)이라고 부르는 이 이론은 현재 가장 유력한 통일장이론으로 연구되고 있다.
어머니이론과 아버지이론
여기서 과연 우리는 마지막 통일장이론을 발견했을까? 원래 끈이론은 자연계의 기본입자가 하나의 자유도를 갖는 점(point)이 아니라 무한한 자유도를 갖는 1차원 끈(string)으로 되어 있다는 가설에서 시작했다. 그러나 이제 M이론에 따르면 기본입자는 1차원 끈보다 두배의 자유도를 갖는 2차원 면으로 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자연의 기본입자는 끈으로 되어 있을까, 혹은 면으로 되어 있을까? 불행히도 현재의 상황은 아직 우리에게 시원한 해답을 주지 못하고 있다.
사실 M이론에서는 2차원 면 이외에도 일반적으로 p차원 입자(p-brane)들이 나온다. 또한 이들이 서로 대칭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기본입자가 몇차원 입자인가 하는 질문에 분명한 해답이 없을 수 있다. 더욱이 최근에는 M이론에서 한단계 더 나아간 12차원 F이론(모든 이론의 Father란 뜻)까지 나오고 있어 상황은 더욱 복잡해지고 있다. 그러므로 궁극적 통일장이론으로 발전하기 위해서 우리는 앞으로도 수많은 혁명을 겪어야 될 것이 분명하다.
그러면 이러한 통일장이론으로부터 우리는 무엇을 배웠을까? 우선 자연계에는 우리가 아직 모르는 입자가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이다. 각운동량이 영(0)인 중력자나 초대칭입자들이 바로 그것이다. 현대의 모든 통일장이론은 이러한 새로운 입자들을 예측하고 있다. 나아가 새로운 입자들은 새로운 현상의 존재를 예측한다.
예를 들면 모든 통일장이론에서 나오는 각운동량이 없는 중력자에 의한 제5의 힘이나, 혹은 초대칭입자들에 의한 초대칭 현상들이 그것이다. 사실 제5의 힘이나 초대칭성의 발견은 (만일 가능하다면) 20세기 이론물리학의 마지막 개가가 될 것이다. 그러므로 통일장이론의 연구는 이론물리학자들의 허망한 백일몽이 아니라 미지의 세계를 탐구하는 중요한 도구이다.
우리는 아마도 영원히 완벽한 통일장이론을 완성할 수 없을지 모른다. 그러나 통일장이론의 연구가 계속되어야 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통일장이론의 완성 없이는 우주와 자연의 신비에 대한 완전한 이해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