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에선 폭발할 기미가 없다지만
일본 운젠화산, 필리핀 피나투보 화산. 지난 6월 태평양 지역을 연이어 강타한 화산폭발은 인류에게 '살아 꿈틀거리는 지구'의 생명력을 무섭게 확인시켰다. 잠들어있던 화산은 언제 깨어나는가? 한반도는 화산의 분노로부터 안전할까?
동물 정도의 지능에서 벗어난 원시인들은 화산의 폭발이나 분화를 보고 자연의 거대한 힘에 착잡한 반응을 보였을 것이다. 최근 분연을 내뿜기 시작한 일본의 운젠(雲仙)화산이나 필리핀의 피나투보 화산처럼, 화산은 재해를 불러 일으켜 위험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지구에 관한 많은 자료를 제공하거나 신비스러운 호기심을 낳게도 한다. 지중해에 있는 에트나 화산의 분연은 고대 페니키아인들이 항해를 하는 데 길잡이가 되기도 했다.
한반도는 안정된 지괴상에 자리잡고 있어 현세에 들어와서는 화산이나 지진에 의한 큰 재해가 없었지만 공상과학에서 연출하는 것처럼 타임머신을 이용하여 중생대의 백악기나 신생대의 제3기로 되돌아가면 지금의 영남 및 호남지방의 호숫가 숲속에 공룡이 득실거리고 화산이 격렬하게 분화하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 후에도 백두산 한라산 울릉도 길주-명천 지구대 추가령 열곡 등지에서 화산활동이 있었다.
이러한 화산활동은 역사시대에 들어와서도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오늘에 와서는 화산활동의 에너지가 거의 소실된 것으로 지질학자들은 생각하고 있다. 이는 한반도가 일본열도나 필리핀처럼 두 지판이 서로 부딪쳐 동적 지질현상이 일어나는 이른바 '활동성 지각상'에 놓여있지 않기 때문이다
화쇄류는 용암류보다 피해 커
1990년 11월 분연을 내뿜기 시작한 운젠 화산은 1백98년 동안 활동을 멈추었던 화산으로 지난 6월3일에는 큰 폭발을 일으키며 분연과 함께 화쇄류(火碎流, 고온가스에 뒤섞여 있는 화산재나 화산암편의 흐름. 이때의 분연을 열운(熱雲)이라고 한다)가 흘러내려 36명의 인명을 앗아갔다. 이 화쇄류의 한가운데 온도는 최고 6백℃이고 산사면을 따라 흘러내릴 때의 시속은 1백50㎞에 달해, 삽시간에 넓은 지역을 덮치므로 용암류에 비해 훨씬 큰 재해를 일으킨다.
필자는 1986년 5월 야마구치 대학의 마쓰모토교수와 함께 운젠악(雲仙岳)을 답사한 바 있다. 그 때 마쓰모토 교수는 중앙 구조선과 관련된 규슈 전반의 지체를 강조하면서 근 2백년간 잠자고 있는 운젠 화산의 분화 가능성을 예시했다. 이 때 관찰한 신야키용암(1792년에 분출)은 여전히 살아있는 암석이라는 느낌을 주었다.
운젠악(岳)은 동서와 남북이 20㎞가 넘는 큰 화산군(火山群)으로 화산활동이 시작된 것은 약 20만년 전 일이다. 운젠 화산은 중앙 구조선의 연장상에 있는 벳푸(別府)~구주(九重)산~운젠악 화산대의 서쪽 끝에 위치한다. 근래에 와서는 1657년, 1663년에 활동을 하여 많은 용암류가 흘러내렸다. 그 후 1백30년 동안은 활동이 멈추어 있다가, 1792년에 다시 큰 폭발이 있어 1만5천여명의 사상자를 내기도 했다.
1792년의 분화활동 자체는 규모에 있어서 얼마되지 않으나, 그때 수반한 마유야마(眉山) 대붕괴라고 불리는 대지변(地變)과 그에 의해 유발된 해일에 의한 피해는 인류역사 유수의 화산재해로 알려져 있다. 마유야마 대붕괴는 운젠악 동쪽 텐구산(天狗山)동사면에서 일어난 큰 규모의 산사태다. 이번의 분화는 운젠산의 주봉인 보현악(普賢岳)에서 폭발했다(그림1)참고.
6월9일에 분화하기 시작한 필리핀의 피나투보 휴화산은 6백11년만에 활동을 재개한 것으로서 수㎞ 상공으로 화산재와 분연을 뿜어내, 주민 1만5천여명이 대피하였고 인근에 있는 미국 클라크 공군기지에도 10일 기지 요원 전면 소개령이 내려졌다.
폭발 이전에 이미 지질학자들의 조사에 의해 마그마가 지표 가까이 솟아오른다는 사실이 발견돼 큰 폭발이 있을 것으로 예상됐다.
화산활동은 지진과 함께 오늘날 우리가 지구표면에서 볼 수 있는 자연현상중에서 가장 격렬하고 파괴적인 것 중의 하나이며, 우리들의 지구가 아직 살아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화산이나 지진현상은 그 활동양식은 다르나 모두 지구내부에 축적되었던 에너지가 비교적 짧은 시간에 지표밖으로 방출되는 현상이다.
그런데 일본이나 필리핀은 지리적으로 우리나라와 가깝게 있는 나라임에도, 우리나라와는 다르게 화산폭발과 지진이 잦은 나라다. 인류에게 많은 피해를 주어 두려움의 대상이 되고 있는 화산은 어떤 곳에서 어떻게 발생하는 것일까.
화산대는 판이 맞부딪치는 지점
지구상에는 적어도 약35억년 전(원시지각의 형성후)부터 화산활동이 있었다. 현재 활화산은 8백여개가 있다. 여기서 활화산이란, 현재 활동중인 화산은 물론, 과거 역사시대에 불을 뿜었던 것, 그리고 현재에도 가스를 계속 뿜어내고 있는 것을 포함한 숫자다.
이들 활화산은 대부분 (그림2)에서 처럼 어느 한정된 지역에 줄지어 분포하고 있다. 특히 활화산은 일본열도를 포함하는 환태평양지역과 인도네시아에 밀집되어 있다. 이를 태평양의 '불의 고리'라고 한다. 남유럽의 지중해지방과 그리스의 에게해지방은 예로부터 활화산이 유명하다. 그러나 이곳도 환태평양의 언저리에 있는 화산 수에 비하면 그다지 많은 것이 아니다.
그러면 화산이 지구표면 여기저기에 무질서하게 분포하지 않고, 어느 한정된 지역에 줄지어 있는 것을 지질학자들은 어떻게 설명하고 있을까.
오늘날 지질학자들은 지구표면에서 화산이나 지진활동이 일어나는 과정을 설명하기 위해 '판구조론(Plate Tectonics)'이라는 개념설을 이끌어냈다. 이 설에 따르면 지구 외곽은 그림과 같이 두께가 약 1백㎞되는 큰 조각으로 나누어지는데 이를 지판(Plate)이라고 한다. 즉 고생대 말에 있었던 거대한 판게아 대륙이 여러개의 조각, 즉 유라시아판 태평양판 인디아판 아프리카판 남극대륙판 남아메리카판 등으로 떨어져 나갔다는 것이 판구조론의 주제다. 이들은 1년에 수㎝씩 서로 방향을 달리하여 움직인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리고 지진이나 화산활동은 이들 각 판이 만나는 경계에서 일어나는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그림2)와 (그림3)을 관찰해 보면 화산은 대부분 지판들의 경계부근에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섭입대의 영향을 크게 받는 일본이나 필리핀은 우리나라와 달리 화산이나 지진이 많은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그런데 세계의 화산중에는 지판이 만나는 경계와는 관계없이 지판의 안쪽에 있는 것도 있다. 우리나라의 한라산 백두산 울릉도 추가령열곡대의 화산은 유라시아 지판내에 있는 것이고, 하와이제도와 폴리네시아의 화산도(火山島)들은 태평양지판 안쪽에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판의 경계부근이 아니고 판의 안쪽에서 일어나는 화산은 다른 원인으로 설명된다. 즉 지구 내부 깊은 곳에는 불균일하게 데워진 부분이 있어 그 곳에서 생성된 마그마가 지표밖으로 나오는 것으로 설명하고 있는데, 이런 곳을 열점(熱点, hot spot)이라고 한다. 한반도의 화산(제4기의 것에 국한)은 일본의 화산들과는 달리, 그 성인을 열점설로 해석하고 있다. 또 하와이 제도의 섬들이 북서서-동동남 방향으로 줄지어 있는 것도 열점은 고정되어 있고 지판이 북서서 방향으로 이동하였기 때문에 차례로 생겨난 것으로 풀이한다.
화산을 발전소로 이용하기도
화산활동은 매우 파괴적인 자연현상이다. 화산의 폭발을 예측할 수 있을까. 이 문제는 오랫동안 인간의 큰 관심거리가 되어왔다. 지난 5백년동안 화산폭발과 분연으로 말미암아 약20만명의 인명이 희생됐다.이러한 재해는 화산이 폭발할 때 분출된 물질에 의해 일어난다. 그 대표적인 것이 A. D. 79년에 있었던 베수비오스화산의 대폭발로, 폼페이 시가가 완전히 폐허로 된 것은 물론 수천명에 달하는 희생자를 냈다. 특히 폭발성의 화산이 많은 환태평양지역은 인구밀도가 높은 곳이기도 해서 그 피해가 더욱 크다.
그러나 한편으로 화산활동은 인간생활에 여러가지 이익을 주기도 한다. 화산활동은 지구가 살아있는 증거로서 지구과학의 발전을 촉진시키고 우리에게 지구에 대한 올바른 모습을 가르쳐 주기도 한다.
특히 일본이나 인도네시아와 같은 화산국(火山國)은 화산이 인간 생활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여러 곳에 화산 분화에 의한 재해를 방지하기 위해 화산 관측소가 설치되어 있다. 또 화산국에서 볼 수 있는 웅대한 화산 지형은 아름답고 신비로운 관광지가 되어 인간생활에 휴식처를 제공한다. 일본 국립공원의 3분의 2이상이 화산지대에 설정되어 있는 것은 화산이 주는 혜택의 한 예가 된다.
또한 화산이 활동할 때 분출된 화산재는 넓은 범위에 걸쳐 식생에 피해를 주기도 하나, 마치 나일강의 범람처럼 비옥한 농경지를 제공해 주기도 한다. 인도네시아의 자바 지역은 인구밀도가 높은 곳이면서도, 종종 화산이 폭발할 때 분출된 회산재가 토지를 비옥하게 만들어 주어 풍부한 농업생산의 덕을 보고 있다. 화산활동은 때때로 새 토지를 만들기도 하며 해산(海山)이나 화산섬을 만들어 물고기들의 좋은 생활터를 제공하기도 한다.
화산이 활동하는 지역에는 온천도 있어 요양지로 이용되며, 화산하부에 있는 에너지는 천천히 끌어내기만 하면 훌륭한 에너지원이 된다. 현재 이탈리아나 뉴질랜드 같은 곳에서는 화산가스로 방출되는 에너지를 발전에 이용하고 있다.
역사시대 이후 대규모 화산 폭발
역사상 가장 오래된 화산기록은 화산기록은 B.C. 693년 이탈리아 시실리 섬의 에트나 화산에 관한 것이다. 이 화산은 2천5백여년이 지난 1969년 재차 폭발, 2만여명의 인명을 앗아갔다. 우리나라의 화산활동은 중생대에 성했으나 역사에서는 고려시대 '동국여지승람(東國與地勝覧)'에 '1002년과 1007년 제주도에 검은 연기가 치솟ㅇ아 항해를 할 수 없었다'는 기록이 발견되며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에서는 1597년 1668년 등에 백두산일대지역이 화산 재로 되덮였다고 쓰고 있다.
환태평양지역 '불의 고리'의 일부인 필리핀과 인도네시아 지역도 화산발생이 빈번한 곳. 이 중 1883년에 분출한 인도네시아의 크라카토 화산은 TNT 1백 메가톤에 해당하는 무서운 파괴력을 보였는데, 이 폭발이 만든 화사냊가 지구로 오는 태양복사에너지를 차단해 수년간 전지구적인 이상기온 현상이 발생했다.
1902년 베네수엘라 마르티니크 섬의 펠레 화산폭발은 화쇄류를 유출했다는 점에서 이번 운젠화산의 경우와 유사하다. 화쇄류와 유독가스가 산 아래 세인트피에르항을 수분만에 덮쳐, 3만여명의 인명이 희생됐으며 도시전체를 통틀어 겨우 3, 4명이 살아남을 수 있었다.
1982년 분출한 미국 워싱턴주의 세인트헬렌화산은 화산관측소가 폭발을 2개월전에 예고, 인명희생을 최소한으로 줄였다는 사실로 인해 재해예방의 모범사례로 꼽힌다. 한편 이번 운젠화산에서 희생된 36명중 미국인 화산연구가 해리 그리켄은 세인트헬렌 분출 때도 최후까지 화산을 지켜보다 고립됐으나 기적적으로 살아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