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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nowledge] 하늘에서 땅끝까지, 식물과 달리다

공동기획 | 바이오로드를 가다 上



인천국제공항에서 출발하는 중국 쿤밍(昆明) 행 직항은 서쪽을 향해 약 세 시간을 날아 도착한다. ‘곧 착륙한다’는 기내 방송이 나오면 비행 정보를 켜서 실시간으로 떨어지는 고도를 보는 것이 비행기를 타는 묘미다. 1만m가 넘는 높이에서 0m까지 숫자가 줄어드는 만큼 도착지에 대한 기대감은 부풀기 때문이다. 그러나 쿤밍은 그 기대감이 부풀기도 전에 비행기가 공항에 착륙했다. 비행정보에 표보인다는 것을 깨달을 때쯤 ‘덜컥’하며 비행기가 착륙했다. 비행정보에 표시된 숫자는 2116m. 한라산(1947m)보다 높은 곳에 공항이 위치한 셈이다.

윈난 지역 전체 평균 해발고도는 1980m에 달한다. 가장 높은 곳은 6740m(매리설산), 가장 낮은 곳은 76.4m(허코우)다. 아주 높은 고산지대 식물부터 평지 식물까지 다채롭다. 한반도의 네 배나 되는 땅이 북위 20~28˚에 위치해 열대성, 아열대성 기후가 함께 있는 것도 식물종이 다양하게 자라는 데 한 몫을 한다. 심지어 북부에는 아한대성 기후를 보이는 곳도 있다.

지형만이 윈난을 식물자원의 보고로 만든 것은 아니다. 중국에서도 내노라하는 대형 강줄기도 윈난을 지나간다. 중국에서 가장 긴 강인 양쯔 강(세계에서는 세 번째로 길다)을 비롯해 메콩 강, 살윈 강, 홍하 강 등 물줄기가 복잡하다. 강으로 인해 복잡해진 지형 덕분에 지역별 강수량도 600~2300mm로 천차만별이다.




우수한 식물 자원을 찾아서

지금까지 윈난 지역에 보고된 식물 종은 약 1만 7200종. 중국 전체 자생식물의 54%에 달하는 양이다. 참고로 우리나라에 보고된 자생 식물 종 수는 약 3500종이다.

이 때문에 한국생명공학연구원(이하 생명연)은 2007년 윈난 성의 성도인 쿤밍에 해외생물소재허브센터의 중국지부 ‘한-중 생물소재연구센터’를 설치했다. 중국 농업과학원과 협조를 통해 약용 식물을 연구하고 산업, 의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사용할 신물질을 찾기 위해서다.

이 곳에는 쿤밍에서 12년 동안 식물을 연구해온이상우 박사가 5년째 센터장으로서 중국 농업과학원 연구원들과 함께 우수한 약용식물을 찾기 위해 공동으로 채집을 진행하고 있다. 민족식물학을 전공한 이 센터장은 중국 소수민족을 비롯해 인간이 사용하는 식물을 인류학적인 관점에서 연구하는 전문가다.

일년 내내 온화한 기후를 보이는 윈난 지역이지만 기자가 센터를 찾은 10월은 채집을 끝내고 수집한 식물을 신약 개발을 위해 추출물 형태로 만드는 작업이 한창이었다. 알코올을 이용해 부피가 큰 섬유질을 제외하고 알짜배기 물질만을 남기는 것이다. 이 곳에서는 단순히 자원을 수집하는 역할만 하는 것이 아니다. 5년간 중국 농업과학원과 함께 수집한 식물 자원 자료를 바탕으로 윈난 지역 식물도감을 펴내기도 했다. 곧 한국어로도 번역될 이 도감은 식물 자원을 연구하는 한·중 연구자들에게 윈난의 식물에 대해 알리는 중요한 자료가 될 것이다.

그렇다면 넓은 윈난에 식물 자원이 풍부한 이유는 무엇일까. 이 센터장과 상의 끝에 윈난 지역에 식물 자원이 다양한 이유를 직접 살펴보기로 했다. 해발고도 2000m, 북위 25도에 위치한 쿤밍에서 시작해 윈난 지역 최남단인 징홍(景洪)까지 왕복 1000km가 넘는 길을 달리는 일정이다.
 



원난의 지붕은 태양을 향해 웃는다

윈난 지역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크고 작은 건물 지붕마다 자리 잡은 태양열 기기다. 지붕마다 빼곡하게 올라가 있으며, 길가 광고판에도 태양열 기기를 광고하는 것이 쉽게 눈에 띄었다. 이곳은 태양 남중고도가 높아 태양열 효율이 높기 때문이란다. 이 센터장은 “선글라스를 반드시 쓰고 다녀야 할 정도로 햇빛이 뜨겁다”며 “자외선 차단제 없이 야외 활동을 하다가 피부에 물집이 잡히기도 했다”고 말했다. 사람은 견디기 힘들 정도로 뜨거운 햇빛이지만 식물에게는 무엇보다 좋은 성장 원료가 아닐까. 윈난 식물 다양성의 비밀은 지형말고도 햇빛에 있을지도 모르겠다.

한국에서 막 단풍이 들고 낙엽이 지는 것을 보다가 한여름 숲 같은 녹색을 보니 기분이 묘해졌다. 한참을 달려 도착한 첫 번째 목적지인 위엔지앙(元江). 베트남 하노이까지 흘러가는 홍하 강이 있는 곳이다. 누런 물이 흘러가는 홍하 강변에는 한국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모습이 펼쳐졌다. 넓적한 푸른 잎이 달린 바나나 나무 밭이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길가에 심겨진 가로수는 망고나무다. 열대, 아열대 기후 지역에 왔다는 것을 실감한 순간이었다.

윈난 남부는 동남아시아 기후와 매우 유사하다. 동남아시아보다 기온은 낮지만 7~8월에 비가 집중적으로 내리는 등 우기와 건기를 갖는다. 그 때문에 이 지역에서는 열대 과일과 온대 과일이 동시에 나온다. 사과, 배 같은 온대 과일과 파파야, 용과, 파인애플 같은 열대 과일을 동시에 맛볼 수 있다. 그만큼 온대 기후와 열대 기후가 절묘하게 어우러졌다는 뜻이다.





지방과 콜레스테롤 분해의 특효 차, 보이차를 만나다

위엔지앙을 지나 두 번째로 도착한 모지앙은 북회귀선이 지난다. 북회귀선 기념공원 주변으로는 차 밭이 펼쳐졌다. 한국에도 잘 알려진 중국 차 ‘보이차’다. 중국어로는 푸얼차라고 부르는데 바로 푸얼(普洱) 지역에서 각지에서 생산된 차가 모여 판매됐기 때문에 이런 이름이 붙었다. 모지앙을 지나쳐 향한 곳은 한때는 ‘푸얼’이라는 이름을 가졌지만 2007년 쓰마오(思茅, 지금의 푸얼시)에 이름을 빼앗긴 비운(?)의 차(茶) 도시 ‘닝얼(宁洱)’로 향했다.

차 원산지에 온 만큼 그냥 지나칠 수가 없어 차 가게에 들어갔다. 차 가게에 들어가면 가장 중심에 주인이 다기를 갖춰두고 손님을 기다린다. 처음 보는 사람이라도 차를 마시는 동안에는 금세 친구가 된다. 차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시덥지 않은 농담을 던지기도 한다. 수많은 사람들이 지나가는 곳인 만큼 가게 주인은 넉살도 좋으며 인심도 좋다.

인공적으로 발효시킨 숙차와 자연 상태로 천천히 발효시키는 생차를 맛본 뒤 따두강으로 향했다. 이 곳은 중국 정부에서 운영하는 차밭이 있다. 수만m2에 달하는 밭에는 끝없이 차 나무가 심어져 있다. 10월은 가을 차 수확도 끝나는 시기지만 여전히 밭에서는 차를 따고 있었다. 차는 잎의 크기에 따라 소, 중, 대엽종으로 나뉜다. 우리나라에서 마시는 녹차는 주로 소엽종을 쓰지만 보이차를 만드는 차는 중엽종이나 대엽종이다. 겨울인 1월에도 평균 8~17℃를 유지하는 윈난 지역은 추위에 민감한 차가 자라기에 좋은 조건이다. 덕분에 아주 오래전부터 차를 마시는 문화를 가졌다.

보이차가 단순히 중국에서 많이 마시기 때문에 유명한 것만은 아니다. 기원전 2500년 경 농업의 신 ‘신농’과 관련한 기록을 보면 차의 해독 작용에 대한 이야기가 전해진다. 신농이 수백 가지 풀을 먹다 중독되었을 때 바람을 타고 온 잎사귀가 입에 떨어지자 정신이 맑아지고 해독되었다는 기록이다. 실제로 보이차는 지방과 콜레스테롤을 분해한다고 알려져 있다. 모든 음식을 기름에 볶아 먹는 중국인에게 성인병이 적은 이유가 차를 달고 살기 때문이란다. 경희대 정세영 교수팀은 2009년에 동물실험 결과 보이차가 체지방 감소와 혈당 수치 개선에 효과가 있다는 연구를 발표하기도 했다. 이처럼 식물에는 이미 알려지지 않은 수많은 물질이 들어 있다. 이 보이차의 경우처럼 효능은 알려졌지만 정체가 확실히 않은 신물질을 밝혀 사람이 쓸 수 있는 의약품 등으로 만드는 것이 생명연의 목표다.










자원과 기술, 두 나라가 손을 잡다

따두강을 지나면 메콩 강 유역에 접해있는 국경 도시 징홍에 이른다. 미얀마, 라오스 등과 가까이 있는 이 지역은 중국이라기보다는 동남아시아 같다. 쿤밍에서 직선 거리로는 500km가 넘게 떨어진 징홍에 도착했을 때는 놀랍게도 더 이상 겉옷을 입을 필요가 없었다. 해발고도 2000m에서 우리나라의 초가을 날씨를 보였던 쿤밍과는 달리 이 곳은 열대 기후가 시작되고, 아열대 기후가 끝나는 위치기 때문이었다.

긴 여정을 안내한 이 센터장은 “아열대 최북단부터 최남단까지 경험한 셈”이라며 “이처럼 다양한 날씨 조건과 산과 강이 복잡하게 얽혀 있기 때문에 식물이 다양해 신물질을 수집하고 연구하기 좋다”고 설명했다. 윈난 지역에 있는 식물 중 약용으로 쓰이는 식물은 5600여 종으로 우리나라 전체 자생 식물보다도 많다. 종류가 많을 뿐만 아니라 중국 전체에 사용하는 약재의 50%가 윈난에서 재배되고 있다. 덕분에 예부터 중국 의학과는 별개로 윈난만의 독특한 의학이 발달해왔다. 윈난 의학과 최신 생명공학을 접목하면 식물 자원을 연구하는 데 더 큰 효과를 낼 수 있다.

윈난에는 이 곳에서만 자라는 특산종의 비율이 30%가 넘는다. 참고로 우리나라는 전체 자생식물 중 약 10%만이 특산종이다. 이토록 다양하고 풍부한 식물 자원을 제대로 연구하고 발전시키기 위해 중국 농업과학원과 생명연이 손을 잡았다. 중국은 풍부한 자원을 제공하고, 우리나라는 식물에서 인간에게 유용한 물질이 있는지 ‘스크리닝 기술’을 이용해 찾아내는 일종의 ‘윈윈’ 전략이다.

식물은 한번에 수백 가지가 넘는 화합물을 만든다. 벌레를 쫓는 물질일 수도 있고, 식물을 더 잘 자라게 하는 영양제일 수도 있다. 한가지 식물에서 인간에게 유용한 물질이 얼마나 많이 나올 수있는지는 알 수 없다. 생명연에 있는 해외생물소재허브센터는 중국에서 온 모든 식물에 대해 항염, 항산화, 살충 반응과 같은 기초 활성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지금까지 약 30종에서 신약 후보가 될 수 있는 물질을 찾아냈고 3종은 특허 출원 중에 있다. 이미 특허를 받은 물질도 있다. 장병두영(Elaeocarpus petiolatus)이라는 식물에서 찾아낸 노화방지 물질이다.

이렇게 개발된 물질에 대한 이익은 중국 농업과학원과 공동으로 나눈다. 단순히 개발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를 이용해 실제 약으로 만드는 것이 최종 목적이기 때문이다. 앞서 이야기한 것같이 윈난은 중국 최대의 약초 재배지다. 중국 농업과학원은 신약 물질을 생산하는 식물을 재배하는 데 특화된 기관이다. 연구가 진행될수록 서로 더 큰 이익을 주고 받을 수 있다는 의미다.

이중구 해외생물소재허브센터장은 “연구의 시작부터 최종단계까지 중국 농업과학원과 긴밀한 관계를 갖는 국제 프로젝트”라며 앞으로 더 좋은 연구 결과가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을 보였다. 생명연은 중국 쿤밍 뿐만아니라 코스타리카 헤레디아(2008), 인도네시아 탕게랑(2009)에 이어 베트남 하노이에 추가로 해외자원거점센터를 구축할 계획이다. 이 센터장은 “해외자원거점센터가 많이 생기는 만큼 식물 자원에 관심이 있는 연구 인력이 많이 필요하다”며 “과학동아 독자들 중에서 멋진 식물 자원 연구자가 나오는 것도 기대해본다”고 덕담을 건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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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2월 과학동아 정보

  • 중국 쿤밍 = 오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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