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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우스 병원, 마음을 치료하다



“낯을 가리고 수줍음이 많은 쥐도 있나요? 제가 그렇거든요.”

지난 9월 23~27일 제주 서귀포 칼 호텔에서는 쥐 연구분야의 대표 학회인 다산 학회와 국제마우스표현형분석 컨소시움(IMPC) 학회가 연달아 열렸다. 다산 학회 마지막 날인 9월 25일 아침, 행사장에서 신희섭 기초과학연구원(IBS) 인지 및 사회성 연구단장을 만난 기자는 이렇게 물었다. 신 단장은 KIST 뇌과학연구소에 있던 시절부터 유전자를 변형한 쥐를 만들어 왔는데, 이들은 술을 잘 마시는 쥐부터 늘 겁에 질려있는 쥐까지 각양각색이라고 들었기 때문이다.

‘부끄럼쟁이 쥐’의 친구는 수염이 길어진다

“네, 그런 쥐도 있죠. 상대 쥐의 수염을 보면 알 수 있답니다.”

쥐의 코 주변에는 수염이 10개 정도 나 있다. 쥐의 수염도 사람처럼 계속 자라 그냥 두면 땅에 끌릴 정도가 된다.

하지만 우리가 보는 쥐의 수염은 수평을 유지할 정도로 짧다. 그 이유를 신 단장은 “쥐가 매일 서로를 면도해주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낯가림이 심한 쥐는 상대에게 다가서지 못한다. 상대의 수염을 깎아줄 수도 없다. 그래서 낯가림이 심한 쥐와 한 방을 쓰는 쥐는 수염이 계속 길어진다.

“반대로 상대에게 유난히 관심을 보이는 쥐도 있죠. 이 쥐는 다른 곳에도 호기심이 많답니다. 마치 과학자 같다고 할까요? 물건을 종이로 싸놓으면, 다가와서 종이를 벗겨낸답니다. 안에 무엇이 있는지 보려고 말이죠.”

두 쥐 모두 단 하나의 유전자를 없애 만들었다. 쥐와 사람의 유전자는 97% 정도 같기 때문에 쥐에 있는 유전자가 사람에게 있을 가능성이 높다. 신 단장이 만든 쥐 하나하나가 사람의 마음을 알기 위한 열쇠인 셈이다. 신 단장이 쥐를 연구하는 이유도 사람의 감정과 행동이 어떤 유전자에서 나오는지 밝히기 위해서다. 뇌 질환의 원인을 밝히는 것도 연구 목표다. 학회에서 만난 콜린 플레처 미국 국립인간게놈연구소(NHGRI) 박사는 “다루기가 쉽고 번식력이 뛰어난 쥐는 사람을 연구하기 위한 가장 경제적이고 빠른 방법”이라고 거들었다.



“나는 네 아픔을 몰라”

신 단장이 KIST 재직 시절 만든 쥐 중에는 ‘사이코패스’도 있다. 사이코패스 쥐는 뇌의 전측대상회피질(ACC)이라는 부위에 있는 ‘L타입 칼슘이온채널’ 유전자를 없앤 것이다. 이 부위는 상대의 아픔에 공감하는 기능을 하는 곳으로, 특정 유전자를 없애면 공감 기능이 마비된다.





“그 쥐가 실제로 남의 아픔에 공감하지 못하는지 알아보기 위해 새 실험 장치를 개발했죠.

신 단장 연구팀이 만든 장치는 가운데 투명한 막이 있는 상자다. 양 칸에 쥐를 한 마리씩 넣고 한쪽 쥐에게 전기 자극을 준다. 이 상황을 보는 다른 칸의 쥐는 덩달아 두려움을 느낀다. 쥐는 두려움을 느낄 때 얼어붙은 것처럼 꼼짝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데, 이를 ‘프리징(freezing)’이라고 한다. 프리징 반응은 형제나 부부, 오래 같이 살았던 쥐가 전기 자극을 받을 때 더 강하게 나타난다. 쥐도 사람처럼 친한 사이일수록 더 같이 아파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유전자를 없앤 쥐는 상대 쥐가 전기 자극을 받을 때 프리징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부인이나 형제 쥐가 고통 받을 때도 그저 멀뚱멀뚱 볼 뿐이다. 상대의 고통에 함께 괴로워하고 아파하는 공감능력이 없는 것이다.

“하지만 이 쥐가 단지 멍청할 수도 있잖아요.”

기자의 질문에 신 단장은 “이 쥐가 다른 뇌 기능은 모두 정상이라는 것을 여러 실험을 통해 증명했다”며 “뇌의 활동 부위를 알 수 있는 기능성 자기공명장치(fMRI)를 이용해 쥐의 뇌를 촬영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사람이 고통이나 두려움에 공감할 때 fMRI로 뇌를 찍으면 ACC 부분이 활성화되는 것을 볼 수 있다. 보통 쥐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돌연변이 쥐에서는 이런 활성이 나타나지 않았다. 이 실험으로 뇌 ACC 부분에 있는 L타입 칼슘이온채널이 다른 쥐의 고통에 공감하는 능력에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신 단장은 “이 칼슘채널을 더 연구하면 사이코패스나 자폐증처럼 타인의 고통을 느낄 수 없는 정신질환을 치료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연구 결과는 2010년 3월 1일 ‘네이처 뉴로사이언스’에 실렸다.



마우스 병원, 쥐의 마음을 읽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정신은 동물실험의 영역이 아니었다. 환청, 환각, 슬픔, 죄의식 같은 정신작용을 동물에서는 관찰할 길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fMRI처럼 동물이 살아있는 상태에서도 뇌를 관찰할 수 있는 이미지 촬영 기술이 발달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정신질환을 연구할 때도 쥐가 실험모델로 많이 쓰인다. 이번 학회에 참여한 각국의 마우스 병원도 정신분석센터, 즉 정신병원을 하나씩 가지고 있었다.

타카오키 카사하라 일본 이화학연구소(RIKEN) 뇌과학종합연구센터 박사는 조울증(양극성장애)을 연구하고 있다. 조울증은 기분이 좋았다 나빴다 하는 질병이다. 세포안에서 에너지를 만드는 미토콘드리아에 이상이 생기면 걸린다고 알려져 있다. 카사하라 박사가 미토콘드리아에 있는 PLOG1 유전자를 없애자, 그 쥐는 4~5일 주기로 기분이 좋아졌다, 우울해졌다 하는 조울증 증세를 보였다. “쥐가 기분이 좋은지, 우울한지 어떻게 아냐고요? 말은 못하지만 행동을 보면 알 수 있죠. 특히 우울한 행동은 잘 나타납니다.”

카사하라 박사는 우울증을 검사하는 실험을 설명했다. 우선 쥐의 움직임이 줄어든다. 우울증을 앓는 쥐의 활동량은 보통 쥐의 절반밖에 되지 않는다. 그만큼 살이 찐다. 맨눈으로도 쉽게 관찰할 수 있다. 또 쥐가 우울증에 걸리면 잠을 자지 못한다. 쥐는 야행성이라 보통 낮에 잠을 자는데, 우울증에 걸린 쥐는 낮에도 깨 있다. 불면증이 생긴 것이다.

“자, 이걸 보시면 더욱 확실히 알 수 있을 겁니다.”

카사하라 박사가 쥐 사진을 보여줬다. 꼬리만 천장에 붙여 거꾸로 매달린 상태였다.

“이게 살아있는 거라고요?”

이런 자세라면 보통 쥐는 살려고 발버둥쳤을 것이다. 하지만 사진 속 쥐는 마치 죽은 것처럼 축 늘어져 있었다. 그야말로 별로 살 의지가 없어보였다. fMRI로 찍은 뇌 사진도 전형적인 우울증 상태를 보여줬다. 사람이 먹는 항우울제를 먹으면 우울한 쥐의 활동량이 다시 늘어난다.

카사하라 박사는 조울증 치료법을 찾기 위해 연구를 계속하고 있다. 지난 2008년에는 돌연변이 쥐의 뇌에 전극을 심고 전기로 특정 부위를 자극했더니 쥐의 증상이 호전된 것을 관찰했다. 카사하라 박사는 “약물에 내성이 생겼거나, 다른 치료법이 듣지 않는 조울증 환자를 위해 전기자극치료법을 더 정밀하게 연구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프랑스 마우스병원(ICS)에서는 쥐를 이용해 지적장애 연구를 하고 있다. 이 병원의 타니아 소거스 박사는 학회에서 기억력이 급격히 떨어
진 쥐를 보여줬다. 소거스 박사는 쥐의 기억력을 시험하기 위해 ‘수중미로’를 이용했다.

수중미로는 물이 가득 담긴 수조에 뗏목이 하나 떠 있는 형태다. 주위가 깜깜해 뗏목이 보이지는 않는다. 헤엄을 치다가 우연히 뗏목을 발견한 쥐는 다시 물에 빠지면 이번엔 처음부터 뗏목을 찾는다. 쥐는 뗏목의 위치를 기억하기 때문에 실험을 반복할수록 뗏목을 찾는 시간은 점점 줄어든다. 심지어 뗏목을 치우더라도 그 곳으로 간다. 하지만 OPHN-1 유전자가 없는 돌연변이 쥐는 뗏목의 위치를 기억하지 못했다.

소거스 박사팀은 이 유전자를 없앴을 때 쥐의 뇌가 어떻게 변했는지 현미경으로 관찰했다. 그 결과 쥐의 소뇌에 있는 뉴런의 모양이 이상했다. 뉴런의 끝에 있는 수상돌기가 덜 발달해 뉴런 사이의 신호를 전달할 수 없었기 때문에 기억력 장애가 나타난 것이다.











마우스 병원, 서로 손을 잡는 이유는?

“이렇게 유전자를 하나씩 없앤 돌연변이 쥐를 검사하면 그 유전자의 기능을 확인할 수 있겠죠? 하지만 이 연구는 혼자서는 절대 할 수 없습니다. 쥐 유전자는 3만 개나 되니까요.”

독일 마우스 병원(GMC)의 마틴 앙겔리스 원장은 세계의 다른 마우스 병원과 손을 잡은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앙겔리스 원장은 “병원끼리 모든 정보와 기술을 공유하기 때문에 더 빠르고 효율적으로 일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돌연변이 쥐를 통해 유전자의 기능을 밝히려는 과학자들의 모임이 바로 IMPC다. IMPC의 회장인 마크 무어 박사는 “인간게놈프로젝트에서는 사람 유전자에 담긴 전체 염기서열을 읽기는 했지만 각 유전자의 기능을 알아내지 못했다”며 “이제 유전자의 기능을 밝히려는 연구가 시작된 것”이라고 IMPC를 소개했다.

지난 7월 교육과학기술부의 지원으로 가천의대, 서울대, 연세대 등 국내 쥐 과학자의 연합인 한국 마우스 병원도 IMPC에 가입했다. 이영식 국가과학기술위원회 생명복지전문위원회 위원장은 “국내 연구자들의 꾸준한 노력이 결실을 맺은 것”이라고 이번 IMPC 가입을 평가했다. 일본, 중국에 이어 아시아에서는 세 번째다. 태국 마우스 병원도 가입을 희망하고 있다. 영국 의학연구회(MRC Harwell)의 스티브 브라운 박사는 “쥐 연구의 선두그룹인 한국은 IMPC가 목표를 달성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고 한국의 참여에 기대를 나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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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1월 과학동아 정보

  • 신선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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