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과학축전은 어떤 모습일까. 지난 8월 11-12일에 일본 도야마현에서 열렸던과학축전을 우리나라 과학교사가 직접 생생한 경험을 하고 돌아왔다.그는 그곳에서 무엇을 보고 느꼈을까. 과학교사와 함께 도야마를 찾아가보자.
과학교사들의 모임인 ‘신나는 과학을 하는 사람들’(신과람)의 회원인 필자는 정말 신나는 경험을 많이 한다. 그 중 여름방학에 일본에서 열리는 과학축전에 몇번 참가했던 경험이 개인적으로는 신나고 유익했다. 올해도 작년에 이어 일본 도야마라는 지방에서 열린 과학축전에 참가하는 행운을 가졌다.
최근 역사 교과서와 일본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참배 문제로 일본과의 관계가 어수선한 가운데 이런 글을 쓴다는 것이 한편으로는 부담스럽다. 하지만 우리보다 앞서 시작한 일본의 과학축전에서 배울 점들이 있기에 소개하고자 한다.
꽃꽂이 강사도 참여
올해 도야마의 과학축전은 ‘환경’을 테마로 8월 11-12일 이틀간 도야마현의 북륙전력(北陸電力) 과학관에서 열렸다. 한국에서 5명의 교사가 초청돼 4개의 부스를, 그리고 도쿄, 오사카, 교토 등 일본 전역에서 초청된 실험의 대가들이 10개의 부스와 미니 스테이지를 운영했으며 도야마현 내의 부스가 35개였다. 초청된 인사 중에는 고또와 같이 일본 내에서 과학 PD라는 직업을 창출한 인물도 있으며 과학마술 스테이지를 운영한 분도 있었다.
예를 들어 환경과 관련한 부스에서는 실험재료를 우유팩이나 포장용 노끈과 같이 가능한 재활용품에서 찾으려는 모습을 보았으며 폐 스티로폼을 이용해 원자모형을 만드는 실험 활동도 있었다.
이 축제는 ‘도야마의 재미있는 과학실험’이라는 모임이 주관했는데, 도야마현 내 과학실험과 과학대중화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모여서 생겨났다. 이 모임의 구성원은 대학교수, 초·중·고 교사, 치과의사, 꽃꽂이 강사 등 다양한 사람들로 이뤄졌다. 1991년부터 시작된 도쿄 과학축전 1년 후에 도야마대 물리교육과 교수인 이치노세, 그리고 윌슨의 안개상자를 재현해 알파와 베타선과 같은 방사선이 나아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장치를 개발한 것으로 유명한 물리교사인 도다가 주축이 돼 30개의 부스로 도야마 과학축전을 실시한 것이 이 모임의 시초라고 한다.
작년과 올해 도야마 과학 축전에 참가하면서 필자는 몇가지를 느끼고 배울 수 있었다. 우선 이 사람들이 무서울 정도로 철저히 준비한다는 점이다. 일본의 경우 수개월 전부터 필요 물품을 조사하고 자료집 원고를 받는다. 활동 시나리오가 미리 정해지지 않았다면 대답할 수가 없다. 또한 쓰레기봉투 배부, 12일 아침 회합의 좌석 배치 등과 같이 아주 구체적인 업무까지 미리 정해놓는다.
자신만의 아이디어 명확히 주장
준비가 철저하다는 면은 과학활동 주제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같은 주제를 발표하더라도 매년 활동이 조금씩 개선된다. 예를 들어 도다의 안개상자는 20년 간 계속 개선돼 온 것이다. 또한 편광 만화경이라는 같은 주제를 작년에 이어 올해에도 발표하더라도 만화경을 회전시키는 장치며, 편광효과를 좀더 잘 볼 수 있는 방안 등을 덧붙인 것도 그렇다. 더불어 도쿄에서 본 것과 같은 주제로 도야마의 다른 교사가 행사에서 실시하더라도 ‘여기까지는 기존 아이디어, 여기부터는 내 아이디어’라고 명확히 발표해 개개인의 독창성을 존중한다.
다음으로는 행사의 안전에 대한 대비가 눈에 돋보인다. 우리가 볼 때는 너무 한다고 생각될 정도로 안전에 대한 대비가 매우 철저하다. 알코올 램프를 쓰는 경우 책상 위가 모두 깨끗이 치워지며 안전요원들이 빙 둘러서서 만일의 사태에 대비한다. 슬라이드 글라스를 두장 붙여 간섭무늬를 보는 실험이 있었는데, 슬라이드 글라스 주위를 모두 테이프로 둘러싸게 하는 것을 보고는 모두 혀를 내두를 지경이었다. 사람 키 정도 높이의 단에 올라가서 하는 실험에는 모두 안전모를 쓴다.
행사의 하루 일정이 끝난 뒤에 안전요원이 돌아다니며 전원이 모두 빠져 있는지, 위험한 약품이 노출되지 않았는지를 하나하나 점검한다. 이것은 안전 자체의 문제에 덧붙여 교육의 측면에서도 중요하다고 생각된다.
이처럼 교사가 안전에 대비하는 자세를 보고 자란 학생들은 결국 교과서적인 안전의식을 생활화할 것이 틀림없다. 그러나 ‘교과서 따로, 실제 상황 따로’인 환경에서 자란 학생들은 안전이란 외부에 보여주기 위한 것이며 여유가 있을 때나 차려놓는 장식품쯤으로 알 위험이 높다.
학생들과 동행한 부모들의 태도에도 본받을 점이 있었다. 우리나라는 과학축전과 같은 행사가 적어 과학을 즐길 기회가 상대적으로 부족하다. 그래서인지 과학축전에 어린 학생을 데려온 상당수의 부모들은 전투에 참가하는 것 같다. 무슨 수를 써서도 내 아이가 전기도금을 한번 해보아야 하고 현미경을 꼭 보아야 한다. 무엇인가 더 배우길 원한다면 남을 배려하고 더불어 사는데 필요한 규칙도 꼭 배워야 할 미덕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텐데 말이다.
그러나 일본의 경우는 이 면에서는 아주 철저하다. 예약이 끝났다거나 오늘 일정이 끝났다면 두말없이 되돌아선다. 아마 남의 눈을 의식하는,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겠다는 문화의 단면일 것이다.
물론 이 문제는 단지 양국의 시민의식 차이로 접근해서만은 안된다. 우리나라의 경우 학생들이 재미있는 과학실험을 접할 기회가 극도로 제한돼 있다. 또한 일본의 과학축전은 할아버지, 할머니 등 누구나 참여해 실험해보는 글자 그대로의 축전인 반면, 우리의 경우는 과외활동의 연장으로서 과학학습의 측면이 더 강하다. 학습의 연장선상에 놓여있다고 의식하는 것이다.
그러나 열악한 환경에도 불구하고 그간 우리나라의 교육적 성취가 이처럼 높았던 이유로 학부모들의 뜨거운 교육열을 으뜸으로 들 수 있기에 이들의 관심과 열정을 잘 유도하면 우리나라 과학교육의 수준을 한단계 높이는데 큰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또다른 특성은 해마다 과학축전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구성이 변한다는 것이다. 과학 축전에 어린 학생들만 참가한다는 점은 우리나라나 일본의 과학교사들의 공통된 고민이었다. 그러나 일본의 과학축전의 경우 처음에는 참가자가 대부분 초등학생과 부모들이었고 중·고등학생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는데, 참가하는 학생들의 연령이 점차 높아진다는 점을 관찰할 수 있었다. 도야마에서도 마찬가지다. 또한 부스를 방문하는 교사의 비율도 높아졌다.
방문자 연령층 높아져
과학축전이 10년째 계속됨에 따라 처음 참가했던 어린 학생들이 점차 자라서 계속 참가하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10년 전 뿌린 씨앗이 점차 결실을 이루기 시작한 것이다. 도쿄와 도야마의 과학축전에 참가해 무엇보다도 부러웠던 것은 1년에 1-2차례 교사들이 모여 그동안 연구한 결과를 공유하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들도 한번 다녀오면 많은 것을 배웠다는 생각에 마음이 뿌듯해짐을 느낀다.
한편 가장 마음 아픈 점은 너무나 많은 우리네 학생들을 동경 과학축전에서 만난다는 것이다. 무엇이 이들로 하여금 시간과 노력과 비용을 들여서 여기까지 오게 한 것일까. 과학교사로서 일말의 책임을 느낀다.
우리나라도 5년 전부터 대한민국 과학축전이 시작됐다. 그리고 지방마다 과학 싹잔치가 열리고 있다. 모두들 열의를 가지고 소중하게 잘 키워서 학생들에게는 신나는 과학경험을 제공하고 과학교사에게는 자신이 개발한 실험활동을 공유하는 장으로 발전하기를 기대한다.
때로 꿈을 꾼다. 5백명의 과학교사가 1년에 1개씩 과학활동을 개발해 공유하면 매년 5백개의 활동이 새로 생기는 것이니 이것이 누적되면 우리나라 과학교육의 수준이 그만큼 높아지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