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를 지나는 사람들의 머리색이 다양해졌다. 다양한 머리색을 연출하는 염색의 기원, 종류, 메커니즘 등을 알아본다.
흰 머리카락을 감추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던 머리염색이 이제는 화장이나 의상에 따라, 또 색다른 분위기를 연출하기 위한 방법의 하나가 됐다. 우리의 경우 전통적으로 흑발이 미인의 조건이었던 것을 생각해 본다면 색채 문화의 발달에 따라 미의 조건도 다양화됐다고 할 수 있다.
고대 이집트에서 시작
머리 염색의 기원은 고대 이집트에서 찾을 수 있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흰머리를 감추기 위해 검은 암소의 피와 거북의 등껍질, 그리고 새의 목 부분을 기름에 익혀 이를 머리에 발랐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남녀 모두 금발머리를 선호했다. 아테네에서는 특별히 만든 연고로 머리를 감은 후 아무 것도 안쓰고 햇볕에 앉아 탈색되기를 기다리기도 했다. 금발머리를 선호한 점은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대의 베네치아 여인들도 마찬가지. 매일 모발을 부식성 용매에 흠뻑 적셔서 하루의 가장 더운 시간에 밖에 나가 앉아 있었다. 이들 방법은 햇빛의 탈색 효과를 이용한 것이다. 즉 햇빛 중 자외선의 화학 작용에 의해 색깔이 변한다는 원리를 체험적으로 깨닫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요즘은 자외선으로부터 모발을 보호해야 한다. 그 이유 역시 자외선에 의한 멜라닌 색소의 파괴 때문이다. 모발에 대한 자외선의 영향을 다르게 이용한 것은 재미있는 현상이다.
본격적인 염색은 19세기 중반을 넘어서야 등장했다. 1863년 파리 모네회사의 모네사장은 염료의 일종인 파라페닐렌디아민(paraphenylenediamine)을 발견했는데, 이를 가지고 1883년 정식으로 염모제 사용허가를 얻어냈다.
모발의 구조와 특성
염색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모발의 구조와 특성을 알아야 한다. 머리카락의 단면을 전자현미경으로 보면 모발은 모표피, 모피질, 모수질의 3개 층으로 이루어져 있다. 모표피는 단백질로 이루어져 있고 비늘 상태로 돼 있다. 모발 보호가 기본 역할인 만큼 열이나 빛, 약품에 강하다. 모발의 두께나 탄력, 강도, 색깔에 관계되는 모피질은 섬유다발로 돼있다. 모발의 수분을 유지시킨다. 모수질은 모발의 중심부로, 내부에 공기가 들어가 있으며 모발의 광택에 관여한다.
모발은 탄소 45%, 산소 28%, 질소 15%, 수소 6%, 황 5%로 구성돼 있다. 이 원소들이 결합한 20여종의 아미노산은 케라틴이라는 단백질을 이룬다. 모발의 pH는 4.5-6의 약산성을 띤다. 약산성의 물질은 모발에 손상을 입히지 않지만, 산성이 강할 때는 케라틴이 분해돼 모발이 부서진다. 알칼리성 물질은 모발을 부드럽게 하지만 역시 강한 알칼리성 물질은 케라틴을 녹여 버린다. 여성들 중에 머리카락 끝이 갈라지고 거칠어 보이는 경우가 있다. 이것은 알칼리성인 파마액과 염모제로 모발이 부풀고 모표피 비늘이 열렸기 때문이다.
염색도 여러 종류
우리가 하는 염색은 크게 3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염색제가 모표피 표면에 붙는 일시적 염색. 컬러 스프레이나 컬러 무스, 컬러 마스카라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이 경우는 샴푸나 비누로 씻어내면 염색이 지워진다.
둘째는 염색제가 모피질에 흡수될 뿐만 아니라 모표피에 얇은 막을 입힘으로써 4-6주 정도 염색이 지속되는 반영구적 모발염색이다. 이를 코팅이라고 부른다.
셋째는 염색제가 모표피를 침투해 모피질 안에 색소 분자를 침전시키는 것이다. 모발을 잘라내지 않는 한 염색된 색이 계속 유지되기 때문에 영구적 모발염색이라고 한다. 이 경우는 염색제가 침투될 때 산화제가 작용하므로 착색과 동시에 탈색도 진행된다. 탈색효과는 밝은 색상을 유도한다.
염색은 이렇게
염색약을 열어 보면 염모제와 산화제 2종류의 약품이 들어 있다. 염모제는 크게 알칼리제와 염료로 이루어져 있다. 알칼리제는 모발을 팽윤, 연화시켜 염료의 침투를 쉽게 한다. 그리고 산화제의 작용을 높여 탈색력을 크게 한다. 이를 위해 알칼리제인 암모니아가 사용되는데, 냄새를 피하기 위해 모노에탄올아민이 사용되기도 한다.
염료는 종류에 따라 성분이 다르고 이에 따라 색상이 결정된다. 예를 들어 파라페닐렌디아민은 흑색을, 오르토아미노페놀은 다갈색을 나타낸다. 알칼리제의 영향으로 모피질 내부에 침투한 색소들은 산화제에서 발생한 산소의 도움을 받아 색소 분자들끼리 결합해, 모피질 내부에 안정된다. 그러나 3주 이상이 되면 노란색이나 붉은색으로 보이기도 하는데, 이는 색소 사이의 결합이 끊어지면서 일어나는 현상이다.
산화제로는 과산화수소가 사용된다. 산화제는 알칼리제의 도움을 받아 멜라닌 색소를 탈색시키고, 염료가 발색하도록 돕는다. 여기서 파괴된 멜라닌 색소는 돌이킬 수 없으므로 영구적 모발염색이 되는 것이다. 이때 염색은 탈색이 동시에 일어나기 때문에 염색된 머리는 밝은 색상을 띤다. 여기서 주의할 사실은 사용 설명서에 나와 있는 색상은 금발을 기준으로 한 색상을 의미한다는 점. 우리나라 사람들 같이 흑발인 경우는 오렌지색으로 염색했다 하더라도 오렌지색보다는 어둡게 나온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한다.
염색은 모발의 특성, 염색 시간, 온도에 따라 차이가 난다. 예를 들면 굵고 질긴 모발이나 온도가 낮을 때는 염색 시간이 길어야 염색이 더 잘된다. 그리고 산화제의 양과 시간은 탈색과 관련되므로 원하는 모발 밝기에 따라 조정해야 한다.
염색은 파마를 싫어해!
염색 전후 1주일간은 파마를 하지 않는 것이 좋다. 염색은 산화제를 사용하지만 파마는 환원제를 이용하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염색 후 파마를 하면 안정되지 못한 색소가 빠져나가 염색된 부분이 빨리 퇴색된다. 반대로 파마를 먼저하고 바로 염색을 하면 염증을 일으킬 위험이 높다. 파마액으로 인해서 두피 가 아주 예민한 상태에서 강한 성질의 염색제가 작용하기 때문이다.
한편 염색 후에는 약알칼리성 샴푸를 써야 한다. 그 이유는 약알칼리성인 색소가 불안정한 상태에서 산성 샴푸를 쓰면 색소가 산에 의해 녹아버리기 때문이다.
모표피는 모발의 가장 바깥층으로 5-15층의 투명하고 엷은 세포가 물고기 비늘 모양으로 겹쳐져 있다. 건강모의 경우 이 비늘 상태가 규칙적으로 겹쳐져 있어 광택이 나고 단단해 보이며 외부의 자극에도 손상을 적게 받는다. 그러나 파마나 염색에 의해 손상된 모표피는 들뜨게 돼 외부 자극에 손상을 받기 쉽다. 이렇게 손상된 모표피는 스스로 재생시킬 수 없으므로 잘라 낼 수 밖에 없다.
과산화수소와 맥주로 염색을?
한때 맥주로 머리를 감아 염색을 시도했던 시절이 있다. 그러나 맥주로 머리를 감는 것은 염색이 아닌 탈색의 결과를 가져올 뿐이다. 맥주는 약산성의 물질로 모발의 멜라닌 색소를 탈색시키는 역할을 한다.
또 일부 학생들은 약국에서 쉽게 구입할 수 있는 소독약인 과산화수소로 염색을 했다. 이 역시 약산성인 과산화수소가 멜라닌 색소를 탈색시킨 것이다.
맥주와 과산화수소로 염색을 시도해본 사람이라면 다시는 하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두 경우 모두 염색제에 있는 모발 보호 성분이 없고, 알칼리제의 도움이 없어 기대했던 효과가 나타나지 않기 때문이다. 동시에 과산화수소는 탈색작용을 하면서 수분을 빼앗아가기 때문에 머리카락은 윤기를 잃고 푸석푸석해진다. 그리고 이것이 회복되는데는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파마는 어떻게 다른가?
파마는 자연 상태의 모발에 물리적 화학적인 방법을 가해 모발의 구조나 형태를 변화시켜 웨이브가 오랫동안 지속되게 하는 것이다. 파마는 기원전 3000년경 고대 이집트인들이 나일강유역의 진흙을 이용해 모발에 바른 후 나무봉에 감아 태양에 말려 웨이브를 만든 것이 그 시초. 이는 알칼리성 성분의 토양에 직사광선의 열을 가함으로써 화학적 변화를 일으킨 것이다.
파마의 기본 원리는 모발의 구조나 성질과 밀접한 관곅가 있다. 모발은 케라틴이라는 탄력성이 풍부한 단백질로 구성돼 있다. 이 단백질은 각종 아미노산이 연결된 폴리펩티드로 구성돼 있다. 시스틴 결합, 염 결합, 수소 결합 등 다양한 결합 형태를 가지고 있다. 이 중 시스틴 결합은 매우 안정된 상태이나 알칼리성 물질이 작용하면 모발이 늘어나고(팽윤). 부드러워진다(연화). 자연적인 상태에서 쉽게 절단되지 않는 시스틴 결합을 화학 약품에 의해 절단시키고 이것을 다시 재결합 시키므로서 웨이브를 반영구적으로 안정시키는 것이 파마다.
파마의 원료는 제1제인 환원제와 알칼리제가 있고 제2제인 산화제와 첨가제가 있다. 환원제는 모발 케라틴의 시스틴 결합을 절단하고, 알칼리제는 웨이브의 강함을 조정한다. 산화제는 1제로 환원 절단된 시스틴 결합을 원래대로 되돌려 주기 위한 정착제다. 첨가제에는 모발의 정전기 발생 방지를 위한 계면 활성제, 수분을 주기 위한 습윤제, 모발을 보호하고 감촉을 좋게하는 유화제, 모발에 유분과 영양분을 보급하는 동식물유 등의 유성 성분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