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에서 범인이 지문을 남기지 않기 위해 손을 댄 물건을 닦아내는 장면을 흔히 볼 수 있다. 그러나 이제 지문을 없애는 것만으로 충분치 않을 것같다. 범인의 DNA 조각이 볼펜이나 열쇠, 커피잔 등에 남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DNA는 사람의 혈액이나 정액, 그리고 머리카락으로부터 검출된다고 알려져 있다. 그래서 DNA 검출법은 살인, 강간, 무장강도 등의 범죄 현장에서 범인을 찾아내는데 유용한 단서로 작용해 왔다.
그런데 최근 오스트레일리아의 빅토리아 범죄과학센터는 사람의 손길이 그저 닿기만 한 곳에서도 DNA가 발견된다는 사실을 발표했다. 예를 들어 부엌칼의 플라스틱 손잡이와 컵을 단지 15분 정도 잡고 있어도 그곳에서 DNA가 검출됐다. 어떤 플라스틱 튜브의 경우 5초 정도만 잡고 있어도 DNA가 발견됐다. 이 외에도 가죽가방 손잡이, 펜, 자동차 열쇠, 자물쇠 손잡이, 전화와 같이 일상 생활에서 사용되는 거의 모든 물건에서 DNA가 검출됐했다.
이 DNA가 몸의 어떤 부위의 세포로부터 유래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연구자들은 몸에서 노화된 세포의 일부가 피부 바깥으로 밀려나왔고, 이것이 손바닥에 남아있는 것이 아니겠냐고 추측했다.
연구자들은 이 발견이 범죄 수사에 커다란 기여를 할 것이라 전망했다. 하지만 ‘부작용’의 가능성이 있다. 만일 무고한 사람이 범죄자와 악수를 나눈다면 그 사람의 DNA는 범죄자의 손으로 옮겨가지 않을까. 실제로 범죄과학센터의 연구 결과 1분 정도 악수했을 경우 DNA가 다른 사람에게 옮겨간다고 한다. 그렇다면 범죄 현장에서 엉뚱한 사람의 DNA가 발견돼 수사에 혼선이 빚어지지 않을까.
이 문제에 대해 현재로서는 뚜렷한 대안이 있어보이지 않는다. 단지 연구자들은 악수를 통해 옮겨지는 DNA의 양이 상대적으로 매우 적기 때문에 무고한 사람이 범인으로 몰릴 가능성은 현실적으로 적다고 얘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