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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nowledge] 천국보다 낯선, 고독보다 낯선

지뇽뇽의 사회심리학 블로그 16

천국보다 낯선, 고독보다 낯선


매일 우리는 버스나 지하철, 엘리베이터, 길거리 등 다양한 공간에서 다양한 사람을 마주한다. 이들 대부분은 ‘낯선’ 사람이다. 낯선 사람을 만날 때 어색함에 어찌할 줄 몰라 하며 눈길도 주지 않는다. 옆자리에 앉은 연세가 지긋한 아저씨를 앞으로 다시 만날일도 없고, 이야기를 나눠봤자 좋을 것도 없이 귀찮을 것만 같다. 하지만 기억을 돌이켜보면 우연히 몇 마디 나눴을 뿐인데 평생 기억에 남는 사람도 있다. 요즘 한글을 익히고 있어 길거리 간판 이름 읽는 게 취미라고 하시던 할머니, 튀김에 인생을 걸었다며 늘 새로운 튀김을 연구하던 학교 앞 분식집 아저씨처럼, 짧은 만남이었지만 오래도록 기억나는 사람도 있다. 반면 매일 만나고 나름 친하다고 생각하지만 정작 서로 무슨 생각을 하며 살아가는지 잘 떠오르지 않는 뿌연 관계도 있다. 만남이란 지속적이라고 해서 반드시 진정하리란 법도, 짧다고 해서 헛되리라는 법도 없다.

누군가를 알아가는 즐거움

미국 시카고대 심리학자 니콜라스 이플리 교수는 다음과 같은 실험을 했다. 버스나 지하철을 통해 출근하는 사람에게 옆자리에 앉은 사람과 대화를 시도하게 하거나(대화 조건), 평소에 하던 대로 출근하게 하거나(통제 조건), 누구와도 대화하지 않은 채로 조용히 출근하게 했다(고독함 조건). 보통 사람에게 이런 상황을 상상해보라고 하면 대부분이 혼자 출근한 사람이 제일 기분이 좋고, 낯선 사람과 대화를 나눈 사람은 반대일 거라고 예측한다. 하지만 실제 결과는 정반대였다. 실험 결과 생판 모르는 사람과 잠깐이라도 대화를 나눈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 보다 더 기분이 좋다고 대답했다.

이번에는 줄을 서서 기다리는 상황이다. 친한 사람과 이야기하며 기다리는 것과 낯선 사람과 이야기하며 기다리는 것 중 어떤 게 더 즐거울까. 줄을 기다릴때도 낯선 사람과 이야기한 사람이 친한 사람과 기다린 사람과 비슷한 정도로 즐거워했다. 도리어 낯선 사람과의 교류가 이미 알고 있는 식상한 친구와의 교류보다 더 즐겁다는 결과도 있었다.

남들과 금세 친해지는 외향적인 사람과 달리 내성적인 사람은 낯선 이와의 교류로 더 큰 스트레스를 받지 않을까. 이 역시 그렇지 않다. 내향적인 사람과 외향적인 사람에게 각각 처음 보는 사람들과 몇 분간 적극적이고 활발한 모습으로 대화를 나누게 했더니 둘 다 비슷한 수준으로, 때로는 내향적인 사람이 더 즐거워했다. 성격이 외향적이든 내향적이든 낯선 이와의 짧은 대화로 누군가를 만나게 된다는 것은 우리에겐 큰 기쁨이라는 것이다.

다만 즐거움 ‘예측’에 있어서 내향적인 사람과 외향적인 사람이 달랐다. 내향적인 사람은 관계에서 자신이 얻게 되는 즐거움은 과소평가하고, 불안함이나 불쾌함 같은 부정적 감정은 과대평가하는 경향을 보였다. 내향적인 사람은 이런 잘못된 예측 때문에 다른 이와의 교류를 꺼린다.

비현실적인 두려움과 달리 낯선 이와의 교류는 우리를 즐겁게 한다.

비현실적인 두려움 극복이 관건

‘자신이’ 느낄 즐거움을 과소평가하기도 하지만 ‘상대방’이 느낄 불쾌함은 과대평가하기도 한다. 내가 말을 시키면 예의에 어긋나고 상대방이 나를 귀찮아하며, 나와의 대화를 즐거워하지 않을 것이라고 지레 겁먹고 대화를 피한다. 그런데 재미있는 점은 ‘모두가’ 어느 정도씩은 이런 거부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누구나 ‘상대방이 나를 불편해 할 수 있기 때문에 대화를 자제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서로를 피하고 그런 서로를 보며 ‘역시 날 불편해하는 군’이라며 상처받는 이상한 고리가 형성된다. 현실은 다들 비슷한 두려움 때문에 먼저 다가서지 못하고 머뭇거릴 뿐이다. 특히 사회적 상황 자체를 매우 두려워하는 사회공포증을 갖고 있는 사람은 유독 남들이 자신을 싫어한다고 생각한다. 정작 그들의 친구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연구가 있는데도 말이다. 이처럼 ‘사람들은 날 싫어해’, ‘내 친구들도 내가 싫은데 억지로 나랑 얘기해주는 거야’ 같은 생각들은 실제보다 과할 가능성이 높다.

비현실 적인 두려움은 우리가 서로에게 다가가는 것을 막는다. 하지만 이런 두려움과는 달리 낯선 사람과 순간의, 별 의미 없는 교류는 우리를 즐겁게 한다. 두려움의 악순환을 벗어나 내가 먼저 상대방에게 말을 걸면 상대방도 내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기뻐할거란 마음가짐을 가져보는 것은 어떨까. 좀 더 가벼운 마음으로 더 적극적으로 다가가 보자. 서로를 더 행복하게 만들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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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4월 과학동아 정보

  • 박진영 작가
  • 에디터

    송준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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