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항공우주국(NASA)의 ‘작은 우주탐사선 프로그램’으로 시작된 프로젝트 중, 적외선우주망원경 와이어(WIRE), 태양관측위성 헤시(HESSI), 그리고 자외선우주망원경 갈렉스(GALEX), 이렇게 세 개는 같은 시기에 태어났다. 세 망원경 다 비슷한 크기인데, 지름 50cm, 길이 2.4m의 소형망원경을 페가수스라는 로켓시스템을 통해 우주에 띄우는 프로젝트다. NASA가 ‘소형’이라고 부르긴 하지만, 각 프로젝트의 예산은 약 1300억 원에 달하고, NASA가 가진 발사체, 발사대, 추적, 신호전달 등에 대한 비용을 계산하면 그야말로 ‘천문학적’ 비용이 드는 프로그램이다. 한 날 한 시에 태어난 이 셋은 각기 다른 그러나 동일하게 큰 풍운의 꿈을 가지고 개발되었다.
지구에 눈이 멀어버린 와이어
셋 중 가장 진도가 빠르게 나간 것은 와이어였다. 와이어는 적외선으로 우주를 보는 망원경이었는데, 오늘날의 스피처우주망원경과 같이 별을 많이 만들고 있는 은하를 찾으려고 시작했다. 모든 것이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1999년 3월이었나보다. 캘리포니아공대(칼텍)에 있던 우리 갈렉스 팀은 와이어의 발사과정을 실시간으로 보고 있었다.
보통의 인공위성이 오랜동안 기술을 축적해 온 로켓으로 발사되는 반면, 세 우주망원경은 페가수스라는 새로운 시스템으로 우주에 띄웠다. 당시만 해도 페가수스 발사에는 불안한 요소가 매우 많았다. 우선 망원경을 실은 미사일 모양의 발사체를 항공기에 매단 채 이륙한 후 지상 12km 상공에서 공대공 미사일을 발사하듯 발사체를 자유낙하시킨다. 발사체는 허공에서 미사일처럼 새로이 추진력을 받아 우주공간으로 날아가고 지상 540km에서 안정된 궤도를 찾는 것이 일차 목표다.
와이어는 모든 과정을 무사히 마치고 계획된 궤도에 도달하였다. 이 소식이 알려지자 개인적인 관계가 없는 우리 팀도 환호를 하며 즐거워하였다. 내 기억엔 실제로 샴페인도 터뜨린 것 같다. 그런데, 그 다음날인가, 비보가 전해졌다. 제 궤도에 오른 우주망원경은 한 동안 정신없이 돌며(tumbling)궤도를 돌고(revolving), 하늘에 대한 완벽한 자세를 갖추기 전에는 카메라의 뚜껑을 열지 않는다. 그런데 그 뚜껑이 웬일인지 계획보다 일찍 열렸다는 것이다.
와이어는 적외선망원경이다. 적외선 천체의 미약한 신호를 찾기 위해 아주 민감한 신호검출기가 달려있다. 그런데 지구는 좋은 적외선 발광체이기도 하고, 천체에 비하면 비교할 수 없으리만치 가깝기 때문에 엄청난 적외선원이다. 와이어의 신호검출기는 본의 아니게 일찍 카메라 뚜껑이 열리며 지구를 바라보는 바람에 바로 그 기능이 정지되었다. 한 마디로, 봐선 안 될 것을 본 것이다. 롯의 아내가 뒤를 돌아보다 소금기둥이되어 오늘날 사해(혹은 염해)의 기원이 되었다는 것처럼.
훗날 와이어에 대한 보고서를 보면, 적외선검출기의 기능을 보장하는 냉각수가 유실되는 바람에 위성이 기능을 상실하게 되었다고 공식적으로 발표되긴 했다. 정확한 경위야 어떻든, 수백 명이 10년 이상 몸담아 일하고 국가가 수천억 원을 쏟아부은 프로젝트가 한 순간에 역사 되었다.
실수로 한순간에 전사하다
두번째로 발사를 준비하던 헤시는 태양관측위성이다. 태양은 정확히 11년을 주기로 흑점활동이 변하는데, 활동이 활발할 것으로 예상되는 태양을 대략 2000년에서 2005년 사이에 정밀관측하는 것이 이 프로젝트의 목표였다. 모든 준비가 막바지였던 2000년 3월, 남은 것은 진동테스트다. 망원경은 항공기에 매달려 이륙하고 상공에서 미사일 발사체에 실려 날아가야 하는데 그 과정에 다양한 진동이 일어나 기계에 큰 무리를 준다. 이를 위한 진동테스트는 캘리포니아주 패서디나 북쪽에 있는 제트추진연구소에서 진행되었다.
드디어 헤시가 진동테스트대에 올라갔다. 그런데 있을 수 없는 일이 터졌다. 헤시의 진동테스트를 진행하던 팀이 실수를 했다. 원래 2G 정도로 올려야 하는데 열 배나 되는 20G를 가한 것이다. 1G는 지구 중력장에서 자유낙하할 때 받는 압력이다. 스카이다이빙을 할 때 느끼는 힘 말이다. 열 배나 되는 진동을 받은 불쌍한 헤시는 그 자리에서 전사하였다. 이 프로젝트를 아기처럼 다루며 지난 십수 년 동안 일생을 바쳐온 과학자들과 이런 망원경은 우리밖엔 못 만든다는 긍지를 가지고 부품 하나하나를 만들고 조립해 온 엔지니어들이 모두 한순간 망연자실했다.
큰 프로젝트를 할 땐 보통 모든 것을 두 개씩 만든다. ‘콘택트’라는 SF영화를 본 사람은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안다. 헤시도 물론 똑같은 예비장비가 있었다. 하지만, 모든 것을 다시 준비해 우주로 쏜 2002년엔 이미 태양주기의 시작점을 놓친 순간이었다. 임무의 일부를 포기하게 된 것이다.
상대적으로 느리게 진행되던 우리 자외선우주망원경 프로젝트 갈렉스는 2003년 4월에야 비로소 페가수스로 발사를 하게 되었다. 이 때 나는 이미 2년 전에 영국으로 직장을 옮긴 후였으니, 발사 광경을 지켜볼 기회는 없었다. 그 자리에 있던 많은 과학자들이 그 순간 얼마나 감격적이었는지 수 없이 전해줬다. 특히 쌍둥이 둘이 다 어려움을 겪은 후의 성공적 발사란 이루 말할 수없는 감격이었다. 갈렉스는 계획된 2년 6개월의 임무기간을 훨씬 뛰어넘는 지금까지 9년에 걸쳐 궤도를 지키고 있으며 그 연구도 지속되고 있다.
어떤 사람은 셋 중 하나만 성공했다고 말한다. 하지만 난 셋 다 다른 의미의 성공을 거두었다고 믿는다. 앞선 두 프로젝트의 아픔을 통해 세번째 미션이 더욱 정밀하게 진행되었던 것은 말할 것도 없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