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더 맑고 투명하게 빛나리라.’
동양인으로는 처음으로 노벨 문학상을 받았던 인도의 시인 타고르는 순백의 무덤 ‘타지마할’을 이렇게 묘사했다. 그저 흰 석재로 덮여있는 왕비의 무덤에 타고르를 비롯해 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열광하는지 궁금해 지난 8월 인도로 향했다.
수도인 델리를 거쳐 타지마할이 위치한 아그라에 도착해 기차에서 내리는 순간부터 숨이 턱 막혀 왔다. 덥고 습한 우기의 인도 날씨 때문이 아니라 도시를 뒤덮고 있는 짙은 매연 때문이었다. 타고르가 극찬을 했던 타지마할 역시 매연으로 고통을 겪고 있었다. ‘투명하게 빛나는’ 재료가 바로 문제였다.
타지마할 : 순백색 대리석으로 표현한 영원한 사랑
아그라 시내에서 타지마할까지 갈 때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은 흰색 암석으로 덮인 둥근 지붕이다. 붉은 암석으로 된 입구를 지나자마자 보이는 하얀 건물이 순식간에 시선을 앗아갔다. 부드럽게 연마된 바닥부터 고개를 들면 햇빛이 반사돼 눈부시게 빛나는 지붕 끝까지 아무리 봐도 질리지 않았다. 시간이 허락한다면 하루 종일, 날씨가 바뀔 때마다 시간대 별로 변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타지마할은 1632년부터 22년에 걸쳐 완성한 무굴제국의 건축물이다. 매년 20만 명의 인부가 동원되었으며, 공사비가 현재 금액으로 720억 원이 들었다. 마할(궁전)이라는 이름이 붙지만 실제로는 무덤이다. 무굴제국 5대 황제인 샤 자한이 아내 뭄타즈 마할이 죽은 뒤 그녀를 기리기 위해 온갖 정성을 들인 건물이다.
타지마할을 뒤덮고 있는 것은 변성암인 ‘대리암’이다. 변성암은 퇴적물이 쌓여 만들어진 퇴적암이나 마그마가 굳은 화성암, 혹은 변성암이 또 다시 열과 압력을 받아 만들어진다. 석회암(퇴적암)이 변성과정을 거쳐 만들어진 대리암은 강도가 크고, 암석 내부에 빈 구멍이 적으며, 수분을 잘 흡수하지 않는 단단한 암석이다. 그러나 건축물 겉에 쓰기엔 그다지 적절하지 않다. 대리암을 이루는 주 구성광물 ‘방해석’ 때문이다.
암석은 수많은 광물이 모여 만들어진다. 이 광물에는 ‘금강석’처럼 망치로 때려도 깨지지 않을 정도로 단단한 종류도 있지만 손톱으로 긁어도 흠이 생길 정도로 무른 광물도 있다. 광물의 단단함을 쉽게 구하기 위해 만든 표인 ‘모스 경도계’에서 방해석은 경도 3이다. 기준 광물로 선정한 10개 광물 중에서 세 번째로 무르다는 뜻이다. 경도계에 따르면 손톱의 경도가 2.5, 동전이 3.5다. 순수한 방해석 결정을 손톱으로 긁는다면 손톱에 흠이 생기지만 동전으로 긁는다면 방해석 결정에 흠이 생긴다. 변성 과정에 의해 광물 사이 간격이 치밀해져 구조는 단단하지만 구성 광물 자체가 무르기 때문에 쉽게 흠이 날 수 있다.
게다가 방해석의 화학조성도 문제가 된다. 방해석은 탄산칼슘(CaCO3) 분자가 비스듬한 육면체 구조로 쌓여 만들어진다. 사람의 치아, 달걀 껍질에도 들어있는 탄산칼슘의 가장 큰 적은 바로 ‘산’이다. 염산, 질산, 황산 같은 산을 만나면 녹아버린다. 아그라 시 북부에 있는 공장 지대와 도시를 오가는 자동차는 황산, 질산 가스를 배출해 산성도(pH)가 5.2 이하인 산성비를 만든다. pH 5.2는 아주 약한 산성이지만 오랜 기간동안 산성비를 맞으면 천천히 녹아내린다. 실제로 타지마할뿐만 아니라 각종 대리암 조각물, 신전 등 많은 건축물이 산성비로 피해를 입고 있다.
매연은 대리암을 변색시키는 역할도 하고 있다. 타고르가 투명하게 빛난다고 칭찬했을 정도로 흰 대리암이었지만 오염 물질과 먼지에 지속적으로 노출이 되면서 누렇게 변해가고 있다. 인도 정부는 타지마할의 훼손을 막기 위해 반경 4km 이내에는 자동차, 오토바이 출입을 금지하고 주변을 개발 제한 구역으로 지정했다. 그러나 아그라 시내와 가까운데다 공기흐름을 막을 수도 없기 때문에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더 맑고 투명하게 빛나기는 어려울 것 같다.
피라미드 : 수천 년을 버텨온 단단한 화강암
산성비 때문이 아니어도 탄산칼슘, 즉 방해석으로 인해 아쉬운 사례가 또 있다. 바로 이집트의 피라미드다. 이집트에 있는 수많은 피라미드 중 사람들에게 가장 잘 알려진 것은 수도 카이로에서 서쪽으로 13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기자에 있다. 오리온 자리의 허리 부분인 삼태성의 위치와 밝기를 표시한 것으로도 유명한 세 개의 피라미드는 각각 쿠푸, 카프라, 멘카우라 왕의 피라미드다.
피라미드를 멀리서 보면 누런 모래 사막 한가운데 먼지를 뽀얗게 덮어쓰고 있어 실망스럽기 그지없다. 그러나 가까이 갈수록 생각이 달라진다. 벽돌처럼 보이던 돌덩이는 사실 사람보다 큰 바위 덩어리다. 앞에 다다른 순간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내쉬어야 할 정도로 존재감이 어마어마하다.
고대 이집트의 파라오가 영원한 안식이라는 거창한 목표를 가지고 만든 피라미드지만 재료는 매우 단순하다. 다름 아닌 화성암의 일종인 화강암이다. 그런데 지금은 아주 희미하게 남았지만 카프라 왕의 피라미드를 통해 또다른 재료가 있었다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다. 이 피라미드의 꼭대기에는 피라미드의 뼈대를 이루는 화강암이 다른 암석으로 덮여 있던 흔적이 남아있다. 정장석으로 인해 붉은 색을 띄는 화강암과 다르게 흰빛을 띄는 이 암석은 석회암이다.
화강암은 특정 지역에서만 나오지만 석회암은 이집트 전지역에서 나온다. 카프라 왕의 피라미드에 남아있는 석회암은 카이로 남동쪽에 있는 무카탐 산 석회암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아쉽게도 석회암은 탄산칼슘 성분 껍질을 가진 미생물이나 산호 등이 퇴적돼 만들어진 암석이다. ‘탄산칼슘’이 ‘퇴적’된 만큼 비와 외부 충격에 약하다. 기원전 2600년대에 지어져 현재까지 약 4500여 년을 버티기엔 지나치게 약한 암석이다.
무카탐 산 석회암은 결이 곱고 잡티가 없는 흰색으로 유명하다. 4500년 전 쿠푸, 카프라, 멘카우라 세 명의 피라미드가 석회암으로 덮여 하얗게 빛나는 모습은 이집트 인들에게 경외롭게 보였을 것이다. 그러나 하얀 석회암 외장이 사라졌어도 피라미드는 여전히 사람의 시선을 압도하는 건축물이다. 고대 이집트 인들은 피라미드를 오래 남기고 싶다면 석회암만 사용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확실히 알았음이 분명하다. 그들이 화강암을 주재료로 쓴 덕에 피라미드는 지금도 남아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고 있다.
[이집트 카이로에서 970km 떨어진 아스완은 이름난 화강암 산지다. 지금도 이 곳에서는 피라미드나 신전을 지을 때 암석을 채취하다 멈춘 흔적을 볼 수 있다]
석굴암 : 견고한 화강암을 자유자재로 다루다
화강암은 지금도 아주 유용하게 사용되는 재료다. 겉보기에도 밝고 어두운 광물이 어우러져 멋진 모양을 만들어 건물 외장에 많이 쓰인다.
화강암은 지하 깊은 곳에 있는 마그마가 천천히 식어 만들어진 심성암이다. 천천히 식기 때문에 마그마에 들어있는 각종 성분이 결정을 크게 키울 수 있다. 실제로 건물에 사용한 화강암을 들여다보면 3~5mm 정도의 덩어리가 뭉쳐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런 성질 때문에 화강암은 다루기 어려운 암석으로 취급돼 돌을 다루는 기술이 부족한 시절에는 건축 재료로 가공해 쓰지 않았다.
[아스완 화강암은 분홍빛을 띄는 정장석이 많아 붉은색을 띈다.]
경주 토함산 석굴암이 뛰어난 유적으로 손꼽히는 이유가 바로 여기 있다. 삼국유사는 통일신라 경덕왕 때인 751년 대상(大相) 김대성이 현생의 부모를 위해 불국사를, 전생의 부모를 위해 석불사(지금의 석굴암)을 지었다고 전한다. 석굴 안에 들어서면 유리 너머로 참선하는 모습의 불상이 있다. 엄숙해 보이는 표정은 보는 사람에 따라 다른 표정으로 보인다고 한다. 높은 산까지 힘들게 올라온 것에 대해 격려해주려는지 미소짓는 것처럼도 보인다.
석굴암을 만든 화강암은 토함산에서 나온 화강암이다. 한반도 남쪽 지층은 강원, 경기, 전라 지역은 주로 고생대 지층으로 화강암과 화강암이 변성과정을 거친 화강편마암이, 경상지역에는 중생대에 끼어든 화강암층이 있다. 덕분에 우리나라에서 생산되는 석재는 90%가 화강암이다. 석굴 사원을 계획했던 김대성은 다루기 힘든 암석인 화강암을 이용할 수밖에 없었다.
화강암은 크게 세 가지 광물로 구성된다. 반투명한 흰색 광물인 석영, 불투명한 흰색이나 분홍색을 띄는 장석류, 반짝이는 검은 결정인 흑운모다. 흑운모는 비교적 약한 광물이지만 석영과 장석은 각각 경도가 7, 6정도로 단단하다. 섬세한 작업을 위해 결정을 정과 망치로 두드려도 정이 망가질 정도다. 결국 5mm나 되는 큰 결정을 통째로 떼어내야 한다. 화강암을 다루는 것이 어려웠다는 것은 석굴 천장을 장식한 연꽃 모양 천개석을 다듬어 올리다가 떨어뜨려 세 조각으로 갈라졌다는 석굴암 건축 설화에서도 나타난다.
석굴암이 규모에 비해 훌륭한 건축물이라고 극찬을 받는 이유는 전체적인 구조에도 있다. 수t 단위의 무거운 돌을 사용해 사원을 지으면서도 돌과 돌 사이를 붙이기 위해서 모르타르같은 접착제를 전혀 사용하지 않았다. 이에 대해 돌과 돌 사이로 습기가 흘러갈 틈을 만들어 비교적 물에 약한 화강암을 보호했다는 가설도 있다. 화강암은 광물 결정 크기가 큰 만큼 수분흡수율이 다른 암석에 비해 높은 편이며, 암석 내부로 물이 스며들면 암석이 쉽게 풍화돼 건물전체가 붕괴할 위험도 높아진다. 돌 다루는 기술만으로 건축물을 만들며 습기까지 제거한 셈이다.
[석굴암(➊)은 석영, 장석과 같은 단단한 광물로 이루어진 암석인 화강암(➋)으로 만들었다. 섬세하게 다루기 힘든 암석이지만 신라인들은 기술력으로 단점을 극복했다.]
앙코르 와트 : 약하디 약한 사암의 눈물
‘신비의 사원’이라고 불리는 캄보디아의 앙코르 와트 역시 모르타르(접착제) 없이 벽돌과 사암으로 만들었다. 앙코르 와트는 1861년 정글을 탐험하러 들어갔던 프랑스 박물학자에 의해 알려졌다. 주변에 있는 12~13세기 사원과 함께 크메르 시대 유적군을 형성하고 있다. 시엠립시내에서 12km 쯤 떨어진 곳에서 시작되는 앙코르 유적 건물들은 커다란 나무와 숲에 가려져 있다가 예상치 못하는 시점에 나타나 마치 깜짝 선물을 받는 느낌을 준다. 건축물의 재료가 된 사암과 벽돌도 푸른 나무 사이에서 검고 붉게 대비되어 더욱 도드라진다.
벽돌의 재료인 라테라이트는 구성광물의 90%이상이 감람석인 감람암이 풍화되어 만들어진 흙이다. 감람석은 철이나 니켈을 많이 함유한 어두운 광물이다. 철이 들어있기 때문에 공기와 닿으면 산화되어 붉은 색을 띈다. 입자 하나하나가 0.004mm 이하로 작아 앙코르 유적을 만든 크메르 인들은 이 흙을 물에 개어 두께 45cm, 폭 30~50cm, 길이 58~81cm나 되는 벽돌을 만들어 사용했다. 용도에 따라 필요할 때는 2m가 넘는 벽돌을 만들기도 했다.
사암은 앙코르 유적에서 북동쪽으로 30km 떨어진 프놈쿨렌 산에서 캐왔다. 크메르 인들은 라테라이트 벽돌과 사암 표면을 매끈하게 갈아 모르타르 없이 건물을 쌓았다. 표면이 매끄러운 유리 두 장을 겹치면 서로 잘 떨어지지 않는 것과 비슷한 원리다.
앙코르 유적지는 수시로 보강공사가 이루어진다. 1972년 외부인에게 폐쇄된 뒤 수많은 전투로 건물과 조각이 훼손되고 도난당했기 때문이다. 풍화에 약한 사암으로 지어졌다는 것도 큰 몫을 했다. 모래가 퇴적되어 만들어진 사암은 퇴적된 뒤 구성물질에 따라 강도가 크게 달라진다. 화강암의 강도(kgf/cm2)가 500~1940, 대리암이 1180~2140인 것에 비해 사암은 266~674정도로 약하다. 퇴적물의 알갱이가 0.3mm로 커 입자 간에 엉기는 힘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크메르 인들은 경이로운 기술력을 이용해 근처에 있는 암석과 흙으로 거대한 건축물을 만
들었지만 이 아름다운 유적이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지는 현대의 과학 기술에 달려있다.
여행을 다니며 위대한 건축물을 보면 무엇보다 ‘재료’와 ‘관리’가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화강암으로 만들어진 4500년 전 피라미드보다 사암으로 만든 12세기 앙코르와트가 더 금방 무너질 것처럼 보이는 것은 다름 아닌 ‘재료’ 때문이다.
[앙코르 유적 곳곳에는 사암으로 만들어진 사원이 눈에 띈다.]
위대함을 보전하라
이미 만들어진 재료를 바꿀 수는 없지만 관리는 다르다. 각 나라들은 과거의 현재의 기술을 총동원해 위대한 건축물을 보호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유일한 석굴 사원인 석굴암은 현재 보존을 위해 유리벽을 비롯한 각종 설치물을 달고, 제습 기계까지 돌리는 등 현대 과학기술을 이용한다.
반면 인도 정부는 타지마할을 매연과 산성비로부터 보호하고 관리하는 방법을 16세기 서적에서 찾았다. ‘물따니 미띠’라는 흰 빛을 띠는 진흙으로 만든 팩을 바른 뒤 미지근한 물로 씻어내는 것이다. 현대 과학으로 아직은 해결할 수 없는 문제에 대한 답을 옛사람들의 지혜에서 찾은 모양이다. 부디 그 하얗고 아름다운 건물이 타고르의 싯구처럼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맑고 투명하게 빛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