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정기술이란?
2010년 대지진을 겪은 아이티는 지진만큼이나 해마다 반복되는 홍수 피해로 고통을 받는 나라다. 국민들이 나무를 연료로 사용하면서 산림의 90%가 황폐화됐기 때문이다. 2003년 미국 MIT 학생들이 아이티를 방문했다. 주민의 95% 이상이 연료로 장작이나 나무로 만든 숯을 쓰고 있었다. 학생들은 이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고민하다가 농부들이 설탕을 만들고 나서 버리는 사탕수수 찌꺼기에 주목했다. MIT 공학도들은 사탕수수 대와 진흙을 섞어 숯을 만들었다. 더 이상 땔감 때문에 나무를 벨 필요가 없었다.
이것을 ‘적정기술’이라고 부른다. 적정기술의 시작은 보통 인도의 지도자 간디에서 찾는다. 당시 영국은 인도로부터 싼 값에 목화를 수입, 가공해서 인도에 되팔았다. 영국에서 가공한 직물을 너도나도 입으면서 인도경제가 영국에 종속되는 것을 막기 위해, 간디는 가는 곳마다 직접 물레를 돌려 실을 짜서 옷을 만들어 입는 운동을 시작했다. 시간이 오래 걸려도 내가 필요한 만큼 스스로 옷을 만들 수 있으니 영국에 의존할 필요가 없는 것이 바로 물레 돌리기였다. 적정기술은 그 기술로 인해 누군가에게 종속되지 않고 스스로 자립할 수 있도록 돕는 기술이다.
적정기술을 말할 때 영국의 경제학자인 에른스트 슈마허를 뺄 수 없다. 그는 저서 ‘작은 것이 아름답다’에서 저개발국의 토착 기술보다 훨씬 우수하지만 선진국의 자본집약적 기술에 비해서는 값싸고 소박한 ‘중간기술’이라는 개념을 제안한다. 이 기술은 생태계를 파괴하지 않으며, 자원을 낭비하지 않는다. 거대 공장을 요구하는 중앙 집중적 기술이 아닌 대중에 의한 생산 기술이다. 중간기술 개발의 목표는 사람들이 사는 곳에서 일자리를 창출하고, 값싸고, 비교적 단순한 기술로 그 지역에서 생산되는 재료를 사용하는 것이다. ‘적정기술’과 슈마허의 ‘중간기술’이란 용어는 지금까지 혼용된다.
적정기술은 세계인구 90%의 가난한 이들을 위한 기술이다. 미국의 정신과 의사 출신인 폴 폴락은 “공학설계자의 90%가 전 세계의 부유한 10% 인구를 위해 일을 하고 있다. 하지만 나머지 90%의 가난한 사람들이 2달러짜리 안경과 10달러짜리 태양전지 손전등, 100달러짜리 집을 바라고 있다”고 주장하며 ‘적정기술’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예를 들어 마실 물이 부족해 냇물이나 빗물을 마셔야 한다면 적정기술은 비싼 화학약품이나 정수기를 들여놓는 대신 태양빛 자외선을 이용해 물속 박테리아를 제거한다. 태양빛을 직접 받는 곳에 금속판을 놓고, 물이 담긴 페트병을 금속판 위에 6시간 이상 올려놓으면 박테리아의 60% 이상이 제거된다.
Q1 어떤 기술이나 발명을 적정기술로 판단할 수 있는 조건을 네 가지 정도 제시하시오.
[길잡이] 적정기술의 의미를 정확히 이해했는지 확인하는 문제다. 적정기술은 많은 나라에서 정부 주도 혹은 민간 주도, NGO 운동에서부터 영리를 추구하는 사회적 기업 활동 등 다양한 형태로 전개되고 있어 합의된 정의를 내리기는 어렵다. 그러나 그 이념과 목적을 얘기할 때 공통적으로 간디의 정신과 슈마허의 ‘작은 것이 아름답다’에서 그 연원을 찾는다.
Q2 <;그림 1>;은 어느 기업의 광고 중 한 장면이다.
<;그림 1>; 아프리카의 어느 마을에 커다란 탱크로리차 한 대가 도착하자 사람들이 기다렸다는 듯 반가운 얼굴로 모두 물통을 들고 뛰어나온다. 먹을 물이 부족한 이 마을에 우리나라 기업에서 해수담수화기술로 만들어낸 물을 공급하는 차였다. 해수담수화기술이란 바닷물에서 염분을 제거해 먹고 마실 수 있는 물로 만드는 기술이다. 물이 부족한 아프리카 사람들에게 더없는 혜택일 수 있지만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적정기술 관점에서 이 상황이 어떤 문제점을 갖고 있는지 비판적으로 검토하시오.
[길잡이] 앞에서 정리한 적정기술의 조건을 대기업의 사회적 공헌활동에 적용시켜 평가해 보는 문제다. 비판적 사고력이 요구된다. 기업의 물탱크차는 제시문에 나온 물이 부족한 가난한 아프리카 마을에 정수기를 설치하는 것에 비유할 수 있다. ‘나눔’에 대해 적정기술은 새로운 인식의 전환을 요구한다. 적정기술은 혜택을 받는 자, 즉 수혜자 중심의 나눔이다. 도움을 주고 베푸는 만족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수혜자가 받은 혜택을 통해 자립하는 힘을 키우고, 스스로의 삶을 윤택하게 만들어나가도록 유도하기 때문이다. 어떤 기술이 도입되면서 삶의 질이 나아지더라도, 혜택을 받는 사람이 더욱 의존적으로 된다면, 그것은 적정기술이라고 할 수 없다는 점에 착안한다.
Q3 11억 인도 사람들 중 75%에 해당하는 가난한 사람들이 아직도 소똥과 나무를 떼어 생활하는 전통적인 방식을 유지하고 있을 때, ‘가디아 솔라에너지 시스템’이라는 사회적 기업에서 땔감을 대체할 에너지원으로 태양열조리기를 개발해 저렴한 가격에 보급하기 시작했다. 태양열 조리기의 보급으로 가난한 인도인의 생활에 어떤 변화가 생겼는지 설명해 보시오.
[길잡이] 유튜브에서 EBS 지식채널e ‘적절한 기술’이라는 동영상을 찾아보자. 이 문제는 어느 지역에 도입된 적절한 기술이 사람들의 삶을 어떻게 변화시켰는지 이해하는 데 초점이 있다. 과학기술은 인간의 삶을 변화시키고 지역에 새로운 문화를 만들기도 한다. 소똥과 나무를 떼던 생활이 태양열이라는 새로운 에너지원으로 대체됐다는 것은 단순한 삶의 질의 향상을 넘어서 여성과 아동을 땔감을 구하는 위험과 고역, 그리고 질병으로부터 해방하는 계기가 됐음을 인식해야 한다.
Q4 말라위의 한 소년 윌리엄 캄쾀바는 학비가 없어 학교를 중퇴했다. 어느 날 도서관에서 우연히 보았던 미국 초등과학교과서 표지 사진이 가슴에 꽂혔다. 풍력발전소 그림이었다. 말라위 인구의 2%만이 사용하는 전기에너지였지만 누구나 공평히 가진, 그리고 어디에나 있는 바람을 전기 에너지로 바꿀 수 있다면 말라위 사람 모두가 전구를 밝히고 텔레비전을 보도록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는 주변의 고물을 주워 풍차를 만들어낸다. 캄쾀바에게 영감을 주었던 초등과학교과서의 내용은 다름 아닌 에너지 보존 법칙이었다.
에너지는 언제나 우리 주변에 있다. 그것을 다른 형태로 바꾸면 유용하게 쓸 수 있다. 캄쾀바는 가난한 사람이건 부자이건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진, 하지만 다른 형태의 에너지로 전환되길 기다리는 ‘풍력 에너지’를 유용한 ‘전기 에너지’로 바꿨다. 이렇게 어디에든 있고, 누구나 공평하게 얻을 수 있는 에너지를 생활에 쓸 수 있는 유용한 에너지로 바꾼 예를 두 가지 이상 찾아보자.
[길잡이] 적정기술은 에너지 전환 기술이다. 값비싼 화석연료나 원자력 같은 에너지는 이용하지 않는다.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지고, 주변에 흔해서 쓸모없다고 생각해 버리는 에너지를 유용한 에너지 형태로 바꾼다. 태양열, 지열, 바이오매스, 사탕수수찌꺼기 등 다양한 사례를 검색해 보자.
MISSION ❶ 인터넷 검색엔진에서 ‘적정기술’을 검색해 적정기술 제품에는 어떤 것이 있는지 조사하라. 조사한 것을 모둠별로 모아서 발표해도 좋다.
파워키워드
나눔과 기술(http://www.stiweb.org) 검색.
동아사이언스 홈페이지(http://www.dongascience.com/)에서 ‘적정기술’을 검색.
책 ‘소외된 90%를 위한 디자인’을 참조.
예시답안
A1 ① 비교적 단순한 기술이다. ② 그 지역에서 생산되는 재료를 사용하거나, 값싼 재료를 사용한다. ③ 유지 보수에 있어서 다른 사람에게 의지할 필요가 없고 사용자 스스로 기술을 개선할 수도 있다. ④ 이익과 혜택을 가져와 삶의 질을 향상시킨다.
A2 기업이 전해주는 탱크로리차에 담겨진 물은 당장 마을 사람들의 식수 문제를 해결해 줄지 모른다. 하지만 마을 사람들에게는 바닷물을 담수로 만드는 기술이 없다. 물을 마시고 싶으면 계속 담수화기술을 가진 기업에 요청해야 한다. 혹은 물제공에 대한 대가를 기업에게 어떤 형태로든 지불해야 할지도 모른다. 물을 담은 차의 주기적인 방문으로 마을 사람들의 기업에 대한 의존도는 높아져 간다. 그렇다고 마을 사람들에게 담수화기술을 전수할 수도 없다. 담수화공장을 운영할 만한 능력과 공장을 움직이게 하는 전기 시설이 없기 때문에 여전히 기술의존은 계속된다. 물부족 문제의 진정한 해결을 위해서는 마을 사람들이 스스로 담수를 만들 수 있는 ‘작은 기술’이 필요하다. 문제가 발생하면 그들이 직접 해결할 수 있어야 한다. 기술을 전수한 기업에 의존하지 않고도 그들 스스로 문제를 해결해 나가면서, 그 기술을 좀 더 보완하거나 새로운 기술을 창출하는 사람이 그들 가운데서 나올 수도 있다. 그 사람은 마을 사람들의 삶을 더욱 윤택하게 할 뿐 아니라 그 기술로 돈을 벌 수도 있을 것이다.
A3 새벽 3시에 일어나 아침을 준비한 후 연료로 사용할 땔감을 구하러 밖을 나가야 하는 인도 여성들. 야생동물의 위협과 강간의 위험 속에서 40°C를 넘나드는 더위를 뚫고 땔감을 구하러 6시간 넘게 움직여야 한다. 게다가 화덕이 집 안에 있는 바람에 매캐한 냄새는 호흡기 관련 질병을 일으킨다. 그런데 태양열 조리기는 가격도 저렴할 뿐 아니라 연료도 필요 없고 냄새도 나지 않는다. 땔감을 구하러 다닐 필요 없으니 여성들은 땔감을 구하러 다닐 필요가 없게 되면서 농사일에 참여, 농업 생산성이 높아졌을 뿐 아니라 물을 끓여먹게 되면서 아이들에게 잦았던 물로 인한 질병도 예방할 수 있게 됐다. 아이들은 땔감을 구하러 가던 시간에 부모의 농사일이나 집안일을 돕거나 공부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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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태양열 조리기: 태양열 에너지를 집중시켜 열에너지로 변환해 쓴다. 생성된 열에너지는 음식을 조리하는 데 쓰거나, 물을 끓여 물속 세균을 죽임으로써 수인성 질병을 예방한다. 난방에 이용할 수도 있다.
② 압전소자를 이용한 전기발생기: 압전소자는 외부로부터 가해지는 압력을 탄성력에 의한 위치에너지로 바꾸고, 이 위치에너지가 전환되면서 전기 에너지를 생산하는 장치다. 사람들이 많이 지나다니는 길에 압전소자를 설치하면 사람의 운동에너지를 전기에너지로 변환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