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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릴 적 꿈을 따라 미국항공우주국(NASA)에서 첫 직장생활을 하게 되었다. 다른 어린이들처럼 나도 NASA가 실제로 뭘 하는 곳인지 모르는 채, 무작정 가서 일을 하고 싶었다.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대학을 가고, 잘 못하는 수학과 물리를 밤새워 공부하고, 유학을 떠나 천문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NASA에서 걸려온 전화
박사과정 5학년 중반을 지나고 있을 2월의 어느 날 아침이었다. 아침부터 요란하게 전화벨이 울렸다. 누가 영어로 나를 찾는다.
“전데요.”
“아. 난 NASA 고다드 우주비행연구소의 알렌 스와이거트 박사요.”
“스와이거트 박사시라고요?”
항성진화이론의 대가 스와이거트 박사.
“왜 절 찾으시는지.”
“혹시 졸업할 때가 되어가지 않나 해서. 그렇다면 내가 있는 고다드 연구소로 와서 함께 일해보지 않겠소? 내 동료가 최근에 석영 군의 연구를 그리스학회에서 봤다는데 그 내용이 우리 연구팀에게 매우 흥미로워요. 관심이 있다면 시간이 별로 없으니, 당장 특급우편으로 이력서를 NASA에 보내시오. 워낙 급한지라 실례를 무릅쓰고 집으로 전화했으니 용서하시오.”
NASA. 내가 꿈에 그리던 NASA. 그 중에서도 기초연구의 메카 고다드 우주비행연구소. 나는 두번 생각할 겨를도 없이 간단히 내 소개서를 적어서 일단 고다드 연구소에 보냈다. 내 지원서는 결국 선택됐고, 나는 부랴부랴 박사학위 논문을 완성한 후 그 해 9월부터 고다드 연구소로 출근하게 됐다. 지금도 이해할 수 없는 것은 그 때 스와이거트박사가 어떻게 내 집 전화번호를 알게 되었는가이다.
고다드 연구소의 모든 건물은 번호로 불린다. 내가 있던 21동은 코비 우주배경복사 관측위성을 만든 연구팀과 허블우주망원경의 스티스 관측기를 만드는 연구팀 등 으리으리한 팀들을 품고 있었다. 코비팀은 그 당시 빅뱅우주론에 관한 연구결과를 인정받아 2006년에 노벨물리학상을 받았다. 수상자 존 매더 박사는 내가 있던 스티스 연구팀이 졸린 오후에 가끔 떼로 몰려가서 티타임 할 곳이 필요하다고 하면 자신의 연구실을 내어 줄 정도로 맘씨 좋은 분이시다. 연구소 내엔 150여 마리의 사슴이 상주하고 있었다.
저녁에 창밖으로 인기척이 있어 내다보면 창을 통해 “뭐하니 멍청아”하면서 나를 지긋이 보던 사슴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팀장보다 월급 많은 팀원
NASA의 연구경험은 내게 충격을 주었다. NASA의 연구자 각각은 다 자기 분야의 전문가이다. 그런데 그들의 배경을 보니 이럴수가. 어떤 이는 석·박사 학위도 없고, 어떤 이는 정규대학 출신도 아니지 않은가. 그럼에도 그들은 자신이 하는 일과 정확히 비례하는 대우를 받고 행복한 가운데 일을 하고 있었다. 당시 소문에는 우리 팀의 몇몇 연구원은 심지어 20여 명의 박사군단을 이끄는 세계적인 학자인 팀장에 견주는 보수를 받으며 일을 하고 있었다.
팀원에게 그렇게 고액의 연봉을 주는 팀이나, 팀장이면서도 월등히 많은 연봉을 받지 않는 것을 인정한 팀장이나, 내겐 다른 세상 얘기 같았다.
나는 피고용인의 배경과 학벌에 연연하지 않고 실제 어떤 일을 얼마나 잘 하는지에 따라 합리적으로 대우하는 것이 어떤 결과를 맺는지를 이곳에서 직접 보았다. 사람들은 각기 큰 톱니, 작은 톱니, 윤활유 등의 역할을 하며 큰 일을 이루어 갔다. 각각의 연구자들을 보면 나보다 그리 뛰어난 것 같지도 않은데 그들이 함께 일을 할 때 놀라운 일들을 이룩해 갔다. 모든 연구원은 정직을 최선의 가치로 여기고 느릴지언정 틀림없이 일했고,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서로를 신뢰했다. 그 결과 NASA가 이룩한 것은 형언하기 힘들 정도이다.
캘리포니아주 LA 북쪽에 있는 NASA의 제트추진연구소 입구엔 커다란 상황판이 있는데, 거기엔 NASA의 대표적인 우주 탐사선들이 지금 어디 있는지 표시돼 있다. 1972년에 발사된 파이오니어 10호, 1977년에 발사된 보이저 1호 등이 지금은 명왕성 궤도를 훌쩍 넘어 태양계 밖을 향해 항해를 하고 있는 상황이 뚜렷이 보인다. 똑딱이 스위치밖에 없던 시절에 우주선을 쏘고, 태양계를 넘나드는 탐사선을 보낸 것이다.
미국의 이러한 힘은 당시 국민적으로 기초학문을 다지고, 개인이 꿈을 이룰 수 있도록 제도를 통해 돕고, 서로 신뢰하는 연구풍토에서 나온 게 아닌가 생각한다. 나는 그 탐사선 상황판 앞에서 한참 동안 동상이 되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