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소이동, 활동억제, 물리적 피서법, 생리적 피서법을 터득한 동물들은 그리 힘들이지 않고 더위를 이긴다.
북극권의 북극여우(Alopex lagopus)는 내한성이 강해서 -50℃ 쯤은 가볍게 견디고 실험적으로는 -80℃에도 별 이상이 없었다고 한다. 남극의 팽권도 내한성이 강한 것으로 유명하다. 더구나 이 새는 영하 수십도, 시속 40~50㎞의 눈보라(Blizzard) 속에서 알을 낳은 뒤 품어서 그 알을 깨게 한다. 그것도 아무것도 먹지 않은 채로.
방금 든 예는 온혈동물이 영하의 온도에서 견딜 수 있는 극한이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이 그 혹한을 이길 수 있게 된 것은 탁월한 적응력 때문이겠지만 찬 외기나 물이 직접 피부에 닿지 않게 하는 두꺼운 털과 터럭(羽毛)도 그들이 내한성을 발휘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사람도 두껍게만 입으면 극지에서도 활동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동물이 더위를 이기는 방법은 무엇일까. 극지동물의 피한법보다 피서법은 사뭇 다양 하다. 크게 나눠보면 장소이동, 활동억제, 물리적 피서와 생리적 피서를 들 수 있다.
코끼리의 진흙목욕
그중 장소이동은 사는 장소를 보다 시원한 데로 이동하는 방법이다. 이것은 계절이 바뀌면 보다 풍부한 먹이를 찾아 대집단이 원거리 이동하는 경우와는 달리 비교적 국지적인 소규모 이동을 말한다.
예를 들어 하나의 산 안에서 양지에서 음지로, 등성이에서 계곡으로, 들에서 숲으로, 저지대에서 고지대로 수평이동 또는 수직이동을 한다.
둘째로 활동억제란 하루중 가장 더운 시간 대에는 되도록 활동을 멈추고 체열생산을 억제하는 것이다. 생활의 기본인 구식(求食)행동은 되도록 아침 저녁 서늘한 때를 이용해 하거나 밤에 한다. 폭염이 이글대는 한낮에는 아프리카의 사바나라 할지라도 물을 끼얹은 듯 조용하다.
셋째로 물리적 피서법은 가장 흔히 보는 원초적 방법이다. 그중 가장 간단하고 효과적인 것은 목욕이다. 하마는 물이 없이는 못 사는 동물이지만 피서도 물에 들어가는 큰 이유중 하나다. 체급이 하마와 엇비슷한 코끼리와 코뿔소도 모두 목욕을 즐긴다.
목욕은 더위를 식히는 목적 외에도 피부위생을 유지하는데도 불가결한 일이다. 특히 피부에 붙은 때를 씻어내 땀구멍을 여는 효과가 있다.
코끼리의 피서법중 재미있는 것은 코를 이용하는 자동샤워법이다. 그들은 코로 물을 빨아들여 전신에 고루 뿜어댄다. 이때 코의 움직임은 무척 자유로워 배 등 겨드랑이 등 닿지 않는 곳이 없다. 또 온몸을 적실만한 양의 물이 없으면 코속에 진흙을 잔뜻 집어 넣은 뒤 물을 뿌릴 때처럼 온몸에 뿌린다. 진흙은 덕지덕지 피부에 늘어붙고 특히 등에는 두껍게 달라 붙는다. 이 진흙층은 내리쬐는 뙤약볕을 차단할 뿐만 아니라 귀찮게 달라붙는 해충을 막이주기도 한다. 이같은 진흙 뒤집어쓰기(泥浴)는 초식동물들의 특기인데 코끼리는 진흙이 없으면 자신의 오줌자리를 발굽으로 파 이것을 이용하기도 한다.
코끼리는 여느 동물이 흉내내지 못하는 또 다른 피서법을 갖고 있다. 나뭇가지나 풀을 코로 감아올린 뒤 등위에 수북이 쌓아 그늘을 만드는 것이다. 덩치가 큰만큼 조물주가 여러가지 피서법을 덤으로 더 준 것인지도 모른다. 사람 키만한 귀를 흔들어 부채질을 하는 것도 코끼리 특유의 피서법이다.
목욕을 즐기기는 백수의 왕이라는 호랑이도 마찬가지다. 단지 왕자답게 아무 때나 물에 덤벙덤벙 뛰어드는 것이 아니고 사람의 눈길이 뜸한 사이를 틈 타 목욕을 하거나 밤 목욕을 느긋이 즐기는 편이다. 곰은 겨울에도 냉수욕을 할 정도이니 더 말할 게 없다.
목욕을 험오하는
그러나 호랑이와 같은 반열의 맹수인 사자는 목욕을 싫어한다. 고릴라 침팬지 오랑우탄을 비롯해 지능이 높다는 원숭이류도 물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대형 초식동물인 기린 역시 물에 들어가는 법이 없다. 삼복의 폭염을 무릅쓰고 종일 누워서 헐떡거리는 사자나, 손을 이마에 얹어 볕만을 가린 채로 나른한 몸뚱이를 뒤척이는 유인원의 모습은 은자(隱者)의 풍모를 느끼게 한다. 하여튼 물을 옆에 두고도 이용할 줄 모르니 답답하다. 이따금씩 물에 손을 담그는 것이 고작인데 그나마 안하는 것보다는 하는 것이 체열방산효과를 얻는데 유리하다.
기린을 비롯해 다리가 긴 초식동물도 물에 발목까지만 담그고 있는 것을 흔히 본다. 이로 인해 발끝까지 내려온 뜨거운 피가 식어, 심장으로 되돌아가는 사이에 전신의 체열을 식히는 효과는 생각보다 크다. 더울 때 아쉬운대로 물에 손발을 담가본 경험이 있는 사람은 얼른 이해가 갈 것이다.
조류는 낮동안 숲에 묻혀 있거나 물가에 나와 목욕을 함으로써 피서를 한다. 새들은 물위에서 날개를 퍼득거려 자신의 터럭 속으로 물이 스며들게 한다. 이렇게 물이 피부 깊숙한데까지 닿게 한 다음 툭툭 털고 일어나서는 홰에 앉아 물기를 말려가면서 부리로 깃을 다듬는 것이 그들의 목욕이며 한낮의 일거리다.
냉혈동물인 파충류는 오히려 더위를 즐길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그들도 여름에는 물과 그늘 그리고 양지 사이를 옮겨다니며 체온을 조절한다. 주로 뭍에서 지내는 왕뱀도 날씨가 더우면 뭍보다는 물에 있는 시간이 많아진다. 반면 흔히 물속에서만 사는 줄 아는 악어도 수온이 내려가면 뭍에서 지내는 시간이 길어진다. 이들은 비록 변온동물이지만 유지해야 할 적정체온에는 한계가 있는 것이다.
조물주는 물을 싫어하는 동물에게도 가끔씩 비를 내려 일제히 목욕을 시켜준다. 기린 사자 수리 부엉이 등 '목욕혐오자'들을 흠쩍 적셔 씻어주고 더위도 식혀주는 것이다. 그들도 이 때만은 거역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목욕할 태세를 갖춘다. 육지의 짐승은 털을 세우고, 새는 죽지를 펼치고 깃을 부풀려 한껏 비를 맞는다. 비를 다 맞고 나면 푸드득 몸을 떨어 물방울을 떨군다. 그러나 자신의 체온이 너무 식었다고 생각되면 털을 재우고 깃을 뉘어 빗물이 피부 속으로 스미지 않도록 흘려 버린다.
「여름옷」은 직사열을 차단해
넷째로 생리적 피서란 우선 털갈이를 들 수 있다. 동물들은 미리 털갈이를 함으로써 다가올 여름을 대비한다. 이르면 초봄부터 겨울내내 입고 지냈던 두툼한 겨울옷(솜털)을 벗기 시작한다. 마침내 여름이 되면 앙상한 여름털(거친털)만 남는다. 여름털은 보온의 역할은 전혀 하지 않고 직사열을 막아주는데 주력한다. 따라서 여름털은 없는 것보다는 있는 편이 시원하다.
여름에는 또 체열발산기관이 발달한다. 예를 들어 사슴의 경우, 봄에 묵은 뿔이 떨어지고 나면 바로 새 뿔이 돋아 여름내 자란 다음 가을이 오면 굳어버린다(角化). 새로 돋아나서 한참 자라는 동안의 뿔을 낭각(囊角)이라고 하는데 이 뿔은 피부로 싸여 있고 피하에는 많은 혈관이 분포하고 있어 혈액순환이 왕성하다. 신체내부를 돌아 열기를 머금은 피는 뿔에 도착하자마자 그 열을 발산 한다.
사슴뿔의 방열기관설(放熱器關說)을 주장 하는 학자의 말은 차치하고라도 모든 동물은 팔 다리 목 귀 꼬리와 같이 신체에서 길게 돌출한 부분이 많으면 체표면적이 커지기 때문에 체열방산량은 그만큼 많아진다. 사슴은 1년중 체열방산을 가장 많이 할 때에 맞춰 남에게는 없는 특수한 돌출물인 뿔의 성장이 왕성하니 그야말로 안성맞춤이다.
발한(發汗)은 동물의 체온조절상 중요한 생리작용이지만 땀샘이 발달돼 있는 동물은 그다지 많지 않다. 예컨대 사람 소 말 유인원 등의 땀샘발달이 양호하고 개 고양이는 발바닥에 땀샘이 있다. 하마류는 혈한(血汗)이란 특수한 땀을 흘리나 체온조절에 효과가 있는지는 의심스럽다. 땀을 흘리는 것 말고도 분뇨의 배설, 호흡 등은 체열방산에 크게 영향을 미친다.
낙타의 이상체질
특수한 생리작용으로 열악한 환경에 정면으로 대항, 더위를 이겨내는 동물이 있다. 다름 아닌 낙타다. 물이 적은 사막에서 사는 낙타는 물을 아끼는 생리구조를 활용해 더위를 이긴다. 그들은 물을 만나면 한꺼번에 많은 물을 먹고 없으면 며칠씩 그냥 견딘다. 여느 동물의 경우, 오랫동안 물공급을 받지 못하면 금세 탈수현상이 일어난다. 탈수의 결과로 혈액중의 수분이 빠져 나가 혈액순환 조차도 힘들어진다. 이와는 반대로 낙타는 혈액의 수분은 끝까지 남고 조직의 수분이 먼저 빠진다.
혈액은 마치 자동차의 냉각수와 같이 전신을 순환하며 열을 식히는 역할도 하는데 낙타는 그런 점에서 유리하다. 실제로 낙타는 한번에 체중의 1/4~1/3이나 되는 물을 마신다. 이렇게 마시고 몇시간이 지나면 물은 전신의 조직에 흡수돼 물자루처럼 된다. 이런 상태를 생리적 피하수종(水腫)이라 하는데 대개 24시간 지속된다. 아마도 여느 동물 같으면 혈액상태가 변하고 혈구가 삼투압(渗透壓)의 원리에 따라 틀림없이 파괴될 것이다. 하지만 낙타의 적혈구만은 좀처럼 용혈(溶血)이 일어나지 않기 때문에 별 문제가 없다. 낙타 등의 혹이 물탱크라는 설, 위내에 물주머니가 따로 있다는 설도 있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그런 저수장치가 따로 없는 이상 낙타는 체내의 수분을 알뜰히 절약해야 한다. 다시 말해 물의 체외배출을 최소한으로 억제해아 하는 것이다.
실제로 낙타의 방광은 매우 작기때문에 한번에 0.4ℓ, 하루에 1.5~5.0ℓ 이상의 오줌을 배출하지 않는다. 이것은 소의 10~25ℓ에 비하면 아주 소량이다. 대신 농도가 진하다. 이를테면 되도록 적은 물에 가급적 많은 노폐물을 담아 배설하는 것이다. 낙타는 분변까지도 매우 굳어서 조금만 말려도 연료로 사용할 수 있을 정도다. 또 땀을 거의 흘리지 않는다. 그들은 외기온의 승강에 따라 자신의 체온을 올리고 내림으로써 땀으로 인한 체열방산을 극력 억제 한다. 사막에 새벽이 오면(이때 가장 기온이 낮다.) 낙타의 체온은 34.5℃까지 내려 갔다가 기온이 최고로 올라가는 오후 2시쯤에는 체온이 40.7℃까지 올라간다. 이때부터 낙타의 체온은 다시 내려가기 시작한다. 놀랍게도 낙타는 하루에 무려 6.2℃란 큰 간격으로 체온을 조절한다. 그들은 체온이 40℃가 넘어야 비로소 소량의 땀을 흘린다. 항온(恒温)동물로서는 특이한 생리현상이라 아니할 수 없다.
또 여느 동물은 더울수록 숨을 자주 내 쉬어 체온을 조절하는데 비해 낙타의 호흡수는 1분에 16회(소는 2백50회, 개는 3백~4백회)정도에 불과하다. 낙타 등의 혹은 모두 지방덩어리이고, 아래로 갈수록 엷어지는데 그 이유는 등이 받는 직사열을 차단하기 위해서다.
이와 같이 동물들은 더운 여름을 나기 위해 저마다 순응하고 극복하는 지혜를 터득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