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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정확한 1초

300억 년에 1초 틀리는 광시계



[만약 올림픽 경기장에도 표준시계가 있었다면 신아람 선수(오른쪽)가 억울한 오심 피해를 보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정확한 1초가 중요한 곳은 스포츠뿐만이 아니다. 지난 7월 1일 ‘윤초’가 적용되면서 트위터, 포스퀘어 등 유명 네트워크 서비스에 차질이 생겼다. 호주 콴타스 항공은 수화물과 항공권 예약 시스템을 중단하기도 했다. 윤초를 적용한 까닭은 지구의 자전이 조금 느려지면서 하루가 24시간 보다 1초 더 길어졌기 때문이다. 길어진 하루와 원자시계가 측정한 정확한 24시간의 간극을 메우기 위해 도입된 것이 바로 윤초다.

예전에는 하늘의 태양이 1초를 책임졌다. 태양이 뜨고 다음날 다시 뜰 때까지 시간이 24시간이고 1초는 이 안에 있었다. 태양이라고 했지만 실제로는 지구의 자전 속도가 1초를 책임졌다. 1967년 이후 1초의 책임자는 세슘 원자로 바뀌었다. 국제도량형총회는 1초를 ‘바닥상태의 세슘 133 원자에서 나오는 복사선이 91억 9263만 1770번 진동하는 데 걸리는 시간’으로 정의했다. 물질의 고유진동수는 지구의 자전 속도와 달리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다. 또 시계의 진자 역할을 하는 진동이 빠르고 촘촘해 더 정확하게 시간을 잴 수 있다. 자의 눈금이 세밀할수록 더 정확하게 길이를 잴 수 있는 것과 같다.

오늘날 1초의 기준 역할을 하는 세슘원자시계 중 가장 정확한 세슘원자분수시계는 1억 년 동안 1초가 어긋나지 않을 만큼 정확하다. 원자시계는 1940년대에 처음 등장한 이래 신기술의 발달로 정확도가 꾸준히 향상됐다. 하지만 세슘원자의 고유진동수가 변하지 않기 때문에 더 이상 성능을 높일 수 없다는 한계에 부딪치고 있다.

세슘원자시계보다 더 정확한 시계를 만들 수 없을까. 바로 ‘광시계’가 있다. 광시계가 등장하면서 다시 한번 1초의 정의가 바뀔지 관심이 모이고 있다.


[한국표준과학연구원의 이터븀 광격자 시계. 30억 년 동안 1초가 어긋나지 않는 정확도를 목표로 개발하고 있다.]

세슘원자시계보다 10만 배 더 정확하다

광시계는 왜 세슘원자시계보다 정확할까. 광시계가 더 정확한 ‘진자’를 사용하기 때문이다. 광시계가 사용하는 원자는 이터븀, 스트론튬, 알루미늄 이온 등이다.

원자시계의 정확도는 원자에서 나오는 복사선의 주파수와 선폭에 의해 결정된다. 주파수가 클수록, 선폭이 작을수록 더 정확한 시계가 될 수 있다. 세슘원자의 복사선 주파수는 마이크로파의 영역인 9.2GHz이다. 광시계에 사용되는 원자의 복사선 주파수는 수백 THz(테라헤르츠, GHz의 1000배)인 가시광선의 영역이다. 이론적으로 세슘원자분수시계보다 10만 배까지 더 정확한 시계를 만들 수 있다.

이쯤 되면 광시계와 원자시계가 다른 건가 하는 궁금증이 생긴다. 광시계도 원자시계의 하나다. 기존 원자시계가 세슘원자를 이용한 데 비해 광시계는 다른 원자를 이용할 뿐이다. 이런 시계들은 가시광선 영역의 복사선을 이용하므로 마이크로파 복사선을 이용하는 기존의 원자시계와 구분하기 위해 ‘광시계’라는 이름이 붙었다. 반대로 기존의 원자시계는 이제 마이크로파원자시계라 부른다.

광시계는 중성원자를 이용하는 광격자시계와 이온을 이용하는 이온 광시계로 구분할 수 있다. 한국표준과학연에서는 이터븀(Yb)원자 광격자시계를 개발하고 있다.
 

[독일 표준기관(PTB) 스트론튬 광시계의 진공 챔버. 스트론튬 원자가 푸른색 형광을 내고 있다.]



1초의 정의 달라질까

광시계는 이론적으로 300억 년 동안 1초가 어긋나지 않는다. 현재까지 나온 가장 정확한 광시계는 미국 표준기관에서 발표한 알루미늄 이온 시계로, 35억 년에 1초가 어긋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더 정확한 시계가 나온 만큼 1초의 정의도 바뀌는 것이 아닐까. 현재 세슘원자시계를 바탕으로 만든 1초를 광시계 기준으로 바꾸기 위해서는 두 가지를 해결해야 한다.

먼저 광시계가 아직 발전 단계이기 때문에 어떤 원자나 이온을 이용한 시계가 가장 정확할지 예측할 수 없다. 표준이 되기 위해서는 기술적으로 성숙단계에 접어들어 여러 기관에서 같은 종류의 광시계를 개발해 서로 비교하고 일치하는지 확인해야 한다. 아직 전 세계 표준기관은 여러 종류의 광시계를 개발 중이고, 그 결과가 서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고 있다. 미국 표준기관의 알루미늄 이온시계가 현재 가장 정확하지만, 여러 표준기관에서는 더 정확한 시계를 개발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더 큰 문제는 멀리 떨어져 있는 광시계를 서로 비교하는 기술이 아직 없다는 것이다. 떨어져 있는 두 시계의 시간을 비교할 때는 보통 인공위성을 사용하는데, 아직 정확도가 광시계보다 낮다.

시계의 거리가 가깝다면 광섬유를 이용해 광시계의 정확도를 한계 수준까지 비교할 수 있다. 독일 표준기관(PTB)은 1000km 떨어진 광시계를 광섬유로 연결해 서로 비교하는 연구를 했다. 그러나 유럽과 아시아 사이나 특히 유럽-아메리카, 유럽-호주 사이에서 시계를 비교하기 위해 광섬유를 연결하는 것은 현재로선 불가능하다. 각국 표준기관들은 멀리 떨어져 있는 광시계를 비교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다. 한국표준과학연구원도 2011년부터 이 작업에 참여했다. 올 9월 시간주파수자문회의와 작업반 회의가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다. 이 자리에서 차세대 시각비교기술을 논의하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1초의 정의가 바뀌는 순간은 언제일까. 과학자들은 2019년으로 내다보고 있다.


[미국국립표준기술연구소 (NIST)가 만든 초소형 원자시계. 쌀 한 톨만 한 크기에 300년 동안 1초가 어긋나지 않을 만큼 정확함을 갖췄다. 손목시계 안에 원자시계를 넣고 다니는 날이 곧 오지 않을까.]

광시계보다 정확한 핵시계

광시계보다 더 정확한 시계는 만들 수 없을까. 가시광선보다 주파수가 높은 자외선을 이용하면 된다. 자외선 영역의 주파수를 갖는 수은 이온을 이용해 광시계를 개발하는 연구를 프랑스 표준기관에서 이미 하고 있다.

2012년 3월 미국과 호주 과학자들은 토륨이온(Th+)을 이용하면 광시계의 한계보다 10배 더 정확한 시계를 만들 수 있다고 발표했다. 이 시계를 이온 핵시계(ion nuclear clock)라고 한다. 이 시계가 구현된다면 3조 년 동안 1초가 어긋나지 않는다. 그러나 이온 핵시계는 이론적으로만 제시됐을 뿐 실제로 구현되기 위해서는 아직 난관이 많다. 광시계도 아직 발전하고 있는 단계라는 점을 고려하면, 핵시계는 아직은 먼 미래의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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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09월 과학동아 정보

  • 에디터 이우상 | 글 권택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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