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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그 많던 말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몸무게 400kg이 넘는 경주마들이 시속 60km로 질주하는 광경을 보고 있노라면 말이란 동물은 자연이 만든 또 하나의 걸작이란 생각이 든다. 쭉 뻗은 다리와 허리, 공기저항을 덜 받게 발달한 길쭉한 주둥이, 점프하듯 달리는 동작은 말 그대로 ‘달리는 기계’다. 하지만 이러한 말의 가장 오래된 조상은 놀랍게도 숲속에서 나뭇잎을 먹고 살았던 고양이만한 조그맣고 겁 많은 동물이었다. 말의 진화는 포유류 진화사에서 가장 흥미로운 주제이지만 유감스럽게도 이를 아는 이는 많지 않은 듯하다.

 


1926년 논문 영향력 커

말 화석은 진화라는 현상을 입증하는 데 화석기록이 이용된 오래된 예이며 현재도 가장 좋은 예다. 1859년 다윈이 ‘종의 기원’을 출간한 직후 시조새 외에는 특별히 생물의 진화 단계를 보여주는 화석이 없었던 시기에 미국 고생물학자 오트닐 마쉬는 북미대륙에서 새롭게 발견한 말 화석을 발표했다. 이 때 마쉬가 제시한 말 진화의 단계는 진화의 결정적인 증거였다.

이 소식을 들은 영국 생물학자 토머스 헉슬리는 1876년 미국을 방문하는데 그 때 마쉬가 수집해 예일대에 수장한 엄청난 양의 말 화석을 봤다. 헉슬리는 화석을 보자마자 유럽의 말 화석은 다른 지역에서 이주해 온 말이 남긴 것이며 실제 말의 진화는 대부분 북미대륙에서 일어났음을 알아차렸다. 마쉬는 수장고의 서랍을 차례차례 열면서 앞발에 4개, 뒷발에 3개의 발가락을 가진 에오세(5600만~3400만 년 전) 초기의 조그만 말에서 커다란 현대 말로 점차 진화하였음을 보여줬다. 헉슬리는 준비했던 강연 내용을 마쉬의 말 화석에 대한 것으로 바꿀 정도로 예일대의 말 화석 표본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이런 초창기 말 연구는 1926년 미국 고생물학자 윌리엄 매튜가 발표한 ‘말의 진화: 기록과 해석’이란 논문으로 세상에 널리 알려졌다. 이 논문에서 매튜는 그 당시까지 수집한 데이터를 갖고 말 진화에 대한 전반적인 개념을 제시했다. 즉 시간이 가면서 말은 몸집이 커지고 다리는 길어지며 양옆 발가락이 퇴화하고 주둥이는 길어지며 뇌도 커졌다. 또 실리카가 많이 포함된 질긴 풀을 먹기 위해 잘 마모되지 않는 어금니도 높게 발달했다. 매튜는 이런 진화 패턴을 단순화한 그림 한 장을 논문에 넣었다.

수 년 뒤 미국자연사박물관은 에오히푸스(Eohippus)에서 현생 말(Equus)까지 일직선으로 나열해 전시했고 이를 본 대중들은 말의 가계도가 진화의 증거일 뿐만 아니라 ‘점진적인 직선형의 진화’로 인식했다. 이 모델은 곧 생물교과서에도 실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1920년대 이후 발견된 엄청난 양의 말 화석을 통해 현재 말은 매튜가 제시한 단순한 일직선의 진화를 겪은 것이 아니라 훨씬 더 복잡한 관목형 진화 가 일어난 결과임이 밝혀졌다. 매튜의 진화도는 복잡한 말의 진화를 너무 단순화한 것이었으며(그 당시 화석 데이터로는 당연한 결과임) 현재 이러한 단순 직선형 진화도를 믿는 고생물학자들은 없다. 하지만 폭 넓게 진화를 본다면 100년이나 오래된 낡은 매튜의 진화 개념은 아직도 유효하다.


 






몸집 커지고 이빨 단단해져

말의 가장 오래된 조상으로 알려졌던 하이라코테리움(Hyracotherium, ‘바위너구리를 닮은 짐승’이란 뜻)은 1841년 영국 고생물학자 리처드 오언이 처음 명명했다. 그 뒤 1876년 마쉬가 완전한 골격을 발견하고 새로운 이름인 에오히푸스(Eohippus, ‘초기 말’이란 뜻)를 제안했다. 하지만 국제명명규약에 따라 먼저 명명된 하이라코테리움이 정식 학명으로 인정받았다.

하이라코테리움은 약 5500만 년 전 에오세 초기에 나타났다. 4개의 앞발가락과 3개의 뒷발가락을 가진 고양이만한 동물이다. 이 시기 전 세계 기온은 오늘날보다 평균 5~10℃가 더 높아 북미대륙은 브라질의 정글처럼 무덥고 습한 아열대 기후였으며 나무가 울창한 숲이 발달했다. 이런 환경에서 출현한 하이라코테리움은 말을 전혀 닮지 않았다. 등은 굽었고 목과 주둥이는 짧았으며 꼬리가 길었다. 게다가 과일과 부드러운 잎만을 먹었다.

이후 에오세의 포유류화석이 더 많이 발견됨에 따라 하이라코테리움은 말의 직접 조상이 아니라 말과 맥, 코뿔소의 공통조상인 원시 기제류로 밝혀졌다. 과거에 하이라코테리움이나 에오히푸스로 분류했던 화석들을 재분류한 결과, 진짜 말 화석 대부분은 프로토로히푸스(Protorohippus)에 속하며 나머지 종류들은 제니코히푸스(Xenicohippus), 시스테모돈(Systemodon), 플리오로푸스(Pliolophus)에 속했다. 최근에는 시프르히푸스(Sifrhippus), 미니푸스(Minippus), 아레나히푸스(Arenahippus) 등 새로운 원시 말 화석이 발견됐다. 이는 에오세 초기에 벌써 매우 다양한 원시말이 있었음을 의미한다.

초기 원시말들은 에오세 기간 오로히푸스(Orohippus)와 에피히푸스(Epihippus)로 진화하면서 몸집이 점점 커진다. 오로히푸스는 약 5000만 년 전에 나타났는데 하이라코테리움의 특징을 아직 많이 갖고 있다. 하지만 맨 뒤 앞어금니가 어금니형태로 바뀐 것이 큰 차이점이며 이는 오로히푸스가 더 질긴 식물도 잘게 부술 수 있는 이빨을 지녔다는 뜻이다.

에피히푸스는 약 4700만 년 전에 오로히푸스로부터 갈라져 나온 종류로 이빨이 더 발달해 앞어금니 두 개가 어금니로 바뀌어 총 5개의 이빨이 어금니 역할을 했다. 에오세후기와 올리고세(3400만~2300만 년 전) 초기에 북미대륙의 기후가 점점 더 건조해지고 풀(벼과 식물)이 새롭게 진화하면서 숲은 점점 더 줄어들기 시작한다. 이에 따라 원시말들은 이빨이 더 강하고 몸집도 독일셰퍼드 개만한 메소히푸스(Mesohippus)와 미오히푸스(Miohippus)로 진화한다. 이들 원시말은 앞발과 뒷발에 강건한 발가락이 세 개씩 있었으며 어금니는 약간 높아졌고 주둥이와 머리뼈에서 현대 말과 비슷한 여러 특징이 나타났다.

메소히푸스는 4000만 년 전 에오세 후기에 출현했는데 조상인 에피히푸스보다 몸집이 더 커졌고 목도 길어졌으며 주둥이와 얼굴은 뚜렷하게 길어졌다. 3개의 앞어금니가 어금니화해 총 6개의 어금니가 효과적으로 풀을 갈아낼 수 있게 변하는데, 이런 특징은 그 후 진화한 모든 말에서 나타난다. 미오히푸스는 메소히푸스의 조상에서 약 3600만 년 전에 갈라져 나온 종류로 몸집이 메소히푸스보다 조금 더 컸고 머리도 약간 더 길었다. 어금니의 돌기는 더 복잡하게 변하기 시작하는데, 이는 진화된 말을 분류하는 중요한 특징이다. 미오히푸스는 메소히푸스와 약 400만 년을 같이 살았다. 메소히푸스는 올리고세 중기에 멸종했지만 미오히푸스는 좀 더 생존했다.








초원화가 말 진화 가속화시켜

마이오세(2300만~530만 년 전) 초기동안에 북미 지역에 초원지대(grassland)가 광범위하게 발달하기 시작하자 말은 폭발적으로 진화해 다양한 그룹이 나타났다. 이들 그룹은 크게 3개로 나뉜다. 첫 번째 그룹은 미오히푸스처럼 어금니가 낮은 상태로 유럽과 아시아로 진출해 1000만 년을 더 생존했다. 안키테리움(Anchitherium), 덩치가 큰 히포히푸스(Hypohippus), 메가히푸스(Megahippus)가 이 그룹에 속한다. 두 번째 그룹은 ‘피그미 말’로 불리는 아르케오히푸스(Archeohippus) 같은 종류로 이들은 오래 생존하지 못했다.

세 번째 그룹에는 파라히푸스( Parahippus), 메리치푸스(Merychippus) 등이 속하는데, 이들은 나뭇잎을 먹는 대신 풀을 먹게 진화했다. 이는 기후변화로 북미대륙에 커다란 초원이 발달한 결과다. 초원이라는 새로운 환경이 새로운 진화가 일어날 수 있는 조건을 제공했기 때문이다. 이들 세 번째 그룹의 말은 풀을 효과적으로 먹기 위해 서너 가지의 뚜렷한 변화가 일어났다. 우선 거친 풀을 먹기 위해 이빨의 돌기가 더 커지고 서로 연결되면서 능선구조로 변해 맷돌처럼 풀을 갈기에 적합한 구조로 바뀌었다. 이빨 표면이 빨리 닳게 됨에 따라 이빨이 점점 더 높게 자랐다.

또한 마모에 잘 견디기 위해 이빨에는 시멘트질이 발달해 더 단단해졌다. 그리고 몸집이 커지고, 다리가 길어졌으며 얼굴도 길어져 빠르게 달리는 동물로 변화하기 시작했다. 다리뼈와 근육은 관절이 회전 움직임이 거의 없이 앞뒤로만 움직이게 발달했으며 특히 발가락으로 걷는 것이 아니라 발굽으로 완전히 설 수 있게 됐다.

파라히푸스는 2300만 년 전에 출현했으며 미오히푸스보다 약간 더 크다. 파라히푸스는 빠르게 진화해 1700만 년 전 완전히 초원에 적응한 메리치푸스가 나타났다. 메리치푸스는 발가락이 아직 3개였지만 가운데 발굽에 잘 발달한 스프링인대가 몸을 지탱하고 달리는데 이용됐다. 양옆 발가락 크기는 종류에 따라 다른데 어떤 종류는 크고 어떤 종류는 절반 크기로 퇴화했다. 또 앞다리의 요골과 척골이 융합해 다리의 뒤틀림을 막았고 뒷다리의 종아리뼈는 상당히 작아졌다. 이런 모든 특징은 초원에서 빨리 달리는 데 적합하다. 초원은 숨을 곳이 없기 때문에 포식자를 피해 빨리 뛸수 있는 능력은 생존과 직결된다.

1500만 년 전 쯤 메리치푸스는 초원에서 가장 빠른 초식동물이었다. 메리치푸스는 빠른 종분화가 일어나며 최소한 19종의 새로운 종류로 분화했다. 이들은 크게 3그룹으로 나누어진다. 첫 번째 그룹은 세 개의 발가락을 유지하였지만 아주 잘 번성한 히파리온(hipparions)으로 4속 16종으로 진화해 다양한 서식지에 적응했다. 이들은 수 차례에 걸쳐 유럽과 아시아로 퍼져 나갔다. 두 번째 그룹은 몸집이 작은 말로 프로토히푸스(Protohippus), 칼리푸스(Calippus)가 여기에 속한다. 세 번째 그룹이 진짜 말의 조상인 에쿠스 그룹(true equines)이다.

1000만 년 전에 말의 다양성은 최대에 이른다. 북미대륙과 유럽, 아시아대륙에서 다양한 히파리온류, 프로토히푸스류, 에쿠스류들이 초원과 숲을 채웠다. 현대 말의 조상인 초기 에쿠스 그룹은 3개의 발가락을 유지했으나 이들 대부분은 후기 마이오세에 히파리온류, 프로토히푸스와 함께 멸종했고 그 중 한 그룹이 살아남아 발가락을 한 개로 줄인다. 발굽이 한개로 줄면 달릴 때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해 구절(fetlock) 주위로 인대가 발달한다.

발굽이 한 개인 원시 말 가운데 플리오히푸스(Pliohippus)는 현생 말(Equus)과 매우 유사해 현대 말의 조상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그러나 머리뼈와 이빨의 차이점에 의해 현생 말의 직접 조상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아스트로히푸스(Astrohippus)는 발굽이 한 개인 또 다른 종류인데 플리오히푸스의 후손으로 여겨진다. 말굽이 하나인 세 번째 말인 디노히푸스(Dinohippus)는 1200만 년 전에 출현했는데 이들의 조상은 아직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현생 말과 거의 같으며 플라이오세(530만~260만 년 전) 후기에 북미 대륙에 가장 번성한 종류였던 디노히푸스는 현생 말의 조상으로 거의 확실시된다. 플라이오세 후기를 지나자 디노히푸스는 점점 더 쇠퇴해가고 400만년 전 현생 말인 에쿠스(Equus)가 출현한다.







현재는 8종만 살아남아


처음에 에쿠스는 조랑말 크기였으며 긴 목과 긴 다리, 긴 주둥이, 깊은 턱을 가졌다. 뇌의 크기는 디노히푸스보다 컸으며 시멘트질화된 강하고 높은 이빨을 가졌다. 260만 년 전 플라이오세 후기동안 첫 번째 빙하시대가 도래하자 에쿠스를 제외하고 발굽 하나짜리 말들은 북미대륙에서 모두 멸종했다. 살아남은 에쿠스는 아시아와 중동, 유럽, 남미로 퍼져나갔으며 일부는 아프리카로 들어가 얼룩말로 다양화 했고 다른 일부는 아시아, 중동, 북아프리카로 퍼져나가 사막에 적응한 당나귀와 오나거로 다양화됐다.

플라이스토세(260만~1만2000년전) 후기 북미와 남미대륙에서 매머드와 검치호랑이 같은 커다란 포유류들이 멸종할 때 모든 말도 함께 사라졌다. 기후급변과 이 지역으로 이주한 인류의 과도한 사냥이 원인으로 보인다. 따라서 과거 1만 2000년 동안 아메리카대륙에는 말이 살지 않았다. 흥미롭게도 1493년 크리스토퍼 콜럼부스가 말 진화의 기원지인 아메리카대륙에 유럽에서 사육한 말을 끌고 들어온다. 오랜 진화 끝에 오늘날 에쿠스속 8종만이 살아남았다. 이들은 크게 당나귀류들과 얼룩말류, 그리고 말류로 구분된다. 우리가 보통 말이라고 부르는 것은 에쿠스 페루스(Equus ferus)의 아종 에쿠스 페루스 카발루스(E. ferus caballus)인데 이는 모두 가축화된 말이다. 가축화되지 않은 야생말은 몽골야생말 혹은 프르즈왈스키의 말이라고 부르는 에쿠스 페루스 프르즈왈스키(E. ferus przewalskii)아종이 유일하다. 1966년 이 말이 몽골에서 발견되기 전 모든 야생말은 멸종한 것으로 여겨졌다. 이 귀중한 말은 현재 몽골의 산악지역에서만 드물게 볼 수 있다. 필자는 고비사막으로 몽골공룡탐사를 가던 중 우연히 이 말을 봤다. 그때 5500만 년에 걸쳐 다양하게 진화했던 ‘야생마’의 마지막 후손을 보고 있다는 벅찬 감동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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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08월 과학동아 정보

  • 이융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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