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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슈퍼컴퓨터가 좋다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런데 슈퍼컴퓨터를 쓰고자 엄두를 내는 사람도 없습니다.”

김종원 고성능컴퓨팅 협업환경연구센터장(이하 고성능 컴퓨팅센터)은 국내에서 슈퍼컴퓨터가 경제성이 없는 이유를 이같이 지적했다. 슈퍼컴퓨터는 그 자체도 가격이 비쌀 뿐만 아니라 유지비도 천문학적인 수준이다. 그런데 설상가상으로 사용하는 사람이 적어 기계를 ‘놀리는’ 시간이 길어진다면 경제성도 함께 추락한다.

오늘날 슈퍼컴퓨터의 성능 경쟁은 개인용 컴퓨터에 비견할 수 없을 정도다. 하루가 멀다하고 순위가 바뀌고 성능이 향상된다. 이런 슈퍼컴퓨터가 슈퍼컴퓨터다운 성능을 발휘하려면 신주단지처럼 모셔둘 것이 아니라 최대한 많은 사람들이 이용해야 한다.

슈퍼컴퓨터의 대중화를 선도한다

만약 새로운 스포츠카의 외형을 설계해야 한다고 상상해보자. 뛰어난 자동차 디자이너라면 외적인 수려함도 놓칠 수 없지만 무엇보다 고속 주행시 공기가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 이때 슈퍼컴퓨터를 이용하면 직접 자동차를 만들어 달리게 하지 않고도 실제 같은 시뮬레이션을 통해 새 디자인안의 가능성을 점칠 수 있다. 슈퍼컴퓨터를 쓰면 시행착오의 횟수를 줄여 돈과 시간을 함께 절약할 수 있다는 뜻.

“슈퍼컴퓨터의 진짜 장점은 공기 뿐만 아니라 자동차 앞 유리(윈드 실드)를 때리는 빗방울 등 여러 요소들을 한 번에 시뮬레이션 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가상의 시뮬레이션과 실제 실험의 차이를 줄이려면 실제만큼 다양한 요소들을 한번에 넣어 처리해야 하는데 이것은 매우 높은 컴퓨터 성능을 요구합니다. 바로 슈퍼컴퓨터가 답이 될 수 있습니다.”
 

[고성능컴퓨팅 협업환경연구센터가 보유하고 있는 슈퍼컴퓨터 ‘KIGI’.]

김 교수는 커다란 그릇에 크기와 무게가 다른 구슬들을 한 데 넣고 흔들어 섞는 실험을 예로 들었다. 집어넣는 구슬의 종류가 많을수록 한 종류의 구슬만 넣었을 때보다 움직임이 복잡해지기 때문에 구슬들이 과연 어떻게 섞이게 될지는 슈퍼컴퓨터가 아니면 계산하기가 어려워진다. 김 교수는 슈퍼컴퓨터가 큰 도움이 될 수 있는 분야로 재료공학과 나노공학 분야를 꼽았다. 앞서 예로 든 구슬의 무게와 크기 대신 분자들의 성질을 슈퍼컴퓨터에 입력하면 실제로는 오래 걸리는 화학실험도 단숨에 끝낼 수 있다. 그런데 사람들에게 슈퍼컴퓨터는 여전히 다가가기 힘든 존재다. 비싸고 다루기 어렵기 때문에 많은 슈퍼컴퓨터의 이점에도 불구하고 중소기업은 구매하거나 사용할 엄두조차 내지 못한다.

“저희 모토가 바로 ‘오버 더 클라우드’입니다. 요즘 유행하는 클라우드 컴퓨팅처럼 슈퍼컴퓨터를 가지고 있지 않아도 슈퍼컴퓨터를 쓸 수 있도록 연결해주는 ‘다리’가 되고자 합니다.”

김 교수가 센터장으로 있는 고성능컴퓨팅센터의 목표는 바로 슈퍼컴퓨터를 이용해야 하는 사람들이 슈퍼컴퓨터를 쓸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고성능컴퓨팅센터는 CPU가 무려 512개나 든 슈퍼컴퓨터 ‘KIGI’를 보유하고 있다. 김 교수는 광주과학기술원이 있는 광주·전남 지역을 중심으로 슈퍼컴퓨터를 원하는 곳에 인적·물적 자원을 제공할 예정이다.



지구 반대편에서도 함께 연구한다


센터에서 하는 연구는 슈퍼컴퓨터 외에 또 하나가 있다. 바로 효과적인 협업환경을 만들기 위한 연구다. 김 교수는 추진 중인 협업환경의 이상향을 ‘텔레프레전스(Tele-presence)’라 명명했다. 멀리 떨어져 있어도 그 존재를 느낄 수 있다는 뜻이다.

“단순히 통화하고 자료만 주고받는 수준을 구현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서로 다른 곳에 떨어진 실험실이 꼭 붙어있는 것처럼 느끼게 하고 싶습니다. 이를 위해 ‘지능형 협업시스템’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지능형 협업 시스템 안에서는 사용자가 어떤 도움이 필요한지 일일이 조작하지 않아도 시스템이 먼저 알아서 도와준다. 김 교수는 손에 든 레이저포인터로 책상 위 자료를 가리켰다.

“이렇게 가리키고 손짓을 하는 것만으로 해당 자료를 상대 연구실로 전송할 수 있습니다. ‘텔레프레전스’라는 말이 어색하지 않겠죠?”

김 교수의 연구실 한 곳에는 16개의 HD급 모니터가 한쪽 벽을 차지하고 있었다. 모니터 위에는 내부를 촬영하는 카메라가 있다. 다른 실험실에도 같은 시설이 있다면 16개의 모니터를 통해 유리로 된 벽을 보듯 마치 실험실 두 개가 붙어있는 것과 같은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지금은 시범적으로 같은 시설이 마련된 KAIST 외 4곳과 연결돼 학생과 교수들이 멀리 떨어져 있어도 함께 있는 것처럼 수업을 진행할 수 있다.

2003년 완성된 인간의 유전자 지도를 만드는 연구 ‘인간 게놈 프로젝트’에서 2010년 새로 시작된 인간의 머릿속 신경 지도를 그리는 ‘인간 커넥톰 프로젝트’에 이르기까지. 막대한 데이터를 처리할 수 있는 슈퍼컴퓨터의 중요성과 세계 각지 과학자들의 협업의 중요성은 날로 커지고 있다.

보다 많은 사람들이 슈퍼컴퓨터를 쓸 수 있게 지원하고, 보다 친밀한 협업환경을 만들려는 김 교수와 연구원들의 노력이 과학 발전에 도움이 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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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6월 과학동아 정보

  • 이우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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