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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눈 뜨고 악취 풍기는 생존의 달인

대부분의 생물은 어느 정도 방어 능력을 갖추고 있다. 하지만 힘없는 애벌레는 더욱 특별해야 한다. 새를 잘 속이는 변신 위장술이 곤충 포식자들에게는 전혀 안 통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애벌레들은 먹을 수 없는 더러운 것을 흉내 내거나 참기 힘든 악취를 풍기는 방법을 찾았다. 기상천외하게 제 몸을 지키는 애벌레들을 만나보자.



[자극을 받으면 자주색 냄새뿔을 길게 빼 심한 악취로 적을 물러나게 하는 남방제비나비 애벌레.]



 

꼼꼼하고 단단하게 짠 그물을 설치해 놓고 인내심 있게 기다리는 거미는 무서운 존재다. 한걸음 한걸음 접근하면서 바스락거리는 소리조차 내지 않고 무려 한 시간씩이나 뒤를 밟는 노린재에게 위장이나 변신은 무용지물이다. 바위와 나무, 풀로 이루어진 숲에서 전망 좋은 곳을 골라 먹잇감을 기다리며 매복하고 있는 사마귀도 두렵다. 땅위든 나뭇가지든 가리지 않고 떼 지어 다니면서 꿈틀대는 것은 무엇이든 먹어치우는 개미는 공포 그 자체다. 애벌레는 편안히 머물 자리를 찾는 일이 고단하다.



물론 형태나 색깔을 바꾸는 위장이나 변신을 하면 발견될 가능성이 낮아진다. 하지만 형태적 위장에 속지 않고 애벌레를 찾아내는 데 익숙한 포식자들에게는 더 이상 소용없는 전략이다. 그래서 때로는 들키더라도 먹히지 않도록 먹을 수 없는 것처럼 보이기 위한 방법을 사용한다. ‘맛이 없으니 먹지 마라’, ‘아무리 배가 고파도 더럽고 독성 있는 음식이므로 먹지 말라’는 메시지를 보내는 식이다.



“먹고 싶니? 나 새똥이야”

호랑나비속에 해당하는 나비 애벌레들은 새의 똥과 비슷한 모습을 띤다. 새똥 닮은 모습으로 자신을 숨기지 않고 대담하게 낮에도 활발히 활동한다. 특히 긴꼬리제비나비 애벌레는 웅크리고 있을 때 짙은 갈색 바탕에 하얀 덩어리의 색상이 영락없는 새똥이다. 게다가 촉촉한 피부는 막 배설한 새똥으로 착각하기 십상이라 냄새가 심하게 날 것처럼 보인다. 쉴 때에도 새똥 같이 보이게 몸을 구부린다.



더 혐오스럽게 보이는 애벌레는 백합긴가슴잎벌레다. 까만 머리 부분만 빼고 가슴부터 배 끝까지 온몸에 번들거리는 자기의 배설물을 뒤집어쓴다. 끈적끈적한 기름 덩어리가 불룩 솟아나와 차마 건드리기조차 역겹다. 그러다가 애벌레 시절을 마치고 땅속으로 들어가 번데기가 될 때쯤이면 지고 다녔던 거추장스러운 똥 덩어리를 벗어 던진다. 보기 흉하지만 노출이 심한 애벌레 세계에서 최고의 생존 전략이 아닌가 싶다.





[➊ 검은색 머리를 제외한 몸 전체에 자신의 검은 똥을 덮고 사는 백합긴가슴잎벌레 애벌레.

 ➋ 영락없이 새똥 모습인 멧누에나방 애벌레.]



색이나 형태만으로도 역겨운 똥 냄새를 가장하는 이들과는 달리 주변의 사물을 자기 몸에 붙여 지저분하게 몸을 치장하는 종류도 있다. 네눈박이푸른자나방 애벌레는 주로 먹는 쑥 잎과 주변의 빛바랜 갈색 잎을 몸에 붙여 형체를 알아볼 수 없도록 기괴한 모습으로 만든다. 무엇인가 덕지덕지 붙여 삼키기 어렵게 하거나 넘어가다가 목에 걸릴 것 같은 형태로 만들어 불쾌하게 보이게 한다. ‘맛없게 보이는’ 애벌레들은 굉장히 강인해

서 필자는 포식자에게 잡혀 먹히는 경우를 거의 보지 못했다.







더욱 극적인 방어 전략이 있다. 스컹크처럼 역한 냄새를 풍기는 반응성 분비샘이다. 호랑나비과의 애벌레는 모두 ‘냄새뿔’이라는 분비샘을 갖고 있다. 머리 바로 뒤쪽 몸 안에 숨어 있다가 살짝 건드리면 등이 터지면서 빨갛거나 노란 더듬이 모양의 냄새뿔이 솟아나 적을 향해 공격 태세를 취한다. 냄새뿔은 자극을 받으면 혈액을 펌프질해 구조 전부가 뒤집히면서 불쑥 튀어나오는 냄새 방어막인 셈이다. 냄새뿔은 시큼한 썩은 식초 냄새가 나는 방어물질인 부티르산을 방출한다. 필자의 연구소 내 애벌레 실험실에는 항상 먹이가 되는 각종 애벌레가 자라고 있어 모든 곤충 포식자들이 먹이 창고처럼 즐겨 찾는다. 먹잇감인 애벌레에 유인된 말벌이나 사마귀가 냄새뿔의 고약한 냄새에 혼비백산해 피하는 모습을 자주 봤다. 연구소에 공부하러온 학생들 중 냄새뿔을 보고 싶어 하는 아이들에게 가끔 그 위력을 보여준다. 애벌레 옆구리를 살짝 건드려 냄새뿔을 내밀게 하면 대부분의 학생들이 깜짝 놀라 뒤로 물러선다. 애벌레의 ‘고약한 냄새 생존 전략’에 대한 놀라운 체험을 하게 된다.
 

[눈알 모양의 무늬를 가진 애벌레.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멧누에나방, 호랑나비, 주홍박각시, 산제비나비 순.]



가짜 눈 보이거나 진짜 독 내뿜거나

일부 애벌레들은 뱀의 눈을 모방한 위협적 외형으로 천적의 기를 꺾는다. 가짜 머리와 안점(eyespots)은 나방과 나비의 많은 종에서 진화해왔는데, 보통 머리 뒷부분에서 나타난다. 포식자들은 보통 먹잇감의 눈을 공격한 후 방향 감각을 마비시켜 편안히 식사하려는 경향이 있다. 이 점을 역이용해 전혀 기능하지 않는 가짜 눈을 만들어 급소라고 일러 준 다음 주의를 일단 눈에 집중시킨다. 시간을 번 후에 몸의 일부분을 떼어놓고 도망가 목숨을 부지하는 전략이다. 나아가 가짜 눈을, 독을 가진 뱀의 눈으로 격상시킨다. 공격을 받으면 순간적으로 적의 눈앞에 놀라운 무늬를 내보여 방어한다. 먹이를 낚아채려고 접근했던 포식자가 갑자기 뱀의 무서운 시선이 자신을 쳐다보고 있음을 깨닫고 화들짝 놀라 도망간다. 주홍박각시나방의 애벌레는 위협을 받으면 머리를 몸속으로 집어넣어 앞부분을 부풀어 올린 후에 가짜 눈 한 쌍을 보이게 해 스스로를 보호한다. 정면에서 바라 본 멧누에나방의 뱀눈은 진짜 뱀눈보다 더 섬뜩해 빨리 자리를 피해야 할 것 같다.



또 독으로 자신을 보호한다. 독나방과 애벌레들은 외형적으로는 복슬복슬한 털이 많아 따뜻하게 생겼고 아름답지만 알고 보면 호랑이만큼 무섭다. 독으로 찬 가시털을 갖고 있으며, 이 독털은 유독한 화합물을 내뿜어 심한 자극을 일으킨다. 열대에 서식하고 있는 독나방 애벌레들은 인간을 죽일 수 있다고 보고됐다. 한반도에 서식하는 독나방 중 이 정도의 독성은 보고된 적 없지만 그 효과는 대단하다. 필자의 경험으로도 숲 속에서 만나는 가장 무서운 벌레가 바로 독나방 애벌레이다. 나무를 헤치고 산속으로 들어가다 보면 나뭇가지에 붙어 있던 놈들이 반사적으로 툭 떨어질 때가 있다. 깜짝 놀라 얼른 손으로 툭 쳐서 떨어뜨려도 애벌레가 닿았던 곳에 심한 알레르기성 피부염이 생긴다. 잠깐 몸에 스치기만 했는데도 매우 쓰리고 가렵다. 심지어는 이미 죽은 껍데기만 만져도 온몸에 붉은 반점을 동반한 두드러기 증상이 생긴다.



콩독나방은 애벌레 시기를 보내고 고치를 만들 때도 애벌레 시절에 몸을 덮었던 먼지 같이 미세한 독털을 고치에 다시 붙여 재활용한다. 얼마나 독성이 강한지 마지막 순간까지도 자신을 지키는 데 이용한다. 필자도 콩독나방 애벌레 독에 매우 민감한 편이라 일단 애벌레를 만나면 병원에서 주사를 맞아야 한다. 또 빽빽한 털은 단순히 기계적인 방어만을 하는 것이 아니다. 민감한 체온 유지에도 사용되고 기생벌의 산란을 막는 효과도 있다. 애벌레의 몸을 뚫고 알을 낳는 기생벌들이 미로 같은 빽빽한 털에서 길을 잃게 하는 물리적 방어의 역할을 한다. 옷솔처럼 생긴 털의 쓰임새는 이처럼 다양하다.



이렇듯 생존을 돕는 행동 전략들이 다양하지만 호랑나비과의 애벌레는 앞서 설명한 여러 방어 전략을 두루 이용한다. 특히 령에서 다음 령으로 갈 때 외관상 변화가 뚜렷하고 각 령별로 방어 전략도 다르다. 알에서 부화한 후부터 네번째 령까지 이 애벌레는 새의 배설물을 모방한다. 그러다가 마지막 허물을 벗은 종령에서는 많이 커져 더 이상 새똥 위장으로는 속이기 어렵다. 그래서 5령은 돌연 새똥의 모양에서 크고 밝은 녹색의 몸체에 거무스름한 뱀의 눈을 갖게된다. 가짜인 뱀의 눈이 통하지 않을 경우 방어의 마지막 단계에서는 냄새뿔로 적극적 방어를 한다. 거의 10cm 이상인 크기로 눈에 잘 띄면서도 잡혀 먹히지 않고 왕성하게 번성하는 이유다. 이렇게 많은 종류의 방어 전략을 갖고 있기 때문인지 700여 종 이상의 많은 나비가 전 세계 어디에나 살고 있다. 잡아먹을 힘이 있는 포식자라고 해서 항상 편안하게 살 수 있다거나 생존이 보장돼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연약한 애벌레가 위험천만한 세상을 항해하는 삶을 보면 그들이 왜 이런 생존 방법을 쓸 수밖에 없는지 이해하게 된다. 생존에 대충은 없다.



[배나무, 팽나무 등 여러 종류의 식물을 먹이로 한다. 종령 애벌레의 몸길이는 35mm 내외. 몸 전체가 독이 있는 노란색 털로 덮여 있으며 등에 네 개의 털뭉치가 나란히 있다. 배마디 끝에는 붉은색의 긴 뿔모양의 털뭉치가 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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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03월 과학동아 정보

  • 이강운 박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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