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프로야구에서 은퇴한 이종범 선수는 1994년, 타율 3할 9푼 3리를 기록해 4할에 근접했다. 하지만 4할은 넘지 못했다.]
최근 한국에서 4할대 타자가 나오지 않는 이유를 분석한 과학 논문이 나와 화제다. 자발적 야구 데이터 분석 프로젝트인 ‘백인천 프로젝트(과학동아 2012년 4월호 기획 ‘웰컴 투 데이터유니버스’ 참조)’는 100여 일간 진행한 연구를 지난 4월 12일 마무리하고 첫 번째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백인천 프로젝트는 지난해 12월, 정재승 KAIST 바이오및뇌공학과 교수가 트위터를 통해 “4할 타자가 사라진 이유를 분석해 보자”고 제안해 결성된 프로젝트 연구 그룹으로, 58명의 평범한 직장인과 학생들이 주인공이다. 기자도 연구 보고서 작성을 맡아 참여했다.
연구팀은 프로야구 30년 동안의 타자와 투수 자료 28만 항목을 수집한 뒤 한국야구협회(KBO)의 기록대백과와 일일이 비교해 신뢰성을 검증했다. 그리고 데이터를 바탕으로 4할 타자가 사라진 이유를 설명한 가설을 하나씩 분석했다.
그 결과 한국 프로야구 30년은 ‘타자의 실력은 높고 투수의 실력은 상대적으로 약세’였던 것으로 드러났다. ‘타자 실력이 하락했다’는 기존 가설이 틀렸음을 입증한 것이다. 타자들의 실력은 30년 동안 꾸준히 높아졌다. 경기당 2타석 이상 출전한 선수를 대상으로 한 통계 분석 결과 타율은 매해 0.3리씩, 출루율은 0.6리씩 꾸준히 상승했다. 장타율은 1.1리씩 높아졌다. 반면 투수는 평균자책점(ERA)과 이닝당 출루 허용률(WHIP)이 미세하게 올라가는 등, 전반적으로 실력이 떨어졌다.
타자 기록이 높아졌는데도 4할 타자가 사라진 이유를 찾기 위해 연구팀은 연도별 표준편차를 구해봤다. 그 결과 타율과 출루율, 장타율 모두 표준편차가 줄어들었다. 미국의 진화생물학자 스티븐 제이 굴드가 “미국 프로야구에서 4할 타자가 사라진 이유는 기량이 좋은 선수와 기량이 낮은 선수 사이의 차이가 사라졌기 때문”이라고 설명(일명 ‘굴드 가설’)한 것과 일치하는 결과다.
정재승 교수는 “집단지성을 활용한 덕분에 몇 사람이 하기 힘든 데이터 분석 연구를 할 수 있었다”며 “연구 결과는
물론 데이터도 공개해 다른 집단지성 연구에도 활용할 수 있게 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