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웽~~.’ 하는 엔진소리가 시끄럽게 울려 퍼졌다. 검고 둥근 원통형 로봇 한 대가 땅을 박차고 하늘로 둥실 떠오르더니 15~20m 높이까지 훌쩍 솟아올랐다. 주변을 맴돌다 옆에있던 연못가로 날아갔다. 로봇이 두 개의 작은 물체를 물 위로 떨어뜨리자 물체는 즉시 부풀어 올라 노란색 구명조끼로 변했다.
한국생산기술연구원(이하 생기원) 로봇기술연구부 민군실용로봇사업단은 6월 30일 한양대 안산캠퍼스에서 ‘로봇산업교류회’를 열었다. 생기원은 이날 시험에서 재난구조용 비행로봇 ‘통돌이’를 이용해 물에 빠진 사람에게 구명도구를 떨어뜨려 주는 시범을 선보였다. 로봇의 영문 이름은 ‘TDL40’이다. 통돌이의 머릿글자를 따서 지은 이름이다.
이 로봇은 헬리콥터처럼 회전식 날개(로터)로 하늘을 난다. 직경 40cm의 원통형 구조로 사람이 팔로 안아 올릴 수 있을 만큼 작다. 통돌이는 이전 모델인 ‘TDL30’에 비해 힘이 한층 강해졌다.
TDL30은 충전식 전기모터를 사용했지만 통돌이는 30cc 가솔린 엔진을 쓴다. 2, 3kg 정도의 물건을 싣고 45분~1시간 가량 하늘을 날 수 있어 폭우나 수해로 고립된 섬이나 빌딩에 갇힌 있는 사람들에게 의약품이나 비상식량, 식수 등을 보급할 수 있다. 소방방재청 통계에 따르면 매년 물놀이 안전사고로 목숨을 잃는 사람이 150여명에 달한다. 야외활동이 많은 여름철에는 큰 도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몇 가지 의문이 생겼다. 통돌이는 취미용으로 시판되고 있는 무선조종(RC)헬리콥터와 달리 로터를 원통형 구조물(덕트)안에 감추고 있는 구조다. 왜 이런 복잡한 모습으로 만들었을까. 그리고 하늘을 날아가 물건을 떨어뜨리는 정도라면 보통 RC헬리콥터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이런 궁금증을 풀기 위해 일주일 뒤인 7월 7일 다시 한 번 생기원 안산분원을 찾았다. 이곳의 로봇기술연구부 민군실용로봇사업단은 군사용 로봇개발에 관한한 국내에서 둘째가라면 서럽다는 평가를 받는 곳이다. 네 발로 걷는 짐꾼로봇 ‘진풍’(견마로봇)을 개발한 것으로 유명하다. 최근에는 군인들의 힘을 몇 배로 늘려주는 입는 로봇 ‘하이퍼’를 개발해 화제가 됐다. 통돌이 역시 처음에는 감시, 정찰을 위한 군사용 로봇으로 개발됐다.
스스로 자세잡고 장애물도 피해‘통돌이가 RC헬리콥터와 비교해 뭐가 다르냐’고 묻자 개발을 담당한 신진옥 생기원 박사의 표정에 불쾌한 감정이 스쳐 지나갔다. 아예 비교할 대상이 아니라는 듯 힘주어 설명을 시작했다.
“로봇이라는 이름을 쓰려면 스스로 판단하고 움직일 수 있는 자율기능을 갖춰야 합니다. 사람의 손으로 모든 것을 조작하는 RC헬리콥터와 모든 기능을 자동화한 이 로봇은 모든 면에서 전혀 다릅니다.”
신 박사는 로봇 개발 중 가장 어려운 점이 “가만히 떠 있게 만드는 것”이라고 했다.
이 말은 어느 정도 수긍이 갔다. RC헬리콥터를 조종해 본 사람이라면 헬리콥터를 제자리비행(호버링) 시키는 게 얼마나 까다로운지 알고 있다. 손가락을 조금만 잘못 움직여도 앞뒤좌우로 날아다니기 일쑤다. 하늘에 떠 있는 물체는 공기의 흐름을 받으며 계속 움직여야 안정적이기 때문이다. 사람이 타는 진짜 헬리콥터라도 호버링은 까다로운 기술이다. 헬리콥터를 띄우려는 양력과 앞으로 나아가려는 추력의 합이 중력과 항력의 합과 꼭 같아야 한다. 바람이라도 불면 이런 규정을 맞추는 일은 더 까다롭다. 당연히 고도의 조종기술이 필요한 어려운 작업이다.
통돌이는 이런 호버링을 자동으로 해 낸다. 몸체에 숨어 있는 전자회로가 자동으로 균형을 잡아 주기 때문이다. 그 밖에도 균형을 잡거나 위험물을 회피하는 일은 모두 로봇이 알아서 한다. 사용자는 방향전환, 라이프자켓 투하 등 임무수행에 필요한 명령만 내리면 된다. 비행경로에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 정보를 미리 입력하면 원하는 장소까지 자동으로 날아가며, 빌딩 같은 장애물을 자동으로 피해서 움직인다. 중간에 통신이 끊어지면 일단 공중에 멈춰 다음 명령을 기다리는 기능도 갖고 있다. 통신 중단이 오래 지속되면 GPS기능을 이용해 현재 자신이 어느 위치에 있는지 파악하고 스스로 기지로 돌아온다.
왜 이런 기능이 필요할까. RC헬리콥터는 사람이 눈으로 보고 리모콘으로 조종하는 기계다. 조종 중에 잠시 딴눈을 팔다 헬리콥터나 비행기가 시야에서 사라져 버려 비싼 장비를 잃어버린 사람이 부지기수일 정도다. 하지만 통돌이는 다르다. 통신만 유지되면 지구 반대편에 있어도 조종이 가능하다. GPS로 자신의 위치를 파악하는데다 무선 송수신 장비를 이용하면 컴퓨터 앞에서 게임용 콘트롤러(조이스틱)로도 조종할 수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통돌이는 비디오카메라가 달려 있어 실시간으로 항공영상을 지상의 모니터로 보여준다. 하늘에 띄워 두는 것만으로도 감시, 정찰이 가능한 셈이다. 사람은 통돌이가 보낸 화면을 상황실에서 지켜보다가 꼭 필요한 명령만 내리면 된다.
신 박사는 “연료보급이나 정비 등에 드는 시간을 감안해도 이 로봇 3~4대만 있으면 넓은 해수욕장이나 계곡이 있는 큰 산 하나를 전부 감시할 수 있다”며 “여러 대의 로봇을 상황실에 앉아 있는 사람 혼자서 조종할 수 있어 굉장히 효율적”이라고 설명했다.
이런 일은 RC헬리콥터로는 할 수 없다. 하늘에서 내려다보며 감시할 수 없으니 결국 사람이 눈으로 보초를 서야 하고, 물에 빠진 사람이 발견되면 근처까지 RC헬리콥터를 들고 달려가야 한다. 목숨이 위험한 사람에게 이런 시간이 있을 리 없다. 통돌이는 하늘에서 지켜주고 있다가 위험한 일이 생기면 갑자기 나타나는 슈퍼맨 같은 친구인 셈이다.
꼬리날개 없앤 덕트형 구조
통돌이는 크기는 작지만 큰 힘을 낸다. 이런 덕트형 비행자율로봇은 현재 미국 ‘허니웰’이 개발해 군사용으로 실용화한 대단위 전투지원 비행로봇뿐이다. 미국이 특허를 갖고 있지만 2013년이면 만료되므로 한국, 대만, 이탈리아 등 세계 각국에서 통돌이와 비슷한 자율비행 로봇을 개발 중이다.
통돌이는 왜 덕트형으로 비행로봇을 만들었을까. 안전성 때문이다. 신 박사는 “통돌이만큼 힘을 낼 수 있는 비행로봇을 헬리콥터 형태로 만들면 꼬리날개의 길이를 확보해야 하므로 로터의 길이도 1m 가까이 된다”며 “이만한 로터를 휘두르는 물건을 인명구조용으로 쓸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사람을 구하러 가까이 날아갔다가 자칫 헬리콥터의 로터에 맞기라도 하면 오히려 큰 부상을 입힐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덕트형으로 헬리콥터 기능을 구현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대부분의 헬리콥터에는 꼬리날개가 있다. 자세를 안정시키기 위해서다. 헬리콥터는 로터를 회전시킬 때 생기는 양력을 받아 하늘로 떠오른다. 나라마다 다르지만 오른쪽으로 회전하는 로터를 가진 헬리콥터는 반작용 때문에기체가 왼쪽으로 돌아가려고 한다. 결국 꼬리날개에 붙은 작은로터로 이런 힘을 상쇄 시켜야 한다. 꼬리날개가 부러진 헬리콥터는 공중에서 빙빙 돌다가 결국 추락한다.
꼬리날개는 전쟁 당시 적군의 공격 목표가 됐기 때문에 사람들은 헬리콥터의 꼬리날개를 없애기 위해 여러 가지 로터모양을 구상해냈다. 앞, 뒤로 큰 로터 2개를 달아 각각 다른 방향으로 회전시키는 방법 ‘텐덤로터방식’은 지금까지도 대형 헬리콥터 등에 사용하고 있다. 두 개의 로터를 포개 동시에 다른 방향으로 회전시키는 ‘동축반전식’도 있지만 회전축에 무리가 가 여전히 꼬리날개를 다는 ‘싱글로터’방식이 주로 쓰인다.
균형 맞추는 작은 날개의 비밀
통돌이 개발팀도 같은 고민을 겪었다. 로터를 2개로 겹쳐 보았다가, 도넛과 같은 모습의 철제 틀을 만들고 그 속에 4개의 작은 로터를 넣기도 하는 등 디자인을 4번이나 변경했다. 최종적으로는 허니웰의 전투지원용 초소형비행체(MAV; Micro Air Vehicle) 로봇과 닮은 덕트형 구조로 완성했다. 덕트형 비행로봇은 어떻게 그런 반작용을 상쇄하는 것일까. 로봇 아래쪽에 붙은 작은 비행날개(플랩)에 비밀이 있다. 이 플랩은 로터가 회전하면서 불어 나오는 강한 바람을 비스듬히 뿜어내도록 해 균형을 맞춘다. 로터의 회전 속도가 빨라지거나 비행방향이 바뀔 때마다 시시각각으로 각도를 바꿔 줘야 하는 까다로운 작업이다. 통돌이가 단순한 헬리콥터가 아닌 전자동 로봇으로 불릴 수 있는 이유다.
“하늘에 떠 있는 눈을 가질 수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통돌이는 큰 의미가 있습니다. 군인은 전투에서 승리할 수도 있고, 산불을 미리 예방 할 수도 있지요. 인명구조 기능은 그런 ‘비행기능’에서 나온 선물일 뿐이지요.” 생기원 손웅희 로봇기술연구부장의 말이다.
구조전문 소방부대 ‘중앙119구조대’는 통돌이의 뛰어난 성능에 주목하고 여름철 해상인명 구조장비로 도입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하고 있다. 물에 빠진 사람에게 구조원들이 접근하는 동안에 비행로봇이 먼저 날아가 구조장비를 떨어뜨려 인명피해를 줄이는 데 도움을 줄 전망이다. 박상덕 민군실용로봇사업단장은 “비행로봇을 인명구조에 활용한 사례는 우리가 처음”이라며 “이미 상용화 직전 단계까지 연구한 만큼 비행로봇이 전국 물놀이 여행객들의 안전을 지킬 날이 곧 올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