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 아래 펼쳐진 넓은 모래벌판, 바람이 불면 바람결 따라 언덕이 생겼다가 없어지기를 반복하는 곳. 모래 도화지 위에 손으로 글씨를 쓰면 오래지 않아 모래바람에 뒤섞여 사라지는 곳. 아라비아에만 있을 것 같은‘모래사막’이 한국에도 있다. 백령도 남쪽 대청도에 있는 옥죽동사구다. 인천에서 북서쪽으로 약 200km 떨어진 이곳에는 한국의 3면을 두른 해안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모래사막이 펼쳐져 있다. 바람이 모래를 훑고 지나가는 소리를 들어보자. 깨알보다 잘고 고운 은빛 모래알들은 다시 찾아올 누군가를 그리워하는지 따가운 햇살에 반짝반짝 답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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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서 날아온 모래(황사)가 수천 년 동안 한 톨 한 톨 쌓여 대청도에는 모래가 많다. 옥죽동사구는 이 모래가 바람에 날리면서 쌓였다. 바람은 모래벌판 위에 빗으로 긁어 놓은 것 같이 기다란 지문을 남긴다. 모래벌판에 낙서하는 일만으로는 심심한지 바람은 언덕을 타고 오르면서 봉우리를 뾰족하게 만들거나, 꼭대기를 빗겨 지나가면서 언덕을 뭉툭하게 만든다. 바람이 심하게 불 때는 모래언덕 전체가 바람에 밀려 몇 m씩 움직이기도 한다.
생텍쥐페리의 ‘어린왕자’는 아니지만, 대청도에는 실제로 650년 전쯤 ‘어린 왕자’가 왔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원나라 마지막 황제였던 순제(1320~1370년)다. 그는 일찍이 어머니를 여의고 계모의 품에서 자랐다. 황후인 계모는 자기가 낳은 아들을 황제로 만들기 위해 당시 태자였던 순제를 내쫓을 계략을 세웠다. 계모는 태자가 자신을 겁탈하려 했다고 모함을 했고, 이를 믿은 황제는 태자를 대청도로 쫓아냈다. 황제가 세상을 떠난 뒤 오해가 풀린 태자는 원나라로 돌아가 황제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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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죽동사구
어린왕자 달랜 건 은빛모래
별이 아름다운 건 보이지 않는 꽃 한 송이가 있기 때문이야.
사막이 아름다운 건 어딘가에 우물을 감추고 있어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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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건너 중국 산둥반도에서 모래바람이 불어왔다. 먼 곳에서 찾아온 모래를 길들인 건 바람이다. 바람은 축구장이 70개나 들어갈 만큼 커다란(66만m2) 도화지에서 모래더미를 주물러 높이가 40m나 되는 언덕을 만들어낸 예술가다. 수천 년 동안 모래를 쌓았다가 무너뜨리고 뒤엎기를 반복하면서!
옥죽동사구는 대청도의 북쪽에서 겨울에 부는 북서풍을 바로 맞닥뜨리기 때문에 보통 해안사구와 달리 식물이 거의 자라지 않는다. 식물이 땅에 뿌리를 내리기도 전에 많은 모래가 순식간에 덮여 결국 ‘대머리’가 됐다. 바람이 아무리 세게 불어도 잎이 떨어질 나무가 없어서 외로운 옥죽동사구는 그 대신 모래알들이 바람의 질문에 대답한다. 바람이 불고 지나간 자리엔 모래알들이 바람의 지문(연흔)을 품는다. 물결 모양의 연흔은 바람이 불어오는 방향에 수직으로 생기기 때문에 연흔을 보면 바람이 어느 방향으로 부는지, 세기는 얼마나 되는지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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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바람은 변덕이 심해서 모래언덕에 지문을 남기는 것만으로 그치지 않는다. 겨울바람은 북서쪽에서 찾아와 사구 꼭대기에 날카로운 모서리를 잡는다. 바람과 함께 모래가 바다에서 육지를 향해 날리기 때문이다. 여름이 되면 바람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언덕을 쓰다듬어 완만하게 만든다. 바람이 육지에서 북쪽 바다로 불면서 사구 꼭대기에 있던 모래를 쓸어가기 때문이다.
옥죽동사구에 숨겨진 ‘우물’은 어린왕자의 눈물이 아닐까. 가족이 그립고 고향이 그립고, 장미꽃이 그리웠던 어린왕자가 바다를 보며 눈물지을 때 함께 울어주던 은빛 모래알들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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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탄동사구
바오밥나무 대신 곰솔
어린왕자가 대청도의 북동쪽 대신 남서쪽에 떨어졌다면 덜 외로웠을까. 사탄동사구에는 갯그령과 통보리사초처럼 모래땅에서 잘 자라는 풀부터 소나무나 참나무 같은 나무까지 다양한 식물들이 자란다. 바람을 바로 맞지 않기 때문이다. 사탄동사구는 겨울 북서풍이나 여름 남동풍에 바로 영향을 받지 않아 모래가 천천히 쌓여 식물이 자랄 수 있다.
사구에 식물이 뿌리를 내리면 땅이 점점 굳어지기 때문에 세찬 바람이 불어도 지형이 변하지 않는다. 서해안에 있는 사구들은 대개 사탄동사구처럼 식물이 자라고 토양이 단단하다.
사탄동사구는 소금기가 많고 모래가 뒤섞여 따가운 바닷바람으로부터 마을을 보호한다. 장미꽃을 지키기 위해 뜨거운 햇볕과 세찬 바람을 대신 맞은 어린왕자처럼 말이다. 이 곳의 ‘어린왕자’는 바오밥나무 대신 곰솔을 키운다. 곰솔은 보통 소나무와 달리 염분이 많은 모래땅에서도 잘 자라며 바닷바람을 막아 마을을 보호한다.
섬 하나에서 사구의 두 얼굴을 볼 수 있는 덕분에, 대청도는 한국 사구에 대해 자세하게 연구할 수 있는 적합한 장소로 꼽힌다. 그런데 옥죽동사구와 사탄동사구가 점점 좁아지고 있다. 특히 사탄동사구는 해안을 보호하겠다는 목적으로 사구와 해안이 만나는 자리에 방파제를 세워 자연을 해쳤다.
단기적으로 볼 땐 방파제를 세우면 해변을 넓게 쓸 수 있지만, 지진이나 해일로 해변에 있던 모래들이 바다로 쓸려 내려갈 경우 모래가 오고가는 길이 막혀 결국 해안이 훼손된다. 방파제가 파도에 쓰러지고 부서져 해안가에 시멘트 조각들이 널려 있는 것도 문제다. 당장 눈앞에 보이는 이익을 바라지 않고 어린왕자의 말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아름다움만 찾기엔 세상이 너무 각박해져 버렸다.
어린왕자가 지나간 발자취가 느껴지는 사구들. 지금 이 순간에도 바람은 풀밭을 흔들고 잔잔한 호수 위에 물결을 만듦과 동시에, 구슬땀을 흘리며 수천 년이 걸리는 모래작품에 힘을 쏟는다. 언젠가 어린왕자가 다시 찾아올 날을 기다리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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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텍쥐페리의 ‘어린왕자’는 아니지만, 대청도에는 실제로 650년 전쯤 ‘어린 왕자’가 왔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원나라 마지막 황제였던 순제(1320~1370년)다. 그는 일찍이 어머니를 여의고 계모의 품에서 자랐다. 황후인 계모는 자기가 낳은 아들을 황제로 만들기 위해 당시 태자였던 순제를 내쫓을 계략을 세웠다. 계모는 태자가 자신을 겁탈하려 했다고 모함을 했고, 이를 믿은 황제는 태자를 대청도로 쫓아냈다. 황제가 세상을 떠난 뒤 오해가 풀린 태자는 원나라로 돌아가 황제가 됐다.
옥죽동사구
어린왕자 달랜 건 은빛모래
별이 아름다운 건 보이지 않는 꽃 한 송이가 있기 때문이야.
사막이 아름다운 건 어딘가에 우물을 감추고 있어서야.
바다 건너 중국 산둥반도에서 모래바람이 불어왔다. 먼 곳에서 찾아온 모래를 길들인 건 바람이다. 바람은 축구장이 70개나 들어갈 만큼 커다란(66만m2) 도화지에서 모래더미를 주물러 높이가 40m나 되는 언덕을 만들어낸 예술가다. 수천 년 동안 모래를 쌓았다가 무너뜨리고 뒤엎기를 반복하면서!
옥죽동사구는 대청도의 북쪽에서 겨울에 부는 북서풍을 바로 맞닥뜨리기 때문에 보통 해안사구와 달리 식물이 거의 자라지 않는다. 식물이 땅에 뿌리를 내리기도 전에 많은 모래가 순식간에 덮여 결국 ‘대머리’가 됐다. 바람이 아무리 세게 불어도 잎이 떨어질 나무가 없어서 외로운 옥죽동사구는 그 대신 모래알들이 바람의 질문에 대답한다. 바람이 불고 지나간 자리엔 모래알들이 바람의 지문(연흔)을 품는다. 물결 모양의 연흔은 바람이 불어오는 방향에 수직으로 생기기 때문에 연흔을 보면 바람이 어느 방향으로 부는지, 세기는 얼마나 되는지 알 수 있다.
그런데 바람은 변덕이 심해서 모래언덕에 지문을 남기는 것만으로 그치지 않는다. 겨울바람은 북서쪽에서 찾아와 사구 꼭대기에 날카로운 모서리를 잡는다. 바람과 함께 모래가 바다에서 육지를 향해 날리기 때문이다. 여름이 되면 바람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언덕을 쓰다듬어 완만하게 만든다. 바람이 육지에서 북쪽 바다로 불면서 사구 꼭대기에 있던 모래를 쓸어가기 때문이다.
옥죽동사구에 숨겨진 ‘우물’은 어린왕자의 눈물이 아닐까. 가족이 그립고 고향이 그립고, 장미꽃이 그리웠던 어린왕자가 바다를 보며 눈물지을 때 함께 울어주던 은빛 모래알들이 있었다.
사탄동사구
바오밥나무 대신 곰솔
어린왕자가 대청도의 북동쪽 대신 남서쪽에 떨어졌다면 덜 외로웠을까. 사탄동사구에는 갯그령과 통보리사초처럼 모래땅에서 잘 자라는 풀부터 소나무나 참나무 같은 나무까지 다양한 식물들이 자란다. 바람을 바로 맞지 않기 때문이다. 사탄동사구는 겨울 북서풍이나 여름 남동풍에 바로 영향을 받지 않아 모래가 천천히 쌓여 식물이 자랄 수 있다.
사구에 식물이 뿌리를 내리면 땅이 점점 굳어지기 때문에 세찬 바람이 불어도 지형이 변하지 않는다. 서해안에 있는 사구들은 대개 사탄동사구처럼 식물이 자라고 토양이 단단하다.
사탄동사구는 소금기가 많고 모래가 뒤섞여 따가운 바닷바람으로부터 마을을 보호한다. 장미꽃을 지키기 위해 뜨거운 햇볕과 세찬 바람을 대신 맞은 어린왕자처럼 말이다. 이 곳의 ‘어린왕자’는 바오밥나무 대신 곰솔을 키운다. 곰솔은 보통 소나무와 달리 염분이 많은 모래땅에서도 잘 자라며 바닷바람을 막아 마을을 보호한다.
섬 하나에서 사구의 두 얼굴을 볼 수 있는 덕분에, 대청도는 한국 사구에 대해 자세하게 연구할 수 있는 적합한 장소로 꼽힌다. 그런데 옥죽동사구와 사탄동사구가 점점 좁아지고 있다. 특히 사탄동사구는 해안을 보호하겠다는 목적으로 사구와 해안이 만나는 자리에 방파제를 세워 자연을 해쳤다.
단기적으로 볼 땐 방파제를 세우면 해변을 넓게 쓸 수 있지만, 지진이나 해일로 해변에 있던 모래들이 바다로 쓸려 내려갈 경우 모래가 오고가는 길이 막혀 결국 해안이 훼손된다. 방파제가 파도에 쓰러지고 부서져 해안가에 시멘트 조각들이 널려 있는 것도 문제다. 당장 눈앞에 보이는 이익을 바라지 않고 어린왕자의 말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아름다움만 찾기엔 세상이 너무 각박해져 버렸다.
어린왕자가 지나간 발자취가 느껴지는 사구들. 지금 이 순간에도 바람은 풀밭을 흔들고 잔잔한 호수 위에 물결을 만듦과 동시에, 구슬땀을 흘리며 수천 년이 걸리는 모래작품에 힘을 쏟는다. 언젠가 어린왕자가 다시 찾아올 날을 기다리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