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노기술은 어느 한 전공이 독점할 수 있는 분야가 아니라 여러 학문의 융합이 필요한 완전히 새로운 연구분야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으라는 말처럼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려면 새로운 관점과 지식이 필요하다. 그런 면에서 휼륭한 연구성과를 보여주는 ‘멀티스케일 에너지 시스템’ 연구실에 도전정신을 갖고 지원했다.
처음 연구실에 들어오니 생활환경도 학부 때와 다르고, 연구도 했다. 대학교에 다닐 때는 그저 주어진 것만 잘 하면 된다. 하지만 대학원에서 하는 연구는 그런 것이 아니다. 새롭게 질문을 던지는 것이 중요하다. 동료들과 함께 연구하는 것은 필수다. 다행히도 교수님이 자율성을 보장해 주고 선배들도 잘 챙겨줘서 새로운 환경에 빨리 적응했다.
연구실에서는 학생들끼리 내부적으로 정한 출퇴근 시간이 있긴 했다. 하지만 교수님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출퇴근 시간을 강제하지는 않았다. 학생들이 다양한 학회에 되도록 많이 참여해 연구에 대한 동기 부여를 받게 했다. 학회 기간이 끝난 후에는 이틀 정도 학생들끼리 어울릴 수 있는 자유시간을 줬다. 덕분에 재충전의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이러한 자유로운 분위기가 바로 새로운 아이디어와 연구주제들이 나올 수 있었던 배경이었다.
물론, 자유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교수님과 정기적인 주간 미팅에서 실험계획과 결과를 발표했다. 자율성과 다양한 경험이 보장되는 대신 결과에 대한 책임감은 필수였다. 교수님은 미처 생각하지 못한 부분까지 세세하게 지적했기 때문에 미팅 시간은 긴장이 될 수밖에 없었다.
교수님께서 항상 강조하던 것 중에 크게 공감하는 내용이 있다. 실패한 것처럼 생각되는 실험결과도 실패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예상한 내용과 다른 결과가 나오면 그 결과에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기보다 잘못된 결과라고 생각하고 그냥 무시해버리는 것을 경계하라는 것이다. 필자가 했던 나노입자를 3차원 형상으로 쌓아올리는 연구도 다른 실험을 하던 중 아이디어를 얻은 것이었다. 원래는 나노입자를 얇게 코팅하는 데 필요한 질소 양이온을 발생시켜 기판에 얇게 입히려고 했다. 그런데 예상과는 다르게 나노입자가 버섯 모양으로 쌓인 구조물이 만들어졌다. 이 결과를 지나치지 않고 교수님과 논의한 후에 나노입자를 재료로 삼아 버섯, 꽃, 클로버 등 다양한 모양의 3차원 나노구조물을 만들었다. 동료 연구원들과 함께 더 연구해 나노분야의 저널인 ‘나노레터스’에 논문을 실었다.
필자는 지금 삼성전자 생산기술연구소에서 차세대 반도체 장비 개발에 대한 연구를 한다. 대학원 때 하던 연구와 같은 분야는 아니다. 그러나 연구하는 데 필요한 체계적 사고와 기초지식은 지금도 큰 도움이 된다. 대학원 시절이 소중한 순간이었다는 생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