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종종 도시건축설계연구실(AUM)에서 무엇을 배웠냐는 질문을 받는다. 도시건축설계연구실은 건축과 도시의 상호작용에 주목한다. 좁게는 건축, 넓게는 도시를 다룬다. 각자가 탐구하는 주제는 도시주거, 인프라스트럭처(사회기반시설), 재래시장 등 다양하다.
도시건축설계연구실은 출퇴근 시간이 따로 없다. 논문연구 시간을 빼면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 자유다. 필자는 연구실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연구실 한쪽 벽에 위치한 책장에는 다양한 전문서적 뿐만 아니라 선배들이 다녀온 여행, 세미나, 프로젝트 자료가 차곡차곡 정리돼 있어 아늑했다. 책장 한 켠에서 사람들과 이야기도 나누고 게임도 하고 세미나, 공모전도 했다. 이런 자유로운 분위기는 논문을 쓸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교수님이 먼저 무엇을 쓰고 싶은지 물었고, 필자가 생각한 주제를 듣고 기뻐하며 참고할 만한 사례를 꼽아줬다. 어떤 일을 시작할 때 교수님은 항상 학생 스스로 시작하게 했고, 믿음과 도움을 주셨다. 이런 분위기 덕분에 연구실 졸업생들은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 것을 좋아하고 두려움이 없는 편이다. 졸업한 후에도 일요일에는 선배들과 만나 다양한 주제에 대해 이야기하는 시간을 갖는다.
도시건축설계연구실은 다양한 프로젝트를 한다. 연구실에서 생활한 2년 동안 규장각 리모델링 제안, 아산시 근대문화유산활용 창작벨트 조성사업, 서울 디자인올림픽 전시준비, 여름건축학교 준비 등 많은 일을 했다. 특히 창작벨트 조성사업이 기억에 남는다. 더 이상 기차가 다니지 않는 철도 폐선 부지와 그 옆의 오래된 농협창고를 공연시설로 탈바꿈시키는 프로젝트였다. 역사, 조경, 도시재생, 건축기술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과 함께 일한 경험은 수 백 권의 책으로도 배울 수 없는 값진 것이었다. 사실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과정은 힘들었다. 첫 회의 시간에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사람들과 각자 해야 할 일을 정리해야 했다. 학부 수업은 혼자 만들고 그려서 발표하는 식이었기 때문에 다른 사람과의 의견조율 과정 자체가 낯설었다. 처음 만든 표는 허술했다. 하지만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표는 점점 정교해졌고 의견을 조율하고 일정을 관리하는 능력도 한 뼘씩 자랐다. 교수님은 ‘프로젝트를 장악해야 한다’는 말을 자주 하신다. 직접 프로젝트를 경험하면서 꾸중을 많이 들었지만 ‘어떻게’ 프로젝트를 장악해야 하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필자는 지금 경영위치 건축사사무소에서 프로젝트 디자이너로 일하고 있다. 여전히 일요일에는 선배들과 토론하고 작업한다. 최근에는 국립중앙박물관 앞 버스정거장 설계에 우선 협상작으로 당선돼 개인적으로도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다. 2년간의 연구실 생활이 낳은 작은 결실이고, 그 배움을 실천할 기회를 얻은 것이 진심으로 기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