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재학교와 용인외고에 지원했다가 떨어지고 자율형 사립고인 J고등학교에 입학한 K학생은 요즘 고민이 많다. 실패를 겪으면서 의기소침해졌다.
“꿈이 화학교수구나?”
“네. 화학은 중학교 1, 2학년 때부터 흥미가 있었어요. 대회에도 나가봤어요. 한국 중학생 화학대회(KMChC)에서 중학교 2학년 때는 장려, 3학년 때는 동상을 받았어요. 나중에 기회가 왔을 때 잡기 위해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긴 해요. 그런데 선생님. 화학교수가 꿈이라고 이야기는 했지만 과연 정말 하고 싶은 것인지 잘 모르겠어요.”
K학생은 화학이 재밌어서 공부를 했다기보다 공부를 하니 결과가 잘 나와서 흥미를 붙였다. 그러나 그것이 적성이라고 할 수 있는지 계속 의구심이 들었다. 하지만 K학생의 화학성적이 매우 높은 걸로 미뤄보면 화학에 적성이 있을 가능성이 크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많이 해본 것 중에서 잘하는 것을 좋아한다고 생각해. 근데 정말 좋은 건지 다시 생각해 보자고 할 수 있는 건 중학생 때야. 고등학교 1학년은 그런 시기는 아니란다. 지금까지 네 속의 보물창고를 봤을 때 가장 빛나는 건 화학이야. 그걸 잘 다듬어야지.”
화학을 좋아하고 한국 중학생 화학대회에도 참여한 K학생이지만 화학에 관련된 책은 별로 읽어본 적이 없다. 왜 화학을 공부하는지를 알아야 목표가 정확하게 생겨서 공부를 오래 할 수 있는 힘이 생긴다. 이런 K학생에게 상담 선생님은 화학이나 과학을 다룬 책을 읽어 보고 독후감을 쓰는 것을 권했다.
“책을 읽으면 화학을 공부해서 환경을 살리는 방법이나 신약 개발, 바이오 에탄올과 같은 대체 에너지 개발 등 구체적인 분야를 알 수 있어. 문제집이나 교과서에서 배운 화학이 그냥 문자로 기억되는 게 아니라 실제 현상과 연결되니까 공부도 더 재밌어질 거야. 구체적으로 전공하고 싶은 분야도 찾을 수 있고.”
“그런데 선생님 책을 읽을 시간이 별로 없어요.”
학년이 높아질수록 학교 수업시간도 늘어나고 방과후에도 수업을 듣는 등 책을 읽을 시간이 부족해진다. 그렇다고 책을 읽지 않을 수는 없다. 시간 계획을 잘 세워서 낭비하는 시간을 없애야 한다.
“집중력, 전략적 사고, 성실함은 뛰어나구나. 그럼 이제 시간관리를 어떻게 할지 계획을 세우자. 요일별로 지금 시간을 어떻게 쓰고 있는지 써봐. 그리고 요일별로 시간 계획을 세워. 굳이 학원을 다녀야 하는지, 점심시간이나 쉬는 시간을 활용해서 숙제를 학교에서 다 할 수 있는지, 점심시간에 책을 읽을 수 있는 분위기인지를 파악해. 사람마다 밤늦은 시간에 수학을 공부하는 게 능률이 높은 사람이 있고 영어가 더 나은 사람이 있어. 밤에 졸릴 때 수학을 푸는 게 덜 졸린다면 수학공부를 하고, 힘들다면 단기 목표로 영어 단어 50개 외우기, 독해문제 5개 풀기 이런 식으로 계획을 세우는 게 좋지.”
학습방법에 대한 책이나 노트 필기법 등 다양한 학습관련 책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참고자료로 삼는 것은 좋지만 다른 사람에게 그 방법이 맞았다고 해서 나도 그 방법을 썼을 때 같은 결과가 나오는 것은 아니다.
공부하는 방법을 이미 익힌 상위권 학생이라면 자신의 스타일을 보완해 나가는 편이 좋다. K학생의 경우 시간 관리를 잘 해서 책을 읽을 시간을 만드는 것이 우선이었다. K학생은 공부를 시작하기까지 걸리는 준비 시간이 좀 길다고 했다. 공부하기로 마음먹고 책상을 정리하고 이것저것 책도 정리하다 보면 30~40분이 훌쩍 지나간다. 이 시간이면 책을 읽기에 충분한 시간이다.
“매우 좋지 않은 습관이야. 결국 게으름 때문이야. 육상 경기도 스타트가 좋아야 해. 오래 달리기든 단거리든 스타트가 좋아야지. 박태환 선수가 수영할 때도 스타트에 많은 신경을 써. 네가 정말 최고가 되려면 습관을 바꿔야 해.”
공부하는 시간을 재면서 공부하는 것도 좋다.
K학생은 영어 성적이 뛰어난 편은 아니다.
“저는 외우는 걸 잘 못해서 어휘능력이 좀 떨어지고요. 읽는 속도가 느려서 독해가 힘들어요. 초등학교 때 공부를 했어야 하는 건데 그 때 못해서 그런가 봐요.”
“그건 핑계야. ‘나는 못 외우고 느린 사람이에요’ 그러면서 자신의 나쁜 습관을 놔두는 게 가장 나쁜 거야. 단점이 있으면 고치려고 노력해야지. 수학, 과학은 잘하는데 외국어를 못하면 갈 수 있는 학교가 제한돼. 단점을 고쳐서 반드시 실력을 만들어 놓도록 하렴.”
많은 고등학생들이 실패를 두려워한다. 성공에서도, 실패에서도 뭔가 배우는 때가 학생 때다. 관심 분야와 관련된 모든 것에 참여하고 책도 읽어 보자.


“저는 반도체나 순수 물리를 공부하고 싶어요.”
L학생은 중학교 때 성적이 전체 490여 명 중 10위 안에 들었던 우수한 학생이다. 사실 문과를 지망했다. 국어 성적도 좋은 편이고 글쓰기나 말하기 능력도 뛰어났다. 그런데 중학교 3학년 기말고사 때쯤 갑자기 마음이 바뀌었다. 화학이 좋아졌다. 그래서 과학중점학교에 지원했다.
“실험도 하고, 책도 읽다 보니 화학이 갑자기 좋아졌어요. 그러다가 ‘이휘소 평전(강주상, 럭스미디어)’을 읽고 물리에 흥미가 생겼어요. 지금은 물리가 너무 좋아요. 그런데 물리가 저에게 맞는지 잘 모르겠어요.”
“겪어 봐야지. 인터넷 강의를 듣거나 물리에 대한 책을 읽거나 뭐든 해봐야 알 수 있어.”
되도록 많은 책을 읽으면 관심 분야의 다양한 응용분야를 알 수 있다. 구체적인 꿈을 찾을 수 있는 지름길이다. 과학 문제집을 풀거나 교과서에서 얻은 과학지식도 그 의미와 실제 쓰이는 곳을 알 수 있어 지식이 더 공고해진다.
대체로 상위권 학생들은 학교 시험에서 과목별로 어떻게 공부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는 경우가 많다. L학생도 공부 방법은 알고 있었다. 수학은 ‘수학의 정석-기본편’으로 공부하면서 인터넷 강의를 들었다.
“기본을 공부하면서 인터넷 강의를 들은 건 잘했어. 이제 심화를 해야지. 심화는 인터넷 강의로만 하기 힘들어. 질문을 해야 하잖아. 혼자 다 하는 게 자기주도학습이 아니야. 내가 뭘 잘하고 못하는지 정확히 분석하고, 못하는 것은 어떤 식으로 도움을 받을지도 자신이 생각하는 것이 자기주도학습이야.”
모르는 것을 끝까지 붙잡고 혼자 해결하는 것도 물론 나름의 의미는 있다. 하지만 고등학교 생활에서 공부할 수 있는 시간은 한정돼있다. 제한된 시간을 누가 효율적으로 쓰느냐가 관건이다. 모르는 것을 선생님께 끈질기게 질문하고 알아내는 것이 중요하다. 시간 관리면에서도 효과적인 자기주도학습법이다.
과학중점학교의 과학중점과정 학생들은 과학Ⅰ·Ⅱ과목을 모두 들어야 한다. 일반과정보다 과학 공부량이 많다. 하지만 이공계 대학에 들어간 이후를 생각한다면 모두 공부하는 것이 좋다. 학교에 따라서는 과학중점과정반 내신 등급을 따로 내는 경우가 있다. 이런 경우는 좋은 내신 등급을 받기 힘들 수 있다. 대부분의 학교는 과학중점과정 학생들이 내신에서 손해를 보지 않게 하고 있으나 미리 알아보는 것이 좋다.
L학생은 물리에 재미를 붙여서 아주 어려운 물리 문제집도 풀고 싶어했다. 그런데 주변에서 그런 책은 교과서에 나오지 않는 어려운 내용이 많아서 공부하면 오히려 헷갈린다고 말렸단다.
“아니야. 네가 하고 싶은 대로해. 지금은 교육과정이 바뀌면서 과학이 상당히 어려워졌어. 물리Ⅰ도 마찬가지야. 어려운 책으로 준비하면 융합과학은 충분히 대비할 수 있을 거야. 1학년 1학기 수학은 인터넷 강의를 들으면서 스스로 2권 정도의 문제집을 풀면 돼. 그리고 2학기 범위 수학 기본을 공부해. 그렇게 해서 여름방학 때 2학기 범위를 심화해서 공부하는 거야. 여름방학 때 열심히 할 각오가 있어야겠지? 그렇게 심화까지 완성하면 기출문제도 더 많이 풀 수 있고 2학기 때는 더 높은 성적도 기대할 수 있어.
2학기 때 수Ⅰ 인터넷 강의를 그냥 훑어보듯이 들어봐. 그리고 겨울방학에는 수Ⅰ심화를 시작해서 수Ⅱ, 적분과 통계, 기하와 벡터를 한 번씩 훑어보는 거야. 그냥 구경하듯이 보는 거라도 공부한 것과 안 한 것은 차이가 많아. 이렇게 하면 2학년 때 수학은 뒤처지지 않을 거야.”
최근 수학능력시험의 난이도가 낮아졌다. 대학별로 반영하는 비율도 낮아지는 추세다. 때문에 대학별 고사에 대한 준비가 필수다. 상위권 대학은 수리논술의 비중이 크다. 수리논술 준비는 2학년 겨울방학 때부터 하자.

영어는 어느 분야로 가든지 기본이다. 과학자, 회사원등 영어를 하지 않고는 소통을 할 수 없다. 입시는 남에게 보여주는 게 아니라 합격 후, 진로를 선택할 때를 생각해서 준비하는 것이다. L학생이 과학을 전공하고 원하는 연구를 하려면 그 연구를 하는 좋은 연구실에 들어가야 하는데 주로 최상위권 대학에 그런 연구실이 많다. 상위권 대학은 언어, 수리, 외국어, 탐구 과목에 최저학력 기준을 두기도 하고 반영비율을 달리해서 보기도 한다. 특히나 외국어를 중요하게 보는 학교도 있기 때문에 이과 학생이라도 영어 공부를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L학생은 과학에 흥미가 생겨 문과에서 이과로 진로를 바꾸긴 했지만 문과 관련 과목 성적도 좋고 글쓰기도 잘하기 때문에 문과 쪽이 더 맞는 것은 아닌지 불안해했다. 그러나 지금은 바야흐로 융합이 키워드인 시대다. 자신의 연구성과가 아무리 뛰어나도 글이나 말로 다른 사람에게 알리거나 설명할 수 없다면 의미가 없다. 학문을 탐구하는 것을 좋아하고 사람들에게 알려주는 걸 좋아하는 것이 이과 리더쉽이다. 즐길 줄 알아야 한다.
“영어를 잘하거나 글을 잘 쓰거나 문학을 잘하는 것도 이과 상위권 학생들이 가져야 할 기본 덕목이야. 그리고 그냥 잘하니까 선택하는 것은 권하고 싶지 않아. 잘하는 것과 재미있는 것 중에 어떤 걸 더 오래할 수 있을까?”
“재미있는 거요.”
같은 돈을 받고 일해도 재미있는 일을 하는 것과 먹고 살기 위해 일을 하는 것은 행복지수 차이가 크다. 또한 빠르게 변하는 시대에서 어떤 일을 해야 돈을 더 많이 벌 것이라는 예측은 의미가 없다. 공부하는 과정 자체가 행복해야 성적도 오른다.
L학생은 이과이면서 글을 잘 쓰는 것이 특기다. 이것을 살릴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동아리를 이용해봐. 과학 실험반만 생각하지 말고 학교 신문반에 들어가는 것도 좋은 방법이겠다. 학생 기자로서 생물 동아리 탐방을 하는 거야. 생물 실험에 대해 쓰고 관련된 자료도 찾고 그렇게 과학기사를 쓸 수 있지. 존경하는 과학자에게 편지를 써서 인터뷰를 할 수도 있어. 글 못쓰는 이과 학생이 할 수 없는 뭔가 다른 것을 찾아보렴.”
신문반 활동은 기사가 기록으로 남기 때문에 나중에 자기소개서를 쓰거나 첨부할 때도 매우 좋은 자료가 된다.
“자신감을 가져. 완벽할 필요 없어. 공부를 즐겨. 완벽하게 공부하려고 하기보다 즐겨.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고 도전해. 남들과 다른 너의 장점을 잘 부각시켜보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