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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서 만났어?”

“뭐 하는 사람이야?”

친구들이 모인 자리. 얘기의 소재는 최근 내가 새로 만나는 연인이다.

“넌 그 사람 어디가 좋아?”

이야기를 이어가던 중 잠시 대답을 멈췄다.

오빠가 좋은 이유? 사전 속 단어처럼 깔끔하게 정의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 중 하나는 바로 오빠의 체취. 폭 안겨 있으면 맡을 수 있는 그 냄새는 오빠의 체온만큼이나 따뜻하다. 냄새가 주는 포근한 기분이 좋아서 오늘 입은 옷을 다음날도 입고 오라고 부탁한 적이 있을 정도다.

힘든 일이 있거나 어딘가 기대고 싶을 때면 오빠의 체취가 더욱 그립다. 체취를 맡는 것만으로도 오빠가 나를 안아주는 장면을 떠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냄새는 기억과 그때 느낀 감정을 떠올리는 힘을 가지고 있다. 프랑스의 작가 마르셀 프루스트의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도 주인공이 마들렌을 홍차에 적셔 먹을 때의 냄새에 이끌려 어린 시절을 회상하는 이야기가 나온다. 이렇게 냄새가 당시의 감정을 이끌어내는 것을 ‘프루스트 현상’이라고 한다.
 
[마르셀 프루스트는 마들렌 향기를 맡고 어릴 적 기억을 떠올렸다. 이렇게 향기가 기억을 끌어내는 것을 ‘프루스트 현상’이라고 한다.]

2001년 미국 모넬화학감각연구센터의 레이첼 헤르츠 박사팀은 이 현상을 과학적으로 증명했다. 연구팀은 사람들에게 사진을 보여주고 동시에 그 사진과 관련 있는 향기를 맡게 했다. 그 다음엔 향기만 맡은 상태에서 사진을 기억하도록 했다. 그 결과 사진만 봤을 때보다 향기를 함께 맡았을 때 사진의 느낌을 더 잘 기억해낸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반면 향기 대신 어떤 물건을 잡게 하는 촉각 자극이나 음악 같은 청각 자극을 줬을 때는 이런 효과가 없었다. 헤르츠 박사는 냄새가 감정을 담당하는 대뇌 변연계를 자극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모든 생물의 후각 기관은 변연계와 직접 맞닿아 있다. 뇌의 변연계가 후각을 담당하는 조직에서 진화했기 때문이다. 내가 오빠와 같이 있는 동안에도 자꾸만 오빠를 떠올리게 되는 것은, 오빠 냄새가 계속 감정을 자극하기 때문인가 보다.

오빠 냄새의 정체는?

한번은 길을 가다 오빠 냄새를 맡았다. 버터 사탕의 달달한 냄새와 비오는 날 운동장에서 나는 비릿한 냄새가 섞인 그 냄새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오빠 냄새를 따라 들어간 곳은 천연 비누와 입욕제 같은 목욕용품을 파는 가게였다.

“이건 무슨 향인가요?”

점원은 ‘머스크’라고 말해줬다. 이곳에서 가장 인기 있는 향이란다.
“머스크?”

집에 와서 찾아봤다. 머스크(사향)는 사향노루의 향낭 속에 들어 있는 것으로, 가장 먼저 향수의 원료로 사용된 향이라고 한다. 또 머스크가 남성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과 냄새가 매우 비슷하다는 사실도 알았다. 내가 좋아하는 오빠 냄새는 바로 남자 냄새인 것이다. 그 가게뿐 아니라 머스크가 전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향이라니, 남자 냄새를 좋아하는 여성은 비단 나만은 아닌가 보다.

미국 모넬화학감각연구소의 조지 프레티 박사는 여성들이 남성의 냄새를 좋아하는 이유를 연구했다. 프레티 박사는 실험에 참가한 여성들에게 남성의 겨드랑이 땀을 패드에 모아 그 냄새를 맡게 했다. 체취는 보통 땀, 타액, 오줌 같은 분비물과 배설물에 잘 묻어나기 때문이다. 프레티 박사팀은 여성들이 땀 냄새를 맡는 순간, 뇌의 시상하부가 활성화되는 것을 관찰했다. 시상하부는 성 호르몬을 분비하는 부분으로, 다시 말해 이성의 냄새를 맡으면 성적 충동을 느낀다는 것이다. 프레티 박사는 후각의 신경과 뇌에서 쾌락을 담당하는 부분의 회로가 직접 연결돼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머스크처럼 사람 체취와 비슷한 향으로는 ‘용연향’도 있다. 용연향은 말향고래의 장 안에 생긴 돌을 분리해 말린 물질에서 추출한다. 말향고래 장 안의 분비물이 바다 위에 떠다니는 것을 건져 말려 쓰기도 한다. 이밖에도 사향고양이의 향주머니에서 나온 영묘향, 비버의 향주머니에서 추출한 해리향 같은 향도 있다. 이런 동물성 향 역시 인기 있는데, 여기에는 페로몬이 많이 들어 있다. 페로몬은 동물들이 배우자를 유혹하기 위해 분비하는 물질이다. 나비가 짝짓기를 할 때 수컷은 암컷이 방출한 페로몬을 감지해 10km 떨어진 곳에서도 정확히 암컷에게로 날아갈 수 있다.




그렇다면 사람은 향기가 아닌 페로몬에 끌리는 걸까. 과학자들은 사람에게서 페로몬을 감지하는 데 관여하는 유전자인 ‘TRP2’를 찾아냈다. 하지만 사람의 TRP2 유전자는 염기서열에 변이가 많이 생겨 지금은 아무런 기능을 하지 않는다. 유전자의 흔적만 남은 셈이다. 개코원숭이, 침팬지, 고릴라 같은 원숭이류도 마찬가지다. TRP2 유전자를 컴퓨터로 시뮬레이션해본 결과, 이 유전자는 이미 2300만 년 전에 기능을 잃은 것으로 밝혀졌다. 이 시기는 고대 영장류가 모든 색을 구별해낼 수 있을 정도로 시각이 발달한 때다. 즉 눈으로 색을 구별하는 능력이 발달하며 페로몬을 감지하는 유전자는 기능을 잃었다는 의미다.

하지만 사향, 용연향처럼 페로몬 성분이 들어 있는 향수를 쓰면 분명 이성을 끄는 효과가 있다. 이런 향은 고대 이집트에서도 최음 작용을 위해 이용했다. 지금도 병원에서 성적 자극에도 흥분하지 않는 ‘성각성 장애’ 환자나 성욕이 감소한 환자에게 향기 요법을 권한다. 방법은 간단하다. 공기 중에 향수를 뿌리거나 작은 촛불로 향유를 증류시키면 된다. 향이 몸에 오래 머무르기를 원하면 향료를 목욕물에 몇 방울 떨어뜨리면 된다.



내 코, 오빠 냄새를 좋아하도록 설계됐다

“오빠 냄새 좋지, 근데 난 그냥 냄새보다는 비누 냄새가 날때가 더 좋더라.”

“나는 비누 냄새보다 좀 시원한 향수 있지. 그거 뿌렸을 때가 좋던데. 체취와 적절히 섞이면 매력 있어.”

오빠 냄새가 좋다는 내 말에 공감한 친구들이 한 마디씩 덧붙였다. 이렇게 좋아하는 냄새가 각자 다른 이유는 사람마다 냄새 분자를 감지할 수 있는 수용체가 다르기 때문이다. 이 수용체 차이 때문에 심지어 같은 남성의 체취라도 맡는 사람에 따라 달라진다. 내겐 달콤하고 따뜻하게만 느껴지는 오빠 냄새가 내 친구에게는 역한 냄새가 될 수도 있다는 말이다.




미국 듀크대와 록펠러대 연구팀은 여성 400명에게 한 남성의 땀을 모은 패드에서 어떤 냄새가 나는지를 물었다. 같은 패드의 냄새를 맡고 어떤 여성은 “바닐라 향 같은 달콤한 냄새가 난다”고 말했고, 어떤 여성은 “아무 냄새도 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심지어 지린내가 난다는 여성도 많았다. 연구팀은 이 여성들의 혈액에서 DNA를 추출한 다음 염기서열의 차이를 분석했다(SNP분석). 그 결과 400여 개의 냄새 수용체 중 하나인 OR7D4 유전자의 변이에 따라 안드로스테논이 각각 다른 냄새로 감지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안드로스테논은 남성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이 분해될 때 만들어지는 물질로, 남성의 체취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는 성분이다. 아직 사람의 안드로스테논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는 알지 못하지만 돼지의 경우, 암컷의 성욕을 자극하는 강력한 성적 신호 물질이다. 이 연구 결과는 2007년 9월 27일 ‘네이처’에 실렸다.

유전자에 따라 선호가 달라지는 것은 안도로스테논 냄새뿐 아니다. 스위스 연방공대의 오구스트 하메를리 박사팀은 남녀 116명에게 향수의 주성분인 삼나무, 장미, 계피, 이끼 등 10가지의 다른 향기를 맡고 이 중 어떤 향기가 좋은지를 조사했다. 그 결과 각각의 향기에 대한 선호는 면역유전자인 MHC의 서열에 따라 다른 것으로 나타났다.
 
[과학자들은 쥐에서 페로몬을 감지하는 여러 유전자를 찾아냈다. 유전자는 실제로 쥐의 콧속 상피조직에서 단백질을 만든다.]

MHC는 이전에 많은 연구에서 이성의 호감을 얻는 냄새와 관련 있는 유전자로 알려졌다. 특히 ‘땀에 젖은 셔츠’ 실험이 유명하다. 여성에게 남성의 땀에 젖은 셔츠 냄새를 맡게 하고 가장 끌리는 냄새를 선택하도록 하면, MHC 유전자 서열이 자신과 가장 크게 차이나는 사람의 셔츠를 고른다는 것이다. 생물학자들은 이런 현상을 근친교배를 막으면서 보다 다양한 면역체계를 갖춘 후손을 낳도록 진화한 결과라고 설명한다.

내가 오빠 냄새를 좋아하는 이유는 바로 유전자에 있는 것이다. 내 코는 오빠 냄새를 좋아하도록 설계됐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디에 있든지, 언제 만났든지 관계없이 결국은 사랑에 빠지도록 결정돼 있었던 걸까. 이미 우리가 태어나기 전부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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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3월 과학동아 정보

  • 신선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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