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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동아리의 한계를 뛰어넘다

① 서울 현대고 자동차항공기연구반




혹시 자동차항공기연구반을 아세요?”

과학동아 편집부로 한 통의 e메일이 도착했다. “혹시 자동차항공기연구반을 아세요?”로 시작한 메일은 동아리에서 작은 요트를 만들었고 시험운행을 끝마치고 이제 사람들에게 공개하려고 한다는 내용이었다.

엥? 고등학교 과학동아리에서 요트를 만들었다니 놀라울 뿐이었다. 모형 요트이겠거니 하고 사진을 봤다. 물 위에 떠있는 요트 위에는 사람이 타고 있었다. 현대고 자동차항공기연구반(이하 자항연)이 만든 것은 실제로 사람이 탈 수 있는 미니요트였다.

자항연은 예전부터 자동차, 항공기, 호버크래프트(수면에 압축공기를 내뿜어서 물위에 살짝 뜬 채로 움직이는 배) 등을 만들어왔다. 현재 구기복 선생님이 이끌고 있다. 2011년 퇴임했지만 명예교사로 자항연만을 맡고 있다. 대체 가능한 사람이 없을 정도로 구기복 선생님의 손이 가지 않은 곳이 없는 동아리다.

고등학생이 만든 요트 타보실래요

자항연 교실은 다른 교실과는 다르게 유독 문이 크다. 게다가 빨간색 문이다. 작업복 차림으로 작업을 하고 있던 구기복 선생님은 “이 빨간 문은 학생들이 만든 자동차나, 비행기, 요트를 운반하기 쉽게 크게 만든 것”이라고 설명했다.

올해는 요트를 만들기로 결정하고 학생들이 스스로 자료를 모았다. 과학동아로 e메일을 보냈던 정지원 학생은 “요트를 만들기로 하고 알아봤더니 미국 보스턴에 작은 요트를 설계하고 만드는 분이 있었다”며 “한 달 넘게 팩스를 보내서 어렵게 설계도를 얻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 설계도로 만든 것이 지금 마무리 작업이 한창인 ‘퀸맵(Queen Mab)호’다. 이 요트가 첫 번째 요트는 아니다. 예전에 만들었던 ‘HD24호’는 구글을 열심히 검색해서 찾은 설계도로 만들었다. 과학동아에 보내온 사진 속의 요트가 바로 HD24호다. 지금은 HD24호에서 아쉬웠던 부분을 수정하고, 또 새로운 설계도를 활용해서 더 발전된 배를 만들고 있다. 이 날은 학생들이 함께 퀸맵(Queen Mab)호 마무리 작업을 했다. 남학생, 여학생 할 것 없이 톱, 사포 등 공구를 다루는 모습이 놀랍도록 능숙했다. 돛을 만들기 위해 막대를 바닥에 놓고 각도를 맞추고 조립하고 미세하게 조절하는 것도 학생들의 몫이었다. 자그마치 23kg인 배지만 학생들은 능숙하게 배를 뒤집고 다뤘다. 로봇 공학자가 꿈인 안준석 학생이 마스크를 쓰고 배 내부에 니스를 바르기 시작했다. 다른 학생은 사포와 줄을 이용해 배를 다듬었다. 선생님은 모든 작업을 지휘하며 학생들이 작업하는 것을 도왔다. 마치 음악을 연주하는 오케스트라 같은 풍경이다. 두 요트 모두 배가 하나의 나무판으로 된 게 아니라 여러 개의 긴 나무를 이어서 만든 배라서 손이 많이 간다.



열기구도 띄워볼까? 독창적 바구니

기자가 학교를 찾았을 때 자항연 교실 한쪽에서는 2011년 12월 2일에 열렸던 축제 준비가 한창이었다. 브레인스토밍을 통해 축제에서 열기구를 만들어 띄우기로 결정했다. 열기구의 바구니를 어떻게 만들어야 열기구를 높이 띄울 수 있는지를 연구하고 있었다. 지원 학생이 만든 독창적인 6각형 모양의 바구니는 창의성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바구니의 무게중심이나 무게도 고려해야 했다. 지원 학생은 약간 무거웠던 바구니를 가볍게 만들기 위해 다시 친구들과 토의를 시작했다. 활동실 밖에서는 열기구 시험이 한창이었다. 비닐을 펼치고 가스 토너 불꽃으로 내부 공기를 가열해 비닐이 팽팽하게 부풀어 위로 솟아오르는 모습을 직접 보고 확인했다. 열기구와 바구니 모두 보통의 모양과는 달랐다. 학생들의 창의성이 듬뿍 들어가 있다.

학생들은 1학기 때 유압식 크레인을 만드는 활동부터 시작한다. 주사기의 압력을 이용해 크레인을 움직이고, 크레인에 가해지는 무게를 적절히 분산시키기 위해 트러스 구조로 크레인을 만든다. 이렇게 기본적인 기구의 움직임을 통해 원리를 이해하고 공구를 다루는 법을 손에 익힌다. 기본기를 탄탄히 익힌 뒤 요트 만들기, 열기구 만들기를 할 수 있다.




20년을 지켜온 선생님과 학생들의 열정

자항연은 1992년에 탄생했다. 올해로 탄생 20년을 맞는다. 1991년 구기복 선생님의 열정에서 탄생한 ‘고등학생 제작 항공기 1호’가 시작이었다. 이 때만 해도 동아리가 아니었지만 1992년 비로소 동아리로 탄생했다. 이후 우리나라 최초로 휘발유 1l로 1000km를 달리는 ‘초고연비차’도 만들었다. 하늘을 나는 비행기, 땅을 달리는 비행기 뿐만 아니라 바다도 정복했다. 사람의 힘으로 프로펠러를 돌려 바다에서 운전하는 ‘인력 잠수함’도 만들었다. 섬유 강화 플라스틱으로 만든 몸체도 직접 제작했다. 이후 일본에서 열린 ‘인력 비행기 대회’에도 참여했다. 자항연은 지난 몇 년 간 운영되지 않았다. 그러다가 2011년 입학생을 중심으로 다시 운영되기 시작했다. 많은 학생들이 현대고의 자항연을 기억했다. 이 학생들이 학교와 선생님께 자항연을 다시 운영해달라고 건의했고, 이들의 열의를 학교는 기꺼이 받아들였다.

이 학생들이 바로 지금의 자항연반 학생들이다. 정지원 학생은 보통 학생들이 할 수 없는 다양한 활동을 하는 것을 즐거워했다. 실제로 대학교 동아리가 하는 것 이상의 활동을 한다.

“저희는 스케일이 달라요. 납땜을 하는 게 아니라 용접을 하죠. 물론 용접처럼 위험한 작업은 선생님이 직접 하시지만 바로 옆에서 지켜보고 과정에 참여하는 것만으로도 즐겁습니다.”

기계공학을 꿈꾸는 학생만 있는 것은 아니다. 신혜준 학생은 생명과학자를 꿈꾼다. 혜준 학생 역시 색다른 경험을 할 수 있어서 자랑스럽다고 말하며 웃었다. 경제학자가 되고 싶은 장서호 학생 역시 그렇다. 과학을 좋아해서 이 곳에 왔다. 그야말로 융합형 인재들의 집합소다.



[❶ 열기구 안의 공기를 데워 시험한다.
 ❷ 자동차 항공기연구반이 모였다.
 ❸ 학생들이 직접 배의 형태를 잡는 작업을 했다.]



가슴이 뛰는 도전

배, 자동차, 비행기를 만드는 활동은 결코 쉬운 활동이 아니다. 이런 활동을 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구기복 선생님은 ‘마음가짐’이 가장 중요하다고 했다.

“이런 활동을 하려면 거창한 기계나 작업환경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 일본 인력 비행기 대회에 참여했을 때 본 오사카의 한 대학 자동차 동아리는 커터칼이 가장 중요한 활동 도구였다. 번듯한 동아리실도 없이 컨테이너 안에서 커터칼과 접착테이프를 갖고 비행기를 만들었다. 중요한 건 마음가짐이다.”

최초의 비행기를 만든 라이트 형제는 제일 먼저 비행기를 만들기도 했지만 시행착오도 많았다.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바라는 것도 바로 이것이었다. 거창한 도구가 없어도 뭔가를 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고 열정이 있다면 시도해야 한다. 그리고 실패하더라도 실패는 그 다음 도전을 위한 중요한 밑바탕이 된다는 것이다.

어렸을 때 모터쇼를 보러갔다가 자동차의 매력에 빠진 박주호 학생은 자동차 전문가를 꿈꾼다.

“과학을 좋아해서 어릴 때부터 혼자 컴퓨터나 기계를 부숴보고 조립하곤 했어요. 지금은 스펙을 떠나서 자항연에서 여러 활동을 할 때 가슴이 뛰는 걸 느껴요.”

열정과 도전정신으로 똘똘 뭉친 자항연 학생들에게서 우리나라 과학기술의 미래를 살짝 엿봤다면 과장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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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월 과학동아 정보

  • 이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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