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심장은 중앙에서 살짝 왼쪽으로 치우쳐 있습니다. 위와 비장(지라) 역시 왼쪽에 있고, 오른쪽에는 간이 위치합니다. 폐의 경우도 좌우 대칭으로 보이지만 사실 왼쪽 폐는 두 개의 폐엽으로, 오른쪽은 세 개의 폐엽으로 이뤄져 있습니다. 대장은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구부러져 있죠.
그런데 1788년 영국 런던의 한 의대에서 시신을 해부하던 중 깜짝 놀라는 일이 있었습니다. 심장이 오른쪽에 간이 왼쪽에 있는 사람이 있었던 겁니다. 이렇게 장기들이 정상과 반대 위치에 있는 경우를 ‘좌우바뀜증(situs inversus)’이라고 합니다.
좌우바뀜증은 비정상 좌우 대칭의 가장 극단적인 사례지만, 생활하는 데에는 큰 어려움이 없습니다. 문제는 좌우가 완전히 바뀌지 않고 어떤 장기는 정상적인 위치에 있는데 일부 장기만 좌우가 바뀌는 경우나(내장변위·heterotaxia), 거울을 몸의 중앙에 놓은 것처럼 좌측(또는 우측)에 있어야 할 장기가 반대편에도 있고, 반대편에 원래 있어야 할 장기는 없는 경우입니다(이성체현상·isomerism). 문득 몸속에서 제자리를 잡고 있는 장기가 기특하게 느껴지죠?
시계방향으로 도는 섬모의 중차대한 역할
그럼 여기서 질문이 하나 생깁니다. 수정란은 어디 하나 모난 곳 없는 둥근 공 모양입니다. 좌우라는 개념이 존재하지 않죠. 그렇다면 배아 발달 중에 좌우 비대칭은 언제, 어떻게 생겨나는 걸까요?
쥐의 발달을 살펴보면 수정 후 7일째 ‘노드(node)’라는 부위에서 좌우 비대칭을 만드는 기작이 시작됩니다. 노드는 배아의 한쪽 아래에 대략 삼각형 모양으로 움푹 들어간 영역을 말하는데요. 그 속에 가늘고 긴 섬모가 마치 물 속 해초처럼 자리하고 있습니다(아래 그림).
이 섬모가 특별한 이유는 시계방향으로 빙글빙글 돌기 때문입니다. 섬모의 이런 움직임은 노드에 차 있는 액체를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흐르게 만듭니다. 이런 액체의 흐름은 주변에 있는 다른 섬모들까지 움직이게 합니다. 노드 속 액체의 흐름은 신체의 좌우를 형성하는 데 영향을 미칩니다. 이는 실험으로 증명됐습니다. 2002년 히로시 하마다 일본 오사카대 생명과학대학원 교수팀은 쥐의 배아를 노드가 위로 향하도록 세워놓고, 그 주변으로 물이 흐르게 하는 실험 장치를 고안했습니다(doi:10.1038/nature00849)(위 그림).
실험 결과, 노드 내 섬모가 발생시키는 액체의 흐름과 인공 물살의 흐름이 일치할 경우에는 배아가 정상적인 좌우 비대칭을 보였습니다. 그러나 배아를 반대 방향으로 배치해 액체의 흐름과 인공 물살의 흐름을 반대로 만들었을 때는, 섬모의 움직이는 방향이 물살에 따라 바뀌면서 배아가 정상적인 좌우 비대칭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즉 좌우가 바뀌어 발달했습니다. 우리 몸의 거대한 좌우 축이 섬모의 작은 움직임으로부터 시작 됐다는 뜻입니다.
두 번째 질문
먼저 도착하는 단백질이 세포 운명 결정?
공 모양의 배아에는 좌우 개념이 없습니다. 과학자들은 시계방향으로 도는 섬모의 움직임이 왼쪽과 오른쪽 비대칭을 만드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실험으로 밝혀냈는데요. 또 하나의 증거는 쥐를 이용한 돌연변이 연구였습니다.
먼저 유전자 변이로 노드 속 섬모가 움직이지 못한다고 가정해 봅시다. 배아는 과연 정상적으로 발달할까요, 아니면 좌우가 바뀌어 발달할까요?
정답은 둘 다 가능합니다. 섬모의 운동을 책임지는 단백질 중 하나인 ‘디네인(dynein)’에 돌연변이가 생길 경우 섬모는 시계방향으로 움직이지 못하고 배아는 무작위로 좌우 축을 결정합니다.
동전을 던졌을 때 앞 또는 뒤가 나올 확률이 반반이듯, 이 돌연변이가 좌우를 우연히 잘 맞춰 정상적으로 발달할 확률과, 좌우가 바뀌어 발달할 확률은 50 대 50입니다.
‘노들’ vs ‘레프티’ 상반된 단백질이 좌우 결정 그럼 다시 움직이는 섬모 얘기로 돌아가 보죠. 섬모에 의해 액체가 흘러 노드의 왼쪽에 위치한 섬모가 휘어지게 되면, 배아의 왼쪽에 있는 세포는 ‘노들(Nodal)’이라는 단백질을 만들어 냅니다. 노들은 참 재밌는 단백질인데요. 노들이 다른 세포의 수용체에 붙으면 크게 세 가지의 일이 일어납니다. 일단 노들에 대한 반응으로 해당 세포는 왼쪽정체성을 띠게 됩니다. 또 해당 세포에서는 노들과, 노들의 기능을 억제하는 ‘레프티(Lefty)’ 단백질을 만들어냅니다.
노들은 왜 상반된 역할을 하는 억제 단백질까지 만들어낼까요? 답은 노들과 레프티의 분산 속도 차이에 있습니다. 레프티는 노들보다 더 빨리, 더 멀리까지 퍼지는 특성이 있습니다. 따라서 배아에서 왼쪽에 있는 세포들이 노들과 레프티를 동시에 생산해 내고 두 단백질이 오른쪽으로 조금씩 퍼져나갈 때, 레프티는 오른쪽에 위치한 세포들에 먼저 도착해서 노들이 수용체에 붙는 것을 막습니다(위 그림).
즉, 레프티는 오른쪽에 있는 세포들이 왼쪽정체성을 갖는 것을 방해합니다. 실제로 레프티 단백질을 만드는 유전자를 없애면 노들 단백질이 오른쪽 세포들에까지 영향을 미쳐 결국 오른쪽이 없이 왼쪽만 있는 배아로 발달합니다(doi:10.1016/S0092-8674(00)81472-5).
노들이라는 하나의 단백질이 자신을 억제하는 단백질까지 함께 만들어 서로 다른 세포의 운명을 결정짓는 이 관계를 ‘반응 확산 모델(reaction diffusion model)’이라고 부릅니다. 이 모델은 생물학자가 아닌, 영국의 수학자이자 암호해독학자였던 앨런 튜링이 처음 제안했습니다. 영화 ‘이미테이션 게임’에서 베네딕트 컴버배치가 열연했던 인물이죠.
정리하면, 시계방향으로 도는 섬모에 의해 노드 속 액체가 왼쪽으로 흐릅니다. 이후 노들과 레프티의 상호작용에 의해 배아의 왼쪽에서만 노들이 기능을 합니다. 그 결과 대칭을 이루고 있던 배아의 좌우 균형이 깨지게 됩니다. 장기의 좌우 비대칭의 경우, 훗날 심장으로 발달할 심장 튜브가 오른쪽으로 굽으며 비대칭이 시작됩니다. 수정된 지 겨우 일주일 된 배아에 이런 기적이 일어나다니, 기적 같은 생명의 신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