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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산, 기체 분자 스스로 떠나는 여행

무더운 여름 화장실 근처에 있는 교실은 문을 열기가 두렵다. 문을 여는 순간 코를 찌르는 암모니아 냄새와 구린내가 한꺼번에 후각세포를 자극하기 때문이다. 이 구린내의 대표적인 물질은 스카톨(skatole, C9H9N)과 인돌(indole, C8H6N)이다. 스카톨은 필수 아미노산의 일종인 트립토판이 분해돼 생기는 물질이다. 인돌은 썩은 단백질이나 포유류의 배설물에서 발견되는 물질인데 놀랍게도 향기로운 재스민에서도 발견된다. 인돌과 스카톨은 배설물 악취의 대표적인 원인 물질이지만 순도가 높고 농도가 묽은 용액 상태에서는 향기로운 꽃냄새가 나서 향료의 원료로 쓰인다.



근원이 같다고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꽃향기와 똥냄새가 갖는 또 다른 공통점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냄새가 확산에 의해 퍼진다는 것이다. 확산이란 기체 분자들이 다른 기체나 액체 속으로 스스로 퍼져나가는 현상으로 분자가 불규칙한 형태로 운동한다. 그렇다면 분자는 왜 스스로 퍼져나가는 운동을 할까?



분자가 스스로 운동하는 이유

따뜻한 물 한잔을 방 가운데 놓고 시간이 흐른 후 물의 온도를 재어본다. 물의 온도가 방의 온도보다 높았다면 물 온도는 처음보다 당연히 낮아졌을 것이다. 공을 땅바닥에 던져보자. 공은 처음에 던진 높이보다 더 낮은 높이로 몇 번 통통 튀다가 당연히 정지할 것이다. 우리는 왜 이러한 일들을 당연하다고 생각할까?

1850년 독일의 과학자 클라우지우스는 열에너지가 높은 온도에서 낮은 온도로 이동하는 성질을 설명할 새로운 법칙을 만들자고 제안했다. 그는 엔트로피(S)라는 새로운 물리량을 만들었다. 엔트로피(S)는 열량(Q)을 온도(T)로 나눈 값(S=Q/T)인 데 이 물리량이 항상 증가한다는 것이다. 클라우지우스의 설명에 따르면 따뜻한 물이 식는 것은 열량은 같지만 온도가 감소해서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것이다. 떨어진
공이 다시 그 높이만큼 튀어 오르지 못하는 현상도 설명이 가능하다. 운동에너지만 가진 공의 처음 열량은 0이고 엔트로피도 0이지만 바닥과의 마찰로 열량이 생겨 결과적으로 엔트로피는 증가한다. 그러나 클라우지우스는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이유를 묻는 질문에는 대답하지 못했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오스트리아의 물리학자 볼츠만의 몫이었다. 볼츠만은 엔트로피에 확률 개념을 끌어들였다. 주머니에 파란 구슬과 빨간 구슬을 섞어 넣은 후 보지 않고 구슬을 하나씩 꺼내 번호를 붙인다. 이 때 파란 구슬을 1번부터 15번까지, 빨간 구슬을 16번부터 30번까지 규칙적으로 꺼낼 확률은 얼마일까? 두 구슬을 아무렇게나 섞어서 꺼내는 경우에 비해 턱없이 작은 확률일 것이다. 불규칙적으로 일어나는 일은 규칙적으로 일어나는 일에 비해 일어날 확률이 월등히 높다. 볼츠만은 물질의 상태가 규칙적인 상태보다 불규칙한 상태로 변하는 것이 자연 변화의 방향이라고 생각했다. 공을 이루는 모든 원자들이 한 방향으로 운동할 때 갖는 운동에너지가 모든 원자들이 불규칙하게 운동할 때의 에너지인 열에너지로 변하는 것이 당연한 자연의 변화 방향이다. 볼츠만이 말한 ‘무질서도’라는 엔트로피에 대한 새로운 정의는 과학 분야 뿐 아니라 인문학, 사회학 분야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한 곳에 모여 있던 기체 분자들이 스스로 운동해 사방으로 퍼지고 다른 분자와 섞이면서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변화 방향이다. 따라서 확산은 당연한 현상이다. 확산에 영향을 주는 요인에는 어떠한 것들이 있는지 <;실험 따라하기1>;을 보면 알 수 있다.






확산과 분자량의 관계

확산 속도와 분자량은 어떤 관계가 있을까? 1831년 그레이엄은 기체의 확산 속도에 관한 정량적인 실험을 했다. 그 결과 ‘일정한 온도와 압력에서 기체의 확산 속도는 기체의 밀도 제곱근에 반비례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일정한 온도와 압력에서 순수한 기체의 밀도는 분자량에 비례하므로 기체의 확산 속도는 기체 분자량의 제곱근에 반비례하는 것이다.



<;실험 따라하기1>;을 통해서는 염산과 암모니아의 분자량에 대한 속도비(염산의 속도 : 암모니아의 속도 = 1:1.4)를 정확하게 얻을 수 없다. 그레이엄은 실험적 오차를 줄이기 위해 다른 방법으로 실험을 했다. 그레이엄의 실험은 한 공간 안에 있던 저압상태의 혼합 기체가 작은 구멍을 통해 진공상태인 다른 공간으로 확산하는 속력을 측정한 실험이다. 진공과 저압 조건이 충족되면 기체 분자들은 서로 거의 충돌하지 않는다. 그러나 <;실험 따라하기1>;은 기체 분자 사이에서 충돌이 생긴다. 분자들의 충돌이 증가하면 기체의 흐름이 지연된다. 이것은 결과적으로 기체 분자의 확산 속도에 영향을 미친다. 그러므로 정확한 속도의 비를 얻기 위해서는 염산과 암모니아 기체가 공기와 충돌하는 것까지 고려해야한다.




원자폭탄 만든 확산의 원리


다공성 막을 통한 확산의 경우 고려해야 하는 것이 더 늘어난다. 그레이엄의 기체 분출 실험은 저압상태의 기체를 실험한 것이므로 분자들 사이의 충돌과 분자와 벽의 충돌을 크게 고려하지 않았다. 반면 다공성 막을 통한 확산 실험은 이런 요소들이 큰 영향을 끼친다. 하지만 다공성 막을 통한 기체 확산 속도도 여전히 기체 분자량의 제곱근에 반비례한다. 인류는 다공성 막을 통한 확산을 역사적으로 어디에 처음 응용했을까?

제 2차 세계 대전 중에 원자 폭탄을 만들기 위해 방사성 동위 원소 235U가 풍부한 우라늄이 필요했다. 천연 우라늄에는 235U가 단 0.7% 만 존재하고, 나머지 99.3%의 우라늄은 238U로 존재한다(235와 238은 질량수를 의미한다). 235U의 비율을 높이는 방법을 연구하던 중 다공성 막을 통한 확산으로 235U를 얻을 수 있는 방법을 개발했다. 이 방법은 작은 구멍을 통해 나오는 기체의 분출을 이용한다. 우라늄을 플루오르와 반응시켜서 휘발성이 강한 화합물 UF6를 만들고 이것을 다공성 막에 통과시켜 235UF6의 비율을 높였다.

235UF6분자가 238UF6분자보다 가볍다. 그래서 235UF6분자가 먼저 막을 통과한다. 막을 한번 통과하면 235UF6의 비율은 단위 시간 동안 1.0043배 증가한다. 이 방법을 약 500번 반복하면 97∼98% 수준의 고농축 우라늄을 얻을 수 있다. 그러나 다공성 막을 설치할 넓은 공간과 시설이 필요하고, 우라늄 기체를 여러 번 확산시키려면 많은 전력이 필요하다는 단점 때문에 요즘은 원심분리법을 많이 사용한다.

기체 상태의 안정한 UF6을 고속으로 회전시켜 235U만 따로 분리해 내는 방법이다. 북한이 핵무기 개발을 위해 우라늄을 농축할 때 이 방법을 사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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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1월 과학동아 정보

  • 손미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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