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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X놈아 나와!”, “나이 X먹고 뭐하는 거야.”, “경찰서 가! 가자고.”

지난 6월 인터넷에서는 20대 젊은 남성이 80대 노인에게 폭언과 욕설을 하는 장면이 공개돼 큰 파문이 일었다. 지하철에서 백발의 할아버지가 다리를 꼬고 앉은 청년에게 다리를 풀라고 지적했다가 자신이 뭘 잘못했는데 다릴 치냐며 봉변을 당한 것이다. 이 청년은 승객들에 의해 전동차 끝으로 끌려갔지만 다시 돌아와 폭언을 퍼부었다. 동영상을 본 누리꾼들은 “가정에서 인성교육을 어떻게 시킨 건지 모르겠다”며 맹비난했고 전문가들은 “치열한 경쟁사회에서 자라서 불안과 스트레스에 의한 타인에 대한 적대감이 표출됐다”고 해석했다. 동영상 속 남자는 이기적이고 공경의식이 부족한 우리네 젊은이들의 안타까운 자화상이었다.

방화, 화재…거침없는 어르신들

하지만 이런 공격성이나 배려 없는 행동이 젊은 사람에만 국한된다고 할 수 있을까. 지하철을 타거나 길거리를 걷다보면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이 거침없이 행동하는 탓에 눈살을 찌푸리게 되는 일이 종종 있다. 지하철 안으로 들어오려고 무리하게 몸을 미는 아주머니, 어린 녀석들이 자리를 내주지 않는다며 소리를 지르는 할아버지. ‘거침 없이 하이킥’의 ‘버럭순재’처럼 타당한 이유 없이 소리를 지르고 화를 내는 중·노년은 우리 주변에서도 적지않게 볼 수 있다.

일찍이 논어에서는 ‘지천명(知天命)’, ‘이순(耳順)’이라 해서 나이가 들면 경륜이 쌓이고 사려와 판단이 성숙해 간다고 했다. 하지만 올해 경찰청에 보고된 ‘노인범죄 발생 현황’을 보면 상황은 전혀 다르게 펼쳐지고 있다.

하루에만 평균 300여 건, 한해 평균 12만 건에 달하는 범죄가 노인들에 의해 일어나고 있다. 특히 지난해 60세를 넘은 노인의 범죄는 13만 6238건으로, 5년 전인 2006년 10만 1225건에 비해 34.6% 증가했다. 대개 노인은 범죄의 피해자이고 노인 범죄율은 다른 연령층에 비해 낮다는 일반적 인식을 깨고 노인들이 급속히 범죄의 가해자로 등장하고 있는 셈이다.

가장 대표적인 예로 2008년 국보 1호인 남대문을 방화한 범인은 뜻밖에도 70세의 고령 노인이었다. 그는 갖고 있던 토지가 개발되는 데 보상비용이 적게 나와 범행을 저질렀다고 진술했다. 이보다 앞선 2007년 여름 전남 보성군에서는 70대 평범한 노인이 바다구경을 하기 위해 자신의 배에 오른 20대 여성을 성추행하고 살해했다. 이에 앞서 대학생 남녀 2명도 함께 살해하는 범죄를 저질렀다. 욕정을 참지 못한 노인이 자신의 범행이 탄로 날 것을 우려해 살인 행각을 벌인 것이다.

나이 들수록 작아지는 뇌

그렇다면 왜 우리 사회에 버럭순재가 늘게 됐을까. 이전에는 공경과 배려로 용인되던 모습들이 사회가 변하면서 더 이상 받아들여지지 않게 된 것일까. 아니면 지나친 경쟁으로 사회가 전반적으로 공격적으로 변하고 배려가 줄어들었기 때문일까. 고령화 사회로 진입함에 따라 노인인구가 많이 늘어서, 또는 노인 무료승차로 인해 지하철에서 이런 일이 많이 보인다는 착시 효과도 있다.

그런데 뇌과학의 관점에서는 중년의 어른들을 위한 변명이 가능하다. 우리 몸은 나이가 들수록 점차 쇠퇴한다. 마찬가지로 뇌에도 노화가 찾아온다. 어머니, 아버지가 자꾸 기억력이 떨어지고 몸이 둔해진다고 말하는 것도 뇌에 노화가 오기 때문이다.

우선 뇌는 우리 몸의 다른 부위와 마찬가지로 크기가 줄어든다. 자기공명영상(MRI)으로 촬영한 노인의 뇌를 보면 젊은이의 뇌에 비해 뇌가 줄어 안쪽에 액체가 차 있는 공간인 뇌실 부분이 현저하게 커져 있고, 뇌 바깥쪽 주름 사이 빈 공간이 넓어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네덜란드 연구진이 4세에서 88세까지 2211명의 뇌를 MRI로 봤더니 뇌 용적은 35세 이후부터 1년에 약 0.2%씩 줄어들다가 60세부터는 더 빨라져 한 해 0.5%씩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진은 이 결과를 저널 ‘인간뇌지도(human brain mapping)’ 9월 13일자에 발표했다.

용적이 줄어든다는 것은 신경세포들이 사라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 번 사라진 신경세포는 거의 재생되지 않으므로 뇌 용적의 감소는 필연적으로 인지기능 저하와 행동의 변화로 이어진다.

 
[2008년에 남대문을 방화한 범인은 70세 고령의 노인이었다. 사회에 융합되지 못하고 외골수의 성격을 가진 노인들의 범죄가 늘고 있다.]


[뇌의 앞부분에 해당하는 전두엽은 청소년기에 유난히 발달한다. 이때 교육을 덜 받거나 과음과 흡연을 하고 스트레스에 자주 시달리면 튼튼하게 자라지 못하고 퇴화한다. 전두엽이 제대로 발달하지 않은 사람은 본능을 억제하고 맡은 일을 수행하는 능력이 떨어진다.]

뇌의 CEO, 전두엽

그런데 특이하게도 뇌는 부분마다 늙는 속도가 다른다. 양전자단층촬영(PET)으로 본 노인(평균나이 68세)의 뇌는 젊은 정상인(평균나이 34세)의 뇌에 비해 전두엽 부위에서 대사가 현저하게 떨어졌다.

신경전달물질에서도 변화가 나타난다. 미국 UC 버클리 연구진이 젊은 정상인과 노인의 뇌에서 도파민 합성능력을 분석한 결과 노인은 도파민 합성능력이 현저하게 떨어졌다.

도파민은 전두엽의 수행능력과 높은 상관관계가 있다. 도파민은 아세틸콜린, 아드레날린, 세로토닌 같은 신경신호 전달 물질로, 뇌간의 흑질(해부학적으로 검은 색을 띤다) 또는 복측피개영역에 있는 신경세포에서 만들어진다. 이 신경세포들은 대뇌피질로 연결돼 도파민을 이용해 신호를 전달한다. 그런데 대뇌피질 중에서도 주로 전두엽과 연결이 돼 있다. 따라서 도파민의 저하는 곧 전두엽 기능의 저하로 나타난다. 대표적인 도파민성 질환인 파킨슨병에 걸린 환자의 뇌를 봐도 전두엽 기능이 저하돼 있다.

그렇다면 부위별 노화의 차이가 행동과 생각의 변화를 설명할 수 있을까. 뇌는 각 부위에 따라 기능이 다르다. 그 중 전두엽이 하는 일은 한마디로 ‘집행’과 ‘자기절제’로 요약된다. 마치 회사에서 최고경영자(CEO)가 하는 일과 비슷하다. CEO는 회사를 운영하는 데 필요한 목표를 세우고 이를 위한 전략을 짠다. 또 주변 상황 변화를 확인하고 전략과 목표를 조정한다. 자기 절제는 집행 기능의 연장선이다.

목표달성을 위해 근시안적이거나 본능적인 사안은 억제하고 궁극적으로 집행기능이 잘 작동하도록 조절한다. 이런 일을 뇌에서는 전두엽이 맡아 한다.

따라서 전두엽이 고장 나면 자기만 생각하거나 염치가 없어지는 성격이 나타난다. 또 주변에 휘둘리거나 자기절제를 못해 욱하는 마음에 폭력적으로 변하기도 한다. 실제로 1984년 미국에 사는 피니아스 게이지는 터널 발파작업을 하다가 철근이 머리를 관통하는 사고를 당했다. 다행히 목숨은 건졌지만 다시 깨어난 그는 성격이 완전히 바뀌어 있었다. 상냥하고 차분하던 사람은 성급하고 변덕스러워졌고 걸핏하면 부인과 아이들을 때렸다. 그가 뇌에서 손상을 받은 부위는 전두엽의 피질이었다.

전두엽이 퇴행해 전두엽치매에 걸린 환자들에게서도 게이지와 비슷한 행동이 나타났다. 일부 폭력적 범죄자들의 경우 뇌검사를 하면 전두엽 기능이 저하돼 있다. 이처럼 뇌의 일부분이 상해를 입으면 성격 발달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사례는 계속해서 나오고 있다.
 
[점차 나이가 들수록 뇌실(가운데 X자 부분)이 확장되고 바깥쪽 주름 사이의 공간도 더 커진다. 즉 빈 공간이 늘어나 실질적인 뇌의 크기는 작아졌다. 각각의 행은 같은 뇌를 다른 조건에서 촬영한 것이다.]



[나이가 들수록 뇌가 노화되는 것을 막을 순 없지만 꾸준히 교육을 받고 직업과 여가생활을 즐기면 노화 속도를 줄일 수 있다.]



뇌가 오랫동안 건강하려면

전두엽은 하등동물에서는 거의 발달하지 않는다. 고등동물로 갈수록 용적이 큰 편이다. 또 인간의 전두엽은 어릴 때는 발달하지 않다가 신체가 성장할수록 함께 발달해 청장년이 돼서야 비로소 성숙해진다. 사춘기 청소년들이 자기 감정조절을 잘 못하고 산만한 것도 전두엽의 기능이 미성숙하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전두엽이 퇴화된 노인의 행동과 감정적으로 행동하는 청소년의 모습은 참 많이 닮아 있다. 옛말에 ‘나이 들면 애가 된다’고 하더니 전두엽의 발달과 퇴화 과정을 생각해 보면 틀린 말이 아니다.

전두엽은 젊은 시절에 교육을 덜 받거나 과음을 많이 할 경우, 또 머리에 잦은 충격을 받거나 각종 스트레스에 시달릴 때 튼튼하게 자라지 못하고 퇴화가 빨라진다. 젊었을 때 수준 높은 교육을 받고 직업과 여가 생활을 충분히 즐긴 사람은 질병이나 그 밖의 요인으로 뇌가 손상돼도 치매 발병이 안 되거나 늦어진다고 알려져 있다. 이를 ‘인지적 비축(cognitive reserve)’이라고 한다. 마치 큰 비에 똑같은 1t의 흙이 쓸려 내려가도 나지막한 산은 산세가 변하지만 태산은 별 영향을 받지 않는 것과 비슷하다.

따라서 뇌의 입장에서 어린이가 어른으로 성장하는 과정은 전두엽의 발달로 인간적인 성숙미가 더해지는 과정이다. 나이가 들면 신경세포
를 잃는 것을 피할 수 없지만 성장하고 나이를 먹는 과정에서 전두엽을 살찌우고 보존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내실 있는 뇌를 만들기 위해서는 교육, 직업, 여가생활, 절주, 금연, 스트레스의 극복, 규칙적인 운동, 자기성찰과 넉넉함과 긍정적인 사고가 필요하다.

 

2011년 11월 과학동아 정보

  • 김윤미 기자, 정용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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