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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서 가장 밝은 빛 쏜다

포항방사광가속기

1994년 겨울, 우리나라에서도 거대과학이 가능함을 알린 신호탄이 발사됐다. 세계 다섯 번째로 완공된 3세대 방사광가속기인 포항방사광가속기다. 지금도 우리나라 유일의 방사광가속기로 의약, 물질, 공학 등 연구에 없어서는 안 될 역할을 하고 있다. 포항방사광가속기는 최근성능향상작업을 진행하며 다시 한번 도약을 시도하고 있다. 세계 3번째로 차세대(4세대) 방사광가속기 건설도 추진하고 있다. 명실상부한 세계 최고의 가속기연구소로 거듭나고 있는 것이다. 지난 8월 8일, 경북 포항 포스텍에 위치한 포항가속기연구소를 찾았다. 마침 3년에 걸친 성능향상작업의 종합시운전에 막 성공한 참이었다.


[포항방사광가속기의 선형가속기 구간. 붉은 관 위에 있는 작은 구리관이 선형가속기다. 전자가 170m를 달리며 빛의 속도에 가깝게 가속된다.]
[성능향상작업은 빔라인과 저장링 구간을 모두 해체하고 재설치하는 큰 작업이었다. 빔라인 재설치 장면(➊)과 재설치된 후의 저장링 내부(➋).]

“여기 보이는 빔라인(방사광을 뽑아 연구에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설비)과 저장링(가속한 전자를 회전시켜 저장하는 원형 구조물) 주요부를 완전히 들어냈다가 다시 설치했습니다. 2년 동안 설계와 준비를 하고 올해는 설치와 최적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포항방사광가속기가 있는 건물 안에 들어가자마자 김경진 엑스선운영2팀장이 말했다. 길이가 280m에 이르는 육중한 장비를 모두 새로 설치했다니 얼마나 대대적인 작업이었는지가 훅 느껴졌다.
 

새로 태어난 방사광가속기

“빔 에너지만 높아지는 게 아닙니다.”

빔의 출력(에너지)이 높아진 거냐고 넌지시 ‘아는 척’을 하자 김경진 팀장이 정정했다. 성능향상을 일종의 ‘스펙 업그레이드’ 정도로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방사광의 질 자체가 달라졌다는 것이다.

“가장 큰 변화는 3세대 방사광인 ‘삽입장치(ID)빔’을 쓸 수 있는 빔라인이 2배로 늘어났다는 겁니다. 빔 자체도 더 밝아졌고 더 집중된 빔이 나와 훨씬 정밀한 실험이 가능해졌지요.”

쉽게 설명해 보면 이렇다. 방사광가속기는 전자를 빛의 속도에 가깝게 가속시켜서 강력한 전자기파(빛)를 발생시키는 장치다(과학동아 2011년 3월호 참조). 이 전자기파는 태양보다 수백만 배 밝기 때문에 아주 작은 물체의 구조나 성질을 알아낼 수 있다. 예를 들어 학교에서 볼 수 있는 현미경을 생각해 보자. 식물의 기공 세포를 확대해 보려면 배율이 수백 배는 돼야 한다. 그런데 배율이 높으면 높을수록 어두워져서 반사경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어느 정도 배율 이상이 되면 강한 인공광원이 없이는 관찰할 수 없게 된다.

태양보다 수백만 배 밝은 방사광은 아주 작은 물체의 구조를 확대해서 볼 수 있게 한다. 이것을 2세대형 방사광가속기라고 한다. 포항가속기연구소의 방사광가속기는 이런 2세대형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간 최신형 3세대 방사광가속기다. 휨자석에서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방사광 뿐만 아니라 더 강한 방사광을 얻을 수 있는 장치(삽입장치)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삽입장치를 거친 방사광은 기존 방사광보다 수천 배 강하기 때문에 성능이 월등히 우수하다.

100배 밝은 빛으로 업그레이드

황일문 가속기부 연구원과 진숙현 행정팀 담당의 안내로 직접 저장링 안에 들어가 봤다. 마침 시운전 기간 사이에 단 하루 가속기를 멈추고 점검을 하는 날이어서 가능했다. 황금빛으로 빛나는 지름 10cm, 길이 170m의 구리 선형가속기 구간(114쪽 사진)을 지나 포항방사광가속기의 상징인 원형 ‘저장링’ 공간에 들어갔다. 갖가지 기기로 둘러싸인 은색 파이프가 보였다. 선형가속기를 통과해 들어온 전자가 돌면서 방사광을 뿜어내는 터널이다. 터널 중간마다 전자석이 설치된 장치가 가득했다. 큰 장치 하나에는 손가락만 한 전자석 수십 개가 옆으로 길게 붙은 채 위에 한 줄 아래에 한 줄, 마치 피아노 건반처럼 촘촘히 붙어 있었다.

“삽입장치의 일종인 ‘언듈레이터’입니다. 위아래로 극이 엇갈리게 배열한 전자석 사이로 전자가 지나가면서 서로 모여 증폭이 일어나죠. 증폭이 일어나면 훨씬 강한 전자기파가 발생합니다.”


[2014년 완공될 4세대 가속기의 조감도. 그림 위쪽 원형 구조물이 기존 3세대 가속기의 저장링이고 긴 직선 구조물이 4세대 가속기다. 모양과 규모가 많이 다르다.]

3세대형인 포항방사광가속기(PLS:Pohang Light Source)는 1994년 완공 당시 10기의 삽입장치만 설치할 수 있도록 설계돼 있었지만 성능향상된 PLS-II에서는 이전보다 2배 많은 20기의 삽입장치를 설치할 수 있다. 이로써 훨씬 강한 전자기파를 발생시키는 빔라인 수가 늘어나 방사광을 이용한 연구의 질이 획기적으로 높아지게 됐다.

또 방사광 자체의 에너지가 1.2배 높아져서 3GeV(기가 전자볼트, 1전자볼트의 10억 배)가 됐다(기존 2.5GeV). 뿐만 아니라 빛이 뭉쳐 있는 초점의 크기(빔크기)를 3분의 1로 줄여서 정밀도는 더 높아졌다. 전체적으로 기존보다 100배 밝아지고 실험시간은 10분의 1로 줄었다. 1000배 효율이 높아진 셈이다. 현재 세계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최고급 사양의 방사광가속기들과도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게 됐다.
 

4세대 가속기를 향한 도전

이번 성능향상은 그 자체로도 큰 의미가 있다. 김경진 팀장은 “지금도 전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지어지고 있는 가속기가 3세대형 방사광가속기”라며 “앞으로도 역할이 줄어들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하지만 현재의 가속기로 할 수 없는 새로운 연구 수요가 늘어나고 있다. 그래서 차세대 가속기를 건설할 때가 임박했다는 지적이 많다.

포항가속기연구소는 비교적 일찍(세계 5번째) 3세대 가속기를 완성해 이 분야 연구를 선도했던 경험을 살려 4세대 가속기 건설을 서두르고 있다. 4세대 가속기는 빔에너지가 지금의 3배 이상인 10GeV로 세계 최고 수준이다. 2014년 완공 예정으로, 세계 3번째 4세대 방사광가속기가 될 예정이다. 현재는 미국과 일본만 완공해 시운전 중이다.

4세대 방사광가속기는 3세대와는 전혀 구조가 다르며, 만들어지는 방사광도 훨씬 우수하다. 김경진 팀장은 “전혀 다른 수준의 방사광이 생긴다고 봐도 무방하다”고 설명했다. 우선 빔의 밝기가 3세대의 100억 배 수준으로 높아진다. 전자의 가속 거리가 긴데다 가속된 전자들이 파장에 따라 훨씬 더 가지런하게 정렬돼 에너지가 높기 때문이다. 레이저와 특징이 비슷해 ‘X-선 자유전자레이저’라고 부르기도 한다. 빛의 밝기도 일정해 관측 효율도 높다. 수 나노미터 수준의 구조도 선명하게 관찰할 수 있다. 생명과학을 연구한다면 원자 수준까지 ‘눈으로 보면서’ 연구할 수 있는 셈이다.

또 하나 중요한 특징은 ‘동영상’ 관찰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구조와 함께 시간 변화도 관찰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이는 3세대보다 1000배 빠른 시간(펨토초)까지 포착할 수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 3세대 때 사진 형태로만 포착할 수 있었던 장면을 연속 동작으로 관찰할 수 있다. 이를 이용하면 화학반응 과정까지 관찰할 수 있다.

4세대 방사광가속기의 가능성은 아직 아무도 모른다. 김기정 빔라인부연구원은 “완성된 뒤 실제로 빔라인에서 연구를 하다 보면 지금은 상상하지 못했던 새로운 연구를 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경험이 축적되면 새로운 응용 연구 분야가 개척될 것이라는 예상이다. 가속기 자체의 운영과 최적화에 대한 지식도 물론 축적될 것이다.

포항가속기연구소에는 연구소 부지를 축소한 모형이 만들어져 있다. 모형을 보면 4세대 가속기는 3세대보다 약 3배 가까이 긴 직선 모양을 하고 있다. 직선 형태로 900m를 달려 빛의 속도에 가깝게 가속한 전자를 막판에 구부려 방사광을 발생시키는 방식이다. 모양과 구조는 새롭지만, 기존의 가속기와 기초 원리는 똑같다. 3세대의 경험을 바탕으로 4세대를 만들 수밖에 없는 이유다.

“우리는 장밋빛 전망 같은 것은 내놓지 않습니다. 포항가속기연구소는 20년 가까이 가속기 건설과 운영을 해온 경험이 있습니다. 그간 쌓아온 경험과 지식만으로도 차세대 가속기의 모습을 그릴 수 있습니다. 그것은 추측이나 상상이 아닙니다. 현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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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09월 과학동아 정보

  • 윤신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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