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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크송은 왜 뇌를 중독시킬까

이제는 K-POP이 대세



지난 6월 초, 프랑스 ‘르 제니스 드 파리’에서 ‘SM타운 라이브 월드 투어’ 콘서트가 열렸다. 동방신기, 슈퍼주니어, 소녀시대, 샤이니 등이 합동 무대를 펼쳤다. 관객 1만 4000명 중 98%가 유럽 현지인이었다. 머나먼 아시아에서 날아온 가수들이 친근하지 않은 나랏말로 부르는 K-POP(한국 대중가요, 이하 케이팝)이 눈물을 흘리며 노래와 춤을 따라할 만큼 그들을 매료시킨 건 무엇일까.

“무슨 뜻인지 모르지만, 리듬은 정말 아름답다!” 케이팝이라고는 영화 OST였던 신승훈의 ‘I believe’만 알려져 있던 2000년대 초반, 파리에서 유학 중이었던 기자는 그 곳 친구들에게 몇몇 노래를 들려줬다. 그들은 브라운 아이즈의 ‘벌써 일 년’을 듣고 구슬프고도 깔끔한 느낌에 감탄했다. 몇 년이 지난 지금, 파리지앵들은 케이팝을 스스로 찾아 듣는다. 뜻을 구체적으로 알지는 못해도 흥얼흥얼 따라 부른다. 6월에 열렸던 SM타운 콘서트에서는 많은 팬들이 노래와 춤을 따라 하는 장면이 포착됐다.

지난 7월 영국 런던 트라팔가 광장에서는 한류 팬 1400여 명이 자기네 도시에서도 케이팝 공연을 보게 해 달라는 시위를 벌였다. 미국 로스앤젤레스와 뉴욕, 캐나다 토론토와 몬트리올에서도 각각 100여 명의 팬이 모여 시위를 벌였다. 인터넷상에서 미리 시간과 장소를 정하고 불특정다수가 모여 케이팝을 틀어놓고 춤을 추는 이색적인 시위(플래시몹)였다.


[➊ 한류 팬 300여명이 프랑스 파리 루브르미술관 앞에서 추가 공연을 해달라고 시위했다. 사진은 슈퍼주니어의 ‘쏘리쏘리’를 다함께 추는 모습.
➋ 이메일 인터뷰에 답한 소니아 뒤졸르 양(왼쪽)이 친구와 함께 SM타운 콘서트 현장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페이스북에서 케이팝을 검색하면 한국 아이돌과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이 여러 개 나온다. 글과 사진을 훑어보면 케이팝이 해외에서 인기 있다는 말이 ‘언론플레이’만은 아님을 실감할 수 있다. 기자는 ‘케이팝 콘서트 인 유럽’ 페이지(www.facebook.com/kpopconcerteurope)에서왕성하게 활동하는 15명에게 어떻게 케이팝을 알게 됐는지, 케이팝을 왜 좋아하는지 등을 물어봤다.

케이팝이 열풍을 일으킨 데는 역시 유학생들의 힘이 컸다. 응답자 대부분은 한국인 친구가 있었다. 슈퍼주니어의 ‘쏘리쏘리(SORRY, SORRY)’를 듣고 케이팝에 매료됐다는 대답이 많았다. 그들은 인터넷을 통해 케이팝 음원과 동영상을 접했고 결국 한류 팬이 됐다. “연습생 기간이 길고 힘들다고 들었어요. 그래서 노래하는 동시에 춤을 추는 일이 가능한 거겠죠? 미국과 유럽에도 어린 스타들이 있지만 한국 아이돌처럼 ‘완성된 스타’는 없어요.” 파리 근교 베르생드니에 살고 있는 소니아 뒤졸르 씨는 케이팝에 매료된 첫 번째 이유로 ‘아이돌의 전문성’을 꼽았다. 프랑스 동부 마콩에 사는 세팅고즈 디잔 씨는 “음악에서든 예능에서든 팀마다 멤버들의 역할과 캐릭터가 다르다”며 “ ‘우리 결혼했어요’를 보면서 수수하고 인간적인 면에 더욱 빠져 버렸다”고 말했다. 국내 전문가들은 “유투브 같은 동영상 검색사이트와 페이스북, 트위터 같은 SNS 덕에 케이팝이 널리 알려졌다”고 분석한다. 하지만 여기에 올라와 있는 가요는 케이팝뿐이 아니다. 케이팝만이 가진 ‘중독적인 무언가’가 있는 것이다.

거부할 수 없는 너의 마력은~ 후크송

“시험 시간 내내 귀에서 샤이니의 ‘루시퍼(Lucifer)’가 맴돌아서 망쳤어요!”

“군인 버전도 있어? 온 국민이 ‘텔미(tell me)’에 빠졌군.”

“ ‘지(이하 GEE)’에서는 ‘GEE’가 52번 나온다면서요?”

최근 유행하는 케이팝의 특징을 간단하게 세 가지로 말할 수 있다. 중독되기 쉽다는 점, 전염성이 강하다는 점, 후렴구의 리듬과 가사가 단순하고 반복적이라는 점(후킹효과)이다. 이런 형식의 노래를 ‘후크송’이라고 부른다. 많은 사람들이, 서양 사람들마저 한국 후크송에 매료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숭실대 정보통신전자공학부 소리공학연구소의 배명진 교수는 “전자제품이 원래는 서양에서 발명됐지만 우리나라 기업에서 만든 제품이 잘 팔리는 것처럼 후크송도 서양에서 만들어진 노래형식이지만 한국에서 작곡한 것이 더 세련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과학동아는 충북도립대 정보통신과학과 생체신호분석실의 조동욱 교수에게 의뢰해 케이팝 후크송의 중독성을 분석했다. 그는 안정도에서 답을 찾았다. 안정도는 ‘유성음(가사가 나오는 부분)’과 ‘무성음(가사가 나오지 않는 부분)’의 비율을 뜻한다. 적당히 끊어 읽고 쉬어가면서 말하는 뉴스 앵커의 어조는 안정도 30~40%로 듣기에 가장 편안하다.

조 교수는 1960년대(이미자 ‘동백아가씨’ 등), 1970년대(심수봉 ‘그때 그 사람’ 등), 1980년대(강수지 ‘보랏빛향기’ 등)와 최근 1~2년 동안 유행했던 후크송(소녀시대 ‘GEE’ 등)에 속하는 22곡의 안정도를 분석했다. 그 결과 1960~1980년대 유행했던 서정적인 노래는 가사가 천천히 흐르고 호흡이 길게 이어져 안정도가 30% 미만이었다. 최신 발라드의 안정도도 이와 비슷했다. 장윤정의 ‘어머나’, 설운도의 ‘누이’ 같은 트로트는 일정한 후렴구가 몇 번 등장하면서 안정도가 30~40% 정도였다. 조 교수는 “다양한 연령대에서 트로트를 좋아하는 이유는 듣기에 가장 편안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후크송은 안정도가 평균 62.76으로 대단히 높았다. 단순하고 매력적인 리듬(후크)이 여러 번 반복해 매우 안정되기 때문이다. 조 교수는 “심장 박동수와 비슷한 수치”라며 “생체신호와 비슷한 외부 자극에 동조하면서 뇌가 중독된다”고 설명했다. 그는 “감정을 최대한 이입해 부르는 발라드와 달리, 감정을 배제해 기계처럼 부르는 최신 가요에 중독되기가 더 쉽다”고 밝혔다. ‘~해요’, ‘~돼요’로 끝나는 롤러코스터 남녀탐구생활에서 나오는 말투가 유행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런 기계적인 리듬과 말투는 호소력이나 감정이입도는 떨어지지만 중독성이 굉장히 높고 음성구조도 단순해 따라 하기도 쉽다.

배명진 교수도 비슷한 설명을 했다. “후크송은 사람이 가장 편하게 즐길 수 있는 4분의 4박자로 이뤄져 있습니다. 속도는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은 약 123bpm(beat per minute, 1분당 박자수)이죠. 이것은 사람이 가벼운 달리기를 마쳤을 때의 심장 박동수와 비슷한 수치로 약간 흥겨우면서도 즐거운 느낌을 전해줍니다.”

시각, 촉각 자극하면 무한 반복도 지루하지 않아

배명진 교수는 2PM의 ‘10점 만점에 10점’, 동방신기의 ‘주문’, 바나나걸의 ‘미쳐미쳐미쳐’, 빅뱅의 ‘롤리팝(Lollipop)’과 ‘거짓말’, 소녀시대의 ‘GEE’, 샤이니의 ‘링딩동(Ring Ding Dong)’, 카라의 ‘허니(Honey)’. 손담비의 ‘토요일 밤에’, 슈퍼주니어의 ‘쏘리쏘리’, 원더걸스의 ‘노바디(Nobody)’를 비롯한 15곡을 분석했다. 이 노래들은 평균적으로 후크가 노래의 41%를 차지하며, 시작한 지 31초부터 등장한다. 기다리기 싫어하는 대중의 성향을 간파한 것이다.
 
[후크송의 템포는 가벼운 조깅을 막 끝냈을 때의 심장 박동수와 비슷하다. 그래서 후크송을 들으면 가슴이 들뜨고 흥겨운 기분이 든다.]


[길고 긴 연습생 생활을 거쳐 완성된 춤과 노래, 화려한 무대 연출 등으로 케이팝은 세계적으로 사랑을 받고 있다. 사진은 SM타운 파리 콘서트 중 동방신기의 무대.]

하지만 반복되는 리듬은 아무리 매력적이더라도 지루하기 마련이다. 배 교수는 “시각과 촉각을 충족시켜줌으로써 이런 한계점을 해결했다”고 설명했다. 화려한 아이돌의 외모와 곡마다 콘셉트가 다른 의상, 무대 위아래로 현란하게 돌아가는 조명은 관객의 눈을 즐겁게 한다. 팬들은 가수가 추는 춤을 따라 추면서 노래를 온몸으로 느낀다. ‘몸치’인 사람도 리듬을 타기에 가장 친근한 4분의 4박자이며, 안무 동작이 비교적 간단하고 후렴구마다 등장한다는 점도 후크송이 촉각을 자극하게 만든다.

후크송은 춤 없이 음원만으로도 촉각을 자극한다. 배 교수는 송대관의 ‘네박자’와 원더걸스의 ‘노바디’ 음원을 분석한 스펙트럼을 보여줬다. 사운드스펙트럼은 전체적으로 빨간 세로줄로 빽빽하게 나타났다. 가사가 나오는 부분은 목소리 주파수대(300Hz 근처)에서 노랗게 나타났다. 두 노래는 동일한 4분의 4박자이지만 스펙트럼의 성격이 전혀 달랐다. 고음보다 저음에 에너지가 실린 ‘네박자’와 달리 ‘노바디’는 모든 음역 대에서 일정한 에너지가 실렸다. 배 교수는 “발라드와 트로트는 가사를 전달하는 일이 중요하기 때문에 가수 목소리에 의존하지만, 최신 가요는 악기나 전자음에 의존해 저음부터 고음까지 모든 음 성분이 들어간다”고 설명했다.

‘노바디’에서는 후크에 해당하는 패턴이 수십 개나 나타63났다. 또 노래가 시작해서 끝날 때까지 가장 낮은 주파수대에 아주 밝은 노란색의 스펙트럼이 깔려 있었다. 100Hz 미만의 주파수(저주파)다. 노래에는 ‘쿵짝 쿵짝 쿵짝짝 쿵짝’처럼 들린다. 배 교수는 “후크송은 강렬한 드럼 소리가 저주파로 전해진다”면서 “특히 콘서트 현장에서 들으면 피부에 닭살이 돋을 만큼 자극적”이라고 설명했다.

케이팝의 중독 바이러스는 음악적 인기를 넘어 한국 문화에 대한 긍정적인 메시지도 함께 전달하고 있다. 프랑스 동부 디종에 사는 베랑제르 구르네 씨는 “케이팝은 가사가 긍정적이어서 우리에게 도덕적인 생각을 심어주고, 힘들 때 용기를 준다”며 “가사의 뜻을 알고 나서부터는 매일 듣는다”고 말했다. 파리 북동쪽 랭스에서 사는 알린 반덴프리스체 씨는 “미국과 프랑스의 최신가요에는 여성을 폄하하는 가사가 많지만, 케이팝은 대개 여자를 존중하고 기쁘게 해주는 가사가 많다”고 말했다.

일부 한류 팬들은 콘서트를 보기 위해 서울에 오고 싶다는 대답을 하기도 했다. 소니아 뒤졸르 씨는 “최신곡과 아이돌 소식에 눈과 귀를 집중하다보니 비행기로 10시간 이상 떨어져 있는 그곳이 더 이상 멀게 느껴지지 않는다”며 “한국으로 여행이나 어학연수까지 생각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류의 뜨거운 열기는 앞으로도 리듬을 타고 세계 곳곳으로 퍼져나갈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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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08월 과학동아 정보

  • 이정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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