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교 시절 1등을 놓치지 않았다. 서울대에도 수석으로 들어왔다. 그러나 당시 대학은 공부에만 전념할 수 있는 시대가 아니었다. 고민도 많이 하고 책도 많이 보고 다른 데 눈도 돌렸다. 그러나 마지막에 깨달은 것은 ‘나는 물리학자’라는 사실이었다.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제대로 공부를 시작했다. 처음으로 창의성이 부족하다고 절망도 해봤다. 지금은 누구나 그를 한국 최고의 물리학자라고 말한다. 한국인으로는 세 번째로 미국과학학술원(NAS) 회원에 선임된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임지순 교수(60)다.

생애 마지막 목표 수소 저장 물질
“‘후배들에게 책임을 다 했다’는 기분이에요. 노벨상 빼고는 최고의 영예니까. 그런데 노벨상은 우리 세대의 몫은 아닌 거 같아요. 우리보다 2세대쯤 뒤, 그러니까 지금 30대 후반에서 40대 중반의 후배들이 첫 노벨상을 받지 않을까요?”
기자가 임 교수를 안 지는 10년이 넘었다. 그동안 한 번도 잘했다는 자랑을 스스로 한 적이 없었다. 그러나 이번만은 꽤 기분 좋은 듯 했다. 국내에서는 한탄 바이러스를 발견한 이호왕 고려대 명예교수와 신희섭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뇌과학연구소장에 이어 세 번째인데다가 물리학자로서는 처음이다. NAS에는 노벨과학상 수상자만 200여 명이다. 말 그대로 최고의 과학자 집단이다. 임 교수는 “내년 상반기에 입회식이 있는데 무척 기대된다”고 설레어 했다.
임지순 교수는 세계적인 고체이론물리학자다. 2000년 세계최소형 탄소나노튜브 트랜지스터를 개발해 명성을 떨쳤다. NAS 회원도 됐으니 다음에 노벨상을 받지 않겠냐고 했더니 고개를 저었다(언론에서 이런 기사를 쓸 때 늘 첫손가락에 꼽는 게 임 교수다). 자신은 그 정도는 아니라면서 “후학들이 꼭 받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오히려 임 교수는 노벨상보다 지금 하고 있는 연구에 성공하는 게 마지막 목표라고 강조했다.
“새로운 수소 저장 물질을 만드는 연구예요. 어차피 기름을 계속 땔 순 없고 전기자동차나 수소연료전지자동차로 가야 되는데 전기자동차는 효율이 낮아요. 수소자동차는 수소를 안전하게 저장하는 게 문제예요. 아주 높은 기압이나 낮은 온도에서 저장해야 하거든. 그렇지 않으면 언제 터질지 모르니까요. 상온에서 안전한 압력으로 수소를 저장하게 되면 쉽게 수소자동차를 타고 다닐 수 있을 거예요. 지금은 구멍이 많은 탄소 골격 물질을 디자인해 수소를 대량으로 저장하는 연구를 하고 있죠.”
워낙 진지하게 학문만 고집하는 걸로 유명한 임 교수였지만 우연히 노래 이야기가 나오자 표정이 훨씬 가벼워졌다. “‘나는 가수다’ 꼭 봐요. 임재범하고 박정현이 좋아. 노래 너무 잘 하잖아요. 조용필과 비틀즈도 좋아하고. 걸 그룹은 거기서 거기 같아서 별로.”

창의성도 소통이 중요해
임 교수는 인터뷰 내내 창의성에 대해 참 많은 이야기를 했다. 미국 가서 가장 당황했던 것도 창의성 때문이었다고 한다. 임 교수는 서울대를 졸업하고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로 유학을 떠나 석·박사를 받았다. 메사추세츠공대(MIT)에서 박사후연구원을 지냈다. 이후 벨연구소 연구원을 거쳐 1986년 9월 서울대 교수로 임용됐다. 2009년에는 석좌교수로 임명됐다.
“한국에서 공부를 많이 안했지만 이론을 이해하는 공부는 따라가기가 어렵지 않았어요. 그런데 창의성은 달랐어. 스스로 연구 주제를 찾고 자신만의 방법을 찾아내고, 이런 게 차이가 많이 나는 거예요. 나중에 노벨상을 받은 러플린 전 KAIST 총장 같은 사람을 보면서 ‘내 나이엔 따라잡을 수 없는 게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래도 포기하지는 않았어요. 내가 잘 하는 걸 끈질기게 밀고 나갔죠.”
임 교수는 창의성을 키우는 방법으로 뜻밖에 대화를 꼽았다. “골방에 들어가지 말라”고도 했다. 혼자 생각하다 잠들면 꿈에 분자 구조가 보이는 건 한두 번이지 계속할 수 없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과 계속 대화하고 새로운 방법을 찾다보면 멋진 아이디어가 나와요. 창의성도 소통이 필요한 거죠. 물론 나만의 사색도 없어서는 안 돼요.”
그는 실험실에 있는 대학원생들에게도 섣불리 답을 제시하지 않으려 애쓴다고 말했다. “교수가 참아야 돼요. 아무리 답답해도. 그리고 창의성은 답을 찾는 게 반, 문제를 찾는 게 반이예요. 무엇을 할지 모르는 게 창의성의 시작입니다.”
그래서 후배들을 보면 안타까울 때가 많다고 한다. 연구 환경은 이제 세계적인 수준인데 창의성을 키우는 분위기는 아니기 때문이다. 적어도 대학에 왔다면 시험과 상관없이 끈질기게 파고들어야 하는데 인터넷만 뒤져 답만 찾는다는 것이다.
“과학을 하겠다는 친구라면 큰 문제에 도전해 보세요. 성과는 금방 나오지 않겠지만 인생을 반복하며 사는 건 재미 없잖아요. 청소년들은 공부 말고도 자기가 좋아하는 것에 꼭 시간을 내보세요. 그게 꼭 과학이 아니더라도. 나도 열심히 다른 분야 책 보다 과학자가 됐어요.”

생애 마지막 목표 수소 저장 물질
“‘후배들에게 책임을 다 했다’는 기분이에요. 노벨상 빼고는 최고의 영예니까. 그런데 노벨상은 우리 세대의 몫은 아닌 거 같아요. 우리보다 2세대쯤 뒤, 그러니까 지금 30대 후반에서 40대 중반의 후배들이 첫 노벨상을 받지 않을까요?”
기자가 임 교수를 안 지는 10년이 넘었다. 그동안 한 번도 잘했다는 자랑을 스스로 한 적이 없었다. 그러나 이번만은 꽤 기분 좋은 듯 했다. 국내에서는 한탄 바이러스를 발견한 이호왕 고려대 명예교수와 신희섭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뇌과학연구소장에 이어 세 번째인데다가 물리학자로서는 처음이다. NAS에는 노벨과학상 수상자만 200여 명이다. 말 그대로 최고의 과학자 집단이다. 임 교수는 “내년 상반기에 입회식이 있는데 무척 기대된다”고 설레어 했다.
임지순 교수는 세계적인 고체이론물리학자다. 2000년 세계최소형 탄소나노튜브 트랜지스터를 개발해 명성을 떨쳤다. NAS 회원도 됐으니 다음에 노벨상을 받지 않겠냐고 했더니 고개를 저었다(언론에서 이런 기사를 쓸 때 늘 첫손가락에 꼽는 게 임 교수다). 자신은 그 정도는 아니라면서 “후학들이 꼭 받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오히려 임 교수는 노벨상보다 지금 하고 있는 연구에 성공하는 게 마지막 목표라고 강조했다.
“새로운 수소 저장 물질을 만드는 연구예요. 어차피 기름을 계속 땔 순 없고 전기자동차나 수소연료전지자동차로 가야 되는데 전기자동차는 효율이 낮아요. 수소자동차는 수소를 안전하게 저장하는 게 문제예요. 아주 높은 기압이나 낮은 온도에서 저장해야 하거든. 그렇지 않으면 언제 터질지 모르니까요. 상온에서 안전한 압력으로 수소를 저장하게 되면 쉽게 수소자동차를 타고 다닐 수 있을 거예요. 지금은 구멍이 많은 탄소 골격 물질을 디자인해 수소를 대량으로 저장하는 연구를 하고 있죠.”
워낙 진지하게 학문만 고집하는 걸로 유명한 임 교수였지만 우연히 노래 이야기가 나오자 표정이 훨씬 가벼워졌다. “‘나는 가수다’ 꼭 봐요. 임재범하고 박정현이 좋아. 노래 너무 잘 하잖아요. 조용필과 비틀즈도 좋아하고. 걸 그룹은 거기서 거기 같아서 별로.”

창의성도 소통이 중요해
임 교수는 인터뷰 내내 창의성에 대해 참 많은 이야기를 했다. 미국 가서 가장 당황했던 것도 창의성 때문이었다고 한다. 임 교수는 서울대를 졸업하고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로 유학을 떠나 석·박사를 받았다. 메사추세츠공대(MIT)에서 박사후연구원을 지냈다. 이후 벨연구소 연구원을 거쳐 1986년 9월 서울대 교수로 임용됐다. 2009년에는 석좌교수로 임명됐다.
“한국에서 공부를 많이 안했지만 이론을 이해하는 공부는 따라가기가 어렵지 않았어요. 그런데 창의성은 달랐어. 스스로 연구 주제를 찾고 자신만의 방법을 찾아내고, 이런 게 차이가 많이 나는 거예요. 나중에 노벨상을 받은 러플린 전 KAIST 총장 같은 사람을 보면서 ‘내 나이엔 따라잡을 수 없는 게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래도 포기하지는 않았어요. 내가 잘 하는 걸 끈질기게 밀고 나갔죠.”
임 교수는 창의성을 키우는 방법으로 뜻밖에 대화를 꼽았다. “골방에 들어가지 말라”고도 했다. 혼자 생각하다 잠들면 꿈에 분자 구조가 보이는 건 한두 번이지 계속할 수 없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과 계속 대화하고 새로운 방법을 찾다보면 멋진 아이디어가 나와요. 창의성도 소통이 필요한 거죠. 물론 나만의 사색도 없어서는 안 돼요.”
그는 실험실에 있는 대학원생들에게도 섣불리 답을 제시하지 않으려 애쓴다고 말했다. “교수가 참아야 돼요. 아무리 답답해도. 그리고 창의성은 답을 찾는 게 반, 문제를 찾는 게 반이예요. 무엇을 할지 모르는 게 창의성의 시작입니다.”
그래서 후배들을 보면 안타까울 때가 많다고 한다. 연구 환경은 이제 세계적인 수준인데 창의성을 키우는 분위기는 아니기 때문이다. 적어도 대학에 왔다면 시험과 상관없이 끈질기게 파고들어야 하는데 인터넷만 뒤져 답만 찾는다는 것이다.
“과학을 하겠다는 친구라면 큰 문제에 도전해 보세요. 성과는 금방 나오지 않겠지만 인생을 반복하며 사는 건 재미 없잖아요. 청소년들은 공부 말고도 자기가 좋아하는 것에 꼭 시간을 내보세요. 그게 꼭 과학이 아니더라도. 나도 열심히 다른 분야 책 보다 과학자가 됐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