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말 완공을 앞두고 있는 시화호 조력발전소가 본격적인 전기 생산에 앞서서 6월 말 시험운영에 들어간다. 완공되면 프랑스의 랑스 조력발전소를 제치고 세계 최대 조력발전소가 된다. 지난 5월 13일, 마무리 공사가 한창인 시화호 조력발전소 건설 현장을 방문했다. 현황을 살펴보고 건설 과정의 어려움을 어떻게 극복했는지 들어봤다. 조력발전을 둘러싼 논쟁도 정리했다.
[지난 4월 13일 시화호 상공에서 찍은 시화호 조력발전소 건설현장. 발전기 설치가 끝나 공사현장에 물이 못 들어오게 막았던 ‘가물막이’를 해체하고 있다.]
“시화방조제까지 10km 남았습니다.”
취재차량이 경기 안산시 시화공단에 접어들자 내비게이션이 목적지를 알렸다. 불현듯 김승옥 소설가의 단편 ‘무진기행’이 떠올랐다. 주인공은 고향인 무진에 오랜만에 갔다가 그곳에서 현대인의 숨겨진 열망과 좌절을 보곤 부끄러운 마음을 느끼며 나온다. 기자도 이곳 취재를 마치고 나올 때 혹시 같은 마음을 느끼는 것은 아닐까.
이런 생각을 한 이유는 기자가 찾아가는 시화호가 바로 90년대 대표적인 환경 문제 지역으로 꼽히던 곳이기 때문이다. 땅을 넓히기 위해 갯벌과 바다를 매립하고, 이를 위해 1987년 바다를 막는 총 연장 12.7km 길이의 둑 네 개를 쌓기 시작했다. 7년만인 1994년 1월 마지막 물막이 작업을 끝으로 둑(시화방조제)이 완공됐다. 둑과 매립지 모두 당시 국내 최대 규모였다. ‘수질환경보전법’ 제2조 12호에 따르면 댐이나 제방에 가로막힌 물은 ‘호수’다. 이 바다 역시 호수가 됐다. 사람들은 이곳에 인근 지자체인 시흥과 화성의 이름을 따서 ‘시화호’라는 이름을 붙였다.
시화호는 주변 공장과 농지에 물을 공급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시화호 주변은 바다를 메워 육지를 만든 간척지다. 농지와 공업용지로 쓸 예정이었다. 용수로 쓰기 위해서는 물에서 소금기를 빼야 했다. 하지만 완공 3년만에 방조제 문을 열어 바닷물을 들여야 했다. 주변 공단에서 흘러온 오폐수로 호수 수질이 크게 나빠졌기 때문이다. 맑은 바닷물을 끌어들여 오염물을 희석시켰다. 이는 시화호에 고여 있는 오염된 물을 조금씩 서해로 내보냈다는 뜻이기도 하다. 3년만인 2000년 12월, 결국 정부는 시화호를 민물 호수(담수호)로 만들기를 포기하고 소금물 호수(해수호)로 운영하겠다고 공식적으로 선언했다. 사실상 둑에 가로막힌 ‘바닷물 호수’가 된 셈이다.
바닷물을 들인 이후 수질이 많이 좋아졌다. 하지만 바닷물 호수는 농사에도, 공장에도 쓸모가 없었다. 갯벌을 막아 만든 43.8km2 넓이의 거대한 인공 호수가 아무런 쓸모가 없다는 사실은 한동안 사람들에게 큰 부담이었다. 빨리 활용방안을 생각해 내야 했다. 바다와 갯벌을 없앤 대가는 무거웠다. 시화호는 90년대 우리의 개발 열망과, 그 이면의 좌절을 보여 주는 상징적인 예로 남았다. 무진기행의 무진처럼.
[기자가 현장을 찾았을 때는 공사를 위해 바다 쪽에 설치했던 가물막이 해체가 막바지였다. 사진에 보이는 기둥이 금속판(강널말뚝)을 이어 붙이고 속에 철제 말뚝과 모래를 넣어 만든 지름 20m 짜리 ‘원형셀’이다.]
수질도 개선하고 전기도 생산하는 묘안을 찾다
조력발전소는 이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생각해 낸 묘안 중 하나였다. 시화호는 오목한 만에 설치한 방조제의 수문을 통해 바닷물이 드나들고 있었다. 이런 지형은 조력발전을 하기에 좋다. 더구나 우리나라의 서해안은 밀물과 썰물 때의 물 높이차(조차)가 꽤 큰 지역이다. 미국 에너지부가 2009년 펴낸 ‘해양에너지 기술 개요’ 보고서에 따르면, 조력발전에 적합한 바닷물의 높이 차이는 최소 5m다. 한국해양수산개발원이 2010년 11월 펴낸 보고서에는 우리나라 서해안의 평균 물 높이 차이는 천수만이 4.5m, 가로림만이 4.7m, 인천만이 7.2m로 나와 있다. 시화호는 약 5.8m다. 경제적으로 전기를 만들 수 있는 조건은 갖춰진 셈이다. 바닷물을 드나들게 만든 것은 시화호가 오염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택한 불가피한 결정이었지만, 결과적으로 적절한 활용 방법을 찾은 셈이다.
조력발전소를 지을 때 가장 큰 어려움은 방조제를 짓는 일이다. 방조제 자체는 짓기 어렵지 않다. 멀쩡한 바다를 막고 갯벌을 파괴한다는 반대 여론에 맞서서 주민들을 설득시켜야 한다는 점이 더 힘들다. 현재 새로 건설을 추진하고 있는 서해안의 다른 조력발전소 예정지 모두 이런 어려움에 부딪히고 있다(48쪽 박스 기사 참조). 하지만 시화호는 이미 방조제가 만들어져 있는 상태였다. 발전설비만 설치하면 됐다. 2002년 처음 계획을 세운 뒤 2004년 말 공사를 시작했다. 만 7년만의 완공이다.
공사 현장에 도착했다. 멀리 호수 쪽에서는 바다를 메운 흙 위에서 굴삭기가 물에 고개를 박고 흙을 퍼올리고 있었다. 바다 쪽에서는 커다란 깡통처럼 생긴 금속 기둥을 해체하는 작업이 한창이었다.
“가물막이를 해체하는 작업입니다. 절반 정도 진행됐습니다.”
한국수자원공사(K-water, 케이워터) 시화조력관리단 손중원 차장이 설명했다. 손 차장은 수차발전기 설치 작업을 직접 감독했다. 수차 발전기(터빈)는 조력발전소의 핵심이다. 밀물 때 바닷물이 밀려들어와 날개를 회전시키면 전기가 만들어진다. 이는 육지의 댐에 설치된 수력발전기와 똑같은 원리다. 시화호 조력발전소에는 지름이 8.2m, 길이가 17m인 물방울 모양의 수차발전기가 10대 설치돼 있다.
수차발전기 설치 과정은 발전소 부지의 물을 모두 뺀 상태에서 이뤄졌다. 이를 위해 호수 쪽에는 이미 만들어 둔 방조제에 ‘강널 말뚝’이라는 보강용 금속판을 박아 물이 새지 않게 만든 뒤 안쪽을 팠다. 바다 쪽에는 울타리를 치듯 둥글게 철제 기둥을 세워서 간이 댐을 만들었다.
바로 ‘가물막이’다. 바다에 보이는 깡통 모양이 구조물이 바로 가물막이를 만들기 위한 구조물인 ‘원형 셀’이다. 넓이 50cm짜리 금속 판을 둥글게 이어 붙여 지름이 20m이고 속이 빈 금속 기둥을 만들었다. 가장 깊은 바다는 34m에 달했기 때문에 기둥 역시 이 정도 길이가 필요했다. 기둥을 만든 뒤에는 안에 금속 말뚝을 박았다. 바다 밑에 단단하게 고정하기 위해서다. 그런 뒤 모래를 부어 튼튼하게 했다. 이렇게 만든 원형 셀을 29개 이어 붙이고 사이사이 빈 곳을 보강해 700m짜리 반원형 댐을 만들었다. 안쪽에 고인 물을 빼자 마치 모세의 기적처럼 바다 한가운데가 갈라지며 땅이 드러났다. 여기에 수차발전기를 설치했다.
“밀물과 썰물이 되풀이된다는 것은 거대한 바닷물의 힘이 공사 현장에 가해진다는 뜻입니다. 그 위험을 헤치고 공사를 계속하는 것이 가장 어려웠습니다.”
시화호조력발전소건설단 김기완 대리는 공사 과정에서 겪은 어려움을 이렇게 표현했다. 하지만 시화호 조력발전소는 비교적 운이 좋은 편에 속한다. 발전소를 지은 곳이 ‘작은가리섬’이라는 섬이 있던 곳이라 지반이 암반으로 돼 있었기 때문이다. 지반이 약하면 바다 속 땅을 단단하게 보강하는 공사까지 필요한데, 그 과정을 생략할 수 있었다. 마침 시화방조제 비교적 가운데라 위치도 적당했다.
10대의 수차가 20만 명 쓸 전력 생산
발전용 수차발전기는 이미 설치가 끝나 물에 잠겨 있었다. 거대한 수차의 위용을 직접 눈으로 보고 싶었지만 불가능했다. 수차와 수문 모두 물에 잠겨서 그 깊이를 가늠할 방법도 없었다. 이런 생각을 눈치챈 듯 손 소장은 기자를 수차구조물이 설치된 끝부분으로 데려갔다.
“아래를 보세요.”
성냥갑을 세워놓은 것처럼 가로가 길고 깊은 직사각형 모양의 구덩이였다. 그 안에 역시 가로로 긴 거대한 철제 빔 모양의 구조물이 차곡차곡 쌓여 있었다. 꼭 갈빗대 같았다. 깊이를 가늠하기 어려웠다.
“‘스톱로그’라고 합니다. 수차를 막는 임시 문이지요. 저 철제 구조물 하나의 높이가 3m인데, 6개를 쌓아서 수차발전기 하나의 입구를 막습니다. 이렇게 스톱로그 12개로 양쪽 입구를 막으면 안에 물이 새지 않는 구조가 되고, 미리 만들어둔 배수구로 물을 빼면 수차발전기가 드러납니다. 그 때 들어가서 발전기를 점검하거나 수리하지요. 이 구덩이는 스톱로그 저장고로, 모두 6개의 스톱로그가 저장돼 있습니다.”
그러니까 기자가 보고 있는 곳의 깊이가 30m쯤 된다는 뜻이다. 아파트로 치면 10층이 넘는다. 이번에는 손 소장을 따라 크레인 위에 올라갔다. 수차발전기 10대를 설치했고, 앞으로 스톱로그를 설치할 때도 쓸 크레인이다. 해발 33m 높이였다. 오르자 발전소와 방조제가 한눈에 들어왔다.
“가까이 보이는 쪽이 수차, 멀리 보이는 쪽이 수문입니다. 수문은 모두 8개가 있고, 썰물 때 물이 빠지는 곳입니다.”
시화호 조력발전소는 밀물 때에만 발전을 한다. 하루 두 차례 밀물이 되면 발전소를 기준으로 바다 쪽 수위가 높아진다. 평균 5.82m의 물 높이 차가 발생하는데, 이 때 위치에너지 차이가 호수 쪽으로 물을 흐르게 한다. 이 흐름이 수차발전기를 돌려 운동에너지를 발생시키고, 최종적으로 전기가 생산된다. 밀물이 끝나고 썰물이 되면 물이 다시 빠져나간다. 발전기 날개가 바다쪽으로 향해 설치돼 있기 때문에 들어올 때의 30%밖에 물이 빠져나가지 않고, 이때엔 전기가 만들어지지 않는다. 나머지 70%의 물을 빼내는 것이 바로 8개의 수문이다.
수문은 말 그대로 물이 빠져나가기만 하기 때문에 뻥 뚫린 터널 형태다. 발전 기능도 없다. 하지만 수차발전기만으로도 이미 상당한 양의 전기를 만들 수 있다. 한국수자원공사의 계산에 따르면 한 해에 5억 5200만kWh의 전력을 만들 수 있다. 소양강 댐의 1.56배로 인구 20만 명 정도의 중소도시의 한 해 전기 사용량에 해당한다.
마지막으로 발전기가 설치된 지하로 내려갔다. 발전기 자체는 이미 물에 잠겨 있어서 볼 수 없지만 발전기의 규모를 간접적으로나마 느껴볼 수 있는 곳이었다. 생각보다 거대한 지하 공간이 펼쳐져 있었다. 바로 아래에 10대의 발전기가 물살을 가르며 돈다고 생각하니 진동이 느껴지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기자가 방문했을 때는 아직 발전 설비를 가동하고 있지는 않았다). 문득 ‘한번 설치하고 나면 교체하기가 쉽지 않을 텐데 바닷물에 발전기가 녹이 슬지는 않을까’하는 궁금함이 일었다. 바닷물이 금속을 빨리 부식시킨다는 것은 상식이다.
“부식을 방지하기 위한 대책이 3가지 마련돼 있습니다. 먼저 스테인리스 등 녹이 슬지 않는 재료를 씁니다. 유량조절장치나 수차 날개와 같이 중요한 부분은 이 방법을 씁니다. 다음으로 녹이 슬지 않도록 부식 방지제를 바릅니다. 마지막으로 금속 표면에 아주 약한 전류를 흐르게 합니다. 이 세 가지 방법을 쓰면 오랜 시간 부식 없이 발전기를 유지할 수 있지요.”
특히 마지막 방법에 관심이 갔다. 부식이란 결국 금속의 산화다. 산화는 물질이 전자를 잃는 과정이다. 따라서 전류를 흘리면 전자가 공급돼 산화를 막을 수 있다. 이미 프랑스의 랑스 조력발전소 때부터 써 온 기술이다. 40년 넘게 검증된 방법이다.
화석 연료 대안 될까
설명을 마치며, 손 소장은 우리나라보다 외국에서 관심이 더 많다고 덧붙였다. 손 소장이 손수 안내한 외국 방송사만도 CNN, BBC, 알 자지라 등이 있었다. 하나같이 깊은 관심을 보이며 현장을 찾고, 기대가 섞인 표정으로 설명을 듣고 갔다고 했다.
“조력발전소가 궁극적인 대안은 아닐 것입니다. 생태계 등 바다 환경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도 사실이지요. 하지만 화석 연료를 대체할 현실적인 대안임은 분명합니다.”
시화호 조력발전소가 11월 말 본격적인 상업 전기를 생산하면 세계의 관심은 더 커질 것이다. 하지만 세계가 관심을 보이는 것이 비단 세계 최대라는 규모 때문만은 아니다. 44년 만에 처음 건설되는 대규모 상업 조력발전소가 바다 환경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여부도 큰 관심사다. 시화호 조력발전소가 성공적으로 운영된다면, 세계 에너지 역사에도 남을 사건이 될 것이다. 물론 반대일 수도 있다. 무분별한 조력발전소 건립 붐을 일으켜 바다 생태계에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줄지도 모른다. 건설 현장을 빠져나와 방조제 길을 따라 다시 내륙으로 들어서며, 기자는 시화 조력발전소가 에너지계의 ‘무진’이 되지 않기를 조용히 기원했다.
[지난 4월 13일 시화호 상공에서 찍은 시화호 조력발전소 건설현장. 발전기 설치가 끝나 공사현장에 물이 못 들어오게 막았던 ‘가물막이’를 해체하고 있다.]
“시화방조제까지 10km 남았습니다.”
취재차량이 경기 안산시 시화공단에 접어들자 내비게이션이 목적지를 알렸다. 불현듯 김승옥 소설가의 단편 ‘무진기행’이 떠올랐다. 주인공은 고향인 무진에 오랜만에 갔다가 그곳에서 현대인의 숨겨진 열망과 좌절을 보곤 부끄러운 마음을 느끼며 나온다. 기자도 이곳 취재를 마치고 나올 때 혹시 같은 마음을 느끼는 것은 아닐까.
이런 생각을 한 이유는 기자가 찾아가는 시화호가 바로 90년대 대표적인 환경 문제 지역으로 꼽히던 곳이기 때문이다. 땅을 넓히기 위해 갯벌과 바다를 매립하고, 이를 위해 1987년 바다를 막는 총 연장 12.7km 길이의 둑 네 개를 쌓기 시작했다. 7년만인 1994년 1월 마지막 물막이 작업을 끝으로 둑(시화방조제)이 완공됐다. 둑과 매립지 모두 당시 국내 최대 규모였다. ‘수질환경보전법’ 제2조 12호에 따르면 댐이나 제방에 가로막힌 물은 ‘호수’다. 이 바다 역시 호수가 됐다. 사람들은 이곳에 인근 지자체인 시흥과 화성의 이름을 따서 ‘시화호’라는 이름을 붙였다.
시화호는 주변 공장과 농지에 물을 공급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시화호 주변은 바다를 메워 육지를 만든 간척지다. 농지와 공업용지로 쓸 예정이었다. 용수로 쓰기 위해서는 물에서 소금기를 빼야 했다. 하지만 완공 3년만에 방조제 문을 열어 바닷물을 들여야 했다. 주변 공단에서 흘러온 오폐수로 호수 수질이 크게 나빠졌기 때문이다. 맑은 바닷물을 끌어들여 오염물을 희석시켰다. 이는 시화호에 고여 있는 오염된 물을 조금씩 서해로 내보냈다는 뜻이기도 하다. 3년만인 2000년 12월, 결국 정부는 시화호를 민물 호수(담수호)로 만들기를 포기하고 소금물 호수(해수호)로 운영하겠다고 공식적으로 선언했다. 사실상 둑에 가로막힌 ‘바닷물 호수’가 된 셈이다.
바닷물을 들인 이후 수질이 많이 좋아졌다. 하지만 바닷물 호수는 농사에도, 공장에도 쓸모가 없었다. 갯벌을 막아 만든 43.8km2 넓이의 거대한 인공 호수가 아무런 쓸모가 없다는 사실은 한동안 사람들에게 큰 부담이었다. 빨리 활용방안을 생각해 내야 했다. 바다와 갯벌을 없앤 대가는 무거웠다. 시화호는 90년대 우리의 개발 열망과, 그 이면의 좌절을 보여 주는 상징적인 예로 남았다. 무진기행의 무진처럼.
[기자가 현장을 찾았을 때는 공사를 위해 바다 쪽에 설치했던 가물막이 해체가 막바지였다. 사진에 보이는 기둥이 금속판(강널말뚝)을 이어 붙이고 속에 철제 말뚝과 모래를 넣어 만든 지름 20m 짜리 ‘원형셀’이다.]
수질도 개선하고 전기도 생산하는 묘안을 찾다
조력발전소는 이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생각해 낸 묘안 중 하나였다. 시화호는 오목한 만에 설치한 방조제의 수문을 통해 바닷물이 드나들고 있었다. 이런 지형은 조력발전을 하기에 좋다. 더구나 우리나라의 서해안은 밀물과 썰물 때의 물 높이차(조차)가 꽤 큰 지역이다. 미국 에너지부가 2009년 펴낸 ‘해양에너지 기술 개요’ 보고서에 따르면, 조력발전에 적합한 바닷물의 높이 차이는 최소 5m다. 한국해양수산개발원이 2010년 11월 펴낸 보고서에는 우리나라 서해안의 평균 물 높이 차이는 천수만이 4.5m, 가로림만이 4.7m, 인천만이 7.2m로 나와 있다. 시화호는 약 5.8m다. 경제적으로 전기를 만들 수 있는 조건은 갖춰진 셈이다. 바닷물을 드나들게 만든 것은 시화호가 오염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택한 불가피한 결정이었지만, 결과적으로 적절한 활용 방법을 찾은 셈이다.
조력발전소를 지을 때 가장 큰 어려움은 방조제를 짓는 일이다. 방조제 자체는 짓기 어렵지 않다. 멀쩡한 바다를 막고 갯벌을 파괴한다는 반대 여론에 맞서서 주민들을 설득시켜야 한다는 점이 더 힘들다. 현재 새로 건설을 추진하고 있는 서해안의 다른 조력발전소 예정지 모두 이런 어려움에 부딪히고 있다(48쪽 박스 기사 참조). 하지만 시화호는 이미 방조제가 만들어져 있는 상태였다. 발전설비만 설치하면 됐다. 2002년 처음 계획을 세운 뒤 2004년 말 공사를 시작했다. 만 7년만의 완공이다.
공사 현장에 도착했다. 멀리 호수 쪽에서는 바다를 메운 흙 위에서 굴삭기가 물에 고개를 박고 흙을 퍼올리고 있었다. 바다 쪽에서는 커다란 깡통처럼 생긴 금속 기둥을 해체하는 작업이 한창이었다.
“가물막이를 해체하는 작업입니다. 절반 정도 진행됐습니다.”
한국수자원공사(K-water, 케이워터) 시화조력관리단 손중원 차장이 설명했다. 손 차장은 수차발전기 설치 작업을 직접 감독했다. 수차 발전기(터빈)는 조력발전소의 핵심이다. 밀물 때 바닷물이 밀려들어와 날개를 회전시키면 전기가 만들어진다. 이는 육지의 댐에 설치된 수력발전기와 똑같은 원리다. 시화호 조력발전소에는 지름이 8.2m, 길이가 17m인 물방울 모양의 수차발전기가 10대 설치돼 있다.
수차발전기 설치 과정은 발전소 부지의 물을 모두 뺀 상태에서 이뤄졌다. 이를 위해 호수 쪽에는 이미 만들어 둔 방조제에 ‘강널 말뚝’이라는 보강용 금속판을 박아 물이 새지 않게 만든 뒤 안쪽을 팠다. 바다 쪽에는 울타리를 치듯 둥글게 철제 기둥을 세워서 간이 댐을 만들었다.
바로 ‘가물막이’다. 바다에 보이는 깡통 모양이 구조물이 바로 가물막이를 만들기 위한 구조물인 ‘원형 셀’이다. 넓이 50cm짜리 금속 판을 둥글게 이어 붙여 지름이 20m이고 속이 빈 금속 기둥을 만들었다. 가장 깊은 바다는 34m에 달했기 때문에 기둥 역시 이 정도 길이가 필요했다. 기둥을 만든 뒤에는 안에 금속 말뚝을 박았다. 바다 밑에 단단하게 고정하기 위해서다. 그런 뒤 모래를 부어 튼튼하게 했다. 이렇게 만든 원형 셀을 29개 이어 붙이고 사이사이 빈 곳을 보강해 700m짜리 반원형 댐을 만들었다. 안쪽에 고인 물을 빼자 마치 모세의 기적처럼 바다 한가운데가 갈라지며 땅이 드러났다. 여기에 수차발전기를 설치했다.
“밀물과 썰물이 되풀이된다는 것은 거대한 바닷물의 힘이 공사 현장에 가해진다는 뜻입니다. 그 위험을 헤치고 공사를 계속하는 것이 가장 어려웠습니다.”
시화호조력발전소건설단 김기완 대리는 공사 과정에서 겪은 어려움을 이렇게 표현했다. 하지만 시화호 조력발전소는 비교적 운이 좋은 편에 속한다. 발전소를 지은 곳이 ‘작은가리섬’이라는 섬이 있던 곳이라 지반이 암반으로 돼 있었기 때문이다. 지반이 약하면 바다 속 땅을 단단하게 보강하는 공사까지 필요한데, 그 과정을 생략할 수 있었다. 마침 시화방조제 비교적 가운데라 위치도 적당했다.
10대의 수차가 20만 명 쓸 전력 생산
발전용 수차발전기는 이미 설치가 끝나 물에 잠겨 있었다. 거대한 수차의 위용을 직접 눈으로 보고 싶었지만 불가능했다. 수차와 수문 모두 물에 잠겨서 그 깊이를 가늠할 방법도 없었다. 이런 생각을 눈치챈 듯 손 소장은 기자를 수차구조물이 설치된 끝부분으로 데려갔다.
“아래를 보세요.”
성냥갑을 세워놓은 것처럼 가로가 길고 깊은 직사각형 모양의 구덩이였다. 그 안에 역시 가로로 긴 거대한 철제 빔 모양의 구조물이 차곡차곡 쌓여 있었다. 꼭 갈빗대 같았다. 깊이를 가늠하기 어려웠다.
“‘스톱로그’라고 합니다. 수차를 막는 임시 문이지요. 저 철제 구조물 하나의 높이가 3m인데, 6개를 쌓아서 수차발전기 하나의 입구를 막습니다. 이렇게 스톱로그 12개로 양쪽 입구를 막으면 안에 물이 새지 않는 구조가 되고, 미리 만들어둔 배수구로 물을 빼면 수차발전기가 드러납니다. 그 때 들어가서 발전기를 점검하거나 수리하지요. 이 구덩이는 스톱로그 저장고로, 모두 6개의 스톱로그가 저장돼 있습니다.”
그러니까 기자가 보고 있는 곳의 깊이가 30m쯤 된다는 뜻이다. 아파트로 치면 10층이 넘는다. 이번에는 손 소장을 따라 크레인 위에 올라갔다. 수차발전기 10대를 설치했고, 앞으로 스톱로그를 설치할 때도 쓸 크레인이다. 해발 33m 높이였다. 오르자 발전소와 방조제가 한눈에 들어왔다.
“가까이 보이는 쪽이 수차, 멀리 보이는 쪽이 수문입니다. 수문은 모두 8개가 있고, 썰물 때 물이 빠지는 곳입니다.”
시화호 조력발전소는 밀물 때에만 발전을 한다. 하루 두 차례 밀물이 되면 발전소를 기준으로 바다 쪽 수위가 높아진다. 평균 5.82m의 물 높이 차가 발생하는데, 이 때 위치에너지 차이가 호수 쪽으로 물을 흐르게 한다. 이 흐름이 수차발전기를 돌려 운동에너지를 발생시키고, 최종적으로 전기가 생산된다. 밀물이 끝나고 썰물이 되면 물이 다시 빠져나간다. 발전기 날개가 바다쪽으로 향해 설치돼 있기 때문에 들어올 때의 30%밖에 물이 빠져나가지 않고, 이때엔 전기가 만들어지지 않는다. 나머지 70%의 물을 빼내는 것이 바로 8개의 수문이다.
수문은 말 그대로 물이 빠져나가기만 하기 때문에 뻥 뚫린 터널 형태다. 발전 기능도 없다. 하지만 수차발전기만으로도 이미 상당한 양의 전기를 만들 수 있다. 한국수자원공사의 계산에 따르면 한 해에 5억 5200만kWh의 전력을 만들 수 있다. 소양강 댐의 1.56배로 인구 20만 명 정도의 중소도시의 한 해 전기 사용량에 해당한다.
마지막으로 발전기가 설치된 지하로 내려갔다. 발전기 자체는 이미 물에 잠겨 있어서 볼 수 없지만 발전기의 규모를 간접적으로나마 느껴볼 수 있는 곳이었다. 생각보다 거대한 지하 공간이 펼쳐져 있었다. 바로 아래에 10대의 발전기가 물살을 가르며 돈다고 생각하니 진동이 느껴지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기자가 방문했을 때는 아직 발전 설비를 가동하고 있지는 않았다). 문득 ‘한번 설치하고 나면 교체하기가 쉽지 않을 텐데 바닷물에 발전기가 녹이 슬지는 않을까’하는 궁금함이 일었다. 바닷물이 금속을 빨리 부식시킨다는 것은 상식이다.
“부식을 방지하기 위한 대책이 3가지 마련돼 있습니다. 먼저 스테인리스 등 녹이 슬지 않는 재료를 씁니다. 유량조절장치나 수차 날개와 같이 중요한 부분은 이 방법을 씁니다. 다음으로 녹이 슬지 않도록 부식 방지제를 바릅니다. 마지막으로 금속 표면에 아주 약한 전류를 흐르게 합니다. 이 세 가지 방법을 쓰면 오랜 시간 부식 없이 발전기를 유지할 수 있지요.”
특히 마지막 방법에 관심이 갔다. 부식이란 결국 금속의 산화다. 산화는 물질이 전자를 잃는 과정이다. 따라서 전류를 흘리면 전자가 공급돼 산화를 막을 수 있다. 이미 프랑스의 랑스 조력발전소 때부터 써 온 기술이다. 40년 넘게 검증된 방법이다.
화석 연료 대안 될까
설명을 마치며, 손 소장은 우리나라보다 외국에서 관심이 더 많다고 덧붙였다. 손 소장이 손수 안내한 외국 방송사만도 CNN, BBC, 알 자지라 등이 있었다. 하나같이 깊은 관심을 보이며 현장을 찾고, 기대가 섞인 표정으로 설명을 듣고 갔다고 했다.
“조력발전소가 궁극적인 대안은 아닐 것입니다. 생태계 등 바다 환경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도 사실이지요. 하지만 화석 연료를 대체할 현실적인 대안임은 분명합니다.”
시화호 조력발전소가 11월 말 본격적인 상업 전기를 생산하면 세계의 관심은 더 커질 것이다. 하지만 세계가 관심을 보이는 것이 비단 세계 최대라는 규모 때문만은 아니다. 44년 만에 처음 건설되는 대규모 상업 조력발전소가 바다 환경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여부도 큰 관심사다. 시화호 조력발전소가 성공적으로 운영된다면, 세계 에너지 역사에도 남을 사건이 될 것이다. 물론 반대일 수도 있다. 무분별한 조력발전소 건립 붐을 일으켜 바다 생태계에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줄지도 모른다. 건설 현장을 빠져나와 방조제 길을 따라 다시 내륙으로 들어서며, 기자는 시화 조력발전소가 에너지계의 ‘무진’이 되지 않기를 조용히 기원했다.